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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파이트=조형규 기자] UFC 216은 시작부터 대회 당일까지 고난의 연속이었다.

전조가 좋지 않았다. 메인이벤트로 예고된 토니 퍼거슨과 케빈 리의 라이트급 잠정 타이틀전은 정작 현 챔피언인 코너 맥그리거가 이탈한 상황에서 열리는 '앙꼬 없는 찐빵' 같은 분위기 덕에 많은 팬들의 공분을 샀다. 11차 타이틀 방어 신기록이 걸린 트미트리우스 존슨과 레이 보그의 타이틀전은 데이나 화이트 대표와 존슨의 신경전으로 어렵사리 성사됐다.

경기 당일에도 UFC 216 이벤트를 앞두고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당초 파브리시우 베우둠과 맞붙기로 한 데릭 루이스가 경기를 불과 수 시간 남겨두고 허리 통증으로 이탈한 것. 그 자리에는 언더 카드에 출전 예정이었던 월트 헤리스가 급하게 투입되는 등 시련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진행 중 나온 이 수많은 산통은 결국 최고의 결과를 낳았다. 경기 당일까지 끝없이 저하되던 기대감은 파이터들의 멋진 싸움으로 단번에 최고의 이벤트로 탈바꿈했다. 메인카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세 경기가 연속 서브미션으로 화끈하게 끝나는 멋진 그림까지 펼쳐졌다. 그리고 그중 백미는 역시 메인이벤트로 펼쳐진 퍼거슨과 리의 라이트급 잠정 타이틀전이었다.

퍼거슨과 리의 대결은 애초에 맥그리거가 없는 라이트급 잠정 타이틀전이라는 것도 타격이 컸지만, 하빕 누르마고메도프가 결국 이 구도에 끼지 못했다는 점이 발목을 잡았다. 물론 그동안 누르마고메도프는 부상을 비롯해 종교적인 신념(라마단 기간), 무리한 감량으로 인한 경기 이탈, 그리고 평소 언행과는 다르게 그동안 퍼거슨과의 대결을 실제로는 기피해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많은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실력으로만 보자면 누르마고메도프는 확실히 라이트급 최고 레벨에 위치한 강자다. 그가 없는 상황에서 경기가 치러진다는 것은 어딘가 석연찮은 모습으로 남았다.

그러나 누르마고메도프가 없는 상황에서 퍼거슨과 리는 엄청난 경기를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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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의 양상은 전반적으로 초반 승기를 잡은 리의 우세에도 불구하고 점차 퍼거슨이 경기를 잠식해가는 전형적인 퍼거슨식 페이스였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퍼거슨은 네이트 디아즈와 함께 동체급의 대표적인 슬로 스타터. 예측할 수 없는 변화무쌍한 스타일은 분명 매력적이지만, 상대를 파악하고 경기의 초반을 읽는 움직임이 빠르진 않다.

습도로 가득한 퍼거슨의 경기력은 이번에도 1라운드부터 쉽사리 불이 붙진 않았다. 긴 리치를 활용한 특유의 잽 견제와 타격은 예열이 덜 된 모습이었고, 다소 허술한 초반 안면방어부터 리에게 쉽게 톱마운트를 허용하며 위기에 빠졌다. 1라운드의 퍼거슨은 리에게 완벽하게 밀렸다.

하지만 수많은 타격을 허용했음에도 불구하고 퍼거슨은 지친 기색이 없었다. 슬로 스타터답게 강한 맷집과 빠른 회복력은 바로 퍼거슨의 타고난 무기 중 하나였다. 이를 살려 무사히 회복을 마치고 2라운드에 돌입한 퍼거슨은 완벽하게 게임을 파악했다. 긴 리치를 활용한 잽과 특유의 변칙적인 타격으로 점차 경기에 불을 지폈다. 마치 빨대를 꽂아 체력을 흡입하듯 퍼거슨은 타격으로 조금씩 리의 영역을 잠식해가면서 흐름을 자신의 것으로 가져왔다.

3라운드에서 이미 방전된 리는 자신이 상위 포지션을 점유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하위 포지션에 있는 퍼거슨에게 타격을 허용하는 등 정신 없는 모습이었다. 리에 비해 레슬링은 부족하지만 주짓수의 이해도가 높은 퍼거슨이 곧 빈틈을 캐치에 트라이앵글 초크로 리를 잡아냈고, 라이트급 잠정 타이틀 벨트를 감았다.

