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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짐] 종합격투기 업계를 대표하는 전문 매체중 하나인 'MMA 정키'의 2015 년 11월 29일(현지시간) 헤드라인 중에는 '기이한 도박 배당률과 승부조작의 공포(On strange betting odds and fears of a fix)'라는 것이 있었다. 논쟁 형식으로 진행되는 주간 연재기사(Traiding shots)에 붙은 제목이었는데, 돌아보니 이것이 지난 18일 야간에 국내 격투계를 덮친 승부조작 사태의 전조였다.

기사에서 칼럼니스트 벤 포크스와 전직 UFC파이터 대니 다운스가 공방을 주고받은 주제는 A 선수가 UFC 서울에서 B 선수와 대전하던 당시 나타났던 도박 배당률의 비정상적인 움직이었다.

일반적으로 베팅 사이트들은 도박 항목의 시초 배당률을 자의적으로 결정한다. 이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들을 '오즈메이커'라고 하,며 이들이 시초배당률을 제시한 후 도박꾼들의 베팅이 이루어지는 방향성에 따라 배당률은 등락을 거듭하게 된다. 이를 A 선수와 B 선수의 경우를 통해 살펴보면, 두 선수에 대한 오즈메이커들의 시초 배당률 평균값은 A 선수가 1.55 가량이었고, B 선수가 2.4 정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오즈메이커는 A 선수의 승률을 64% 정도로 본 셈이다. 2015년 11월 22일 15시경에 시초배당률이 공개되었다. 

시초배당률이 제시되고 배팅이 시작된 지 12분 만에 A 선수의 배당률은 1.48로 하락했다. 도박꾼들은 A 선수의 승에 1.55배를 준다면 배팅할 만 하다고 인식하면서A 선수의 승에 다수가 몰렸고, 그 결과로 시간이 지나면서 배당률이 하락하게 되는 것이다. 배당률의 하락이란 예상승률의 상승과 같은 의미로 이 무렵에는 도박꾼들이 오즈메이커보다 A 선수의 승률을 약 3% 더 높게 보고 있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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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직전 A선수의 배당률 변화 추이와 B선수의 배당률 변화 추이 

23일 17시경, 배당률은 시초 상태로 돌아왔다. 이유는 그 사이에 도박꾼들이 B 선수의 승에 배팅 많이 했기 때문이다. 25일 19시 경 A 선수의 배당률은 1.62 (예상 승률 61.5%)을 마크했다. 경기까지 약 48시간이 남은 26일 04시경 배당률은 1.67 (예상승률 59.8%) 26일 정오에 1.7 (58%)를 기록했다. 여기까지는 전혀 특별할 것이 없는 전개였다. 

그러나 26일 자정, 12시간 만에 배당률이1.88(53%)로 급등했다. 22일부터 26일 낮까지 4일간 배당률이 0.22 상승(예상승률6%하락)한 것에 비해 12시간 만에 배당률 0.18 (예상승률 5%하락)이 올랐다.

27일 아침 7시 1.93 (51.7%), 9시 30분 1.99 (50.3%)로 다시 상승흐름이 시작되더니 오후 5시경에는 2.33 (43%)을 찍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정상범주로 볼 수 있는 한계였다.

그리고 오후 7시, 배당률은 무려 4.03으로 수직 상승했다. 예상승률은 약 25%. 불과 두 시간 만에 5일간 기록된 오름세만큼 폭등을 기록해 총 상승분을 곱절로 만들어버린 셈이다. 이 구간의 급격한 움직임이 이번 사태의 뇌관이다. 4.03이 피크였고 이후 3.6 (약 27%) 까지 내려간 상태에서 시작된 경기는 A 선수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27일 오후 5~7시 사이, 즉 한국시간으로 오전 8~10시 경 투입된 자금의 주인, 즉 B 선수에게 져주는 대가로 1억을 건넸다는 사람은 경기가 끝나고 A 선수의 손이 올라갈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누군가에게 분노하고 누군가를 원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모든 문제의 발단은 본인 자신이었다는 걸 알아야 한다. 

27일 오후 5시에서 7시 사이의 폭등구간은 경기가 시작되기 약 8-9시간 전이었다. 이 특수한 동향은 현지 매체의 이목을 끌었고 이를 감지한 UFC는 A 선수의 소속 팀에 승부조작 모의가 있을지 모르니 각별히 유의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A 선수의 판정승으로 결론이 지어지면서 표면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었고, 사태는 수면아래로 가라앉았다. 

MMA 정키의 칼럼니스트 벤 포크스는 앞서 소개한 기사에서 넘버링 대회와 폭스 실황중계 이벤트 보다 규모가 작은 UFN에서, 게다가 메인 카드도 아닌 중심권 외부의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그렇게 대규모의 자금이 경기 시작 직전에 몰렸는지에 대해 의심을 지울 길이 없다고 강조했다. 비록 결과가 승부조작이 아니었던 것을 시사하고 있지만, 상황의 발단과 전개를 거론하며 현재 UFC가 안고있는 승부조작에 대한 취약점을 지적했다. 스타 파이터가 아닌 선수들의 경우 대전료 수입이 너무 적어 유혹에 취약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라는 것.

