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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짐=조형규 기자] 정보경은 2016년 한국 유도가 낳은 최고의 스타 중 한 명이다. 지난해 리우 올림픽 여자 유도 -48kg급 결승에서 파레토에게 아쉽게 패배하는 순간, 매트 위에서 펑펑 쏟아낸 그녀의 뜨거운 눈물은 많은 대중의 가슴을 울렸다. 지난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66kg급 조민선이 금메달을 딴 이후 꼬박 20년 만에 한국 여자 유도가 거둔 최고의 기록이었다.

유독 뜨거웠던 지난여름의 감동을 뒤로하고 정보경은 다시 매트 위에 섰다. 새롭게 시작되는 정유년, 그녀는 어느덧 한국 여자 유도 대표팀을 이끄는 주장이 됐다. 최고의 선수들을 이끄는 리더로서의 무거운 책임감이 부여됐지만, 동시에 그녀는 자신과 상대를 돌아볼 줄 아는 한 줌의 여유도 생겼다고 했다. 

2017년, 유도 선수로서 큰 도약의 발판을 예고하며 가장 큰 키워드로 ‘여유’와 ‘책임감’을 꼽은 2016 리우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정보경을 서울 노원구에 위치한 태릉 선수촌에서 만났다.


#1 - 유도가 정보경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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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유도 선수들만 만나다 보니 제 손이 못생긴 줄 몰랐어요. 그런데 작년 리우 올림픽 직전에 조준호 코치님이 손 사진을 올려주신 거 보고 ‘조금 특별하긴 하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그걸 계기로 확실히 남들과는 다르다는 것도 알았는데, 사실 전 제 손 괜찮은 것 같아요. 그 외에 별다른 생각은 없어요(웃음).”


■ 지금의 정보경을 만든 건 자신감과 스스로에 대한 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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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웃음).
안녕하세요. 정보경입니다(웃음). 전국체전 끝나고 조금 쉬다가 최근에 다시 선수촌으로 돌아왔습니다. 평소처럼 훈련하고 있어요.

밝은 모습에 왠지 모르게 여유가 느껴지네요. 자타 공인 지난 리우 올림픽이 낳은 한국 유도 최고의 스타였어요. 그 후로도 미디어와 대중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것을 실감하고 계신지요?
아무래도 올림픽 이전에 비하면 확연히 체감되는 부분이긴 해요. 저로서는 영광이죠. 항상 감사하고 있어요.

정보경 선수의 SNS만 봐도 그런 부분이 크게 느껴져요. 지금도 사진이 새로 올라오면 많은 팬들이 댓글을 달아주더라고요(웃음). 어떤가요?
신기하죠 뭐. 저를 이렇게 알아봐 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게 일단 신기했고요. 그리고 이렇게 말하면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어떤 거요?
음··· 한편으로는 '내가 그래도 뭔가를 하긴 했구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해요(웃음).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제일 크죠.

사실 지난 올림픽 이전에는 언론으로부터 크게 주목을 받던 상황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평소 모습을 보면 그전부터 본인의 실력에 대한 확신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저만 그렇게 느끼는 건가요?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예전부터 제 자신을 충분히 믿는다고 항상 생각해왔어요. 다른 분들이 보기에는 어떠실지 모르겠지만, 예전부터 그렇게 말하고 다녔거든요. ‘무조건 금메달 딸 거다’ 라고요(웃음). 사실 건방진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남들이 보는 시각과는 상관없이 스스로에 대한 자신과 확신이 있었어요.

그랬군요. 지난 올림픽 때 저는 문흐바트와의 경기가 특히 인상 깊었어요. 세계 랭킹 1위 선수였는데 전매특허인 소매들어 허리채기로 절반을 따낸 그 장면요(웃음).
사실 딱히 장기라고 할 만한 기술은 아니에요(웃음). 고등학교 때는 원래 안뒤축감아치기가 자신 있는 기술이었어요. 그런데 그것만 쓰다 보니 절 상대하는 선수들이 금세 알아차리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전에 앞기술을 먼저 해야 하고, 그렇게 훈련하다보니 이것도 늘고 저것도 늘게 된 셈이죠.

어쨌든 은메달을 획득하면서 그렇게 올림픽을 마무리 지은 뒤에도 활약상이 계속됐어요. 얼마 전에 있었던 전국체전에서 금메달, 도쿄 그랜드슬램에서도 은메달을 획득했고요.
일단 전국체전은 제가 1등을 해야겠다는 자신감이 있었고, 그런 마음가짐으로 시합에 임했기 때문에 결과도 잘 나온 것 같아요. 도쿄 그랜드슬램 때는 조금 쉬다가 들어와서 힘든 순간도 있었는데, 결승에서 패하긴 했지만 충분히 좋은 결과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때 또 문흐바트를 만났죠(웃음)?
네. 아무래도 너무 많이 붙어 본 선수이기도 하고, 특별히 부담되거나 그러진 않았어요. 그런데 올림픽 이후로 처음 뛰는 국제 대회라 첫 시합에서 알게 모르게 부담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외국 선수들도 많이 바뀌었던데, 새로운 상대를 만난다는 긴장감 때문에 오히려 첫판이 가장 힘들었죠.

