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의 겨울이 만만치 않습니다.
팀의 에이스인 류현진(25)는 LA 다저스와 입단 협상을 벌이고 있습니다. 아직 확정된 것은 없지만 협상 불발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여 내년부터는 99번을 단 그의 모습은 '다저 블루'의 저지로나 볼 것으로 예상됩니다.
대신 류현진은 280억 원이라는 기대 이상의 포스팅 머니를 구단에 선물하고 떠납니다. 거의 야구팀 1년 예산에 해당되는 거액입니다. 그래서 올 겨울 스토브리그에서 이글스는 상당한 구매력을 갖출 것으로 기대케 했지만 정작 18일까지 한화와 계약한 FA 선수는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투수 송신영이 지명 받아 NC로 떠났습니다. 송신영과의 결별은 어찌 보면 양측에 모두 윈-윈이 될 수도 있겠지만 FA를 하나도 영입하지 못한 것은 타격이 큽니다. 김주찬이나 정현욱이나 팀 전력에 상당한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되는 선수들이지만 그들의 선택은 KIA와 LG였습니다. 거목 김응용 사단의 위상도 최근 몇 년간 최하위권을 맴돈 팀 이미지를 바꿔 놓지는 못했고, FA들은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마지막 소망이던 고국 무대에서 한 시즌을 보낸 박찬호는 조만간 자신의 거취에 대해 결정을 내릴 것으로 보입니다. 사진=팀61>

그리고 이제 상징적인 선수인 박찬호(39)의 거취 문제가 남았습니다.
박찬호는 현재 미국에서 장고하고 있습니다. 아직 내년 시즌에 대한 거취를 확정지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지만 거의 마음을 정한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당초 박찬호는 올 시즌을 고국으로 돌아와 선수 생애 마지막을 멋지게 뛰고 은퇴할 마음이었습니다. 특히 지난 10월3일 마지막 등판을 앞두고 그런 징후가 엿보였습니다. 당시 부상 회복 중이던 박찬호는 기자를 만나자 '시작도 함께 했으니 마지막도 함께 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며 농담반 진담반의 말을 건넨 후, 혹시 자신의 시즌 마지막 등판 경기의 해설을 하는지 여부를 묻기도 했습니다. 순간 1994년 4월9일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다저스타디움 마운드에 첫 선을 보이던 경기 장면이 스쳐가기도 했습니다. 다저스타디움 기자실에서 손에 땀의 쥐며 지켜보던 그 경기가 눈에 선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박찬호가 마지막을 준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그날 경기에는 박찬호의 지인들이 대거 대전 구장을 찾았습니다. 다른 방송 일정이 겹쳐 현장에 가지 못했지만 그의 시즌 마지막 경기를 TV로 유심히 관전하면서 '이게 박찬호의 마지막 현역 경기일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박찬호는 당초 짧게 던질 것이라는 계획과는 달리 5와⅔이닝을 던졌습니다. 한 달만의 등판이었지만 투구수도 92개를 기록했고 수비 실책이 겹치며 5실점했지만 자책점은 3점에 3회까지는 KIA 타선을 1안타로 막는 등 기대 이상의 호투를 했습니다. 나지완에게 맞은 2점포와 수비 실책 이후 내준 점수의 아쉬움은 있었지만 경기 내용은 훌륭했습니다. 39세에 국내 무대에 데뷔한 박찬호의 성적은 23경기에 선발로 나서 121이닝을 던지며 5승 10패 평균자책점 5.06을 기록했습니다. 전반기에는 16경기에서 4승5패 3.77의 빼어난 성적이었는데 올스타전을 앞두고 부상이 온 후에 후반기에는 7경기밖에 뛰지 못하고 부진했습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 등판의 호투는, 야구 욕심이라면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박찬호에게 갈등의 불씨가 됐습니다. 오랜만의 등판에서 호투하면서 '겨울 동안 몸을 탄탄히 만들어 준비하면 한 시즌은 더 뛸 수 있겠다.'라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물론, 주위에서 더 뛰어달라는 강한 부추김이 있었던 것도 작용을 했습니다.
그가 현역 생활을 연장할 것인지 고민 중에 큰 변수가 생겼습니다. 백전노장 김응용 감독이 현역으로 복귀하며 이글스의 지휘봉을 잡게 된 것입니다. 과거 김응용 감독의 박찬호 관련 발언이 와전되며 불편한 구설수도 있었고, 팀의 체질개선이 필수적인데 과연 40세 노장을 함께 데리고 갈 것인지도 의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취임식에서 김 감독을 만난 박찬호는 강한 인상과 함께 1년 더 함께 가자는 김 감독의 말을 듣고 감동했습니다. 노장에 대한 예우도 확실하게 해준다는 느낌도 진하게 받았습니다. 미국을 다녀와 거취 문제를 확정짓겠다는 의견에 대해 구단에서도 동의해줬습니다.

<1994년 1월 LA 다저스와 입단 계약식을 하던 박찬호. 프로생활 만 20년째가 되는 내년에 과연 그가 마운드에 서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요?>

미국으로 가서 지인들을 만나면서 박찬호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한 것은 분명합니다. 특히 그의 평생의 멘토인 피터 오말리 전 LA 다저스 구단주와 만나 자신의 미래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조언을 청했습니다. 박찬호는 공부에 대한 욕심도 있고 지도자에 대한 욕심도 있습니다. 오말리 전 구단주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구단 운영에 다시 뛰어들면서 박찬호에게 지도자 자리를 내주는 일쯤은 문제도 아닐 수 있습니다. 현역 생활을 1년 더 이어갈지, 공부를 할지, 아니면 지도자의 길을 시작할지, 어려가지 옵션을 생각하면서 고민을 거듭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그 와중에 김응용 감독이 박찬호에게 거취를 빨리 결정하라는 발언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습니다. 새롭게 팀을 꾸려가는 감독으로서는 당연한 요구 일 수 있지만 타이밍은 좀 아니었습니다. 차라리 20인 보호 선수 명단을 정하기 전에 그런 이야기를 했더라면 더 설득력이 있고 박찬호도 조속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미 보호 선수 명단에 류현진과 박찬호를 모두 포함시키고 나서야 그런 말이 나온 것은 큰 효력이 없는 발언이었습니다.

어쨌든 박찬호는 이제 큰 결정을 내려야만 합니다.
만 스무 살에 미국 프로야구에 뛰어 들었고 동양인 최다인 124승을 거둔 후 일본에서 아쉬운 한 시즌을 보내고 자신의 소망이던 국내 무대에서 2012시즌을 뛰었습니다. 시즌 초반 그가 마운드에 오르는 날이면 운동장마다 만원사례를 이루며 영웅의 귀환을 반겼습니다. 여전히 많은 팬은 그가 한 시즌이라도 더 뛰어주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선수에게는 운동장에서 온 힘을 다해 자신의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은퇴할 시기를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과연 박찬호가 지금 떠날 시기인지는 결국 자신이 결심을 해야 할 사안입니다. 박찬호는 박수 받으며 떠날 시기를 올겨울로 잡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의 결정이 무엇이든 야구팬은 그에게 뜨거운 갈채를 보낼 것이지만 어쩌면 지난 10월3일 한밭구장 마운드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공을 던지던 그 모습이 현역 유니폼을 입은 박찬호의 마지막 모습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만 사십 세에도 마운드에 오르는 박찬호의 모습을 볼 수 있을지, 아니면 '코리언 특급'이 이제 글러브를 벗고 마운드를 떠날 것인지, 조만간 발표가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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