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3일 최두호(23·구미MMA)가 자신의 UFC 데뷔전에서 선보인 18초 TKO승 퍼포먼스는 격투기 팬들에게 최고의 선물이었다. 실력이나 성적에 비해 UFC 진출이 늦었고, 부상까지 이어진 탓에 데뷔전이 연기되며 팬들의 아쉬움을 샀지만, 화려한 옥타곤 신고식으로 팬들의 기대감에 완벽히 부응했다.

격투팬들만 열광한 것이 아니었다. 격투기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수많은 네티즌들이 최두호의 시원한 승리에 크게 동요했다. 수백 개에 이르는 기사가 쏟아졌고 최두호란 이름은 이틀간 포털사이트 검색어를 장악했다. 국내 선수가 UFC 데뷔전에서 18초 만에 서양 선수를 쓰러트린 것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통쾌하게 다가왔다.

최두호가 경기에서 승리한 직후. 그 시간 인터넷에는 최두호와 함께 '이창섭 물개박수'가 화제가 됐다. 실시간 검색어 7위에 랭크된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창섭 감독이 제자 최두호가 상대를 다운시킨 뒤 파운딩을 퍼부을 때 박수를 치던 장면이 전파를 탔는데, 그 장면은 공연장의 물개가 관객들 앞에서 박수를 치는 모습과 너무 흡사했다.

이 감독의 물개박수는 최두호의 승리와는 별도의 깨알 보너스 같은 것이었다. 특히 국내 관계자나 이 감독의 지인들은 물개관장, 이 '물개' 창섭, 물개라며 즐거워했다. 하지만 당사자인 이창섭 감독은 "속된 말로 쪽팔려 죽는지 알았다. 진짜 너무 없어 보이더라.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기분이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하는 이창섭 감독 인터뷰 전문.

- 먼저 데뷔전 승리 축하한다. 늦었지만 소감 부탁한다.
▲ 운동하면서 정말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다. 내 경기는 아니지만 내가 거둔 어떤 승리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기뻤다. 그동안 고생한 시간이 떠올랐고 두호에게 너무 고맙다.

- 애초 승리할 자신이 있었나?
▲ 당연하다. 그러나 상대가 체격이 크고 신체능력이 좋으며 진흙탕 싸움에 능해 조금 경계되기도 했다. 나 역시 경기가 이렇게 빨리 끝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상대가 우리가 원하는 대로 들어온 덕에 쉽게 끝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오른손 카운터는 많이 준비한 전략이었다.

- 경기 직후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물개 박수'가 화제가 됐다(웃음).
▲ 페이스북에서 물개 관장이니 이 '물개' 창섭이란 말을 보긴 했는데, 경기 직후 TV를 보지 못한 상황이었던 만큼 대체 뭔 소리를 하나 싶었다. 허나 TV를 본 뒤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본인이 박수치는 모습을 봤을 때의 기분은?
▲ 정말 깜짝 놀랐고 너무 부끄러웠다. 더 솔직히 표현하자면 속된 말로 쪽팔려 죽는지 알았다. 진짜 너무 없어 보이더라.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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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응이 꽤 뜨거웠다. 물개박수란 키워드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기도 했다.
▲ 완전 놀림거리가 됐다. 우리 회원들은 물론 수많은 지인들이 나를 물개로 부른다. 카카오톡에서 나를 부르는 첫 마디가 전부 물개 관장이다. 나이 50이 넘은 주위 분들도 '이 관장. 너 스타됐데이. 그리 좋드나?'라며 웃으신다. 그런데 진짜 좋긴 하다. UFC에 약한 선수는 없지 않나. 데뷔전에서 쉽게 승리했고 연습한 기술로 상대를 쓰러트렸다. 또 안 다친 게 어딘가. 너무 좋아 영혼이 없는 박수였다.

- SNS에는 물개와 비교한 박수 영상도 돌더라.
▲ 한 번 보고 다시는 안 봤다(웃음). 내 모습이 슬로우로 나오는데 정말 얼마나 거지같던지. 남들은 훈훈하다고 말하지만 진심 너무 창피했다. 두호의 경기 영상은 100번도 넘게 봤는데, 볼 때마다 물개박수 장면이 나올 것 같으면 얼른 껐다. 도저히 못 보겠다. 멋지게 나와도 모자랄 판에.

- 계체량 때도 느꼈지만, 선수보다 긴장을 많이 한 것처럼 보였다.
▲ 그런 말을 많이 들었다. 지금까지 우리 선수가 경기할 때 코너에 선 적이 100번이 넘는다. 이상한 것은 다른 제자들이 싸울 땐 괜찮은데 유독 두호 경기 때만 긴장된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나와 같이하며 고생했던 녀석이라 그런지 같은 자식이라도 다른 느낌이다.

- 자리를 못 잡고 허둥지둥 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것도 긴장한 것 때문인가?
▲ 로드FC 시스템에 너무 익숙해져서 그렇다. 로드FC에선 선수를 소개할 때 케이지에 올랐다가 경기가 시작하기 직전 내려오면 그곳이 코너맨 석이다. 그런데 UFC는 코너맨 위치가 달랐다. 케이지에서 내려와 있는데 관계자가 저쪽으로 가라고 하는 게 아닌가. 조바심에 급하게 움직여 지정된 자리에 앉았을 땐 이미 경기가 시작된 뒤였다. 그래도 코너맨석에 앉아서 18초 중 10초는 본 것 같다. 통역 해주시는 분은 자리에 앉기도 전에 경기가 끝났다(웃음).