그래도 그런 긴장감을 잘 이겨냈기 때문에 결국 은메달이라는 값진 결과를 얻은 것 같습니다. 전체적으로 도쿄 그랜드슬램 대회를 한번 돌이켜보면 어떤 느낌일까요?
사실 개인적으로도 크게 기대하고 출전한 대회는 아니었어요. 그래서 제 나름대로는 잘 치른 대회라고 생각해요. 여태까지 꾸준히 운동을 해왔기 때문에 도쿄 그랜드슬램에서도 그러한 부분이 나타난 게 아닌가 싶네요(웃음).


■ 여자 유도 대표팀의 새 주장으로···“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배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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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태릉 선수촌 생활은 어떤가요?
일단 새로 바뀐 감독님과 선생님들의 운동 분위기가 이전과는 다르게 자율적인 편이에요. 자기 운동은 자신이 알아서 한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계셔서인지, 각자 자신이 필요한 운동에 집중하면서 분위기가 강압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변한 것 같아요.

확실히 분위기가 한층 쇄신 중인 것 같네요.
네. 선수들이 대체로 선생님들을 잘 따르는 것 같아요. 분위기도 굉장히 좋습니다. 새로운 선생님들의 지도하에 앞으로 다가올 대회들을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어요.

혹시 정보경 선수의 변화는 없었나요? 올림픽 이전과 현재의 선수촌 생활에 있어서 변화한 점들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메달을 따고 나면 항상 ‘건방지다’, ‘자만한다’ 같은 말들이 따르잖아요. 최대한 그런 이야기들이 들리지 않도록 항상 초심을 갖고 운동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의무감, 책임감도 강해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이제는 주장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보니(웃음).

큰 변화가 있었네요(웃음). 주장을 맡게 된 건 언제부터였나요?
이번에 선수촌에 입촌하면서 선생님들께서 정해주셨어요. 그리고 저희 기수 나이대가 현재 여자 유도 대표팀에서 두 번째로 많기도 하고요.

2011년에 처음 국가대표로 선발되셨는데 어느덧 주장이라니, 격세지감입니다(웃음).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죠. 제가 처음 태릉 선수촌에 온 게 2011년 3월 대학교 2학년 때였는데, 선배들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났거든요. 그래서 그때는 운동을 잘해야겠다는 생각보단 그저 ‘이 무리에 잘 섞여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앞섰으니까요(웃음).

주장이라는 직책을 맡게 되면서 느낀 부담감은 없었나요?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이죠. 사실 처음에는 선생님들께 ‘주장 못할 것 같다’고 이야기했어요. 주장이라는 직책이 주는 중압감도 있고, 저는 운동을 하다 보면 제 운동에만 집중하는 편이라 주변을 세심하게 잘 살피지 못하거든요. 하지만 선생님들도 생각하고 정해주신 만큼, 이제는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죠. 무엇보다도 밑에서 바라보는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훈련하면서 후배 선수들에게 조언을 자주 하는 편인가요?
제가 말주변이 없어서 특별히 조언을 해준다기보다는, 그냥 훈련시간에 운동하면서 혹시 후배들이 잘 못하고 있는 점이 있으면 짚어주는 정도예요. 아직까지는요(웃음).

그렇다면 지금까지 주장으로서 여자 유도 대표팀을 이끌어온 소감을 말해주실 수 있나요?
일단 현재까지는 선수들이 잘 따라와 줘서 고마워요. 다행히 지금 태릉에 동기들이 많아서 모두가 옆에서 잘 도와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앞으로도 잘 따라와 주면 좋겠어요.


■ 부족한 부분 보완한 2017년···“유도에서 여유를 찾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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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이라는 위치도 그렇지만 유도를 대하는 태도나 운동에 있어서도 올림픽 이전과 이후로 많이 바뀐 것 같아요. 그 부분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무엇보다도 여유를 찾았다는 점이 가장 큰 것 같아요. 그전까진 제가 굉장히 급하게 운동을 했어요. 상대의 공격을 받는 것이 두려워서, 제가 상대를 잘 잡건 못 잡건 일단 무조건 공격부터 하고 보는 식이었죠. 하지만 올림픽을 계기로 그런 부분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어요. 선생님들께서도 올림픽 시합 때 여유가 많이 생겼다면서 그 부분을 칭찬해주셨거든요. 그 뒤로 유도 스타일도 바뀐 것 같기고 하고요.

어떤 부분에서 스타일이 변화했다고 생각하셨는지요?
여유가 생기다 보니 이제는 상대를 조금 더 유심히 관찰하게 되고, 더 많은 기술을 시도하게 됩니다. 예전에는 잘 하는 기술만 더 잘 할 수 있도록 연습을 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선생님들도 ‘해보고 싶었던 기술들은 다 해봐라’라고 하시면서 조금 더 다양한 기술을 응용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유도 시간도 재밌어졌죠.

