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프로야구 시즌을 앞두고 가장 큰 기대를 모았던 팀은 한화 이글스였습니다.
거포 김태균의 복귀와 전설 박찬호의 귀향, 그리고 탄탄한 셋업맨 송신영의 가세와 함께 국내 최고의 좌완 에이스 류현진까지 버티고 있었습니다. 구단과 팬은 물론 야구 전문가들도 모두 이글스의 화려한 시즌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찬찬히 따져보면 작년 전력에서 커림 가르시아가 빠지고 박찬호는 예측이 쉽지 않는 40세 노장이라는 점, 그리고 송신영과 함께 불펜의 핵심이 될 것으로 예상된 박정진의 몸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점 등은 모두 화려한 기대감 속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실제로 크게 전력이 보강된 것이 아니었고, 기존의 선수들은 새로 가세한 선수에게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지나친 기대감은 독이 됐습니다. 막상 뚜껑을 열자 이글스는 공, 수, 주가 계속 엇박자로 놀며 삐걱대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모든 프로야구 팀의 핵심 전력인 외국인 선수까지 부진에 부진을 거듭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추락했습니다.

17일 현재 한화 이글스는 28승2무47패를 기록하며 선두 삼성 라이온스에 15.5경기 뒤진 8위입니다.
이글스의 시즌은 77경기를 치렀으니 이제 56경기가 남았습니다. 만약 남은 시즌 이글스가 모두 2승1패의 위닝 시리즈를 기록한다고 해도 37승19패의 성적으로 시즌 전적은 65승66패로 승률 5할을 맞추기가 불가능해집니다. 최고 연봉 선수를 보유하고 최고의 좌완 투수가 버티고 영웅이 고향 팀으로 돌아왔지만 현실적으로 4강 싸움에 대단히 힘겨워진 것이 사실입니다. 최선을 다해 경쟁력 있는 경기를 치르면서 또한 젊은 선수를 키워내며 내실을 다지는 리빌딩을 생각해볼 시점에 와 있습니다.

KBO에서 이글스가 아쉬움을 남긴다면 MLB에서 올 시즌 가장 실망스런 팀은 필라델피아 필리스일 것입니다. 필리스는 작년에 102승60패를 기록하며 조 우승을 차지했음은 물론이고 2008시즌 이후 NL 동부조에서 장기집권 하고 있습니다. 두 번이나 월드시리즈에 진출했고 2008년에는 월드챔피언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올해도 우승 후보이던 필리스는 NL 동부조 최하위에 떨어져 있습니다. 2008년 우승 직후 현장 대형 스크린을 찍은 사진 ⓒ민기자닷컴)

시즌 전 NL 동부조 예상을 다시 볼까요.

NL 동부조는 아마도 MLB 6개조 중에 거의 최강의 전력으로 대접전이 예상되는 지구입니다. 늘 하위권이던 워싱턴 내셔널스, 그리고 새롭게 단장한 마이애미 말린스의 전력이 한층 향상되면서 심지어 장기집권 중인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수성도 만만치 않게 됐습니다. 최근 몇 년간 부진하고 구단이 곤궁에 처한 뉴욕 메츠가 가장 전력이 떨어진다는 것에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하는 정도지만 다른 지구의 하위권에 비하면 메츠마저 강합니다.

그리고 필리스에 대한 예상입니다.

