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jpg


'
사랑이 아빠'는 잠시 잊어도 좋다. 한동안 왕성한 방송 활동으로 파이터라는 본연의 직업보다 예능인으로 이름을 알린 추성훈(39·일본명 아키야마 요시히로)이 길고 긴 공백 끝에 UFC 옥타곤에 들어선다. 3일 뒤인 오는 20, 일본에서 열리는 'UFC FIGHT NIGHT 52'가 바로 그 무대다.

 

추성훈이 옥타곤에 다시 들어서기까지는 무려 27개월이나 걸렸으며, 그 휴지기는 2004년 종합격투기에 데뷔한 이후 압도적으로 가장 길다. 2007년 말 사쿠라바 카즈시와의 대결 당시 몸에 크림을 발라 징계를 받았을 때도 쉰 시간은 10개월에 불과했다.

 

20122월 일본에서 열린 'UFC 144'에 출전한 이후 훈련 중 무릎 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방송에 자주 출연할 수 있었던 것은 생각처럼 부상이 잘 회복되지 않았던 부분도 영향을 미쳤다. 방송 출연 이면에 남모를 고충을 안고 있었던 셈이다.

 

그토록 고대하던 복귀전이지만 추성훈은 과거 어떤 경기를 앞뒀을 때보다 부담이 큰 상황에 처했다. 공백이 길었던 것 자체도 부담이지만, 4연패의 극심한 부진을 겪고 있는 만큼 심리적인 압박이 클 것이 분명하다. 은퇴할 때가 됐기에 오래 활동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는 점 역시 이번 경기에 올인하게 만드는 요소다.

 

물론 패한 뒤 은퇴해도 상관은 없지만, 초라한 모습으로 떠나는 것을 원할리 없다. 추성훈에게 중요한 것은 몇 경기를 치르느냐가 아니며, 파이터로서 챔피언을 꿈꾸는 것 역시 먼 얘기가 되어버렸다. 아름다운 마무리가 무엇보다 중요한 상황이다.

 

'JAPANESE SUPERSTAR'의 참혹한 옥타곤 행보


2.jpg

 

2009년 추성훈이 옥타곤에 진출했던 상황을 보면 보통의 아시아 선수들과 차이가 있다. 대부분이 중소단체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UFC에 진출해 밑바닥부터 시작했다면, 추성훈의 시작점은 UFC 미들급의 중간 위치였다. 조금만 선전하면 상위권 진입을 노릴 만했고, 앤더슨 실바의 대항마가 되진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하는 이도 있었다.

 

UFC에 진출하는 대부분의 선수들이 신입사원이라면 추성훈은 경력사원으로 입사한 격이다. 당시 UFC는 추성훈을 'JAPANESE SUPERSTAR'로 소개했었다. K-1 히어로즈와 드림에서 활약하며 쌓은 추성훈의 실력과 인지도를 UFC가 인정한 셈이다. 타 단체에서 유명세를 탄 뒤 UFC에 입성한 알리스타 오브레임, 대니얼 코미에, 닉 디아즈 등의 선수들과 비슷한 경우다.

 

당연히 UFC에 데뷔하는 일반적인 선수에 비해 많은 관심이 쏠렸고 대전료 또한 높았다. 8천달러가 현재 UFC에 데뷔하는 보통 선수의 대전료지만, 당시 추성훈의 기본 대전료는 이보다 4배나 많은 4만달러였다. 참고로 당시 UFC의 최저 대전료는 3천달러였다.

 

허나 그런 주최사의 대우는 추성훈에게 큰 시련으로 다가왔다. 처음부터 실력이 입증된 강자와 맞서야 했고, 특유의 인지도 덕에 계속해서 강자들이 앞에 나타났다. 일본 단체에서 121(2무효)를 기록하며 강자로 이름 알린 그였지만 UFC의 벽은 너무나 높았다.

 

데뷔전 상대는 앨런 벨처. 상위권 선수는 아니었지만 추성훈의 경쟁력을 확인하기엔 매우 적합한 인물이었다. UFC에서 약 3년간 활동하며 53패를 기록 중이었고, 바로 이전 경기에서는 데니스 강을 꺾은 바 있다. UFC 미들급 중견급 선수였다. 추성훈은 예상대로 힘든 싸움을 벌였으나 천신만고 끝에 승리했다.