좋은 변화네요. 아무래도 지난 올림픽에서부터 바뀐 새로운 유도 룰에 적응하기 위해서라도 다양한 기술에 대한 적응이 필수일 것 같아요. 급격하게 변화하는 현대 유도의 흐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과거의 전통적인 유도와는 거리가 점차 멀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대중이 유도를 조금 더 알기 쉽고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바뀌고 있는 점에 대해서는 좋게 생각하고 있어요. 물론 룰이 바뀌면 선수로서는 힘든 점도 있겠죠. 하지만 그런 건 어차피 선수인 저희가 이겨내야 하는 부분이거든요.

사실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잖아요. 지난 올림픽에서 우리 선수들 중 다섯 명이 모두 굳히기로 졌거든요. 세계 유도의 그런 흐름을 보면서 저는 개인적으로 브라질리언 주짓수 같은 느낌도 살짝 들었거든요.
조금 정도가 아니라 꽤 크죠. 점점 굳히기 시간이 길어지면서 동시에 서서 경기하는 비중이 줄어들고 있어요. 지난 도쿄 그랜드슬램에서도 느낀 점인데, 몇몇 선수들은 경기 시간 4분 중 거의 절반 이상을 굳히기만 하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굳히기 비중이 과거에 비해 정말 커졌다는 걸 느끼고 있어요. 가끔은 ‘나도 주짓수를 배워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고(웃음).

정보경 선수는 어땠나요?
저는 굳히기를 굉장히 못 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처음에는 엄청 싫었죠(웃음). 늘 서서 이기다가고 굳히기로 진적도 많았어요. 올림픽 이전에는 눌려서 지면 안 된다는 생각만 가지고 있어서 방어에만 집중했거든요.

하지만 확실히 그런 부분에 있어서 지금 대표팀의 훈련 분위기는 플러스가 되는 것 같아요. 새로 부임하신 배상일 감독님도 굳히기 훈련에 굉장히 시간을 많이 투자하시더라고요.
맞아요. 오히려 이런 상황을 계기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새로운 선생님들께서 굳히기 비중을 높이면서 방어는 기본이고, 동시에 굳히기로 공격할 수 있는 찬스가 오면 꾸준히 공격할 것을 주문하고 있어요. 그동안 여자 유도 대표팀이 대체로 굳히기에 약했는데, 앞으로는 그런 부분이 상당수 보완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양한 기술로 새롭게 보완을 마친 유도 대표팀 선수들을 하루빨리 국제 무대에서 만나고 싶네요(웃음). 이제 정유년 새해가 밝았는데, 올해는 어떤 대회 출전을 계획하고 있나요?
일단은 2017년 초에 전지훈련을 가는데, 그곳에서 몇몇 시합을 뛸 것 같아요. 그리고 큰 대회는 역시 2017 타이베이 하계유니버시아드와 세계유도선수권대회가 있어요. 무엇보다도 모두 다치지 않고 참가해서 입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겠죠.

그렇다면 정보경 선수 개인으로서의 목표는요?
일단은 제가 주장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기 때문에, 올 한해 여자 유도 대표팀을 잘 이끌어나가야겠다는 각오가 큽니다. 그리고 하나 더 꼽아본다면··· 연금점수 다 채우기?(웃음)

솔직한 답변이네요(웃음). 오늘 인터뷰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를 읽고 있을 팬들에게 한마디 남겨주세요.
현재 유도의 룰이 많이 바뀌면서 굉장히 재미있어지고 있어요. 굳이 평소가 아니더라도 올림픽 때라도 한국 유도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세요. 그리고 그 유도를 보면서 재미를 느끼신 분들은 한번 직접 해보시는 것도 추천해드립니다. 그러면서 한국 유도도 조금씩 더 발전해나간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웃음).


#2 - 유도가 정보경이 꼽은 세 가지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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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신의 노란 머리
“많은 분들이 저를 기억하는 이미지예요. 올림픽 때 짧고 노란 머리를 했는데, 그 모습 때문에 더 강하게 각인이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올림픽에서도 제가 가장 작은 선수였기 때문에, 이런 외형적인 면에서 절 대표하는 키워드가 아닐까 해요.”

#건물주
“제 최종 목표라고 해야되나···(웃음) 일단 지금은 유도 선수로서 현재 위치에서 열심히 운동하는 게 그 목적지를 향한 길 중 하나겠죠. 나중에 선수에서 은퇴하게 되면 그런 쪽으로 정말 공부를 해볼까 싶어요(웃음).”

#희망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게 아쉽기도 했지만, 사실 저는 기사에 달린 댓글들이 저에게 큰 위로가 됐어요. 그런데 그 댓글들 중에서 ‘그동안 쉽게 포기했는데, 정보경 선수 경기를 보면서 많은 걸 느꼈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많았거든요. 제가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희망이 되고 마음가짐이 바뀌는 계기가 된다는 점이 저에게는 또 다른 큰 의미가 되는 것 같아요.”

[사진] 최웅재 작가
[기사] 조형규 기자(press@monstergroup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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