저스틴 벌랜더, 최근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사인 훔치기 파문으로 구설수에 올라있긴 하지만, 올스타 8회 선정, 다승왕 3회, 월드시리즈 우승과 아메리칸 리그 MVP, 2019년 최고 투수의 영예인 사이 영 상까지 그의 실력으로 딴지를 걸 수 있는 야구 전문가들은 없다.

6회가 넘어서도 100마일(160km) 언저리의 직구를 포수의 미트에 꽂아넣고, 다른 투수들은 모두 에이징 커브를 겪는다는 30대 중반의 나이에도 21승 6패 2.58의 ERA에 무려 223이닝을 소화할 정도로 엄청난 체력과 강철몸을 자랑하고 있다.

이미 '금강벌괴'로 불리울 만큼 강철몸을 갖고 있는 벌랜더에게 몇몇 MLB 팬들은 도핑 의혹을 제기하고는 있지만, 그의 엄청난 이닝 소화력과 날카로운 변화구는 약물로는 설명이 안될만큼 엄청나다.

과연 벌랜더가 선수생활의 황혼기인 30대 중반에 들어서서도 전성기, 아니 그 이상의 활약을 보여줄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이 있을까? 2018년의 5월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3루수 알렉스 브레그먼과의 있었던 에피소드는 왜 그가 '금강벌괴'로 불리우고 있는지 알려주는 하나의 예시가 되고 있다.

2018년 5월 초, 휴스턴의 3루수 알렉스 브레그먼은 좀처럼 나오지 않는 홈런에 고민하고 있었다. 그는 4월 11일 미네소타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홈런을 친 이후 좀처럼 홈런을 추가하지 못했고, 평균 타율은 2할 5푼 4리에 그치고 있었다. 브레그먼의 피로함은 덕아웃에서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힘이 없어보이는 얼굴을 띄고 있던 브레그먼은 덕아웃에서 하품을 하기 일쑤였고, 이따금은 졸기도 했다. 이러한 모습을 본 벌랜던은 브레그먼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졌다. "너는 전날 밤에 잠을 얼마나 잤지?", "6시간 정도" 브레그먼이 대답했다.

브레그먼의 대답에 벌랜더는 당황했다. 하루에 기본 10시간을 자는 그에게 있어서 브레그먼의 수면시간은 너무나도 짧다고 느낀 것이었다. 벌랜더는 브레그먼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알렉스, 6시간은 너무 짧은 수면시간이다. 너는 기본 10시간 이상을 자야한다. 수면시간을 조금 더 늘릴 필요가 있다."라고 조언했다.

브레그먼은 처음에는 벌랜더의 말에 반신반의 했다. 훗날 인터뷰에서 브레그먼은 벌랜더의 조언을 듣고 "너무 지나친 것 같다고 느꼈다. 그렇게 많이 자면 안될 것 같았다."라고 회상했다.

하지만, 그는 벌랜더의 조언을 받아들였고, 2018년 2할 5푼 6리에 홈런 31개를 치며 슬럼프에서 완벽히 탈출한 모습을 보였고, 2019년에는 2할 9푼 6리에 41홈런 112타점을 기록하며 휴스턴의 월드시리즈 준우승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브레그먼은 훗날 인터뷰에서 "그의 조언대로 잠을 자기 시작했고, 나는 홈런 30개를 더 추가했다."라고 말하면서 벌랜더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되었음을 이야기했다. 

브레그먼의 말대로 벌랜더는 하루에 10시간의 수면시간을 목표로 한다. 2013년 미국인의 평균 수면시간이 6.8시간인 것을 감안 한다면 벌랜더는 미국인 평균에 50% 정도를 더 잔다는 이야기다.

가끔 11시간이나 12시간을 잘 때도 있으며, 9시간을 잘 때도 있지만, 보통 10시간의 수면시간은 지키려고 노력한다. 벌랜더는 "만약 내가 잠을 더 필요로 한다면 더 자는 편이다."라고 이야기하면서 일어나는 것에 큰 구애를 받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벌랜더에게 있어서 수면은 신성한 존재다. 벌랜더는 잘 때 암막 커튼을 사용한다. 원정경기를 위해 호텔에 머무를 때에는 베개를 사용하여 창문을 막는다. 또한 잘 때 주변이 산만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휴대폰을 비행기 모드에 놓고, 알람 역시 설정하지 않는다.

