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격투기 대회가 올해처럼 많이 열렸던 해도 없었다. 2014년엔 순수 국내 브랜드의 대회만 총 15회가 열렸다. 과거 스피릿MC가 왕성히 열리며 국내에 종합격투기 바람이 불었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1개월에 두 번 이상 대회가 열린 셈이다.

그 중심에는 로드FC가 있었다. 로드FC는 올해만 10번의 대회를 열었다. 종종 적지 않은 논란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긍정적으로 보면 그만큼 대중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킨 만한 대회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회의 횟수나 규모, 소속 선수 등 여러 방면에서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로드FC가 2014년 10번의 대회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총 107번의 경기가 펼쳐졌다. 그 중에는 상대를 한 방에 실신시키는 격한 KO와 상대에게 항복을 받아내는 서브미션 승부가 넘쳤고, 시종일관 화끈한 난타전으로 시선을 사로잡은 명승부도 볼 수 있었다.

수많은 격투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 로드FC의 2014년. KO와 서브미션, 명승부를 각각의 카테고리로 정하고 최고의 순간을 꼽아봤다. 모두가 열광했던 그때의 순간을 다시 떠올려본다. 경기의 무게감, 선수의 인지도, 승리의 의미, 임팩트 등을 고려했다. 순위는 따로 정하지 않았다.

윤형빈 김대환의 카운터·이광희의 어퍼컷·이윤준의 킥 3종세트

가장 정하기 어려운 부문이 최고의 경기(넉아웃 오브 더 이어)였다. 최고의 서브미션 부문보다 상대적으로 후보가 훨씬 많았고, 강렬한 임팩트를 남긴 KO 승부를 두 손에 꼽기 어려울 정도였다. 경기의 무게감과 선수의 인지도를 고려는 하겠지만, 그런 요소가 부족하다고 해서 제외시키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TOP 5를 먼저 뽑았고, TOP 10에 들 만한 승부도 추려봤다.



대중적으로 가장 크게 화제가 된 KO승은 누가 뭐래도 윤형빈의 데뷔전 승리다. 이승윤에 이어 개그맨으로서 두 번째 종합격투기에 도전한 윤형빈은 데뷔전에서 1라운드 49초 만에 화끈한 KO승을 거뒀다. 연예인이라는 신분의 특성도 있지만 경기 전 의도치 않게 갑자기 한일관계가 부각되며 시선이 집중된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윤형빈은 데뷔전을 위해 3개월 이상 운동에 집중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열린 20회 대회에서 볼 수 있었던 김대환의 로드FC 데뷔전 KO승은 다양한 요소가 담겨있다. 해설자의 신분이었던 터라 화제가 됐지만, 그 역시 한 명의 프로파이터였고 승리의 임팩트도 매우 컸다. 깔끔한 카운터 한 방으로 더글라스 코바야시를 실신시켰다. 무엇보다 경기 전날과 당일 UFC 해설을 강행한 채 이룬 결과라 의미가 남달랐다. 김대환은 경기 후 곧바로 중계석에 복귀해 해설을 진행했다. 자신의 대전료는 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故 윤성준 선수의 유가족에게 기부하며 많은 박수를 받았다.



질적으로만 본다면 꼽을 수 있는 KO승은 훨씬 많아진다. 특히 한동안 부진했던 이광희는 올해 로드FC에서 두 경기를 치렀는데, 두 경기 모두 KO승의 임팩트가 컸다. 데뷔전에서 브루노 미란다에게 당한 니킥 KO패, 11월 열린 19회 대회에서는 문기범에게 거둔 TKO승 전부 인상적이었다. 특히 문기범과의 대결은 시종일관 화끈한 난타전으로 펼쳐지다가 끝난 형태의 승부라 경기의 흥미란 부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문기범의 타격에 위기에 몰리기도 했지만 결국 강하게 휘두른 어퍼컷으로 승부의 마침표를 찍으며 크레이지광이 돌아왔음을 알렸다.

공식 영상을 찾을 순 없었지만 김수철과 서두원의 승리도 TOP 5에 들 만하다. 김수철은 2월 열린 14회 대회에서 UFC 출신의 강자 테즈카 모토노부를 맞아 초반부터 강하게 밀어붙인 끝에 강력한 보디블로로 상대를 쓰러트렸다. 자신이 국내 경량급 강자임을 제대로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서두원은 지난해 자신에게 패배를 안겨준 요아킴 한센에게 완벽히 복수했다. 1차전에서 한센을 그로기에 빠트리는 등 선전하다가 체력이 저하되며 서브미션으로 패했던 서두원은 2차전에서 불과 15초 만에 한센을 펀치로 쓰러트리며 패배의 아픔을 두 배로 돌려줬다.



올해 많은 활약을 펼친 이윤준과 자신의 부활을 알린 문제훈의 승리도 포함된다. 이윤준은 올해 4경기를 치러 3경기를 1라운드 KO(TKO)승으로 장식했다. 김원기, 티아고 실바, 이길우를 격침시킨 승리는 TOP 10에 들만큼 빛났다. 김원기는 니킥으로, 실바는 미들킥으로, 이길우는 하이킥으로 꺾으며 다양한 공격력을 과시했다. 무엇보다 최근 현 챔피언 이길우를 꺾으며 자신의 시대가 왔음을 알렸다.



지난해 밴텀급 토너먼트에서 이길우에게 패한 뒤 약 1년간의 공백기를 거친 문제훈은 복귀전에서 티아고 실바에게 패했으나 이후 UFC 출신의 마르코스 비나를 완벽히 제압했다. 초반부터 장기인 타격으로 압박하다가 보디블로로 충격을 입혔으며 왼발 미들킥으로 마무리했다. 여전히 강자임을 입증하는 순간으로, 문제훈의 진가를 파악하기에 충분했다.

