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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짐=조형규 기자]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 구도는 예로부터 인류의 원초적인 투쟁 낭만을 자극하는 장치다. 누가 보더라도 조그맣고 약해 보이는 사람이 거대한 정복자를 쓰러뜨리는 그림만큼 드라마틱한 요소도 없다.

이런 ‘언더독’ 캐릭터의 반란을 우리는 고대 신화에서부터 현대의 드라마, 실제 투기 종목까지 수 세대에 걸쳐 지켜봐왔다. 지난 2016년 리우 올림픽 유도 대표팀의 조구함도 그랬다. 그는 어릴 때부터 작은 체구로 헤비급 경기에 나서 상대를 메치는 것이 최고의 로망이라고 했다.

비록 지금은 헤비급에서 내려와 100kg 급에서 활동 중이지만, 그는 여전히 “비교적 작은 체격의 제가 큰 선수를 메칠 때 그 쾌감이 엄청나요. 굉장히 매력적이죠”라며 스스로 언더독을 자처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휴대폰 메신저 프로필에는 지금까지도 ‘세상을 메쳐라’라는 문장이 떠있다.

조준호 코치는 “매번 올림픽 기간에만 우리 선수들이 언급되는 게 안타깝다. 비록 올림픽은 끝났지만, 평소에도 한국 유도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고 언급했다. 이에 몬스터짐은 앞으로 매달 1~2회씩 조준호 코치가 주목하는 유도 선수들을 찾아 정기적으로 특별한 인터뷰를 진행한다. 두 번째 주인공으로 지난 리우 올림픽 남자 100kg급에 출전한 한국 유도의 다윗 조구함 선수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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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유도가 조구함의 손

“엄지손가락을 제외한 나머지 손가락이 완전히 펴지지 않아요. 하지만 일상생활을 하는데 크게 문제는 없어요. 제겐 일종의 훈장이죠. 이 손을 보면 ‘열심히 훈련하며 살아왔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사실 이렇게 손가락이 빠졌다가 다시 들어가고, 그 과정을 거치다 보면 손가락이 점차 두꺼워집니다. 그런 제 손을 보며 한층 더 강해진다고 믿고 있어요. 물론 손 수술을 하고 나면 항상 어머니가 우시곤 했지만요. 그래도 전 유도를 계속할 거라고 했죠. 그만큼 전 유도가 너무 좋고 재미있어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 골리앗 메치는 다윗···언더독 조구함이 가진 유도가의 로망

작은 선수가 큰 선수를 메치는 로망을 간직한 유도 선수인 조구함이지만, 의외로 그 시작은 단순했다. 유도와의 운명적인 만남이 있었을 것이라 예상했던 필자의 기대가 완전히 빗나간 순간이었다.

“초등학교 때 유도부가 있는 춘천으로 전학을 갔어요. 하루는 복도에서 뛰어다니다가 체육 선생님께 걸려서 혼날 뻔했어요. 그런데 유도를 하면 봐주겠다고 하셔서 그렇게 유도장을 따라간 거죠. 그런데 그곳에 있던 유도부 감독님이 절 보시더니 바로 저희 부모님을 설득하시더라고요. 그때는 제가 덩치가 커서 선생님도 유도를 시키고 싶으셨나 봐요.”

사실 조구함의 부모님은 모두 운동선수 출신이다. 씨름을 했던 아버지와 육상 선수 출신의 어머니를 뒀다. 너무나 힘든 길임을 아는 부모님은 처음에는 극구 반대했다고. 하지만 초등학생 시절의 은사가 “조구함은 무조건 성공시키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다. 기억력이 좋은 조구함은 “심지어 유도를 시작한 날짜도 정확히 기억해요. 6월 25일입니다”라며 크게 웃었다.

그렇게 얼떨결에 도복을 입었지만, 조구함은 순식간에 유도에 재미를 붙였다. 부모님은 항상 “중간에 관두고 싶으면 언제든지 말해도 된다”고 말했지만 조구함은 스스로 유도를 좋아하게 됐다. 매트를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

“고등학교 1학년쯤 되니깐 체급에서 제가 거의 가장 작은 선수가 됐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배들이나 큰 선수들을 이겼을 때 엄청난 쾌감이 느껴지더라고요. 자연히 ‘이런 모습을 국제 대회에 나가서 보여주면 정말 얼마나 멋있을까’ 같은 생각도 들기 시작했고요. 굉장히 매력적이지 않나요?”

이때부터 조구함은 작은 체구로 헤비급 경기에 나서는 로망이 생겼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매력 때문에 유도에 대한 애정도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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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비급에서 100kg급으로···경쟁력 갖추기 위한 조구함의 결단

조구함은 2011년 11월 1차 선발전을 통해 국가대표로 처음 발탁됐다. 당시 한국 유도 헤비급 간판은 김성민 선수였는데, 세계 선수권에서 동메달을 획득해서 자동 출전권을 확보했다. 그 빈자리는 곧 조구함이 물려받았다.