슬로 스타터답게 장기전에 강하고 초반의 화력을 버틸 맷집과 회복력이 있다는 것은 퍼거슨의 가장 큰 장점이자, 현 챔피언인 맥그리거가 고전했던 상대(네이트 디아즈)의 속성과 그대로 닮아있다. 이 점은 대맥그리거전에 나서는 퍼거슨에게 가장 큰 열쇠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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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그리거는 지난 디아즈와의 2연전을 통해 1차전의 패배를 타산지석으로 삼고 2차전에서 강력한 테이크다운 디펜스와 경기조율 감각을 장착해 나왔다. 하지만 한번 넘어가게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오늘 경기에서 퍼거슨은 하위 포지션에서 여유롭게 리의 공격을 받아내며 트라이앵글 초크로 탭을 받아낼 만큼 주짓수에 강력한 모습을 보여줬다. 게다가 이 장면이 1라운드에 신명나게 얻어 터지며 만신창이가 됐다가 귀신같은 회복력으로 다시 경기를 잠식한 뒤 3라운드에 나온 장면이라는 점은 맥그리거에게 꽤나 위협이 될 수 있다.

물론 퍼거슨이 리의 레슬링에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맥그리거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맥그리거는 디아즈 2차전에서 테이크다운 디펜스를 장착해 그라운드로 가는 일을 사전에 방지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바닥으로 내려가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다소 고전적인 주짓수 스킬을 활용하는 디아즈에 비해 퍼거슨은 훨씬 변칙적으로 주짓수와 레슬링을 조합하는 편이고, 상대를 넘기는데 사용되는 완력 자체도 디아즈에 비해 더 강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적어도 레슬링과 주짓수 영역에서는 퍼거슨의 압승이 예상된다.

맥그리거의 장기인 경기 초반 레프트 카운터나 펀칭 콤비네이션이 불을 뿜더라도 퍼거슨의 맷집은 이를 버틸 확률이 매우 높다. 심지어 데미지를 털어내는 회복력 마저도 놀라운 수준. 따라서 만약 라이트급 통합 타이틀전이 열리게 된다면 맥그리거는 무조건 퍼거슨을 초반에 쓰러뜨려야 한다. 2라운드가 지나도 퍼거슨을 다운시키지 못한다면 곧 데미지를 회복한 퍼거슨이 3라운드부터 맥그리거를 잠식할 것으로 예상된다.

거기에 맥그리거보다 더 긴 퍼거슨의 리치는 보너스 포인트다. 물론 맥그리거도 디아즈를 상대로 초반에는 리치의 불리함을 뚫고 영리한 타격으로 재미를 봤다. 하지만 라운드가 지날수록 맥그리거는 타격수와 대미지 측면에서 리치의 차이에 의해 조금씩 밀리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라이트급에서도 가장 긴 편에 속하는 퍼거슨은 특히 시간이 갈수록 자신의 거리를 잘 활용하고 잽 싸움에도 지능적인 면모를 펼치는 파이터. 따라서 이러한 부분들은 맥그리거가 경계할 지점이 된다.

이날 경기가 끝나고 인터뷰에 응한 리는 진솔한 모습으로 자신의 패배를 시인함과 동시에 "오늘은 퍼거슨이 나보다 더 좋은 파이터였다. 하지만 나는 아직 25세로 젊고, 다음에는 더 강해져서 돌아올 것이다"라고 말해 많은 환호를 이끌어냈다. 추후 라이트급의 대권을 노릴 또다른 강자로 이미 눈도장을 찍었다.

한편 리를 꺾고 잠정 라이트급 벨트를 허리에 감은 퍼거슨은 맥그리거를 향해 본격적으로 도발을 감행했다. 굉장히 공격적인 애티튜드로 트래시토크를 선보이는 퍼거슨은 이번에도 경기 후 인터뷰에서 맥그리거를 '맥너겟'으로 표현하며 통합 타이틀전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키웠다. 맥그리거가 여태까지 만나보지 못한 상대이며, 동시에 그가 가장 고전했던 상대인 디아즈와 사이즈 및 체력적인 측면에서 흡사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는 점은 '혹시나' 하는 마음을 키우기에 더없이 좋다.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격투 팬들로서는 부디 이 라이트급 통합 타이틀전의 구도에 디아즈 3차전 같은 뜬금포가 끼어들지 않기를 바라야 할 것이다.

[사진] ⓒZuffa, LLC
조형규 기자(press@monstergroup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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