지난 2008년 이후 동부조 왕좌를 지키고 있는 필리스는 올해도 강력한 우승후보입니다. 로이 할러데이(19승6패 2.35)-클리프 리(17승8패 2.40)- 콜 해멀스(14승9패 2.79)가 건재하고 밴스 월리(11승3패 3.01)가 선발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로이 오스왈트가 떠났지만 작년 8게임 선발에 그친 조 블랜턴이 부상에서 돌아왔습니다. 이 선발진만으로도 필리스는 우승 후보로 꼽힐만합니다.
보스턴에서 뛰던 조너선 파펠본이 마무리를 맡게 되고 좌완 바스타도와 새로 가세한 채드 퀄스, 카일 켄드릭, 마이클 스투츠 등이 불펜을 책임집니다. 최강 불펜은 아니지만 선발이 워낙 좋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타선입니다. 작년에도 리그 중간 정도인 7위의 공격력을 보이며 하락세였는데 올해는 주전들의 나이가 하나씩 더 먹은 데다 주포가 빠진 해 시즌을 시작합니다. 1루수 라이언 하워드(아킬레스 수술)와 2루수 체이스 어틀리(무릎)가 부상으로 개막전 로스터에 들지 못했습니다. 짐 토미, 타이 위긴턴 등의 노장이 일단 1루 플라툰으로 갑니다. 롤린스, 폴랑코, 빅토리노, 펜스 등이 건재하지만 중량감은 조금 떨어집니다.
도전하는 팀들의 기세가 당당해졌기 때문에 어틀리-하워드의 공백 기간 동안에 팀이 얼마나 잘 버티느냐가 중요합니다. 물론 투수진이 워낙 강해서 무너질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4,5선발이 흔들리거나 다혈질 파펠본이 혹시라도 새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일이 생기면 곤란합니다. 주전들이 대부분 서른을 넘겼고 3루수 폴랑코와 유격수 롤린스도 부상 전력이 있습니다. 여전히 강하지만 난공불락은 아닙니다.

약간의 우려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필리스는 최강 전력으로 우승 후보로 꼽혔습니다.
그런데 17일까지 필리스는 40승51패로 승률 5할에서 11게임이나 떨어진 성적으로 AL 동부조 최하위에 떨어져 있습니다. 그나마 최근 3연승을 거둔 게 그렇습니다. 득점 386점은 NL 16개 팀 중에 6위이고, 88홈런은 8위입니다. 장타율 .405도 공동 8위이고 370타점은 7위입니다. 팀 타율 2할6푼2리로 4위인 것이 가장 높은 공격 지수입니다. 그저 평범한 타격의 팀이라는 것이 기록에 나옵니다.

(필리스 구장에는 여전히 게임당 4만4746명의 최고 관중이 모여 팀을 응원하지만 실망도 커지고 있습니다. ⓒ민기자닷컴)

물론 가장 큰 이유는 부상입니다.

주포 체이스 어틀리가 13경기밖에 뛰지 못하며 공격 기여도가 .239-2홈런-6타점에 불과합니다. 거포 라이언 하워드 아킬레스건 수술에서 돌아와 6게임을 뛰었는데 1할5푼에 1홈런, 1타점입니다. 실질적으로 두 타자는 스프링 캠프를 치르는 수준의 몸 상태로 봐야 합니다.
그리고 주축 타자들의 부상 결장은 다른 타자에게도 도미노 악영향을 끼치는 것은 야구에서 당연한 일. 셰인 빅토리노(.251-8-38), 플라시도 폴랑코(.260-2-19), 지미 롤린스(.262-9-34) 등은 기대에 못 미칩니다. 포수 카를로스 루이스(.353-14-50)으로 기대 이상의 활약을 하고 있지만 루이스가 팀 OPS 1위라는 것은 문제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헌터 펜스가 (.276-17-53)으로 그나마 좋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투수진으로 가도 비슷한 실정입니다.
콜 해멀스가 11승4패 평균자책점 3.07로 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최악의 불운에 빠진 클리프 리는 15경기에서 1승6패에 3.92입니다. 9번 퀄리티 스타트에 1승은 류현진 이상의 불운입니다. 월리는 5승5패 3.47로 발전 기대에 약간 못 미칩니다. 그리고 최강 로이 할러데이의 부진과 부상은 결정적입니다. 11경기밖에 선발등판하지 못했고 4승5패 3.98에 그쳤습니다. 오히려 블랜턴이 꾸준히 뛰면서 8승8패로 기여했지만 평균자책점은 4.79로 불안합니다. 새로 영입한 마무리 파펠본은 2승3패 20세이브로 평균자책점이 3.09로 마무리 치곤 약하고 2블론 세이브가 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필리스의 팀 평균자책점은 4.20으로 NL 16개 팀 중에 12위에 떨어져 있습니다. 20세이브 역시 공동 10위권이고 실점 410점은 14위입니다. 난공불락이라고 기대하던 투수진은 하위권의 성적입니다.

