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서희를 처음 만난 시기는 지난 2008년 초였다. 선배 기자와 함께 홍대 앞으로 취재를 나갔다가 처음 마주할 수 있었다. 당시는 신입 시절로 함서희라는 선수의 이름을 들어보기만 했을 정도였다. 일본 중소단체에서만 활동했던 터라 TV로는 볼 수 없어 큰 관심이 없기도 했다.

그때를 떠올리면 나름대로 충격(?)이었다. 동네 꼬마 한 명을 인터뷰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작은 키에 얼굴이 앳되보였고, 말을 할 때나 표정에서도 파이터의 아우라는 단 1%도 느껴지지 않았다. 의상은 다소 거추장해 보일 정도로 화려한(?) 일본 스타일이었다. 성냥팔이소녀의 느낌도 들었다. 이런 선수가 국내 최강의 종합격투가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사무실로 돌아와 함서희라는 선수의 커리어와 경기영상, 사진 등을 찾아봤다. 그때 또 한번 큰 충격을 받았다. 영상이나 사진에서의 함서희는 아까 홍대에서 봤던 그 꼬마가 아니었다. 맹수 같은 눈빛으로 상대를 쓰러트리기 위해 강한 타격을 구사하는 모습에서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놀란 나머지 '아까 그 꼬마가 정말 이 선수가 맞나?'라고 선배에게 물었던 기억도 난다. '역시 겉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함서희는 사실상 유일한 국내 여성 종합격투기 프로파이터로 일본 무대에서 활동했다. 한동안 무대가 마땅치 없었고 생계활동을 하면서 방황도 했지만 지난해부터 승부를 걸었다. 그 결과 쥬얼스 챔피언 등극 및 국제전 6연승 실적을 올리며 국내 최초로 옥타곤에 입성할 수 있었다.

일본에서는 운동 안 해도 강자

입식타격가 출신인 함서희가 종합격투기로 전향한 시기는 2007년이었으며, 그때부터 일본에서 활동했다. 국내 킥복싱 경기에서 석연치 않은 판정에 화가나 운동을 그만두고 1년간 쉬고 있던 중 일본에서 종합격투기를 해 보라는 연락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됐다. 일본을 가보고 싶기도 했고 슬럼프에서 빠져나오고 싶었으며, 종합격투기가 궁금하기도 해서 한번 뛰었던 게 지금까지 왔다.

2007년 2월 열린 데뷔전 상대는 딥 챔피언이자 일본 여성종합격투기 최고의 타격가로 꼽히던 와타나베 히사에였다. 하지만 타격만큼은 자신이 있었던 함서희는 와타나베에게 판정승을 거두는 이변을 연출하며 화려한 신고식을 치렀다. 그 결과에 일본에서도 적지 않은 놀라움을 나타냈다.

하지만 그래플러와 맞서자 부족한 그래플링 기량을 드러내며 패했다. 약 10개월간 4전을 치르며 남긴 결과는 2승 2패였다. 승리와 패배를 반복했다. 마지막 경기는 타이틀전이라 패배의 아쉬움이 컸다. 그리고 과거 소속팀에서 현재의 소속팀인 팀매드로 이적했다.

2008년이 밝으며 함서희에게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많은 관심을 모은 스맥걸 토너먼트가 바로 그것. 함서희는 8강전에서 이시오카 사오리에 판정승을 거두고 준결승에 진출했다. 그러나 부족한 그래플링이 또 발목을 잡았다. 세계 최강의 그래플러인 후지이 메구미를 4강에서 만나 암바로 승리를 내주고 말았다.

데뷔전부터 후지이에게 패하기까지 1년 2개월간 함서희는 3승 3패의 전적을 남겼다. 만족할 만큼의 좋은 성적은 아니었지만 한국이 아닌 해외에서 꾸준히 경기를 치르며 확실한 프로 종합격투기 선수로 거듭났다는 것에 뿌듯해했다.

그러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왕성히 열리던 스맥걸이 폐업한 것이다. 함서희로선 활동할 무대를 잃은 셈이었다. 부상 또한 치료해야 했고 생계유지를 위해 별도로 일을 해야 했다. 당시 운동을 뒤로하고 다른 진로를 알아보기도 했다. 소속팀은 부산에 있지만 서울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다.

그런 상황임에도 경기 출전은 끊기 어려웠다. 몸이 성치 않고 훈련을 할 시간이 없었음에도 들어오는 출전 요청을 거부하지 않았다. 운동을 전혀 하지 않은 상태에서 링에 오른 적도 있다. 놀라운 점은 그렇게 활동하며 보낸 2년 남짓한 시간 동안 6승 2패의 준수한 성적을 남겼다는 것. 더군다나 킥복싱 타이틀까지 거머쥐기도 했다.

그 과정을 겪으며 함서희는 자연스럽게 일본에서 확실한 강자로 거듭났다. 프로모터들이 함서희의 상대를 찾지 못해 곤욕을 치렀을 정도로 많은 선수들이 함서희를 피했다. 이에 입식격투기에 가까운 슛복싱 S-CUP 토너먼트에 출전해 준우승의 실적을 남기기도 했다. 때로는 상대를 찾지 못해 남성 선수와 프로레슬링을 방불케 하는 이벤트성 시범경기를 치른 적도 있었다.

승부 걸고 1년 반만에 UFC 진출

함서희의 측근은 '운동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이런 성적을 낼 정도인데, 제대로 하면 얼마나 대단한 선수가 될까' 하는 말을 종종 해왔다. 그리고 함서희는 모두의 바람대로 지난해인 2013년부터 운동에 승부를 걸었다. 무심코 있던 중 양성훈 감독이 던진 따끔한 한 마디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는 짐을 싸서 곧바로 부산으로 내려왔다.