송가연 꺾은 타카노의 기무라록. 그리고 미스터 암바의 귀환



올해 가장 크게 이슈가 된 서브미션 승부는 최근 열린 20회 대회에서 송가연에게 첫 패배를 안긴 타무라 사토미의 기무라록이었다. 주짓수 퍼플벨트를 획득한지 약 2년 됐다는 타카노는 스탠딩 타격전에서 송가연의 오른손 펀치를 몇 차례 허용했지만, 테이크다운을 성공시킨 이후부터는 자신의 진가를 제대로 발휘했다. 재빨리 백마운트를 잡더니 일방적인 경기를 펼치던 끝에 결국 기무라록으로 송가연을 제압했다. 인버티드 트라이앵글 그립에 꽁꽁 묶인 송가연은 이어지는 기무라록에 해법을 찾지 못하고 승리를 내줬다. 타카노가 경기 중 시도한 서브미션 기술은 리어네이키드 초크, 기무라록, 스트레이트 암바, 인버티드 트라이앵글 초크까지 4가지나 됐다.



로드FC 데뷔전 이후 2연패를 기록했고, 페더급으로 도전했다가 계체에 실패하며 물의를 빚었던 김창현의 암바도 올해를 빛낸 서브미션으로 손색이 없다. 김창현은 18회에서 치러진 김석모와의 대결에서 초반 김석모의 타격에 주춤했지만 하위 포지션에서 순식간에 트라이앵글 암바를 작렬시키며 항복을 받아냈다. '미스터 암바'는 여전히 살아있었다.

또 공식 영상이 없어 첨부하진 못했지만 UFC 출신의 타무라 이세이에게 로드FC 밴텀급의 높은 수준을 다시 한 번 과시한 김수철의 리어네이키드 초크, 초반 강한 타격을 허용하며 패배 직전까지 몰렸으나 승부를 뒤집은 헤비급 레슬러 심건오의 기무라록, 마찬가지로 두 번의 위기를 넘긴 뒤 결국 상대를 항복시킨 주짓수 블랙벨트 석상준의 암바도 TOP 5에 꼽힐 만큼 퀄리티가 높고 큰 의미가 담겨있었다. 특히 김수철은 올해 UFC 출신의 일본인 파이터 두 명을 1라운드에 제압하며 물오른 기량을 과시했다.



이외에는 영건스에서 끊임없이 피니쉬를 노리던 끝에 권세윤을 제압한 이정영의 암바, 김민우의 친 형으로 로드FC 데뷔전을 승리로 장식한 김종훈의 리버스 암바, 프로복서 출신으로 세 번째 도전에서 종합격투기 첫 승을 신고한 김지연의 리어네이키드 초크도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다.

'이게 바로 남자들의 대결' 다시 봐도 뜨거운 승부

KO승과 서브미션승도 충분히 흥미롭지만, 화끈함이 없는 경기라면 매력이 반감된다. 팬들은 어떤 결과가 나오든 화끈하게 전개되다가 끝난 경기에 열광한다. 같은 KO승이라도 1라운드 초반 순식간에 끝난 KO승보다 치열하게 싸우다 승부가 가려지는 형태의 경기가 흥미롭기 마련이다.



올해 가장 뜨거웠던 승부는 지난 8월 17회에서 펼쳐진 박정교 대 김대성의 대결이다. 당시 경기에서 둘은 모든 것을 쏟아내는 완전연소 타격전을 벌이며 관중들을 열광하게 했다. 1라운드에 다운을 빼앗은 박정교가 그라운드로 들어가지 않은 채 곧바로 김대성을 스탠딩으로 부른 것이 명승부의 서막이었다. 박정교는 이후 김대성의 강한 펀치에 흔들리기도 했지만 3라운드 3분 10초에 승부를 결정지었다.

이광희 대 문기범의 대결은 앞서 최고의 KO승부에도 선정했지만 화끈한 명승부로 꼽히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이광희의 TKO승으로 끝나기 전까지는 엎치락 뒤치락 매우 빠른 속도로 전개되며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이윤준의 첫 메인이벤트, 테라시마 코스케와의 대결도 3라운드가 어떻게 지나간지 모를 만큼 흥미진진한 양상이었으며 안상일 대 전어진의 타격 공방도 볼만 했다. 영상을 첨부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타이틀매치에서도 명승부가 펼쳐졌다. 플라이급 초대 타이틀매치로 치러진 조남진 대 송민종의 대결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팽팽했다. 말 그대로 용호상박이었다. 두 선수 모두 '징글징글했다'고 말하는 이들도 많았다. 또 어느 경기보다 긴장감이 넘쳤던 라이트급 타이틀 결정전, 권아솔 대 쿠메 타카스케의 대결도 올해를 빛낸 승부에 포함된다. 권아솔은 1라운드에 대등한 대결을 펼친 뒤 쿠메에게 테이크다운을 허용하며 밀렸지만 후반 포지션을 역전시킨 뒤 강한 파운딩을 퍼부으며 짜릿한 승리를 맛봤다.

비록 많은 관심은 받지 못했지만 화끈한 경기는 영건스에서 더 많이 펼쳐졌다. 최근 영건스 19에서 정면 대결을 벌인 조영승 대 김지형의 대결을 비롯해 이상현 대 기원빈, 정재일 대 오재성의 경기 등 영건스의 화끈한 승부는 기대치 않고 경기를 본 관중들에게 큰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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