이렇게 최강 전력의 팀이 평범 이하의 팀으로 곤두박질치자 팬의 화살은 구단 지도부에 쏟아졌습니다. 루벤 아마로 주니어 단장과 찰리 매누엘 감독이 팀 운영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며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야구를 하는 것은 선수이지 단장이나 감독이 아닙니다. 사실 팬의 기대치를 한층 높일 만큼 팀을 잘 구성한 것은 바로 아마로 단장이었습니다. 지난 4년 연속 팀을 NL 동부조 우승은 물론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이끈 감독이 바로 매누엘이었습니다.
그러나 뛰어난 감독이 한 시즌 끌어올릴 수 있는 승수는 5승 정도라는 것이 MLB의 정설입니다. 물론 그 5승에 따라 우승이나 탈락이 결정되니까 아주 중요한 승수이고, 그래서 명감독은 대우를 받습니다. 그러나 감독이 시즌을 만들고 팀의 승리를 전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결국은 선수가 해 주어야 합니다.

미진한 거약 연봉 선수에게 쏠리는 비난의 눈길

그러다보니 요즘 필리스 팬의 날선 시선은 점점 선수에게 매의 눈길을 보내는 분위기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천문학적인 연봉을 받는 선수들의 활약이 기대 이하이기 때문입니다.
필리스의 2012시즌 팀 연봉은 1억7345만8939 달러입니다. 우리 돈으로 약 1995억 원으로 MLB 30개 팀 중에 양키스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연봉을 지불하는 팀입니다. 당장 올 시즌 하워드가 2000만 달러(약 230억)를 받고 어틀리는 1500만 달러(약 172억)를 받습니다. 지미 로린스는 1100만 달러(약 126억), 헌터 펜스는 1040만 달러(약 120억), 빅토리노가 950만 달러(약 109억)를 받습니다. 이 중에 몸값을 하는 선수는 펜스 정도.
투수진에는 할러데이가 2000만 달러(약 230억), 리는 2150만 달러(약 247억)를 받고 파펠본이 1100만 달러(약 126억)의 연봉입니다. 그래서 제 역할을 해주는 해멀스의 연봉 1500만 달러(172억)가 대단히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른 투수들의 역할이 연봉 대비 너무 미미합니다.

(어틀리와 하워드는 올해 합쳐서 400억원이 넘는 연봉을 받지만 부상에서 최근 돌아와 기여도가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면 필리스는 과연 다시 페넌트 레이스에 뛰어들 수 있을까요.

18일 복귀한 할러데이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의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올해 할러데이가 등판한 경기에서 필리스는 4승7패를 당했고, 주자가 나간 상황에서 피안타율이 2할7푼7리로 작년보다 7푼이나 높아졌을 정도로 위력이 떨어졌습니다. 부상 여파지만 과연 그가 남은 시즌 어떤 역할을 해줄지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기사를 쓰는 동안 진행된 LA 다저스와 경기에서 필리스는 6회까지 1-2로 리드를 당했습니다. 할러데이는 5이닝 2실점하고 교체됐습니다.)
어틀리와 하워드가 하루 빨리 정상 컨디션으로 방망이를 휘둘러 주어야 함은 필수입니다. 힘 떨어진 타선에 3,4번이 돌아왔으니 그들이 제 역할을 해주면, 그들이 이탈했을 때 나왔던 불쾌한 도미노 현상과는 정반대인 유쾌한 도미노 현상이 타선에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필리스도 딜레마입니다.
조 선두인 워싱턴에 13.5경기 뒤졌다는 것도 어렵지만 사실 큰 문제는 앞에 넘어야할 팀이 4팀이나 된다는 점입니다. 같은 13.5게임차라해도 2위일 때와 5위일 때는 천지차이입니다. 서로 물고 물리는 관계가 되기 때문에 많은 팀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은 몇 배나 어려운 과제입니다.
필리스는 이제 71경기를 남겼습니다. 남은 시즌 모두 2승1패의 위닝 시리즈를 간다고 가정하면 87승 75패의 성적이 나옵니다. 조우승을 차지하기는 어려운 승수입니다. 그것도 야구에서 거의 불가능한 승률 67%를 전제로 한 가정입니다.

