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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항상 내 목에 칩을 걸었어"


MMA 팬이라면 마이클 비스핑이라는 이름은 모두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오랜 기간 영국의 슈퍼스타로, 또 옥타곤의 터줏대감으로 군림해온 훌륭한 파이터라고 말이다. 또한, 그는 타이틀전 길목에서 항상 무너지는 좌절로 얼룩진 커리어로도 유명하다. 비스핑처럼 10년의 세월 동안 최정상권에서 경쟁했음에도 불구하고 챔피언과 만나지는 못한 파이터는 사실상 전무후무하다.

 

그리고 이 빛과 그림자 사이에는 끈기라는 절묘한 교점이 있었다. 우수하지만 결코 그 한계를 넘지 못하는, 어찌 본다면 가장 포기하기 좋은 조건에도 불구하고 그는 포기하기는커녕 불평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는 그 자신, 그의 아름다운 가족, 캘리포니아의 새 집, 안정된 미래, 그리고 은퇴 후의 옵션을 꾸미는 것까지, 아메리칸 드림의 성공사례로 이름을 새긴 지금도 유효한 말이다. 그는 여전히 은퇴와 거리가 멀다. 이것은 그가 벨트를 거머쥘 수 있을지 아직도 지켜보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가 처음으로 주먹맛을 본 것은 꽤나 어린 시절부터였다. 마이클보다 두 살이 많았던 두 형들은 난폭했고, 이 사고뭉치들은 가장 어렸던 비스핑을 대신해 복수를 해주곤 했다. 하지만 그들도 결국 마이클을 선량하게(?) 자라도록 지켜주지는 못했다.

 

돌아보면 난 내 목에 항상 칩을 걸었던 것 같아.”

 

난 여기저기서 조금 심심했지.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난 어린 나이에 격투기에 홀렸던 것 같아.”

 

럭비와 카누에도 손을 대보았지만 비스핑이 그의 진정한 열정을 찾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5살이 되었을 때, 마이클은 넉 다운 스포츠 부도대회에서 경기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이는 오늘날의 영국 MMA의 전신 격인 종목이다.

 

그건 스웨덴, 프랑스, 덴마크, 영국... 온 유럽에서 온 놈들이 참가하는 국제 토너먼트였어. 하룻밤에 네 번의 싸움이 있었지. 난 그걸 내가 15살 때 시작했어. 진짜 고집불통의 꼬맹이였을 때 말야. 난 그 중 대부분은 이겼지.”

 

그땐 이게 내가 커리어를 쌓아갈 뭔가라고 생각하진 않았어. 그건 그냥 취미였거든. 난 선천적으로 내재된 전투적인 성향이 있었어. 난 항상 좋은 싸움을 즐겼지. 어쩌겠어? 어떤 사람들은 좀 다르게 해낼 줄 알고, 난 항상 거기(파이트)에 재능이 있었던 거지. 그리고 항상 날 시험하는 걸 즐겼던 거고.”

 

그의 배드 보이스타일은 이러한 배경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의 맞수와 악수하길 거부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가 가슴에 들어오는 프론트 킥에 활짝 열려있는 것까지 말이다.

 

우린 경례해. 심판이 파이트라고 외치지. 그럼 된 거야. 이제 싸움이라고.”

 

내가 더 어렸을 땐 항상 아주 공격적이었어. 난 꼬맹이 시절부터 수많은 폭력에 둘러싸여 살았지. (싸움의)구역에 있었던 거야. 우리가 경례할 때면, 심판이 외치지. ‘파이트!’ 난 악수하겠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더군.”

 

가정폭력에 대해 어렵사리 설명하는 그를 보고 있자면, 비스핑이 그의 직업에 대해 그리 자랑스러워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아주 어리고 여린 시절에 이미 파이터가 만들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난 너무 깊이 들어가고 싶지 않아. 내 가족은 물론 아주 사랑스러운 가족이었어. - 내 부모님, 난 그분들을 끔찍이 사랑해 - 하지만 우리 집안에는 많은 폭력이 있었어.”

 

믿어줘... 이건 다들 아는 집안 사정일 뿐이야. 많은 폭력이 있었고, 그건 내가 말했던 것보다도 훨씬 많았어. (그렇지만) 난 내 가족을 버스 아래로 던지고 싶지 않아(책임을 묻고 싶지 않아). 난 아주 많은 것을 봤고 또 굳이 마주하지 않아도 되는 그 여러 일에 휘말렸지. 하지만 그 모든 게 지금의 나를 만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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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넌 떼돈을 벌게 될거야"


파이터들에게 있어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요인으로는 코치를 꼽을 수 있다. 최고의 선수들은 으레 미래를 제시하고 투지를 불어넣어주는 훌륭한 코치가 옆에 있곤 한데, 마이클에게는 그런 사람이 바로 폴 로이드 데이비스였다.