- 자리에 늦게 앉았고 경기도 빨리 끝나 뭔가를 지시할 시간도 없었을 것 같다.
▲ 딱 두 마디 했다(웃음). '두호야 천천히', '침착하게' 이 말을 하고 나니 물개박수를 치고 있더라.

- 경기가 끝났을 때 상황은 어땠나?
▲ 심판이 손을 흔들며 경기 종료를 알리자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며 공중부양했다. 내 팔을 잡으며 제지하는 관계자에게 한국 말로 '놔라!'라며 뿌리치고 바로 뛰어 올라갔다. 거기에 서 있는데 그동안 고생한 시간이 떠올라 눈물이 뚝뚝 떨어지더라. 그때 케이지 쪽으로 다가오며 '사범님 울지 마세요. 우시면 안 돼요. 절대 울지마세요'라고 했던 두호의 말에 눈물을 참았다.

- 보너스가 충분히 기대되는 상황이었다. 실망이 컸을 것 같은데.
▲ 솔직히 당연히 받을 줄 알았다. 그래서 집에 가지도 않고 경기장에 끝까지 기다렸다. 그런데 보너스 내역에 두호 이름이 없더라. 갑자기 프랭키 에드가를 때려죽이고 싶었다. 에드가가 경기 종료 직전 스완슨에게 서브미션 승만 거두지 않았더라도 퍼포먼스 보너스 하나는 두호가 받았을 것이다. 파이트 오브 더 나이트는 에드가와 스완슨이 받고.

- 18초 만에 이긴 것은 큰 성과지만 반대로 너무 빨리 끝나 아쉬움도 있을 것 같다.
▲ 두호도 말했지만 옥타곤 적응이 되기도 전 끝난 탓에 다음 경기 때도 데뷔전 기분이 들 것 같다. 사람들은 최두호에 대해 겁이 없고 오른 손이 좁으며 동체시력이 좋다고 말하지만 이번에 보여준 것은 10분의 1밖에 안 된다. 타격은 물론 테이크다운과 그라운드 등 어마어마한 것을 못 보여줘 너무 아쉽다. 다음에는 종합격투기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경기를 펼칠 것이다. 1~2라운드를 보면 '와. 정말 잘하네' 하는 말이 절로 나올 것이다.

- 본인도 코너맨으로서 UFC 데뷔전을 치렀다. 이번에 느낀 점이 있다면?
▲ 뻔한 말이지만 일단 대회 자체가 정말 크고 분위기가 다르다. 술을 마시며 고함을 지르고, 환호를 많이 하는 반면 야유도 많다. 그리고 UFC 선수들이 생각했던 것만큼 강하지 않다는 것이다. 솔직히 정상급 선수는 인정한다. 이날 에드가의 경기력은 정말 정상이 아니었다. 미친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 외의 많은 선수들은 충분히 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컵 스완슨도 마찬가지다.

- 더스틴 포이리에가 최두호를 칭찬했다고 들었는데.
▲ 사실 포이리에와는 계체 전날 밤 호텔 바에서 먼저 마주쳤다. 혼자 나와서 맥주를 한잔 할 때 포이리에가 옆에 있었다. 참고로 우리 선수 중 (김)효룡이가 포이리에를 참 좋아한다. 그래서 포이리에에게 말을 걸어 "내 제자가 당신의 팬이다. 영상 메시지 부탁한다"고 부탁하니 흔쾌히 응해주더라. 한국말로 "효룡아. 열심히 해" 이런 내용이었다(웃음). 그리고 대회 당일 경기에서 이기고 돌아다니는데 포이리에가 볼 때마다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그때 두호한데 "두호야. 조만간 쟤랑 붙어야 하는데 미리 사진이나 찍어놓자"고 말하고 둘을 세웠다(웃음).

- 며칠 전에 미국에 도착했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어땠나. 혹시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는가?
▲ 다 괜찮은데 시차적응이 너무 힘들었다. '별것 있겠나?' 하는 생각은 오산이었다. 우리 셋 모두 매일 새벽 2~3시쯤 일어나 휴대폰을 붙들고 있었다. 또 영어가 안 되다 보니 바디랭기지를 동원해야 했다. 한국인은 영어를 못 한다고 인식할까봐 식당을 거거나 하면 '스미마센', '조또마떼 구다사이', '아리가또' 이러면서 일본인인척 했다(웃음). 돌아오는 비행기에선 자리가 좀 좁았는데 두호가 불편해 할까봐 1시간 이상 서있기도 했다. 그러다가 두호는 바닥에 누워 잤다.

- 본인도 대회를 직접 개최한 경험이 있고 구미에서 열리는 로드FC 대회는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UFC 시스템을 보며 어떤 생각이 들었나?
▲ 특별한 것은 없다. 다만 인력이 많고 역할 분담이 확실하다는 점, 그리고 핵심 인력의 경우 일당백이라고 해도 될 만큼 업무 능력이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수에 대한 좋은 대우는 당연하다. 선수를 우선시하는 부분이 많아 경기를 치르기 좋다. 하지만 우리도 이미 그렇게 하고 있고 노하우와 자금적인 부분만 갖춰지면 충분히 가능한 부분이라 본다.

-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다면.
▲ 난 경기가 끝나면 모든 기사와 댓글을 확인하고, 그것을 스크랩해서 두호에게 준다. 댓글에는 18초 만에 승리한 것을 두고 '럭키다', '상대가 약했다'는 등의 내용을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지켜보면 왜 '코리아 슈퍼보이'로서 기대주로 불리는지 매 경기마다 확실히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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