 

허나 그때 이후 약 5년이 흘렀음에도 추성훈의 승리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데뷔전 승리 뒤 4경기를 치러 전패하는 수모를 겪은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타난 특이한 점은 결과에 따라 적합한 상대가 정해져야 하는데, 추성훈은 갈수록 버거운 선수를 만났다.

 

추성훈이 두 번째 경기에서 크리스 리벤에게 패한 것을 고려하면, 그 다음 경기에선 리벤보다 약하거나 위치 상 아래에 있는 선수와 대결해야 했다. 그러나 다음 상대는 다름 아닌 마이클 비스핑이었고, 그 다음 상대는 비토 벨포트였다(원래 네이트 마쿼트와 격돌할 예정이었지만 일본 지진으로 출전이 취소, 이후 벨포트와 대결이 결정됐다). 갈수록 태산이었다.

 

1승 뒤 3연해. 퇴출이 되도 할 말이 없는 초라한 성적이었다. 그러나 UFC는 퇴출을 면하는 조건으로 웰터급 전향을 제시했고 추성훈이 이를 받아들였다. 웰터급 데뷔전이 생존을 결정할 것으로 보였다. 물론 UFC는 끝까지 추성훈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스트라이크포스 미들급 챔피언 출신으로 UFC 웰터급 타이틀 도전 경험이 있는 제이크 쉴즈를 웰터급 데뷔 상대로 낙점한 것. 추성훈은 선전하고 패했으며, 퇴출되지도 않았다.

 

아미르 사돌라, 압박형 속사포 타격가


3.jpg

 

추성훈이 복귀전에서 맞설 원래 상대는 호주 출신의 카일 노크였다. 그러나 노크가 훈련 중 부상을 입으며 지난 6월 말 상대가 바뀌었다.

 

아미르 사돌라. 미국에서는 TUF 7에서 우승하며 이름을 알렸지만, 국내에선 2010년 김동현과 맞붙었던 상대로 잘 알려져 있다. 추성훈 만큼은 아니지만 그 역시 이번 추성훈과의 대결이 2년 만의 복귀전이다.

 

상대인 사돌라는 2008년 치러진 'TUF 7' 미들급 우승자 출신으로, 웰터급으로 내리며 UFC 본무대에 입성했다. 64패를 기록 중이며 모든 프로 전적을 UFC에서 쌓았다는 것이 특징이다.

 

스트라이커로 구분되는 사돌라는 '원샷 원킬'의 폭발적인 펀치를 내뿜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상대를 압박하는 형태의 공격을 구사한다. 현대 MMA의 추세와는 분명 거리가 있다. 그러나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UFC라는 정글에서 7년째 생존하고 있다는 점은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사돌라 타격의 특징은 무에타이 기술을 종합격투기에 자신만의 스타일로 접목시켰다는 것이다. 특히 무에타이 특유의 딥(프론트킥)을 효과적으로 사용한다. 지금이야 하나의 좋은 공격으로 자리를 잡아, 많은 선수들이 이 기술을 사용하지만 과거엔 상대의 몸을 밀어내며 흐름을 끊고, 거리를 잡기 위해 사용하는 기술에 지나지 않았다. 파괴력이 떨어지고 테이크다운을 허용할 수 있는 위험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돌라는 이미 그때부터 이 기술을 자신을 대표하는 효과적인 공격으로 사용했다. 긴 다리가 정면으로 뻗어나가는 이 킥으로 몸통과 안면을 고루 공략하며 상대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프론트킥 외에도 킥 시도가 많은 편이며 넥 클린치에서 이어지는 니킥, 순간적인 팔꿈치 공격 등 아마추어 무에타이에서 활동하며 섭렵한 기술을 효과적으로 사용한다.

 

스탠딩 타격에 비해 레슬링 실력은 다소 부족한 편이다. 과거 김동현 역시 이런 단점을 정확히 파악, 장기인 테이크다운 실력을 살려 여유 있게 사돌라를 꺾었다. 김동현으로서는 승리함에 있어 매우 좋은 상성의 선수였다.

