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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짐] 김성화씨는 버스안내양으로 일하던 중 주한미군에서 근무하는 미국인 병사를 만났다. 외국인이었지만 6개월씩이나 자신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그 성의와 나름대로 어울리는 제복이 멋져 그와 결혼을 했다. 둘 사이에서 첫째 아들 줄리어스가 태어났다. 부부는 미국으로 이주했다. 미국에서 둘째가 태어났다. 둘째의 이름은 벤슨이었다. 군인인 남편은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았고, 집에 돌아와도 술에 쩔어 지냈다. 알콜중독으로 인한 일탈과 비행을 일삼고 가족을 돌보지 않는 남편과 이혼을 감행한 김성화씨는 복지부의 도움을 받고자 했다. 하지만 복지부에서 나온 직원은 그녀를 편견으로 대했다. 그녀는 자립을 선택했다.

김성화: (이혼에 대해) 저는 그럴 수 밖에 없었어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한번은 애아빠가 음주운전으로 투옥되고 나서 그의 고모가 저를 복지부로 데려갔어요, 그곳에서 몇 가지 질문을 하더군요, 누군가가 와서 집을 둘러보더니, “당신에겐 TV가 필요 없다, 가구도 필요 없다, 아무것도 필요 없으니 모든 것을 가져가야겟다” 라고 말했어요. 저는 “아이들이 TV를 볼것이다, 아이들이 TV를 보고싶어할것이다” 라고 반박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녀가 “아니, 그 애들에겐 TV가 필요없어” 라고 잘라말하더군요. 저는 너무 화가 났어요. "당신이 어디에서 왔든지간에 필요없으니 그냥 가세요, 제가 새로운 직장을 구하겠어요" 라고 말 한 후 그들의 도움을 받을 생각을 버렸습니다.

핸더슨: 어머니께서는 복지수당을 거절하셨습니다. 본인 스스로 해내시기로 결심하신거죠.

큰아들 줄리어스의 증언에 의하면 그녀는 아들들이 등교하기 전에 출근했고 늦게까지 친구들과 놀다 들어와도 퇴근을 하지 않았다. 김성화씨는 살아남기 위해, 자식들을 부양하기 위해 새벽부터 밤 늦도록 일을 했다.

미국에서 동양인, 특히 한국인에 대한 감정은 계층별로 다르게 나타난다. 교육,및 소득 수준이 어느 정도 이상인 계층에서는 동양인에 대한 반감은 사실상 드물다. 극소수의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저소득층, 특히 흑인사회는 한인들에 대한 반감이 상당하다. 그들의 눈으로 보기에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해 그들의 일자리를 뺏고 기회를 잠식하는 ‘경쟁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흑 갈등은 91년 발생한 LA 흑인 폭동사건을 기해 표면화 되었고, 아직도 곳곳에서 충돌이 발생하고 있다. 유수의 흑인 뮤지션과 영화인들이 자신들의 작품에서 한국인들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김성화씨의 남편은 흑인이었다. 김성화씨가 미국사회에서 버텨내는 것은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언어의 장벽, 문화의 상이성, 그리고 인종갈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녀는 힘겹게 버티며 아이들을 길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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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핸더슨의 가족> 


벤 핸더슨이 격투계에 발을 들여놓은 계기는 어머니의 권유에 의해서였다. 일이 바빠 아이들의 소소한 문제까지 챙겨줄 여유가 없었던 김성화씨는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에게 괴롭힘당하는 것을 걱정했고 자기방어를 위해 무술을 배우기를 원했다. 그녀의 선택은 태권도였다. 형제는 금새 검은띠를 획득했다. 고등학교 시절에 핸더슨은 레슬링과 인연을 맺었다. 그것은 운명적인 우연이었다.

<어느날 화장실을 가는데 레슬링부 코치가 ‘이봐 여기로 오라구! 렛츠고~’ 라고 말했고 저는 무슨 영문인지 몰랐어요 그야말로 ‘웽???’ 이었죠, 알고보니 레슬링부 코치는 저를 지각한 팀원으로 생각하셨나봐요, 저는 그냥 그렇게 레슬링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해보니까 재미있더라구요. 시작하자마자 저는 꽤 잘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것봐라, 꽤 괜찮잖아?" 라고 생각하면서 파고들게 됐죠.>

레슬링을 배우기 시작한 초기의 핸더슨에 대해 그의 고교시절 레슬링 스승은 아래와 같이 말했다.

<마이크 브레슬러(고교 레슬링부 코치): 처음 출전시킨 토너먼트에서 이 친구가 우승을 해버린 겁니다. 뛰어난 레슬러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듭했습니다, 선수로써의 성장과정에서 그가 몇명의 도저히 이길 수 없을것 같은 선수들을 상대해 업셋을 일으키는것을 보았어요, 그것이 그의 특징입니다. 이길 수 없을것 같은 상대를 이겨버리는것 말씀입니다.>

핸더슨은 대학때 까지 레슬링을 계속했고 전미 8강까지 주어지는 올아메리칸에 선정된다. 핸더슨의 MMA파이터를 목표로 한 것은 대학시절부터였다. 2006년 11월 핸더슨은 프로 MMA무대에 등장했다.

2007년 3월 31일, 미국 콜로라도의 한 지역에서 열린 Battlequest 5: Avalanche 라는 대회에서 당시 2전 2승(1KO, 1SUB)을 거두고 있던 벤 핸더슨은 록키 존슨이라는 선수를 상대로 싸웠다. 존슨은 당시 9전 5승 (0KO 4SUB) 4패의 전적을 기록하고 있었다.

상대는 단신이었고 왼손잡이 핸더슨은 라이트 잽, 더블잽을 몇번 보여준 후 태클로 트랜지션을 걸었다. 상대가 상단 타격을 의식하게 유도하고 하단 태클을 거는 방식은 정석이다. 사전 준비 없이 그냥 들어가는 태클보다 성공률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존슨은 숙이며 들어오는 핸더슨의 목에 길로틴을 거는 척 하다가 다스 초크로 변환을 걸었고 아나콘다 피니쉬로 핸더슨을 잠재웠다. 핸더슨은 정신을 잃을 때까지 항복 하지 않았다.

2006년 11월에 데뷔한 핸더슨은 프로 전향 4개월여, 경기경력으로는 3전째에 이렇게 첫 패전의 맛을 서브미션으로 보았다.

이후 두 경기에서 연속으로 1라운드 서브미션승을 거두며 전적을 5전 4승 (1KO 3서브미션) 1패 (서브미션패)로 향상시킨 헨더슨의 여섯번째 상대는 마이크 마에스타스였다. 마에스타스는 당시 7전 5승 1무 1패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 선수는 데뷔전에서 패배, 2전에서 무승부를 기록하고 나머지 다섯경기에서는 연승을 거두던 중이었다. 내용도 2KO와 2서브미션승이 있었다. 그는 헨더슨보다 5cm 가량 키가 컸다.

마에스타스와 핸더슨은 아주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두 선수의 경기는 기본적으로 클린치와 그라운드에서 벌어졌지만, 그렇다고 스탠딩에서의 박력이 없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흔히 지루해지기 쉬운 클린치-그라운드 공방에서 불꽃이 튀었다. 헨더슨의 특징중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 점이다.

