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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심(不動心: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란 세 글자가 일본 전역을 가득 메웠다.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은 두 말할 나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목청껏 소리쳤다. 자타가 공인하는 탈 아시아급 파이터가 프로레슬링 부츠를 벗었다. 그렇다, 이제부터는 곤도 유키(39, 일본) 타임이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이 선수에 의해 K-1 최강자 세미 슐츠가 무릎을 꿇었고, 전성기를 구가하던 프랭크 샴락도 머리에 킥을 맞고 링 밖으로 나가떨어졌다. 당대 최강 타격가 반더레이 실바, 댄 헨더슨, 이고르 보브찬친과의 난타전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조쉬 바넷과도 정면승부를 벌였다.

올드팬들에게 곤도 유키는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 ‘폼은 일시적이나, 클래스는 영원하다(Form is temporary, Class is permanent)’는 말이 있다. 1996년부터 쉬지 않고 달려온, 95전 째 경기를 앞둔 곤도 유키에게 어울리는 표현이다.


고등학교 시절 소림사 권법을 배우며 무술을 익힌 곤도 유키는 프로레슬러 후나키 마사카츠의 영향으로 1996년 판크라스에 입성했다. 신인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의 실력을 갖춘 그는 패배를 모르고 승리를 거둔 끝에 ‘네오블러드 토너먼트’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신일본 프로레슬링 출신 후나키 마사카츠와 스즈키 미노루가 1993년 5월 설립한 판크라스는 200번이 넘는 정규 이벤트와 서브 이벤트들을 지속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고대 종합 격투기의 원형인 판크라티움을 어원으로 하는 PANCRASE(판크라스)는 브랜드 공식 로고에 Hybrid Wrestling (하이브리드 레슬링)이라는 단어가 적혀있다. 초창기에는 종합격투기보단 프로레슬링 경기가 주를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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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 판크라스는 독특했다. ‘팜 스트라이크’라고 불리는 독특한 안면 타격 방식과 서브미션 규칙이 존재했기 때문. ‘팜 스트라이크’는 말 그대로 상대방의 안면을 주먹이 아닌 손바닥으로 가격하는 규칙이다. 또한 레슬링 부츠를 신고 나와 관중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프로 레슬링을 모태로 하였기 때문에 오픈핑거 글러브를 착용하지 않고 경기를 치렀다. 맨주먹으로 펼쳐지는 실전 이종 격투기의 특성 탓에 안면을 정권으로 가격하는 방식은 많은 부담감을 가져왔고, 자연스럽게 팜 스트라이크 규칙이 성립됐다.

팜 스트라이크 규칙과 더불어 대표적인 기술은 서브미션 탈출 규칙이다. 이 규칙은 서브미션 기술에 걸린 선수가 사각 링의 링 로프를 잡으면 서브미션 기술을 시도한 선수는 바로 기술을 풀어야한다는 규칙이다.

이는 프로레슬링 경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서브미션 탈출 방법을 그대로 도입한 것으로 현대 종합격투기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일본 종합격투기의 선구자적 역할을 한 판크라스의 뿌리가 프로 레슬링에 있음을 나타내는 부분이다. 21년차인 판크라스는 그동안 곤도 유키, 미노와맨 등의 일본인 파이터 외에도 조쉬 바넷, 네이트 마쿼트, 세미 슐츠, 프랭크 샴락, 켄 샴락, 바스 루텐, 가이 메츠거 등을 배출해냈다.

스매쉬의 대표 이사였던 사카이 마사카즈는 2012년 5월 31일 판크라스의 매니지먼트 컴퍼니인 돈키호테로부터 판크라스의 권리를 이임 받아 흡수합병하며 판크라스의 새로운 대표가 됐다.


6승 1무를 기록하던 곤도 유키는 당시 전성기를 구가하던 프랭크 샴락을 하이킥으로 KO시켰다. 체력이 소진된 샴락은 링· 밖으로 나가떨어지는 수모를 겪었다.

이후 곤도 유키는 가이 메츠거, 후나키 마사카츠, 제이슨 데루시아에게 3연패를 기록했지만 가이 메츠거와 후나키 마사카츠에 복수, 김종왕과 세미 슐츠 등을 꺾으며 6연승을 질주했다.

판크라스의 대들보로 자리매김한 곤도 유키는 3대 라이트헤비급 챔피언, 9대 미들급 챔피언, 5대와 8패 무차별급 챔피언을 역임한 바 있다.

곤도 유키의 매력은 ‘화끈함’과 ‘겸손함’이다. 그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타격 센스와 파워를 갖고 있다. 그래플링에 능하지만 스트레이트와 훅, 어퍼컷을 가미한 펀치와 기습적인 플라잉 니킥 또한 위력적이다. 서양 파이터에 비해 작은 체구를 지녔지만 결코 백스텝을 밟는 일이 없었다.