당시 조구함은 어린 마음에 ‘2011년이니 앞으로 선발전에서 두 번 모두 금메달을 따면 런던올림픽으로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그런데 마지막 3차 선발전에서 4점 차이로 김성민의 벽을 넘지 못했다. 대신 선발전이 끝난 뒤 김성민과는 막역한 사이가 됐다.

“이후에 성민이 형과 함께 파트너로 훈련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그때의 경험이 올림픽 출전 못지않게 좋은 자양분이 됐죠. 저만 그렇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웃음), 지금도 굉장히 친한 선후배 사이예요. 리우 올림픽 대표팀을 이끈 주장이기도 해서 많이 믿고 의지했거든요.”

“사실 제가 리우 올림픽 이후 십자인대를 수술하고 최근 재활 중에 있거든요. 그런데 얼마 전에 성민이 형이 전국체전 시합장에서 한번 전화를 한 적이 있어요. 시합장에 제가 없으니 재미가 없다면서, 빨리 치료하고 다시 올라오라면서요. 생각지도 못했던 말을 형에게 들으니 너무 기분이 좋고 고마웠죠. 재활 중인 제게 큰 힘이 됐어요.”

마침 조구함은 이후 2014년부터 체급 변경을 결심하게 된다. 물론 김성민과 더불어 국내 헤비급 무대에서는 조구함의 적수가 없었지만, 문제는 국제 대회였다.

“조그만 체격으로 올림픽 무대에 헤비급으로 출전해서 금메달을 따면 굉장히 기억에 남는 선수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국가대표가 되고 국제 대회에서 직접 부딪혀보니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많더라고요. 일단 기본적으로 체격부터 30~40cm 이상 차이가 나는 건 기본이었고, 유럽 선수들은 체중이 거의 40~50kg씩 더 나갔어요.”

“그런 선수들을 상대하려면 체력이 관건이에요. 전 그 부분을 주로 공략했는데, 체력적인 부분까지 공략하기 힘든 선수들에게는 번번이 패배했어요. 그 뒤로 정말 수없이 생각했는데, ‘똑같은 조건에서 경기를 하면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싶었죠. 그 뒤 조언을 구하고 체급을 100kg급으로 내리게 됐습니다.”

사실 이 체급 변경에 대해서 당시에는 말이 많았다. 조구함의 체급 문제에 공감했던 사람은 조인철 감독뿐이었기 때문이다. 국내 헤비급에서도 충분히 잘 하고 있는데 갑자기 체급을 낮춘다고 하니 의아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조구함은 지금 다시 돌이켜보면 좋은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아직 구체적인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잘 됐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일단 다른 선수들에 비해 국제 대회에서 많이 노출이 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세계 선수권에서 아직 메달을 따진 못했지만, 국제 대회나 그랜드 슬램급 대회에서는 금메달을 많이 땄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제 결정을 믿어주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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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구함의 시한폭탄 무릎···“시련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하지만 리우 올림픽 국가대표로 발탁된 이후 조구함에게 큰 시련이 찾아왔다. 어릴 때부터 지겹게 따라다니던 무릎 부상은 일종의 시한폭탄이었다. 하필이면 그 시한폭탄이 올림픽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터졌다.

“어릴 때부터 양쪽 무릎을 모두 두 번 이상 수술했어요. 그때 연골을 많이 걷어냈죠. 연골 조각이 찢어지면 그걸 다시 걷어내고, 이런 식으로요. 그때는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성인이 되고 국가대표로 발탁되면서 태릉선수촌의 고강도 훈련을 소화하다 보니 무릎이 말썽을 일으켰어요.”

기억력이 좋은 조구함은 아직도 무릎 문제가 터진 그날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지난 4월 20일, 훈련이 끝나고 긴장이 풀린 상태에서 조구함은 무릎이 덜렁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심상치 않은 느낌에 그는 바로 병원을 찾았고, 곧 의사로부터 충격적인 진단을 받았다.

“선생님이 심각한 표정으로 안 좋은 소식이 있다고 하셨어요. 전방 십자인대가 끊어졌다고요. 올림픽 직전이라 의사 선생님도 굉장히 힘들게 말을 꺼내시더라고요. 정말 태어나서 그때만큼 눈물을 쏟았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최민호 코치님, 이종백 박사님을 붙잡고 펑펑 울었죠.”