핸더슨은 클린치에서 강하다, 그리고 테익다운 능력이 준수하며, 웬만해선 테익다운을 내주지 않는다, 스탠딩에서 중심이 높은 관계로 상대와 강한 충돌이 일어났을 때 넘어지는 장면을 가끔 보이는데(에드가 전에 뿐만 아니라 여러 경기에서 간혹 이런 모습을 보인다), 이런식으로, 혹은 일반적인 형태로 테익다운을 내주더라도 금방 탈출한다. 그리고 상위포지션을 잡으면 격렬한 페이스로 파운딩을 내려치고 서브미션을 시도한다. 상위에서 공격적이다 보면 포지션 싸움이 약해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핸더슨은 그라운드에서의 공격력에 비해 포지션 점유 및 유지 능력이 매우 우수하다. 기본적으로 고교시절부터 수련을 시작한 아마츄어 레슬링의 경험과MMA랩(소속팀)의 유술기, 그리고 막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싸우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핸더슨은 클린치에서부터 그라운드 게임에 체력을 아끼지 않고 사용한다. 핸더슨의 그라운드 플레이가 지루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이 점이다. 그는 그라운드에서 쉬지 않고 공격을 퍼부으며 상대의 탈출 시도를 저지 하는데 이 과정에서 양선수의 공방이 아주 볼만해 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보기보다 훨씬 어려운 방식이다. 상대보다 체력이 한 차원 높지 않은 선수가 이런 식으로 하다가는 후반에 가서 경기는 엉망이 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핸더슨의 특징 제 1 번은 우수한 체력과 레슬링-유술 능력을 바탕으로 한 클린치-트랜지션-그라운드 속도전을 벌여 상대를 꼼짝 못하게 얽어버리며, 상대의 체력을 쭉쭉 빨아낸다는 점이다.

1라운드는 핸더슨이 상위포지션을 유지하며 파운딩을 위주로 상대를 공략했다. 하지만 2라운드에서는 상대에게 백을 내주고 리어네이키드 초크를 당하기 직전까지 몰렸다. 거의 걸린 듯 했지만 핸더슨이 겨우 탈출했다.이 부분, 즉 상대의 서브미션시도에 잘 당하지 않는다는 점도 핸더슨의 경기구조에서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즉 그라운드에서 적극적으로 공격을 시도하는 핸더슨은 필연적으로 상대에게 서브미션기를 구사할 찬스를 많이 주게된다. 만약 핸더슨이 서브미션 방어가 약하다면, 이러한 운영은 수준높은 유술가를 만났을 경우 독이 될 수 있다. 마크 콜먼의 경우가 딱 그런 예로 볼 수 있는데, 그는 상대를 테익다운 시키고 상위포지션을 유지하면서 파운딩으로 상대를 공략하는 전법을 사용했다. 이 선수는 그렇지만, 하위에서 시도되는 서브미션기에 취약했고 결국 노게이라와 효도르에게 당했던 것이다. 노게이라와 효도르를 넘기고 누르기는 했지만 공격을 하다가 서브미션기의 역습에 당했다는 얘기다.

핸더슨은 유술기에 대한 방어능력이 아주 높다. 이것을 핸더슨의 특징 2번으로 놓기에 무리가 없을 듯 하다.

그라운드에서 적극적이면서 유술에 잘 걸리지 않는다는 점은 극도로 중요하다. 첫 패배를 서브미션으로 당한 후, 특별히 주의하게 되지 않았겠는가 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3라운드에 지친 상대를 하위에 놓고 팔꿈치 파운딩으로 두피에 깊은 자상을 입힌 후, 핸더슨은 피투성이의 마에스타스의 등뒤에서 리어네이키드 초크를 잡아 경기를 마무리했다. 매우 훌륭한 내용의 경기였다. 이 경기를 통해 핸더슨의 자질이 업계에 널리 알려졌다.

이후 두 경기를 더 이긴 핸더슨은 7승 (1KO 5서브미션) 1패의 전적으로 마이너 무대를 졸업하고, UFC로 가는 등용문인 WEC로 진출했다.

WEC 데뷔전에서 2라운드 서브미션승을 거둔 핸더슨의 전적은 9전 8승 1패 1KO 6SUB이 되었다. 다음 상대는 당시 5승 1패를 기록하던 쉐인 롤러였다. 롤러는 데뷔전에서 패배를 당한 이후 5경기에서 연승을 거두던 중이었다. 2KO, 3SUB로 모든 경기를 피니쉬했으며 모든 피니쉬가 1라운드에 나왔다. 가장 길었던 경기가 3분이었고 짧았던 경우는 16초만에 끝을 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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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핸더슨 대 쉐인 롤러 (10전, 2009년 4월 5일)

롤러는 1라운드 초반에 사우스포인 핸더슨에게 라이트 바디를 치는 척하다가 레프트 훅-라이트 스트레이트의 펀치 컴비네이션을 구사했다. 첫번째 라이트 바디를 의식해 가드를 내리던 핸더슨은 이어졌던 상대의 레프트-라이트 연타를 맞고 다운을 당했다. 핸더슨의 상위에서 롤러는 길로틴초크를 시도하는데, 핸더슨은 잘 빠져 나왔다. 그리고 바로 두선수가 포지션 싸움을 벌이다가 다시 스탠딩으로 돌아가던 순간 핸더슨이 좌우연타를 강하게 돌렸고 레프트를 정통으로 먹은 롤러는 다리가 풀리며 주저앉았다. 쏟아지는 파운딩간에 주심이 경기종료를 선언했고 핸더슨은 1라운드 KO승으로 승자가 되었다.

초반에 상대의 펀치 컴비네이션에 당한 점은 불안한 내용이다. 타격의 숙련도 면에서 아직 핸더슨은 경험이 미숙한 부분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맺집이나 회복력이 좋다는 것이 드러났고, 경기를 타격으로 뒤집을 수 있었던 점은 특기할만 하다.

이 경기를 통해 드러나는 핸더슨의 특징 3 번은 맺집이 좋고 회복력이 왕성하다는 점일 것이다.

WEC 라이트급은 2004년에 시작 되었다. 초대 챔피언은 길버트 멜렌데즈 (현 스트라이크 포스 라이트급 챔피언이자, MMA 라이트급의 상위랭커, 핸더슨과는 아마 언젠가 맞붙게 될것으로 예상된다.) 였는데, 그는 벨트를 버리고 일본으로 가버렸다. 2대 챔피언은 게이브 루디거였고 이 선수는 2차 방어를 달성한 후 에르메스 프랑카에게 타이틀을 빼았겼다. 프랑카는 2차벙어를 달성 한 후 UFC로 떠나면서 다시 공석이 된 WEC 라이트급 챔피언 자리는 롭 메쿨러에게 돌아갔고 2008년 2월 제이미 바너가 메쿨로를 꺽으면서 5대째 챔피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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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우보이' 도널드 세로니

2009년 1월 바너는 도널드 세로니와 2차방어전에서 명승부를 펼쳤다. 그러나 5라운드에 그라운드 상태에 있던 바너에게 세로니가 무릎 공격을 가했다(그라운드 상태의 상대의 머리에는 킥,니킥 공격을 할 수 없음) 경기는 거기서 중단되었는데, 바너는 속행 불가능 의사를 밝히면서 경기는 그 시점까지의 판정으로 바너의 승리로 결정되었다. 경기의 내용이 워낙 훌륭했던데 반해 결판이 다소 아쉽게 났던터라, WEC는 두 선수의 재전을 즉각 기획한다. 그러나 바너가 부상을 이유로 출전을 미루게 되고 WEC는 잠정 챔피언을 옹립 하기로 했다 여기서 도널드 세로니의 상대로 벤 헨더슨이 낙점 되었다.