 

그는 내 머리에 비전을 집어넣고는 마이클, 너는 세게 최고의 파이터가 될 거야. 넌 떼돈을 벌게 될 거야. 넌 영화를 찍게 될 거야. TV에 나오게 될 거야.’라고 말했어.”

 

, 예수님, 난 질 이유가 없어요.’라고 생각했지. 그렇게 되려고 훈련했고. 그가 말한 건 모두 현실이 됐어. 진짜로 현실이 됐다고. 이건 너무나 거대한 목표야. 그는 () 끌어올리기 위해 여기에 있어. 그가 이루어질 거라고 말한 것의 절반만 이루어진다면 난 행복해질 거야.’라고 생각하곤 했어. , 근데 전부 현실이 됐지. 영화를 찍고, TV에 나오고... 난 영원히 톱 10에 들 거야. 내 머리에 그런 비전을 넣어준 데에 감사해.”

 

옥타곤에 도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이클은 16살의 나이에 학교를 자퇴하고 UFC 입성 전까지의 커리어 동안 갖가지 일을 다 했다. 이 시기의 런던에는 타일 업자, 미장이, 도축업자, 우체부, 분쇄 업자, 방문 세일즈맨, 가구 배치원 비스핑의 손때가 묻지 않은 곳이 없었다. 물론 그중에서 UFC 파이터가 되는 것, 격투 스포츠에서 활약하는 것보다 더 그를 자극한 것은 당연히 없었다.

 

난 내 학업에 온 신경을 쏟았던 적이 정말 단 한 번도 없어. 난 절대 대학에 갈 일이 없었지. 잠깐 하긴 했지만 난 정말 빨리 그만 뒀고. 16살짜리가 가망 없이 영국 북쪽에, 지금 여기의 중심의 조그만 도시에서 일했다고. 그건 정말 어려운 거야.”

 

물론, 그때 난 쉴 자격 같은 건 없었지. 무슨 생각이 들어? 시궁창 바닥의 직업을 가진 거야. 그런 거지. 난 그 모든 걸 했어. 하늘 아래 있는 모든 것을 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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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족에게 최고의 삶을 가져다 주고 싶어"


이 시기에 마이클은 지금의 그의 아내, 레베카를 만난다. 그녀는 격투기 스포츠 경기에서 부딪히고 싶어 하는 그의 욕망에 협조적이었고, 비스핑은 가족이 늘어날 때 그의 파이팅 커리어를 잠시 접어두며 충실한 아빠라는 것을 증명했다.

 

확실히, 우리가 진짜 빨리 아이들을 가지기는 했어. 계획된 건 아니었는데, 그래도 생기더라고. 싸움 같은 건 뒤로 밀어두고 돈 벌어서 가족한테 줄 수는 있는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려고 노력을 했어.”

 

한동안 그렇게 했는데, 내 삶에 커다란 공허감이 있더라고. 내가 해낼 수 있는 걸 하지 못하는 것만 같았지. 난 항상 야망을 품고 있었어. 항상 빡세게 일하고 내 가족에게 최고의 삶을 가져다주고 싶었고.”

 

그냥 나 하나였다면... 어쩌면 그게 그렇게 절박하진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아. 난 정말 내 아이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을 가져다주고 싶었어.”

 

내가 이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길은 내가 싸워나가는 거였어. 난 내가 작은 꼬맹이였을 때부터 항상 파이터였어. 그리고 항상 그걸 엄청나게 잘했고. 난 이 길에 내 모든 에너지와 노력을 쏟아 붇기 시작했어.”

 

비스핑의 그녀, 레베카는 말한다.

 

남편으로서의 마이클은 헌신적인 남자였어요.”

 

그리고 그가 삶에서 원하는 모든 것은 저, 그의 아내, 행복해지는 것을 위한 것이었어요. 그가 하는 모든 것은 그의 아이들을 위한 것이었죠. 칼럼(Callum, 스코틀랜드의 왕. 여자를 여왕처럼 느끼게 했다고 한다. 여기서는 여자에게 극진한 남자를 뜻하는 관용어)도 정말 마이클을 우러러볼 거예요. 그는 보통(의 집안)이 되는 데 정말 많은 것을 쏟고 있어요."

 

- (下) 편에서 계속





*원문출처 - 셔독

* 본 기사는 필자의 의역과 편집을 거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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