 

사돌라가 약자는 아니지만 추성훈이 그동안 상대했던 앨런 벨처, 마이클 비스핑, 비토 벨포트 등의 강자들에 비하면 수월한 편이다. 추성훈의 복귀전 상대로 적합하다는 의견이 많다.

 

좋은 본보기 된 김동현의 승리그러나?


4.jpg

 

사돌라를 꺾는 효과적인 방법은 이미 앞에서 김동현이 잘 보여줬다. 사돌라가 원하는 스탠딩 타격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도록 사전에 봉쇄하는 것이다. 당시 김동현의 경기 스타일은 테이크다운 이후 상위포지션에서의 압박이었고, 사돌라에게 스탠딩에서 싸울 넉넉한 시간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 사돌라와 싸우는 당사자는 김동현이 아닌 추성훈이다. 앞에서 아무리 좋은 전략을 보여줬어도, 그 전략이 실행자와 맞아야만 한다. 선수마다 스타일이 다르고, 싸움에 임하는 마음가짐도 다를 수밖에 없기에 누구나 소화할 수 없다.

 

김동현과 추성훈도 그렇다. 출신은 같은 유도가지만 김동현이 종합격투기에서 레슬링에 포커스를 맞춘 그래플러로 변화(현재는 타격에 중점)한 반면 추성훈은 '뼛속까지 타격가'란 말을 들을 정도로 타격을 선호한다. 25년간 유도를 수련한 추성훈이 타격에 적응한 속도나 구사하는 모습은 놀랍기까지 하다.

 

둘의 성향 역시 다르다. 김동현이 승리를 위해 전략에 충실하는 경우라면, 추성훈은 본능적으로 싸운다. 김동현이 이기는 경기에 특화된 선수라고 치면 추성훈은 싸우는 스타일이다. 특히 스탠딩 타격가와 치열한 접전이 벌어질 때 추성훈의 본능이 상승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추성훈이 이전에 맞선 상대들에 비해 사돌라가 수월한 편인 것은 맞다. 그러나 상대적인 것일 뿐, 사돌라는 추성훈에게 충분히 위협적인 존재라고 본다. 특히 경기가 장기전으로 흘러갈수록 추성훈의 승률은 낮아질 전망이다.

 

김동현처럼 사돌라가 알고도 막지 못할 정도의 하단 테이크다운을 구사할 수 있다면 추성훈의 승산이 높아지지만, 추성훈은 레슬링 스타일의 테이크다운에 능한 편이 아니다. 유도식 메치기나 다리를 활용한 변칙 테이크다운을 종종 사용하며, 무엇보다 추성훈이 경기를 풀어가는 중심 영역은 스탠딩이다.

 

두 선수가 구사하는 타격의 특징은 각각 다르지만, 누구의 수준이 우위에 있다고 보기 애매하다. 사돌라는 연타 위주의 끊임없는 압박, 추성훈은 강하고 정석적인 펀치가 장점이다.

 

추성훈에게 가장 우려되는 상황은 경기가 장기전으로 흘러갔을 때다. 사돌라는 3라운드 내내 일정한 공격과 방어 능력을 유지할 정도로 체력이 좋고, 효과적인 거리 사용으로 쉽게 KO되지도 않는다. 상대를 KO시키는 결정력이 부족한 단점이 있으나 KO가 승리의 전부는 될 수 없다. 반면 옥타곤에서 드러난 추성훈의 가장 큰 단점은 체력이었으며, 한국 나이로 40세가 됐고, 긴 공백까지 보낸 만큼 체력이 더 좋아지진 않았을 것이라 본다.

 

또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사돌라의 서브미션 능력이다. 공격보단 포지션 유지에 치중된 김동현의 안정된 그래플링 압박에 고전한 바 있으나 그라운드 실력도 수준급이다. 후반 추성훈의 체력과 집중력이 떨어질 경우 승부를 결정지을 무기가 될 여지가 있다. 과거 크리스 리벤과의 대결이 조심스럽게 떠오르기도 한다.

제품 랭킹 TOP 0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