세로니는 WEC와 그랙 잭슨 (MMA계를 대표하는 지도자)이 소중하게 키우는 잠재적 스타였다. 멋진 외모와 화끈한 스타일로 주목을 받던 세로니는 분명 매우 훌륭한 상대였다. 그는 핸더슨과 대전할 당시 10승 1패 1NC 9SUB을 기록하고 있었다. 노컨테스트의 경우는 1라운드 서브미션승으로 이겼지만, 경기후 약물검사에서 이뇨제의 사용이 발각당했던 상황이었다. 1패의 상대는 앞서 설명드린 대로 제이미 바너였고, 이 경기의 판정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었던 것이다. 핸더슨은 9승 1패 2KO 6SUB의 전적을 가진 상태였다.

벤 핸더슨 대 도널드 세로니 I (11전, 2009년 10월 10일)

2009년 10월에 벌어졌던 핸더슨-세로니 1차전에서, 1라운드 초반 까지만 해도 세로니가 금방이라도 이길 것 같았다. 세로니는 길로틴 초크에서 파워길로틴을 거쳐 삼각조르기 이어졌던 3단 서브미션 연속기로 핸더슨을 빈사직전까지 몰아붙였다. 세로니는 10승중 9번을 서브미션으로 승리했을 정도로 유술기의 구사가 능숙했다.그러나 핸더슨은 번번히 탈출에 성공했다. 정말 탈출하기 힘들 것으로 보일 만큼 깊숙히 들어간 조르기 기술을 풀어내는 능력은 핸더슨의 중요한 특기 중 하나라는 것이 또다시 드러나고 있었다.

1라운드 초반의 위기를 넘긴 핸더슨은 태클로 세로니를 넘기고 상위 포지션을 장악한 후 그라운드 & 파운드를 위주로 상대를 공략했고 3 라운드까지 우세를 점했다. 4라운드에는 태클을 시도하던 핸더슨의 목에 세로니의 팔이 다시 한번 감겼다. 상당히 깊이 들어간 변형 길로틴 초크였다. 해설진의 프랭크 미어조차 분명히 들어간 것 같은데 핸더슨이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 특이한 상황이라는 언급을 할 정도였다. 핸더슨은 이번에도 위기탈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라운드 중에 테익다운이 번번히 실패하면서 세로니에게 공격기회를 넘겨주게 되고 라운드를 내주게 된다.

5라운드의 출발은 좋지 않았다. 핸더슨은 테익다운을 얻어내기 위해 다양한 각도에서 노력을 쏟아부었지만 세로니는 잘 방어해 내면서 역습을 성공시켰다. 그리고 헨더슨이 겨우 세로니를 넘어뜨리고 올라타면 세로니의 서브미션기가 자꾸 형태를 갖추었다. 5라운드에도 핸더슨은 굉장한 위기를 수차례 맞았다. 삼각조르기, 오모플라타 등이 거의 완성된 것 같은 그림이 계속 나오는데 핸더슨은 어떻게든 탈출에 성공했다. 해설진이 당혹스러워 할 정도로 아슬아슬한 장면들의 연속이었다. 차후에 해설진은 핸더슨을 두고 ‘MMA계의 후디니’ 라는 평가를 내린다. 후디니는 전설적인 마술사로 그의 특기는 바로 탈출마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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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ry Houdini (1874-1926) 수갑과 쇠사슬, 구속구 등으로 온몸을 묶인 후 물탱크 속에 던져져도 금방 풀고 나왔던 마술의 대가.

5라운드 내내 밀도높은 공방이 끊임없이 이어진 박빙의 명승부였다. 그리고 승리의 여신은 핸더슨을 간택했다. 만장일치의 판정승. 이것으로 핸더슨은 WEC 라이트급의 잠정 챔피언이 되면서 상당한 인지도를 얻게 된다. 도널드 세로니의 인기 덕이었는데, 여러가지로 세로니는 헨더슨에게 고마운 상대였다. 그는 헨더슨과 명승부를 만들었고, 헨더슨에게 벨트와 인기까지 선물한 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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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핸더슨 대 제이미 바너 (12전, 2010년 1월 10일)

WEC 라이트급의 잠정 벨트를 차지한 헨더슨의 다음경기는 WEC 라이트급 챔피언 바너와의 통합전이었다. 바너는 16승 2패 2NC 5KO 9SUB을 기록하고 있었다. 바너는 터프하고 공격적인 타입이었다. 이 경기는 2010년1월에 벌어졌다.

1라운드부터 바너는 적극적으로 나왔다. 핸더슨은 바너의 파상공세에 밀리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바너의 서브미션기는 번번히 결과를 내지 못했고, 해설진은 1라운드 초반부터 핸더슨의 서브미션 방어능력을 두고 예의 ‘후디니’에 대한 비유를 쏟아낸다. 핸더슨은 그리고 1라운드중반에 목을 잡힌채로 케이지에 박혔지만 바너의 공격을 계속 흘리면서 방어에 성공하고 있는데, 이를 두고 해설진에서는 이것이 밴 핸더슨 스타일의 ‘로프 어 도프 (알리가 창안한 로프를 이용해 지구전을 펼치는 전술)’가 아닐까 하는 의견을 피력했다. 언듯 보기에는 바너가 아주 핸더슨을 요리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사실 바너는 유효한 공격을 성공시키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라운드는 바너가 가져갔다. 핸더슨은 1라운드만 보면 상당히 소극적으로 보였다.

2라운드에서 양선수는 스탠드업을 선택했다. 바너는 펀치연타, 펀치-킥 컴비네이션으로 핸더슨의 머리를 노렸고 핸더슨은 왼쪽 미들킥으로 상대의 복부에 공을 들였다. 2라운드는 판정이 어려울 정도로 접전이었다.

3라운드에서도 바너는 적극적으로 달려들었다. 펀치연타를 치면서 핸더슨을 밀어붙이고 케이지 사이드에서 클린치를 잡은 후 핸더슨을 철망에 쳐박았던 것이다. 바너가 다소 앞서나가는 듯한 분위기로 흘러가던 3라운드였는데, 바너가 펀치를 휘저으며 밀고 들어오는 것을 핸더슨이 중단니킥 카운터로 저지 하던 그림이 한 번 나왔다. 잠시 후, 바너는 이를 역이용하기 위해 이번에는 펀치 연타를 내는 척 해서 핸더슨의 니킥을 끌어내고 테클로 카운터 하려는 전술을 걸어왔다. 바너의 펀치 페인트에 핸더슨의 중단 니킥이 나온 대목 까지만큼은 바너의 예상대로였고 바너는 투랙의 그립을 잡으면서 핸더슨을 퍼올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여기서 핸더슨의 장기인 길로틴이 바너의 목에 떨어졌다. 기술이 들어가자 마자 바너는 즉각적으로 탭을 쳤다. 그만큼 확실하게 잘 들어간 아름다운 기술이었다. 이것으로 분할되어 있던 WEC 라이트급의 챔피언쉽은 핸더슨에 의해 통합되었다.

핸더슨의 첫번째 도전자는 도널드 세로니였다. 그는 제이미 바너와 누구의 승리라기도 힘들 만큼의 명승부를 펼쳤고 핸더슨과의 일전에서도 초박빙의 대경기를 팬들에게 선사했던 선수로 자격이 충분하고 준비된 도전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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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핸더슨 대 도널드 세로니 II (13전 2010년 4월 24일)

하지만 2010년 4월의 재대결에서는 핸더슨이 1라운드에 세로니를 탭아웃 시키면서 방어전을 달성했다. 이번에도 결정기는 기요틴 초크였다. 세로니에 비해 핸더슨이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핸더슨의 특징 4번은 기요틴 초크의 구사가 매우 능숙하다 라는 점이다. 그의 길로틴은 특별하다.

