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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단 한 번도 약물을 쓴 적이 없어. 맹세코!"


- (上)편에서 계속

또한 그녀는 집안의 분위기에 대해서도 덧붙였다.
 
“이 집에서는 모든 게 경쟁이예요. 마이클은 지는 걸 싫어해요. 그는 그의 아들한테도 지는 걸 용납하지 못하죠.”
 
이 태도가 바로 마이클 비스핑이 UFC라는 정글에서 미들급 파이터 톱 10 중 하나에 오르게 한 원동력이었다.
 
비스핑은 리얼리티 쇼 ‘디 얼티밋 파이터(TUF)’의 일원으로 TV 스크린에 데뷔했다. 방송은 그를 사랑했으며, 그는 매번 경기를 KO로 장식하며 승리해나갔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비스핑은 이제는 그의 상징과도 같아진 ‘나쁜 놈’ 페르소나를 아직 꺼내 보이지 않았다. 그가 본격적으로 악당의 길을 걸은 것은 UFC 75 런던 대회에서 맷 해밀을 논란의 스플릿 판정승으로 꺾으면서부터였다. 모두가 해밀이 승리를 도둑맞았다고 생각했음에도 경기 후의 마이클은 실로 뻔뻔했다.
 
“(설마) 3라운드까지 가기를 바랐던 거야? 당연히 내가 판정에서 이겼는데?”
 
“여기서 X발 꺼져버려. 네 얼굴에 그 미소 좀 지우라고.”
 
이 나쁜 놈 기질은 마이클을 조금은 나쁜 의미의 인기남으로 만들어주었다. 이 때문일까. 그 누구도 그가 빅네임들을 깨부수고 35경기 중 28번을 승리했다는 것을 기억하지는 않았다. 대신 대부분은 추잡한 TRT의 힘을 등에 업은 타격에 나가떨어지는 그를 보면서 즐거워할 뿐이었다. 첫 번째는 댄 핸더슨에 의한 것이었고, 그리고 다른 한 번은 비토 벨포트에 의한 것이었다. 이 유쾌하지 못한 경험들은 마이클을 MMA에서 반-PED(경기능력 향상약물)론의 화신으로 만들어주었다.
 
“난 내 평생 단 한 번도 경기능력 향상약물을 사용한 적이 없어, 맹세코! 그건 유행 같은 게 아니라는 걸 알아. 그리고 그(PED)에 대해 알면 알수록 난 사람들에 대한 혐오도 더욱 더 커지더군.”
 
“그건 역겨우면서도 누구나 쓰고 있는 거지. 난 그 놈들이 어떻게 밤에 발 뻗고 자는지 모르겠어. 걔네는 걔네 벨트를 자랑하고 다니기도 하고, 자기네 성공을 과시하기도 해. 좋아, 근데 그 놈들은 스스로가 쪽팔린 줄 알아야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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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좋아해달라고 내가 애원이라도 할 것 같아?"


비스핑은 팬들에게 보여주는 이미지의 낙폭이 꽤 큰 선수다. 링에 오를 때 보이는 화려한 행적과 달리, 그는 가정적인 - 그가 ‘보스’라고 부르는 그의 아내와 아이들에게 헌신하는 - 남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가 하면 비스핑은 상대를 무자비하게 때려눕히며 그의 별명 ‘더 카운트’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한다. 한편 MMA 베테랑 켄달 그로브는 팬들이 아직 잘 모르는 그의 모습에 대해 증언한다. 든든한 동료로서의 모습 말이다.
 
“어느 날 그가 나한테 와서 말하더라고. ‘어이, 도움이 필요하면 그냥 나한테 말해. 내가 갚아줄 테니까.’ (그때) 난 슬럼프에 허우적대고 있었고 UFC에서도 나가야 할 상황이었어.”
 