정상에 도달했음에도 그는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 경기 전 반드시 명상의 시간을 갖는 그는 ‘부동심’을 바탕으로 냉정한 타격을 퍼붓는 것에 능하다.

2000년 실력을 인정받은 곤도 유키는 UFC에 진출했다. 데뷔전에서 알렉산드레 단타스를 제압한 그는 곧바로 티토 오티즈와 라이트헤비급 타이틀전을 벌였으나 1분 52초 만에 넥크랭크로 패하고 말았다.

이후에도 그는 판크라스, UFC, 딥 등에서 활약하며 프라이드 진출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곤도 유키는 상대는 물론 체급조차도 가리지 않으며 무차별급 경기를 치렀다.

아시아의 ‘댄 헨더슨’ 같은 느낌의 곤도 유키는 2003년 8월 캐치레슬링의 선구자 조쉬 바넷과 일전을 벌였다. 그는 헤비급인 바넷과의 정면승부를 피하지 않았다. 톱 포지션을 허용했으나 절대 포기하지 않는 근성을 보여줬고, 끝내 스탠딩 상황으로 경기를 전개시켜 관중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이것이 2003년까지의 곤도 유키였다.


곤도 유키가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프라이드에서 맞붙은 반더레이 실바戰 때부터다. ‘일본인 킬러’ 실바는 부메랑 훅을 바탕으로 한 스탠딩 타격전이 일품이었다.

많은 이들은 곤도 유키가 제 아무리 독특한 스타일이고 타격이 뛰어나도 실바에겐 어려울 것이라 예상했다. 비록 곤도 유키는 실바에게 KO패했지만 팬들의 큰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후 프라이드에서 댄 헨더슨, 이고르 보브찬친, 나카무라 카즈히로에게 판정패했지만 그 누구와 타격전을 섞어도 밀리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했다.

곤도 유키는 한계를 느끼고 웰터급으로 전향했지만 프라이드 무사도에서 필 바로니, 고노 아키히로에게 패해 입지가 좁아졌다.

2007년 프라이드가 붕괴됐지만 곤도 유키의 파이터 인생은 끝나지 않았다. 그는 절대 쉬는 법이 없다. 매년 적어도 2~3경기를 꾸준히 치러왔다. 판크라스 미들급 챔피언에 올랐고, 센고쿠에서도 꾸준히 활동하며 전적을 쌓아나갔다.


올해 2연승을 기록 중인 판크라스 랭킹 4위 곤도 유키는 오는 10일 일본 도쿄 디퍼 아리아케에서 열리는 ‘판크라스 260’에 출전해 5위 이시카와 에이지(34, 일본)와 웰터급매치를 벌인다.

둘은 이미 두 차례 맞붙은 바 있다. 2001년 2월 ‘판크라스- 프루프 1’에서 곤도 유키가 3라운드 닥터스톱 TKO승을 거뒀고, 2002년 2월 ‘판크라스- 스피릿 2’에선 곤도 유키가 2라운드 종료 만장일치 판정승을 따냈다. 두 선수는 ‘판크라스 260’ 9경기에서 5분 3라운드 경기를 치른다.

한편 이날 대회에서는 7대 웰터급 타이틀전과 20회 네오블러드 토너먼트 라이트급과 웰터급 결승전도 펼쳐진다.

총 15경기로 진행되는 ‘판크라스 260’ 11경기에서 1위 무라야마 아키히로(34, 일본)와 7위 야마시타 고타(24, 일본)가 웰터급 타이틀전을 벌인다.

판크라스 사카이 대표는 세계 표준에 맞춘 세계적인 무대로 발전시킬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새로운 대표의 변혁 의사 표명 이후 판크라스는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2014년 판크라스 258번째 이벤트에서는 사각링 대신 케이지가 경기 무대로 정규 이벤트에서 처음으로 사용됐다. 프로 레슬링을 뿌리로 한 판크라스가 사각링 대신 케이지를 사용한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

더 이상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구식의 진행방식보다는 현대 종합격투기의 추세를 따라가겠다는 판크라스의 새로운 의지가 돋보였다.

판크라스는 현재 미국 메이저 종합격투기 단체 WSOF(World Series Of Fighting)과 제휴 협약을 맺어 미국 시장에도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판크라스가 사용하는 케이지는 WSOF의 정식 경기 무대인 십각형 케이지다.

또한 대한민국 종합격투기 단체 로드FC와도 아시아 종합격투기 협력 관계라는 명목으로 많은 부분에서 도움을 주고받고 있다.

종합격투기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일본의 에이스 곤도 유키가 에이지를 꺾고 다시금 정상을 향해 질주할 수 있을지, 거칠 것 없이 질주하고 있는 부동심 파이터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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