WEC 라이트급 타이틀의 2차방어전에서 핸더슨이 만난 상대는 '쇼타임' 앤소니 페티스였다. 당시 12승 1패5KO 6SUB를 기록 하고 있던 이 선수는 괴물같은 타격센스를 가진 변칙 스트라이커였다. 테익다운-그라운드 능력도 상당히 뛰어난 선수였고 핸더슨과 페티스는 4라운드까지 극도로 팽팽하게 맞섰다. 그렇지만 5라운드 말경에 페티스가 낸 회심의 삼각차기(기술이 시작되는 지점과 공중에서 방향 변환되는 지점, 그리고 타격이 떨어지는 지점이 삼각형을 이루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 고 최영의 총재께서 실전에서 사용하셨다는 비기다)를 맞고 핸더슨이 다운을 당하면서 판정은 페티스에게로 넘어갔다.

패티스전의 패전직후 WEC는 UFC에 흡수되었다. 벤텀급, 페더급의 경우 WEC 챔피언들이 그대로 UFC 챔피언이 되었지만 라이트급 이상의 체급에서는 WEC 벨트는 소멸했다. 당시 챔피언 앤소니 페티스와 전 챔피언 밴 핸더슨은 UFC 선수가 되어 새로운 경쟁속으로 돌입했다. 2011년 4월 30일, 핸더슨은 UFC 데뷔전에서2007년부터 UFC에서 활동한 베테랑 마크 보첵을 전원일치의 판정으로 제압했다. 페티스는 그렇지만 6월 4일 클레이 구이다와 대전해 판정패를 당하면서 타이틀 전선에서 밀려났다.

2011년 8월 14일 벤 핸더슨은 짐 밀러와 만나게 되었다. 밀러는 20승 (3KO 11SUB) 2패를 기록하고 있었으며2008년부터 UFC에서 활동한 훌륭한 선수였다. 특기는 블랙벨트의 주짓수. 밀러의 2패는 프랭키 에드가와 그레이 메이나드에게 당한것으로, 에드가와 메이나드가 타이틀을 놓고 혈전을 벌이던 당시의 상황을 놓고 보면 밀러는 타이틀 전선에 참여하고 싶은 선수들로써는 극도로 탐나는 전적을 가진 파이터였다. 그를 꺽는다면, 에드가,메이나드에 못지 않는 선수처럼 보일것이며, 그것은 UFC라이트급 타이틀에 도전장을 제시할 주요한 명분이 될 수 있었다. UFC에서 무려 7연승을 달리던 밀러는 당시 앤소니 페티스를 잡고 4연승중이던 클레이 구이다와 함께 타이틀 도전에 가장 가까이 있는 선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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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핸더슨 대 짐 밀러 (2011년 8월 14일)

경기 경험도 많고, 유술의 고수인 밀러는 매우 위험한 상대였다, 그러나 그를 꺽을 경우 많은 가능성들이 열리게 되는 상황이었다, 이 경기는 (이전에 살펴본 여러 경기도 마찬가지 지만) 핸더슨의 경력중에서 매우 중요한 갈림길이었다고 볼 수 있다.

1라운드 상황은 전형적인 헨더슨식 그라운드 쇼였다. 유술이 특기인 상대는 집요하게 서브미션기를 노렸고 핸더슨은 상대의 서브미션의도를 분쇄하면서 상위포지션을 차지하고 파운딩을 내려 꽃았다. 밀러는 스탠딩에서의 암트라이앵글, 그라운드 하위에서의 암록, 기요틴등 세차례의 서브미션시도를 걸어왔지만 모두 무위로 돌아갔고 테익다운과 상위포지션의 점유와 몇 차례 눈에 뜨이는 파운딩 성공등으로 점수를 쓸어담은 핸더슨이1라운드를 가져갔다.

2라운드가 되자 핸더슨은 스탠딩에서 적극적인 공격을 시도했다. 둘다 왼손잡이였으며 헨더슨이 리치가 좀 더 길었고 타격솜씨가 다소 우세했다. 핸더슨은 타격 콤비네이션을 동원해 밀러를 몰아붙이고 클린치를 잡은 후 테익다운까지 연결했다. 상위의 핸더슨은 파운딩을 시도했고 밀러는 서브미션을 노렸다. 밀러는 실로 다양한 방향에서 각종 서브미션기를 선보였는데 중요한 것은 핸더슨이 그것을 다 빠져 나오면서 강력한 파운딩으로 되갚아주는 그림이 반복되었다는 점이다. 밀러의 안면은 피로 물들어 갔다. 라운드 종료를 1분 40여초 남긴 지점에서는 핸더슨이 밀러의 하체관절기를 풀어내면서 강력한 파운딩을 꽃아넣었고 스탠딩으로 도망가는 밀러를 추격해 수차례의 클린히트를 낸후 밀러를 뽑아들어 바닥으로 내동댕이 쳤다. 다시 하위포지션에 처한 밀러는 핸더슨의 왼팔에 기무라를 시도햇는데 핸더슨은 이를 방어해 냈고 라운드가 종료될 때까지 밀러를 찌그려 뜨려 놓은 상태로 파운딩을 계속 성공시켰다.

2라운드도 핸더슨이 가져갔다. 1라운드 보다 더 확실한 내용이었다.

3라운드에서는 초반에 핸더슨이 위기를 맞았다. 밀러의 코너에서는 KO를 노리라는 주문을 냈다. 1,2 라운드를 모두 뺏긴 상태라 밀러로써는 뭔가 결정적인 장면을 만들었어야 했는데, 마침 핸더슨이 라이트 미들킥을 낸 직후 밀러의 왼손 카운터가 핸더슨의 안면에서 클린히트 한것이다. 핸더슨이 다운을 당하면서 경기의 향방은 크게 요동을 치게 된다. 하지만 잠시였다. 핸더슨은 언제 맞았냐는 듯이 달려드는 밀러의 아래로 파고 들어가 밀러를 오히려 테익다운 시킨 후 바닥에 놀러놓고 큰 스윙의 오른손 파운딩을 세번 연속으로 퍼붓는 멋진 장면을 연출했다. 그것으로 밀러의 득점은 상쇄 되버렸고, 밀러는 이 장면 이후로도 절체절명의 수세에서 허우적댄다.

이 대목에서 해설진의 마이크 골드버그는 ‘핸더슨이 밀러를 꺽는다면 라이트급의 타이틀 전선이 엄청나게 흥미로워 질 것’ 이라는 견해를 내었고 조 로건은 ‘짐 밀러를 이렇게 일방적으로 압도한 선수는 없었다.’ 라는 말로 핸더슨의 실력에 호평을 내린다.

그리고 골드버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에프레인 에스쿠데로(핸더슨의 팀 동료)가 제게, ‘핸더슨을 잘 지켜봐주세요 그는 더 높은 경지에 도달 했습니다’ 라고 말했는데 정말로 핸더슨의 월등함은 다른 차원으로 진입한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한 로건의 반응은 아래와 같다.

“제 눈에도 그는 새로운 경지에 도달한 것으로 보입니다.”

