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산 정상에 올라서면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광경들을 목격하곤 한다. 오르기 전에는 알 수 없었던 놀라운 경험들이다. 대부분 이 광경에 심취한 나머지 흐트러지고 어긋나지만, 순결의 파이터 벤 헨더슨(31·MMA LAB/몬스터그룹)만큼은 그 예외가 아닐까 싶다.

2012년 2월 라이트급 챔피언 에드가를 누르고 정상에 선 헨더슨. 최고의 자리에 앉았고, 현존 최강의 파이터중 한명이지만, 여전히 땀방울을 쏟는데 여념이 없다. 근면, 성실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그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헨더슨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이유로 어머니 김성화 씨를 꼽는데 주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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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콜로라도에서 태어난 벤은 한국인 김성화 씨와 주한미군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간 그의 어머니는 약물 중독자였던 남편과 이혼 후 혼자 두 아들을 키워왔다. 14살 때부터 시작한 태권도와 고교시절 레슬링 선수로 활약한 덕분에 지금은 격투기 최고의 파이터로 성장했다. 'UFC FIGHT NIGHT 79' 서울대회 메인이벤트에 출전하는 아들을 응원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김정화씨를 만났다. 어머니가 말하는 챔피언은 어떤 모습일까?

지독한 연습벌레로 알려진 그는 어머니에게 훈련을 김치찌개로 비유하며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아들은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어린 시절 대회에 앞두고 이런 말을 했죠. 김치찌개를 잘 끓이는 사람은 4~5번만 해보고 대회를 나가겠지만 잘 끓이지 못하는 사람은 40~50번을 연습해보고 나가야한다. 항상 그렇게 연습에 매달렸어요." 어린 시절 이미 챔피언의 유전자를 가졌던 것일까. 나이답지 않은 성숙함에 어른들마저 놀라게 만들곤 했다.

"부상으로 연습을 할 수 없는 날에도 체육관에 나가요. 하다못해 동료들에게 물이라도 건네주며 조언을 아끼지 않는거죠. 당장이라도 시합에 나가고 싶은 마음을 그렇게 해소시키는 것 같아요." 부상으로 훈련을 할 수 없음에도 체육관으로 향했다는 그다.

어머니 김성화 씨는 아들에게 매일같이 말했다. "각자의 삶이 있고, 그 삶을 즐기기 위해서는 자신의 일을 확실히 해야 한다. 나의 직업은 돈을 버는 것이고, 너의 직업은 열심히 공부하고 훈련하는 것이다. 그 이후에는 얼마든지 니가 원하는 삶을 즐기며 살아라." 헨더슨은 어머니의 조언을 지켰고,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다.

지극한 효자로 알려진 헨더슨은 학생시절 어머니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점심값마저 모았다. "제가 점심 값으로 1불씩 주면 그것도 틈틈이 모았어요. 점심 봉사를 하면 식사가 무료로 제공되는데 그 곳에서 일을 하고 점심 값을 모은 거예요. 내가 힘들까봐 그 돈을 모아 자기 형한테 용돈으로 준거죠." 남다른 효심과 인성은 파이터가 아닌 인간 벤 헨더슨을 더욱 존경받게 만든 원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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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더슨의 인성은 정평이 나있을 정도다. 특히 팬들의 싸인 공세나 사진 촬영 요구도 거절 없이 다정하게 받아준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팬들에게 당연한 서비스임을 밝혔다.

김정화 씨는 한국 방문 당시 경호원들과 헨더슨의 훈훈한 감동스토리를 기자에게 전했다. "얼마 전 한국에 왔을 때 식사를 하려고 음식점에 들어갔어요. 그때 벤이 갑자기 경호원들과 운전기사님을 찾는 거예요. 무슨 일인지 물어보니 왜 식사시간인데 함께 밥을 먹지 않느냐는 것이었죠. 한사코 손사래 치던 그 분들을 기어이 식당 안으로 데리고 와서는 함께 먹자고 권했어요. 식사 후에 경호원 중 한분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자신이 지키는 사람과 함께 식사한 것은 처음이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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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인생에 승리만큼 값진 것이 인성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헨더슨의 삶은 순탄치 않았고, 역경의 소용돌이였지만, 어머니의 바른 교육은 좁고 험했던 삶의 올바른 길이 되었고 등불이었다. 자유로운 나라 미국에서 한국인의 혼을 지켜나간 헨더슨. 앞으로 우리에게 또 어떤 감동을 선물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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