“난 파이트를 가지려 애쓰고 있었어. (그때) 그는 ‘이봐, 힘 내라고. 내가 경비를 낼게. 훈련비도 내고. 내가 다 낼게.’ 그런 쿨한 사람은 처음 봤어. 그 도움은 내 커리어를 다시 살려냈지... 그는 내 모든 상승과 추락 옆에서 날 도와줬어. 그러니 난 커리어 전체를 그 녀석한테 빚진 거야.
 
그러나 비스핑은 여전히 그의 ‘나쁜 놈’ 페르소나를 아낀다. 그리고 그의 아내 레베카는 마이클의 이런 ‘튀는 짓’이 연기만은 아니라고 증언한다.
 
“말 그대로야.”
 
“물론, 미국에서는 항상 배드가이 파이팅을 펼치고는 하지. 항상 야유를 이끌어내면서 말야. 내가 가끔은 그걸 즐겼던가...? 내가 즐긴 적은 그리 많진 않은 것 같네. 근데 너가 내게 야유를 할 거라면, 그냥 뒈져버려. 너가 야유할 거리를 줄게. 난 제자리에 앉아서 날 좋아해달라고 부탁하지 않아. 크리스 와이드먼처럼 무릎 꿇고 내 팬이 되어달라고 애원하지 않는다고. 너가 날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냥 엿이나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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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날 움직이게 만들어. 그게 다야."


이 모든 이미지 논란의 이면에는 이 스포츠에 대한 열정과 열의를 증명하며, 자신의 가치를 믿고 또 믿는 한 남자가 있었다. 마이클은 KO 패 과정에서 링에서 영영 떠나야 할 정도로 심각한 부상을 입었지만, 그는 끝내 돌아왔다. 영구 망막 분리 선고는 한 해 동안 통으로 그를 이 바닥에 돌아오지 못하게 만들었지만, 그는 그것이 영원한 이별을 뜻하지 않는다는 데에 감사한다.
 
모든 사람이 같은 방향의 열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마이클이 UFC에 얼마나 미쳐있는지 알고 있다면 그가 프랭키 페레즈(UFC 첫 승 후 곧바로 은퇴를 선언)의 은퇴에 대해 날카롭게 반응한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그가 UFC 누군가를 때려눕혀서 첫 승을 거두고 그대로 은퇴했다면 난 그에게 이 스포츠에 남아있을 불알(= 남자다운 용기, 깡)도 없다고 말했을 거야. 왜냐면 이건 터프한 스포츠거든.”
 
“그는 그의 몸에 이상이 있어서 아프다고 하더라고. 증상을 그렇게 느꼈다네. 그래, 뭐 어쩔 거야? 이 스포츠는 모두에게 맞춰주지 않아... 진짜 남자답게 좀 굴라고.”
 
결국, 이 전사의 심장은 한 사람을 위대한 UFC 파이터로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그 곳엔 강해지기 위한 험난한 여정이 있었으며, 또한 그것은 링에서의 자부심과 즐거움을 위한 이 스포츠에 대한 헌신이었다. 이것은 어떤 성취감을 느끼게 할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더 카운트’ 그 자신보다 이 감정을 더 잘 알 수는 없을 것이다.
 
“이건 몇 년에 걸쳐 수많은 문제들에 나를 가둔 그런 거야. 하지만 언제나 내가 끝내주게 잘한 어떤 것이기도 하지. 내가 어린 애였고 다른 학교의 누군가가 날 눕힐 수 있다고 생각할 때면, 나는 뭐, ‘좋아, 준비해 봐. 나가서 싸울 어디 들판으로 가자.’는 식이었지.
 
“이건 항상 내가 즐겼던 어떤 것이고 항상 내 자신이 자랑스럽게 만드는 어떤 것이었어. UFC가 나를 오스트레일리아나 마카오나 아니면 다른 새로운 지역으로 데려가고 나는 메인이벤트에서 세계 각지에서 온 다른 X발 종마들이랑 싸우는 것보다 나를 흥분시키는 건 아무것도 없었어. 그게 날 움직이고 내가 훈련을 하고 싶게 했고.”
 




* 원문출처 - 셔독
* 본 기사는 필자의 의역과 편집을 거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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