경기는 그대로 끝이났다. 3라운드도 핸더슨의 라운드였다. 짐 밀러는 핸더슨에게 소중한 기회를 넘겨주게 된 셈이다. 이 경기의 결과는 매우 중대했다. 라이트급의 타이틀 전선에서 가장 앞서나와 있던 밀러는 핸더슨에게 완전히 압도당하면서 미끌어져 내렸고, 타이틀 도전권은 이제 밀러를 꺽은 핸더슨과 앤소니 페티스를 꺽고4연승을 달성한 클래이 구이다간의 승자가 차지하는것으로 결정 된다.

클레이 구이다는 1981년 미국생으로 신장 170cm의 단신이지만 폭발적인 움직임과 강력한 레슬링, 맺집 정신력, 체력을 바탕으로 수많은 명승부를 만들어 왔고 UFC에서 큰 인기를 끌고있던 파이터였다. 당시 전적은29승 11패 4KO 15 SUB 였다. 페티스에게 갚아야 할 빚이 있는 핸더슨으로써는 이 경기에서 이겨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있는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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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핸더슨 대 클레이 구이다 (2011년 11월 12일)

경기가 시작하던 대목에서 나온 해설진의 대화가 흥미롭다. 골드버그는 “이 경기는 재미가 없을수가 없습니다.” 라고 말했고 로건은 “그리고 두 선수 모두 밤새도록 싸울 수 있는 체력을 가지고 있죠” 라고 화답했다.

구이다는 최근들어, 정확히는 케니 플로리안전에서 플로리안의 정교한 펀칭에 혼쭐이 난 이후 굉장히 난해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발을 써서 좌우로 불규칙적으로 왔다갔다 하며 상체도 매우 불규칙적으로 크게 흔들었던 것이다. 보통의 선수들은 이러한 움직임을 ‘적당히’ 사용해 상대의 타격을 흘리고 받아치기를 거는데, 구이다의 경우는 움직임이 너무 커서 상대의 공격이 빗나가더라도 스스로가 타격타이밍을 놓치는 경우가 있을 정도였으며, 그래서 타격전의 형태가 정석을 벗어나고 불안정해 지는 경향이 있었다. 스탠딩에서 구이다를 맞추는 것은 그렇게 쉬운일이 아니었고, 구이다의 입장에서도 상대의 타격을 흘리고 받아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는 얘기다. 정석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구이다의 그것은 약간 과한 움직임이라고 평할 수 있다.

1라운드 초반부터 펀치연타를 내며 핸더슨을 철망쪽으로 몰아가던 구이다는 핸더슨의 라이트 카운터를 정통으로 먹으면서 앞으로 떨어지는 다운을 당했다. 잽싸게 자리를 바꾸어 구이다를 오히려 철망쪽으로 밀어넣은 핸더슨은 구이다의 강력한 좌우 연타를 본인의 좌우연타로 맞받아친다. 그리고 다시한번 핸더슨의 펀치를 카운터로 받은 구이다는 무릎이 꺽였고 핸더슨은 구이다의 상체를 장악 하면서 그라운드로 끌어내려 점수를 마구 쓸어담았다.

구이다는 아마도 핸더슨의 약점이 타격이라고 보고 있었던 것 같다. 당시까지 전반적으로 핸더슨의 약점이라면 역시 타격이 유일했다. 타격전을 제외하면 핸더슨은 거의 완성된 선수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페티스 전에서의 패배가 약이 되었는지, 핸더슨은 구이다와의 타격전에서 밀릴 생각이 없어보였고, 난타전을 걸었다가 피를 본 쪽은 오히려 구이다였다. 1라운드 중반은 두 선수의 클린치 대결이 벌어졌다. 팽팽한 대결이었다. 스탠딩 타격전이 벌어진 라운드 막판에는 구이다가 점핑니에에 이은 펀치러쉬를 걸었는데, 여기서 핸더슨이 구이다의 오른손 강타를 먹고 다운들 당했다. 구이다는 이어서 핸더슨의 목을 잡고 기요틴 초크를 시도하지만 핸더슨이 잘 빠져 나왔다. 1라운에서는 핸더슨의 타격실력이 진일보 했음이 드러났고, 맺집과 서브미션 회피능력또한 다시한번 두드러졌던 내용이었다. 1라운드는 핸더슨의 근소한 우세로 볼 수 있엇다.

2라운드는 초반부터 구이다의 테익다운이 성공된다. 하지만 핸더슨은 금방 일어났다. 핸더슨의 특징 중 또하나가 이 대목에서 나타난다.

핸더슨은 매우 유연하고 하체의 힘이 강하게 때문에 테익다운 당한 직후 금방 일어난다. 핸더슨은 테익다운시키기도 어렵고 그라운드에 묶어두기는 더 어려운 선수인 것이다. 이것이 핸더슨의 특징 5번이다.

금방 일어난 핸더슨은 구이다에게 테익다운을 갚아주었다. 하지만 핸더슨으로써도 구이다를 눌러두기는 힘들었고 경기는 다시 클린치 게임으로 전환되었다. 서로 밀착 상태에서 니킥을 주고 받던 중에 핸더슨은 왼쪽 팔꿈치로 구이다의 안면을 가격한 후 즉각 하체로 손을 뻗어 테익다운을 시도하는 더티복싱-테익다운 전술 컴비네이션을 구사했다. 비록 성공되진 못하였지만 이것은 랜디 커투어 이래 레슬러들의 밥벌이와 같은 훌륭한 기법이다. 막아낸 구이다를 칭찬해야할 만큼 잘 구사되었다. 2라운드 종반에는 구이다가 다시한번 길로틴 그립을 잡는듯 했다. 하지만 핸더슨은 금방 그것을 풀어낸 후 오히려 구이다의 백을 잡고 리어네이키드 초크를 시도했다. 하지만 곧 라운드가 종료 되고 만다. 2라운드도 전체적으로 팽팽 했지만, 핸더슨의 근소한 우세로 볼 수 있다.

3라운드에서 결정적인 장면이 나왔다. 구이다를 철망에 몰아놓고 핸더슨은 클린치 니킥을 구사했는데, 구이다가 이것을 캐치 하면서 결정적인 테익다운 찬스를 내주게 된다. 하지만 핸더슨은 반대편 철장까지 밀러나면서 넘어지지 않고 버텨낸 후 방향을 바꾸어 구이다를 철망쪽으로 밀어넣은 후 클린치에서의 더티복싱과 테익다운시도의 조합으로 구이다를 압박했다. 그리고 잠시 후 헨더슨의 압박에서 벗어난 구이다가 하이킥을 시도하는데 핸더슨은 아래로 숙이며 그것을 피하고 테익다운으로 역습을 성공시켰다. 테익다운과 동시에 사이드 포지션을 점유한 헨더슨은 구이다의 탈출시도를 역이용해 이번에는 백을 잡아버렸다. 하지만 구이다가 또 빠져 나갔고 스탠딩으로 돌아간 직후 두 선수는 서로 타격을 내다가 충돌을 일으키게 된다. 여기서 구이다가 상위 포지션을 잡고 핸더슨의 목에 기요틴 초크를 시도했다. 혼신의 힘을 다한 시도였다. 그렇지만 라운드 종료를10여초 남긴 시점에서 핸더슨은 이번에도 빠져 나갔고, 탈출과 동시에 상위포지션을 점유한 후 파운딩을 내려치며 경기의 종료를 맞이했다.

