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4월 1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졌던 서울과 수원의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고 등번호 29번의 한 수비수가 쓰라린 눈물을 흘렸다.

후반 13분 돌파하는 김동진을 막다가 내준 페널티킥, 그리고 이어진 히칼도의 결승골 이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이라고 자책하던 수원의 29번, 바로 수원의 전설이 된 이름 곽희주였다.

그 이후 곽희주는 철벽 중앙 수비수로서 2003년부터 2016년까지 2년의 해외생활을 제외한 선수생활의 전부를 수원에서 보냈다. 2017년 그의 은퇴 후 영구결번을 하겠다는 구단의 제의도 있었지만 좋은 후배들이 내 등번호를 달기를 바라며 거절했던 그의 바람대로 29번은 매탄고와 수원 삼성을 잇는 가교 역할을 했다.


먼저 2018년부터 2019년까지의 29번은 박지민이 달았다. 골키퍼 포지션이었기에 경기에 뛰는 횟수는 많지 않았지만, 일찍 상무를 다녀와 군 면제를 받은 이후 여전히 수원에서 활약하고 있다.


박지민이 군 복무로 자리를 비운 틈에 수원의 29번은 매탄고 출신의 정상빈에게 돌아갔다. 초등학교 시절 차범근 축구상 우수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재능을 인정받았던 정상빈은 매탄고를 거쳐 2020년 수원에 준프로로 입단, 2021년 29번을 달고 본격적으로 프로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이후 전반기의 맹활약으로 K리그에 새바람을 불어넣으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지만, 후반기 팀이 10경기 연속 무승이라는 부진에 빠지면서 팀의 공격을 이끌어야 했던 소년가장 정상빈에게는 큰 부담감이 짓눌려 있었다. 이러한 어려움 끝에 9월 21일 강원과의 경기에서 정상빈은 선취골을 만들어내는 활약 속에 3대2 승리를 이끌었고, 수원은 10경기 무승 끝에 1승을 추가했다.

경기가 끝난 후 정상빈은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 팀이 부진할 때 득점을 책임지지 못했다는 죄송스러움, 그리고 승리를 따낸 안도감이 섞인 눈물이었다. 그렇게 정상빈은 수원에서 한층 더 성장했고 시즌이 끝나고 유럽으로 진출하며 더욱 큰 선수가 되었다. 현재는 미국의 미네소타에서 활약하고 있다.


정상빈이 떠난 29번의 자리는 2004년생의 이상민이 물려받았다. 매탄중과 매탄고를 거쳐 수원의 미래로 주목받은 이상민은 지난해 여름 준프로 계약을 맺으며 본격적인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지난해 적응기를 거쳐 올 시즌 U-22 카드로서 다양한 플레이를 펼치던 이상민은 팀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라운드에서 몸을 날리며 활약했다.

지난 울산과의 경기에서도 그는 하프타임 교체 투입되어 활발한 움직임으로 수원 공격의 활력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단 하나의 실수가 이상민의 이날 운명을 바꿔버리고 말았다. 후반 39분 루즈볼을 클리어 하던 이상민의 발은 허공을 갈랐고, 뒤에서 기다리던 설영우가 볼을 낚아채자 당황한 나머지 다리를 걸어버리고 말았다. 지체없는 페널티 킥 선언,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 이상민은 머리를 감싸쥐었다.

결국 이 페널티 킥이 결승골이 되어 수원은 패했고, 후반 45분 고명석과 재교체되어 벤치로 들어온 이상민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경기가 끝나고 팬들에게 인사를 오는 내내 이상민은 고개를 들지 못했고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제 갓 스무 살, 그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가혹한 시련이었다.

동료들과 팬, 그리고 김병수 감독까지 아직 어린 선수의 실수에 너그럽게 용서했다. 김병수 감독은 "울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아직 20살 밖에 안되었기 때문에 그 상황을 본인이 이겨내기에는 힘들지 몰라도 좋은 기술을 가진 선수이기 때문에 이를 계기로 해서 마음적으로 큰 어른이 되면 좋겠다."라고 격려했다.

이어서 "좋은 것은 빨리 잊어버리는 것이 상책이다. 다음 FA컵 때 선발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주저앉아서 슬퍼할 틈이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이야기하며 다음 경기에서 자신의 실수를 깨끗히 만회해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함께 전달했다.


김병수 감독의 말대로 이제 갓 스무살, 전설 곽희주가 짊어진 29번의 무게는 무거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2005년의 곽희주가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2021년의 정상빈이 그랬던 것처럼 이상민 역시 눈물을 먹으며 더 큰 선수로 자랄 것이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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