그렇다면 필리스도 리빌딩을 생각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미 해멀스와 빅토리노의 트레이드 설이 파다하게 돌고 있습니다. 해멀스를 포기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결정이지만 시즌이 끝나면 FA가 되니 고민입니다. 빅토리노 역시 FA가 됩니다. 일각에서는 필리스가 1억2000만 달러 정도를 해멀스를 위해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도 있기는 합니다.

'화무십일홍 (花無十日紅), 권불십년 (權不十年)'이라 했습니다.
열흘을 붉은 꽃이 없고, 권세는 10년을 가지 못한다지요. 필리스의 요즘을 보면 떠오르는 글귀입니다. 아무리 천하의 필리스라도 5년 연속 조 우승내지 가을 잔치 참여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610 [민기자 MLB 리포트]파문이 커지는 멜키 카브레라의 약물 사건 (2012.09.05) 팀몬스터짐 2013.10.24 1274
2609 [민기자 KBO 리포트]유원상으로 본 부상 선수 규정의 폐해 (2013.09.03) 팀몬스터짐 2013.10.24 1097
2608 [민기자 MLB리포트]대형 트레이드와 펜웨이파크의 매진 행진 (2013.08.31) 팀몬스터짐 2013.10.24 838
2607 [민기자 MLB 리포트]한국이나 미국이나 부상 병동이 골칫거리 (2013.08.29) 팀몬스터짐 2013.10.24 1343
2606 [민기자 코리언 드림]남은 시즌 선전을 자신하는 사도스키 (2012.08.27) 팀몬스터짐 2013.10.24 1088
2605 [민기자 MLB 리포트]MLB를 풍미한 유명 형제 선수들 (2012.08.24) 팀몬스터짐 2013.10.24 2012
2604 [민기자 야구 리포트]야구가 뿌린 꿈과 희망, 우간다 야구팀 (2013.08.22) 팀몬스터짐 2013.10.24 1212
2603 [민기자 MLB리포트]총체적 난국 보스턴 레드삭스 (2013.08.20) 팀몬스터짐 2013.10.24 1013
2602 [민기자 MLB 리포트]최초의 우승과 에이스 포기의 갈림길에서 (2013.08.17) 팀몬스터짐 2013.10.24 998
2601 [민기자 MLB 리포트]류현진과 윤석민의 MLB 진출 분수령 (2013.08.16) 팀몬스터짐 2013.10.24 1130
2600 [민기자 마이너 리포트]사이클링 히트 친 남태혁의 생존법 (2013.08.13) 팀몬스터짐 2013.10.24 1260
2599 [민기자 MLB리포트]확률로 보는 2012 가을 잔치 판도 (2012.08.10) 팀몬스터짐 2013.10.24 766
2598 [민기자 MLB 리포트]몰락인가 기인인가. 호세 컨세코 (2012.08.03) [1] 팀몬스터짐 2013.10.22 1988
2597 [민기자 MLB리포트]RBI 프로그램으로 본 MLB의 사회봉사(2012.08.03) 팀몬스터짐 2013.10.22 2743
2596 [민기자 MLB 리포트]트레이드 총정리, 추신수는 없었다. (2012.08.01) 팀몬스터짐 2013.10.22 1547
2595 [민기자 MLB리포트]추신수는 과연 트레이드될까? (2012.07.30) 팀몬스터짐 2013.10.22 1033
2594 [민기자 MLB리포트]신화를 써간 노장들, 모이어-페이지-최향남 팀몬스터짐 2013.10.22 3080
2593 [민기자의 코리언 드림 39]한국에서 야구 생애를 마치고 싶은 앤서니 팀몬스터짐 2013.10.22 1257
2592 [민기자 MLB 리포트]추신수, AL 최고의 1번 타자를 향해 진격 (2012.07.23) 팀몬스터짐 2013.10.22 1367
» [민기자 MLB 리포트]챔피언 필리스 위용을 되찾을까 (2012.07.18) 팀몬스터짐 2013.10.22 3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