경기의 흐름을 설명하기 힘들 정도의 난전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29대 28, 30 대 27, 30 대 27로 핸더슨의 전원일치 판정승이 되었다. 5분 3라운드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알수 가 없을 만큼 좋은 경기였다. 2011년 11월 13일UFC FOX 1에서 벌어졌던 이 경기는 관객들의 엄청난 호응을 이끌어내었다. 그리고 핸더슨은 대망의 타이틀 도전권을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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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악마' 젠스 펄버

UFC 라이트급은 2001년에 시작되었다. 초대 챔피언은 젠스 펄버였다, 펄버는 우노 카오루와의 결정전에서 승리하고 타이틀을 획득했다. 당시에는 벤텀급으로 불렸으며 UFC 31에서 라이트급으로 개칭되었다. 펄버는 BJ 펜을 포함한 두명의 도전자를 물리치며 2차방어를 달성했지만 UFC와의 계약에 문제가 생기면서 일본으로 떠나버렸다. 2003년 2월 공석이 된 챔피언 자리를 놓고 BJ 펜과 우노 카오루가 대전했다. 경기는 무승부로 끝나고 타이틀의 주인은 가려지지 못했다. 이후로 한동안 라이트급의 왕좌는 비어있었다. 2006년 10월 션 셔크와 캐니 플로리안이 챔피언 결정전을 벌였다.


셔크가 이겼고 그가 라이트급의 제2대 챔피언이 되었다. 1차방어전에서 헤르메스 프랑카를 이겼지만 경기후 약물검사에서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의 양성판정을 받은 셔크는 타이틀을 박탈당했다. 2008년 1월 BJ펜과 조 스티븐슨이 챔피언결정전을 벌였다. 펜은 이 경기에서 유혈참극을 연출하며 세번째 도전만에 UFC 라이트급 타이틀을 손에 넣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비인기 체급이던 라이트급은 3대 챔피언 BJ펜의 시대가 개막하면서 활기를 띠었다. 펜의 제위는 2년 3개월 가량 지속되었다. 세차례의 방어전 모두 피보라가 몰아치는 처참한 내용이었다. 4차방어전에서 도전자 프랭키 에드가가 펜을 상대로 쿠데타를 일으켰다.

에드가는 탄탄한 레슬링 베이스와 빠른 움직임 그리고 굉장한 복싱스킬을 가진 선수다.당시의 펜과 싸우는 선수는 절대 그의 정면에서 타격전을 벌여선 안되었다, 펜의 주먹은 결정병기이며 맺집 또한 초인적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래플링 능력이 부족한 선수도 펜에게 당하기 십상이었다. 에드가는 멈춤없는 좌우 움직임으로 펜에게 앵글을 주지 않았고 쉴새없이 들락거리며 펜의 레인지 감각을 교란시켰다. 거기다 기습적인 테이크 다운을 걸어 득점을 올리기도 했다. 경기 결과를 놓고 보면 에드가는 펜을 상대하기위해 만들어진 선수 같았다. 펜은 자신보다 큰 선수에게는 괴이할 정도로 강했지만 에드가처럼 작고 빠르며 움직임이 풍부한 상대로는 의외로 무기력했던 것이다. 2010년 4월 10일 UAE의 아부다비에서 열렸던 이 경기는 수많은 팬들에게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BJ 펜의 철권통치는 그렇게 막을 내렸고 에드가는 UFC 라이트급의 제4대 챔피언으로 등극했다. 같은 해 8월 28일에 있었던 에드가의 1차방어전이자 두 선수간의 리턴매치에서도 결과는 같았다 펜은 에드가를 상대로 답을 찾지 못한채 끌려다니다 판정패를 당했다.

2차 방어전에서 자신에게 유일한 패배를 안긴 그레이 메이나드와 만난 에드가는 1라운드 상대의 큰것을 먹고 그대로 끝장이 나는듯 했다. 하지만 라운드가 거듭될수록 전열을 정비하고 초반의 실점을 갚아나갔다. 판정단을 미궁속으로 빠뜨린 내용의 경기였다. 결론은 무승부로 났고, 에드가는 2차방어전을 달성했다. 3차방어전은 메이나드와의 리턴매치였다. 이 경기도 전 경기와 마찬가지로 1라운드에 메이나드가 결정적인 찬스를 맞으며 에드가를 빈사직전으로 몰아세웠다. 하지만 에드가는 또다시 회복하며 전세를 뒤집었고 4라운드 통렬한 KO승을 거두며 메이나드를 돌려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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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핸더슨은 에드가의 4차 방어전 상대였다.

이 경기의 1라운드는 박빙의 대결이었다. 핸더슨의 라이트 잽, 레프트 미들킥과 에드가의 킥 캐치 및 테이크 다운이 주요한 내용이었다. 에드가의 왼쪽눈은 1라운드부터 데미지가 쌓이기 시작했다. 2라운드 초반에는 핸더슨의 라이트 카운터가 계속 적중되었다. 중반에는 핸더슨의 니킥이 얼굴과 바디에 각각 한차례 씩 깔끔하게 들어갔다. 핸더슨은 2라운드에도 테이크다운을 자꾸당했다. 바닥이 미끄러웠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래도 특별한 공격을 허용하지 않고 금방금방 일어났다.

2라운드 후반에선 양선수가 좋은 펀치연타를 주거니 받거니 했다. 1라운드 종료를 45초 남긴 지점에서 에드가는 태클을 성공시키고 상위포지션을 차지했다. 에드가는 파운딩을, 핸더슨은 서브미션을 노리던 공반중에 핸더슨의 업킥이 터졌다. 이것으로 에드가는 상당한 충격을 입었으며 이미 상처가 있었던 왼쪽눈은 심하게 부어올랐다.

3라운드가 시작되던 무렵 해설진은 에드가의 회복력과 역전승의 역사에 대해 논한다. 메이나드전에서 보여준 그의 퍼포먼스는 그만큼 인상깊었던 것이다. 그리고 에드가는 3라운드에서 1,2 라운드보다 오히려 더 나 모습을 보였다. 더많은 정타를 적중시켰고 테이크 다운도 하나씩 나누어 가졌다.

4라운드가 시작되던 시점, 에드가의 얼굴에는 수많은 상처가 있었고 코에서는 출혈이 계속되었다. 반면, 핸더슨의 얼굴은 깔끔했다. 4라운드도 팽팽했다. 전체적으로 에드가가 앞서나가는듯 하다가 에드가의 태클에 맟춰 들어간 핸더슨의 절기 길로틴 초크에 의해 매우 위험한 상황을 맞으면서 어느쪽에 줘도 할말 없는 라운드가 되어버렸다. 2라운드는 핸더슨이 확실히 가져갔고 3라운드는 에드가가 근소하게 우세했다.1라운드와 4라운드는 누가 가져가도 이상할 것이 없을정도로 팽팽했고 5라운드의 승자가 타이틀을 차지할 확률이 높았다.

4라운드와 4라운드 사이의 휴식시간에 핸더슨의 코치인 존 크로우치는 핸더슨에게 "5분 더 할 수 있겠어?"라고 물었다. 핸더슨은 "15분도 문제 없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라운드가 시작되기 직전 핸더슨은 굉장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었다. 골드버그는 이 대목에서 "핸더슨에게 불이 붙었군요" 라고 말했고 로건은 "그는 신들렸습니다" 라고 화답했다. 그만큼 핸더슨의 기세는 대단했다.