"알람시계는 바로 나다."라고 이야기한 벌랜더는 "나는 항상 내 몸의 신호에 귀를 기울이는 데 익숙하다. 나는 그저 기분 좋게 하는 일을 하는 것뿐이다. 꽤 단순하게 들리지만, 나는 그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몸은 나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줄 것이다."라고 이야기하며 자연스러운 생활을 이야기했다.

벌랜더의 수면시간은 2018년 11월 딸인 주느비에브가 태어난 뒤에도 똑같았다. 비시즌 기간에 딸이 태어나면서 육아의 시간이 필요하긴 했지만, 아내인 케이트 업튼의 도움으로 기본적인 수면 시간은 보장받은 채 육아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고, 벌랜더는 업튼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 수면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신경쓰는 벌랜더

벌랜더는 수면 뿐만 아니라 웨이트 트레이닝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다른 많은 선수들이 시즌 중에도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고중량 트레이닝을 하는 반면 벌랜더는 관절 기동과 회복에 주력한다. 대표적인 예로 벌랜더는 달리기가 일으키는 무릎 관절의 마모를 피하기 위해 일립티컬 또는 스피닝 사이클을 유산소 운동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수면시간 이외에는 특별히 평소의 선수들과 비슷한 루틴을 소화하고 있다. 보충제나 영양제를 먹는 것보다는 투수가 흔히 먹는 항염증제만 먹으며, 그는 이틀에 한 번씩 몸이 아픈 것을 자연스럽게 알아내는 것을 더 좋아하는 벌랜더는 식단 역시 특별한 음식을 먹기 보다는 자연식으로 제한없이 먹는 것을 좋아한다.

평소의 선수들과 다를바 없는 루틴을 갖고 있는 벌랜더이지만 특히나 '수면'만큼은 유독 다른 선수들에 비해 예민하다고까지 할 정도로 철저한 것을 보면 수면이 얼마나 벌랜더에게 있어 큰 부분을 차지하는지 알 수 있다.




■ 잠은 모든 것의 근간

벌랜더의 수면예찬을 뒷받침해주는 연구결과들도 나오고 있다. 뉴욕 마운트 시나이 병원의 수면 전문 의사인 네오미 샤는 "프로 운동선수들에게 양질의 수면은 큰 회복 효과를 제공하며 자연스럽게 신체의 테스토스테론과 성장 호르몬을 회복시킨다."고 말했다.

"수면은 경기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가장 합법적인 방법이다."라고 덧붙인 샤는 "수면은 더 나은 행복과 좋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능력도 키워준다."라고 이야기하며 수면이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이야기했다.

벌랜더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들은 벌랜더 만큼의 수면 시간을 가지고 있다. 단적인 예로 테니스의 여제 비너스 윌리엄스와 황제 로저 페더러 역시 10시간 이상을 잔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며 2000년대와 2010년대 NBA의 스타인 르브론 제임스 역시 10시간 이상의 수면시간을 갖고 있다.

하지만 야구선수들은 다른 종목 선수들에 비해서는 부족한 수면 시간을 갖고 있다. 보통 6시나 7시에 경기를 시작해 빠르면 10시 늦으면 자정이 넘어서까지 경기를 하는 야구의 특성상 선수들이 10시간이 넘는 잠을 자기란 쉽지 않은 일이며 야간 경기 이후 주간경기 일정이 잡힌 날에는 더욱 수면시간을 조절하기가 어렵다.

뉴욕 양키스의 외야수 브렛 가드너 역시 "하루에 10시간은 자고 싶으며, 지금 당장이라도 서너 시간 더 자고 싶다."라고 이야기하며 수면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브레그먼의 사례를 보면 수면을 조절하는 것도 어느정도 가능하다는 설명이 될 수 있다. 브레그먼은 잠이 자신의 취미나 야구 연습에 제약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잠을 더 자는 것을 꺼려했지만, 벌랜더의 조언을 받아들인 이후에는 야간 경기 후 새벽 2시부터 정오까지 10시간의 수면을 취하고 있다.

브레그먼은 "10시간을 자면 기분이 훨씬 좋아진다. 9시간 자는 날은 조금 짜증날때가 있다."라고 웃으며 이야기할 정도로 수면 예찬론자가 다 되었다.

비록 최근 시끌시끌하게 한해를 시작하고 있지만, 벌랜더는 현역 선수들 가운데에서 명예의 전당 입성이 가장 유력한 투수다. 30을 넘어 40을 바라보고 있는 나이에도 최고의 기량을 유지하고 있는 벌랜더에게서 잠은 모든 것의 근간이라는 격언을 느낄 수 있다.

사진=게티이미지
반재민 기자(press@monstergroup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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