그러나 출전을 포기할 순 없었다. 국내에서 세계 랭킹 22위권 안에 드는 동체급 선수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출전 조건을 충족시키는 선수 자체가 조구함 밖에 없었고, 일단은 최대한 무릎을 보호하고 재활하여 뛸 수 있는 몸 상태를 만드는 것이 급선무였다. 다행히 십자인대가 없어도 관리만 잘 하면 경기를 뛸 수 있다는 주변의 위로가 이어졌고, 멘탈도 금세 다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출전을 강행했는데 결국 결과가 좋지 않았어요. 그 부분에 대해선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결과가 그렇게 나온 이상, 아무리 훈련을 열심히 했다고 항변해봤자 변명인 셈이죠. 대신 스스로 삭히고 있어요. 이렇게 시련을 당하고 돌아오면 그동안 훈련했던 기억들이 나면서, 더 이를 악물고 노력하게 돼요.”

다행히 다음 올림픽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 마침 이번 리우 올림픽에 출전했던 유도 대표팀 선수들 대부분은 굉장히 어린 편에 속한다. 조구함은 “노련함과 경험에서 부족한 점이 있었지만, 이걸 계기로 다시 2020년을 바라보며 필사적으로 훈련해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됩니다. 도쿄에서는 꼭 금메달 따야죠”라며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대답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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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도쿄 올림픽을 향한 조구함의 시계···‘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조구함은 뼛속까지 유도인이다. 힘든 훈련을 해야만 직성이 풀린다. 그래서 수술 후 재활을 하고 있는 자신의 상황이 처음에는 굉장히 힘들게 느껴졌다고 했다. 

“지난달부터 태릉선수촌에 다른 선수들이 들어가서 다시 훈련을 시작했어요. 항상 그곳에 있던 제가 지금은 재활을 하고 있으니··· 처음에는 정신적으로 굉장히 힘들었죠. 하지만 주변 분들이 ‘이럴 때 쉬지 언제 쉬겠냐’며 위로해주시더라고요. 이제는 마음 정리도 다 됐어요. 하루빨리 아픈 곳 없이 재활해서 내년에 좋은 선수로 다시 복귀할 겁니다.”

이처럼 빠른 복귀를 기다리고 있는 조구함에게는 한 가지 소원이 있다. 리우 올림픽 이전까지 국내 100kg 급에서 세계 랭킹에 이름을 올린 선수가 자신밖에 없었다는 점이 가장 아쉬웠다고 했다. 부상을 회복하고 돌아온 후에는 꼭 강한 적수가 나타나기를. 그리고 그렇게 2020년 도쿄 올림픽까지 선의의 라이벌로 서로 치열하게 성장해나가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그렇게 인터뷰가 마무리되어갈 무렵, 조구함은 갑자기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을 꺼냈다. 

“제가 종교가 있는데, 이 한자성어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최선을 다하고 난 뒤 하늘의 뜻을 기다리라는 뜻이죠. 십자인대가 끊어진 직후 이 말을 통해 여러 가지를 느꼈어요. 이 순간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서 최선을 다하고, 시합장에 들어가면 그날에 절 맡기는 거죠.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는 된다는 믿음으로 매일같이 훈련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조구함은 “이미 이런 이야기를 제 입으로 한 이상, 그 목표를 지키기 위해 더 열심히 해야겠네요”라며 껄껄 웃었다. 진인사대천명이라는 말처럼, 그는 지금 할 수 있는 재활에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올림픽 유도는 프로 종목이 아니다. 따라서 국제 대회가 아니면 선수들은 주목을 받을 기회가 없다. 하지만 선수들에게는 모든 대회가 올림픽만큼의 동등한 노력이 수반된다. 이 점을 조심스럽게 언급한 조구함은 “대신 저희는 올림픽 같은 무대에서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준다는 믿음으로 시합에 나섭니다. 승리에는 축하를, 패배에는 위로를 건네주시면 큰 힘을 받을 수 있어요. 그 격려들은 저희에게 ‘진인사대천명’으로 작용할겁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다시 재활원으로 뒷모습을 남기며 사라졌다.

그렇게 2020년 도쿄 올림픽을 향한 조구함의 시계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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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유도가 조구함이 꼽은 세 가지 키워드

#낚시
“리우 올림픽이 끝나고 낚시를 배웠어요. 올림픽 시합을 생각하면 너무 힘들었거든요(웃음). 친구들 따라서 같이 갔는데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너무 좋더라고요.”

#의지의 사나이
“체급도 내리고 양쪽 십자인대가 다 끊어졌지만, 그래도 올림픽 출전을 포기하진 않았어요. 그래도 한다면 하는 놈입니다(웃음).”

#다이어터
“자타 공인 다이어트 도사예요(웃음). 물론 공인된 박사는 아니지만 다이어트에 대해서는 정말 그 누구보다도 잘 설명해줄 수 있어요. 주변에서도 체중 감량을 하는 분들은 항상 제게 먼저 연락을 하시곤 해요. 그만큼 다이어트에 대해서는 많은 분들이 저를 떠올리는 편이죠”

[사진] 최웅재 작가
[기사] 조형규 기자(press@monstergroup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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