5라운드의 내용은 전반적으로 득점면에서는 에드가가 아주 근소하게 앞서고 있었고, 어그레션은 핸더슨쪽에 있었다. 마지막 8초를 남긴 시점까지 승부의 향방은 완전히 결정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최후의 순간 핸더슨의 점핑니가 에드가의 안면에 적중되었고 에드가의 테익다운시도를 찍어누르면서 기요틴 시도에 이어 상위포지션을 잡고 강렬한 파운딩을 퍼부었다. 5라운드의 승자는 최후의 순간에 결정되었다.

경기가 끝났을 때, 골드버그는 "라이트급에 새 챔피언이 탄생하는것일까요? 혹은 프랭키 에드가의 4차 방어성공일까요"라고 결과를 궁금해 했다. 그리고 로건과 골드버그는 입을 맞춰 '처음부터 끝까지 대단한 경기였다' 라는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49대 46, 48대 47, 49 대 46, 심판 전원이 승자로 핸더슨을 지목했다. 새로운 라이트급 챔피언의 탄생이었다. 핸더슨은 이 체급의 5대째 챔피언이다.

경기가 끝난 후 에드가는 판정에 불만을 표출했다. 그리고 재전을 요구했고, 핸더슨이 이를 수락하면서 핸더슨의 1차방어전 상대는 프랭키 에드가로 결정되었다. 핸더슨과 에드가는 오는 11일 일요일 UFC 150의 메인 이벤트에서 2차전을 벌인다.

벤슨 핸더슨 프랭키 에드가
국적 미국 (한국인 모친) 미국
전적 16승 (2KO 8SUB) 14승 (3KO 3SUB)
        2패 (1SUB)         2패 
신장 175 cm 168 cm
체중 70 KG 70 KG
리치 177.8 cm 182.88 cm
스텐스 사우스포 오소독스
연령 1983년생 (만28세) 1981년생 (만30세) 

별명 Smooth Answer

에드가는 벌새같이 재빠른 선수다. 움직임이 매우 풍부하기 때문에 그를 맞추는것은 쉽지않다. 다만 슬로우스타터의 성향을 보이기 때문에 1,2 라운드에 큰것을 자주 허용하는 버릇이 있다. 리치가 보기보다는 긴 편이며 이를 잘 살린 펀칭위주의 타격기술이 매우 뛰어나고, 테이크다운 능력도 극도로 우수하다. 그렇지만 에드가가 다른 선수들에 비해 특별히 뛰어난 점은 스피드나 기술이 아니다. 그는 정신력과 체력이라는 매우 중요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기술과 체력, 정신력이라는 대선수가 가져야 할 메이져 요소들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 에드가는 극도로 까다로운 선수이며 최강의 도전자다.

핸더슨역시 체구에 비해 빠르고 우수한 반사능력을 가진 선수다, 기술적인 면에서도 부족함이 없다. 또한 체력과 정신력 역시 에드가와 좋은 한 쌍이라 할만큼 뛰어나다. 핸더슨의 가장 큰 특징은 성장의 속도에 있다. 경기 경험과 기량의 증가라는 부분에서 핸더슨의 발전상은 정말 놀라운 수준이다. 그의 실력은 한경기 한경기 마다 일취월장하고 있다.

핸더슨이 에드가에 비해 유리한 점은 체격조건이다. 에드가는 라이트급에서 가장 작은편에 속하고, 핸더슨은 체급내에서 가장 큰 선수중 한명이다. 에드가가 펜을 상대하기위해 만들어진 선수 같은 느낌이이었다면, 핸더슨은 에드가의 입장에서 너무나 가혹한 상대라고 볼수 있다. 체격차가 그만큼 크기때문이다. 에드가는 거의 감량을 하지 않은 채 싸우는 선수로 유명하고 핸더슨은 경기에 앞서 체중감량에 대단한 공을 들인다. 핸더슨의 감량 노하우는 유명하다. 조 로건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벤슨 핸더슨은 라이트급 선수치고는 거대합니다. 그의 감량폭은 어마어마합니다. 그렇지마 그의 감량은 과학적이죠. 경기에 나설 때 그는 영양부족 상태가 아니며, 탈진되지도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체격을 체급내에서 최적화 시켜 싸웁니다. 155파운드급에서 가장 큰 사이즈를 아무런 문제없이 만들어 내는것입니다."

과연 두선수의 2차전은 어떤 결과가 될것인가.

현지의 배팅 배당률은 흥미로운 전개를 보이고 있다. 이 배팅이 처음 시작 될 당시에는 핸더슨 2.0 대 에드가 1.8 가량으로 근소한 언더독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현재는 핸더슨 1.57배 대 에드가 2.68배로 핸더슨쪽으로 쏠림이 심화되고 있는 상태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핸더슨쪽으로 배팅을 하고 있다. 승부의 결과면에서 도박사들의 선택은 핸더슨의 판정승이 2.24배로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고 있다. 에드가의 판정승이 3.8배로 그 다음이며 핸더슨의 KO승에는 4.4배, 핸더슨의 서브미션승이 8.8배를 보이고 있다. 에드가의 KO승에 대한 배당은 10배, 서브미션승에 대한 배당은 16배, 그외의 무승부라든지 노 컨테스트에 대한 배당은 40배다.

이 경기의 예상은 어렵다. 핸더슨의 트레이님 캠프에 문제가 없고 감량이 성공적이라면, 즉 컨디션이 정상이라면 아마도 지지 않을것이다. 하지만 챔피언이 되고난 이후 많은 선수들이 트레이닝에 집중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맞이한다. 핸더슨은 하루에 훈련을 7시간씩 하던 선수다. 그리고 감량에 다른선수들보다 특별히 공을 들여야 한다. 타이틀 보유자는 팬들과 미디어의 요구에 응해야 할 의무가 있고, 그런것에 충실하다보면 트레이닝 시간이 줄어들 수 있으며 감량 과정에서 방해를 받을 수 있다. 그것이 가장 큰 변수이며 걱정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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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너스-

8월 12일의 UFC 150에서 라이트급 (-70KG) 챔피언 벤 핸더슨이 전 챔피언 프랭키 에드가를 상대로 1차 방어전을 가졌다. 기본기가 극도로 탄탄하고 좀처럼 빈틈을 보이지 않는 스타일이기로는 피차일반인 핸더슨과 에드가가 서로의 기량을 깐깐하게 테스트했던 이 경기에서 두 선수는 보기드문 호각지세를 연출했다. 채점을 하는 부심단의 이마에는 굵은 주름을 선물했고, 해설진의 정찬성, 김대환으로 하여금 장탄식을 계속 쏟아내게 만들었으며 방송을 시청하던 국내 격투기 팬들의 심장이 쫄깃해지도록 강한 압박을 가했던 이 대결은 5라운드 25분동안의 혈투끝에 49:46 (에드가) 48:47 (핸더슨) 48:47 (핸더슨)의 2:1 스플릿 디시젼에 의한 핸더슨의 판정승으로 결론났다. 판정결과에 대해 관중석에서는 환호보다는 야유가 대세였다. 경기 직후 셔독, MMA파이팅, MMA 위클리등 주요매체의 발표역시 판정에 대한 비판이 주종을 이루었다. 과연 판정에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이경기의 라운드별 상황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1라운드의 경우 핸더슨이 가져간것이 확실하다. 핸더슨은 사우스포 스탠스에서 갑작스럽게 스위치하며 라이트 로우킥으로 에드가의 다리를 공략했다. 그것이 적중될때 마다 에드가는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으며 넘어지기까지 했다. 전후좌우로 매우 부지런하게 움직이는 에드가에게 이런 로우킥은 매우 효과적이었다. 또한 스위치 스탠스를 자주 구사해서 에드가의 거림감각을 교란한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즉, 핸더슨은 '스위치를 통해 에드가의 앞뒤 움직임과 공격거리에 혼선을 주었고 로우킥으로 좌우 움직임에 제약을 가했다' 라고 정리할 수 있는데, 이것은 에드가의 경기력에서 대단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풋워크와 공수전환에 대비해 핸더슨이 준비해온 게임플랜이었다. 라운드 막판에 테이크다운을 허용했지만 넘어지면서 길로틴을 잡아냈고 서로의 득점은 상쇄되었다. 타격에서 앞선 핸더슨이 1라운드의 승자.