운동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자 좋은 성적으로 돌아왔다. 2013년 복귀전에서 미즈나미 료를 암바로 꺾은 함서희는 스기야마 나호, 누마타 사다에를 차례로 꺾으며 쥬얼스 챔피언에 등극했다. 쥬얼스의 경우 여성 단체 중 세계 2위권 단체로 함서희는 챔피언에 오르며 세계랭킹 3위에 진입했다.

이후에는 로드FC와 계약해 2승을 거뒀고, 지난 11월에는 쥬얼스 1차 방어전에 성공했다. 그 과정에서 세계랭킹 2위까지 올라섰다. 최근 함서희의 경기를 보자면 그래플링 실력이 크게 보완됐고 전체적으로 날이 선 느낌이 들게 한다. 클래스가 다르며, 아시아엔 적수가 없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함서희가 UFC에 진출했지만, 함서희에게 먼저 손을 내민 단체는 미국의 유명 여성 격투기 대회인 인빅타FC였다. 그러나 함서희는 아직은 그래플링 실력을 더 보완해야 한다고 판단해 섣불리 결정하지 않았다. 또 다른 이유는 기왕이면 인빅타FC가 아닌 UFC에 가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활동하는 체급이 UFC에 생기길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UFC에서 아톰급이 생길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함서희로선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여자 나이 28세, 불과 몇 개월만 있으면 29세가 된다. 그동안 선수 활동에 꽃다운 젊음을 바쳤는데, 언제까지 같은 삶을 살아갈 수는 없었다. 선수로 활동할 시간이 결코 많이 남지 않았기에 빨리 승부를 보고 여자로 살아가야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결국 함서희는 UFC에 도전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물러설 곳이 없고 끝을 봐야한다는 생각에 크게 맘을 먹었다. 체급을 올려야 하는 것이 무리란 것을 알지만 지금이 도전할 때라고 판단했다. UFC 측에서 함서희의 커리어와 경기 스타일에 만족감을 나타내며 계약은 빠르게 성사됐으며, 여성 파이터 치고는 조건도 좋은 편이었다.

역대 가장 험난한 옥타곤 데뷔전

UFC 데뷔전의 중요성은 두 말하면 잔소리다. 옥타곤에는 항상 퇴출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특히 신인 선수들의 퇴출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신인 선수가 특별한 임팩트 없이 2패를 기록하면 퇴출이 유력하며, 심지어 1패를 기록하고도 방출되는 경우도 있다. 데뷔전 패배는 곧 퇴출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상 첫 경기에서 승부를 봐야 하는 처지다.

국내에선 지금까지 8명의 선수들이 UFC 데뷔전을 치렀으며, 결과는 5승 2패 1무효로 기록된다. 김동현, 정찬성, 임현규, 남의철, 최두호가 첫 옥타곤 경기에서 승전고를 울렸다. 부담이 극심한 데뷔전에서 살아남은 이들 모두는 전부 안정권에 있는 상태다.

같은 데뷔전이지만, 함서희는 앞서 데뷔전을 치른 8명의 남성 선수 누구보다 어려운 상황이다. 실력은 충분히 입증했지만 가장 큰 문제는 한 체급 위에서 활동해야 한다는 점이다. 기량이 비슷하다고 가정할 때 사실상 체급 차이를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과거 라이트급 챔피언 B.J. 펜과 웰터급 챔피언 조르주 생피에르의 경기가 일방적인 생피에르의 승리로 끝난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스트로급의 규정 체중은 -52.5kg. 함서희는 -48kg급의 아톰급 선수로 평소 체중이 51kg에 불과하다. 다른 선수들은 감량 후 계체를 통과하며 경기를 치를 때의 체중은 50kg 후반으로, 함서희보다 6~8kg은 더 나갈 것으로 보인다.

신장 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이번 상대인 조앤 칼더우드는 함서희보다 10cm는 족히 크다. 함서희가 만약 그래플러라면 그나마 극복하기 수월하겠지만, 같은 타격가인 만큼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그동안 싸웠던 대로 펀치를 뻗어서는 상대의 얼굴에 주먹이 닿기조차 쉽지 않다.

상대의 전력 또한 만만치 않다. 칼더우드는 스트로급 세계 최강자를 가리는 토너먼트나 다름없는 TUF 20의 우승후보였다. 입식격투기 선수로 활동하던 시절 19승 2패의 전적을 기록했고, 종합격투기에는 2012년 데뷔해 8전 전승을 기록 중이다. 칼더우드의 예상치 못한 8강전 패배가 데뷔전 승리를 노리는 함서희에게 결코 긍정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한 체급 위의 세계적인 강자를 상대로 데뷔전을 치른다고 봐도 무방하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함서희는 경기 9일 전 상대의 이름을 들을 수 있었고, 비교적 늦게 출국해 아직 시차적응도 되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함서희는 오히려 강한 선수가 데뷔전 상대가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모두의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겠다는 등 의지에 불타고 있다. 뼈가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자신감 잃지 않고 싸운다는 각오다.

객관적인 전력만 봐선 열세다. 미국의 도박사들은 물론 한국 팬들조차 승리가 쉽지 않다고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함서희는 UFC 도전에 모든 것을 걸었고, 어느 때보다 이겨야 할 이유가 분명하다. 결과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파이트 오브 더 나이트' 후보로 손색이 없을 정도의 치열한 대결이 펼쳐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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