2라운드에서는 펀치교환도중에 중심이 뒤로 넘어간 상태에서 에드가의 펀치를 허용하면서 핸더슨이 다운을 당했다. 슬로우 모션으로 보면 맞은 후에도 상대를 주시하면서 넘어졌다. 충격에 의해 발생한 다운이 아니고 중심이 무너지면서 넘어진 것이지만 인상은 강했고 다운 이후에 에드가가 상위포지션에서 한동한 서브미션 시도를 하면서 2라운드를 가져갔다.

3라운드 초입에 핸더슨이 킥모션을 취하자 에드가는 펄쩍 뛰어오른다. 핸더슨의 로우킥에 대응하는 동작이었다. 이것으로 에드가의 의식에 로우킥이 심어진것이 확인되었고 핸더슨은 다음수로 하이킥을 구사했다. 일정한 기술을 상대에게 입력시키고 같은 타이밍에 비슷하게 나오다가 타점이 변하면서 들어가는 변환기를 거는 정석적인 전개였다. 하지만 클린히트는 나지 않았다. 중단 니킥이 두번 좋게 들어갔고 에드가가 사이드 스텝을 밟을 때 로킥으로 견제하는 장면도 계속 나왔으며 스위치도 효과적이었다. 라이트 잽도 하나씩 클린히트 되었다. 태권도식 사이드 페이스 (상대에게 측면을 보여주며 틀어선 자세)에서 옆차기를 구사하기도 했다. 에드가는 득점사항이 별로 없었다. 3라운드도 핸더슨의 승리.

4라운드의 초반에 핸더슨의 중단 니킥이 하나 성공되었고 레프트 스트레이트도 들어갔다. 에드가는 로킥 하나정도밖에 적중을 못시키고 있던 상황에서 테익다운을 하나 성공시켰다. 이 상황에서 핸더슨이 누운자세에서 킥을 시도했지만 적중되지 못했고 오히려 에드가에게 좋은 포지션을 헌납했다. 에드가의 서브미션 시도 비슷한것이 있기도 했는데, 자세히 보면 전혀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다. 하위포지션을 탈출한 한 핸더슨은 이후 펀칭동작이 커지면서 헛스윙을 계속했다. 라운드 후반에는 핸더슨이 라이트 잽 두발을 클린히트 시켰다. 이 공격에 의해 에드가의 마우스피스가 빠졌다. 라운드 종반부에서는 대략 대등한 공방이 이어졌다. 4라운드는 백중세였다. 테이크다운과 포지션 점유및 서브미션 시도에 점수를 더 준다면 에드가가 우세하게 보일 수도 있다. 타격의 관점으로라면 헨더슨이 우세했다. 이 경기에서 채점을 내리기 가장 어려운 라운드였다.

5라운드 시작 무렵에 핸더슨은 에드가의 라이트를 하나 가볍게 먹었고 에드가의 밧다리 걸며 밀어버리는 기술에 당해 넘어지기 까지 하면서 예봉이 꺽였다. 로킥도 하나 허용했다. 라운드 중반 무렵에는 핸더슨의 레프트가 하나 가볍게 적중되었고 한동안 소강상태를 유지하다가 종료를 2분 20여초 남은 지점에서는 에드가의 고개가 젓혀질 만큼의 레프트 클린히트를 냈다. 1분 22초 남긴 상황에서 에드가의 로우킥이 적중되면서 핸더슨이 중심을 잃는 장면이 나왔다. 이후에는 핸더슨이 왼쪽 중단니킥하나와 레프트 펀치 큰것, 라이트 하이킥 하나를 적중시켰다. 이 라운드에서도 에드가가 눈에 뜨이는 장면을 몇차례 보이는것 같았지만 정작 제대로 큰것을 맞추고 충격을 준 쪽은 핸더슨이었다. 에드가의 공격은 핸더슨의 머리를 흔들지 못하고 살짝 얹히거나 비껴맞은 형태가 대부분이었고 핸더슨의 공격은 에드가의 고개가 젖혀지고 턱이 돌아가게 만들었다. 타격의 양적인 면에서는 비슷했고 질적인면에서는 핸더슨이 우위였던 상황이었다. 에드가가 핸더슨을 한번 넘어뜨리기는 했지만 상위포지션을 점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큰 득점이 인정되지는 못할 상황이었다. 5라운드도 채점하기 무척 어렵다. 이것도 타격의 수효 자체를 중시한다면 에드가 쪽으로 갈것이고 실제적인 데미지 전달 측면에서는 핸더슨이 우위였다.

셔독은 이 경기를 49대 46으로 에드가의 승리로 봤다. MMA 위클리와 MMA파이팅도 마찬가지다. 파이트 매트릭은 48:48로 무승부라는 견해를 내 놓았다. 판정의 기준이라는것이 보는 사람마다 미묘하게 다를 수 밖에 없는데, 실질적인 데미지를 입힌 공격을 기준으로 했을때는 핸더슨이 확실한 우위였다. 에드가의 안면에는 상처와 출혈이 있었고 핸더슨의 안면은 깨끗했다. 살짝 얹히거나 비껴맞은것을 모두 따지면 에드가가 좀더 많이 맞춘것처럼 보일수 있다. 그렇지만 자세히, 아주 자세히 보면 핸더슨이 에드가의 수많은 펀치를 상체 움직임과 헤드슬립(머리를 틀어 상대의 주먹을 빗나가게 만드는 고급 방어기술)으로 멋지게 흘려내는것을 자주 관찰할 수 있다. 보기보다는 핸더슨이 정타를 허용한 수가 많지 않다. 테이크다운과 그라운드 컨트롤에 채첨을 후하게 준다면 또 에드가가 좀더 나아보일 수도 있다. 이번 경기의 테이크다운/그라운드 부분에서는 에드가가 앞선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스탠딩에서 핸더슨이 점한 우위를 상쇄할만큼 결정적이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에드가의 테이크다운 숫자도 2회로 그다지 많지 않았고 테이크다운 이후에도 별다른 공격을 하지 못한 채 핸더슨의 탈출을 금새 허용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기 전반에서 옥타곤의 중앙을 점령하고 밀어붙인쪽, 즉 적극적으로 공세를 취한쪽도 핸더슨이었다.따라서 49:46 에드가 승이라는 여러 매체들의 견해는 납득하기 힘들다.

1라운드와 3라운드는 어떻게 봐도 핸더슨의 확실한 우세다. 4라운드에는 승자가 없다고 보는쪽이 맞으며 5라운드 역시 마찬가지. 4,5 라운드를 10:10으로 보는 개인적인 결론은 49:48로 핸더슨의 판정승이다. 5라운드를 에드가에게 주어도 48:48로 무승부, 4라운드 까지 에드가를 줘도 48:47이다. 49:46을 채점한 소위 'MMA 대표 미디어'들은 자신들의 전문성을 스스로 깍아먹고 있는것이 아닌가 하는 개인적인 의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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