대니 다운스는 배당률의 급변동을 승부조작을 위한 시도로 보기 힘든 이유를 거론했다. 대개의 경우 배당률의 차이가 큰 경기가 아니라면 수익을 내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며 져주기 시합을 하는 대가로 두둑한 대가를 선지급 받았다 할지라도, 선수의 자존심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져주는 시합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면서 펄프 픽션의 버치 쿨리지(부르스 윌리스)의 케이스를 예로 들었다. 

포크스는 버치 쿨리지가 영화에서 어떤 과정을 통해 범죄 조직의 돈을 받고 져주기 경기를 할 결심을 한 것인지를 잘 살펴봐야 한다고 받아쳤다. 은퇴가 머지않았지만 경기장을 떠날 경제적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선수들, 수많은 쿨리지들이 모두 범죄의 유혹에 취약할 수 밖에 없으며 가장 긍정적인 해법이 선수들에게 조금 더 나누어 주는 것임을 재차 강조했다.

선수 출신인 다운스는 당연히 포크스의 주장에 동의하고 감사하지만, 그래도 선수들을 잠재적 승부조작 범죄자 정도로 취급하는 것에는 강한 반감을 드러내었다. 그는 선수 개개인의 책임감과 자부심을 믿는다는 것 만으로 방지될만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UFC보다 급여 수준이 훨씬 높은 메이저 스포츠에서도 구체적인 해법이 없음을 거론했다.

그리고,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에 비해 월가의 초고소득자들이 오히려 탐욕에 미쳐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지 않느냐'며 수백만 달러의 연봉을 받는 메이저 종목의 선수들은 승부조작에 가담할 리가 없고, 8000달러의 대전료를 받는 UFC 신인들은 유혹에 견디지 못할 거라는 관점은 옳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대담은 마무리 되었다.1년 6개월 전의 기사였지만 오늘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벤 포크스의 추론은 정곡을 관통했다. 선수생활의 황혼기를 눈앞에 둔 A 선수는 유혹을 이기지 못했다.

종합 격투기 선수생활을 하면서 자기 앞가림을 한다는 건 무척 어려운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어떤 종목도 궁극적으로는 마찬가지이겠지만, 이 스포츠는 명칭만큼이나 다양한 것을 요구한다. 매우 다양하고 서로 배타적인 구석도 있는 투기종목들을 교차 수련해야 하고, 각각의 스킬들이 이어지는 간극을 최소화 시킬 수 있어야 하며, 자신의 경기력을 최적화시키기 위한 연구와 실험을 반복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부상과 고통을 당하는 건 당연한 일일 뿐이며 시간은 언제나 부족하다.

이 시대 종합격투기의 정점에서 연간 대전료와 PPV보너스만으로 500억을 쓸어 담는 코너 맥그레거의 헤드코치 존 카바나는 챔피언이 되는 간단한 방법에 대해 “깨어 있는 모든 시간을 챔피언이 되기 위한 일에만 사용하는 것”이라 논했다. 부유한 집안의 자제이며 헌신적인 파트너까지 함께였던 맥그레거는 잠자는 시간까지도 챔피언이 되는 꿈만 꾸었다고 한다. 

그러나 국내의 파이터들은 대부분 생존을 위해 시간과 에너지의 상당량을 희생해야 한다. 어떻게든 헤쳐나가려 하지만 경쟁의 레벨이 높아지는 속도를 따라잡을 만큼 마음껏 성장할 환경이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UFC에 진출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체급대 탑 클래스의 경쟁에 참여하지 못한다면 여느 선수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뭔가를 손에 쥐기 어렵다. 우리나라에 종합격투기로 겨우 입신을 했노라고 평가 받을 선수는 아직 세 명 뿐이다. 절대다수의 한국인 파이터들은 노장이 되고 사라져가는 운명을 피하지 못한다. 어느 순간 멀어져 가는 챔피언의 꿈이 상처로 남았음을 알게 된 후, 가끔씩 찾아오는 고통에 시달리다 보면 누구든 유혹 앞에 흔들리는 게 자연스럽다. 같은 상황에서 필자가 A 선수였다면 나 역시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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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운스의 관점도 틀린 것이 아니었다. A 선수는 2014년 명승부 끝에 KO승을 거두고 두 개의 보너스를 받았다. 보너스 액수만 10만 달러 약 1억 2천만 원 가량이었다. 아무리 적게 준다고 해도 UFC의 대전료 규모는 국내단체에 비할 바가 아니며, 네임벨류와 인지도 면에서도 국내에서 활동하는 선수들과는 다르다. 그런 선수가 겨우 1억 원이라는 푼돈에 본인의 모든 것을 팔아 치웠다는 건 다른 선수들 보기 부끄러운 일이다. 챔피언의 꿈, 마음의 상처, 그런 것도 어떤 선수들에겐 팔자가 좋아 줄줄 늘어놓는 넋두리일 뿐이다. 그저 운동이 좋고, 승리의 맛에 중독이 되고 전장을 함께 헤쳐 나가는 남자들의 낭만이 있으면 그만이지, 무얼 그리 바라는 게 많아서 양심을 파느냐고 예를 들면, 모 선수나, 모 관장 같은 사람이 일갈한다면 변명할 거리가 없다.

UFC의 24년 사이에 처음으로 확인된 승부조작시도가 우리선수에 의래 저질러졌다는 건 A 선수뿐만이 아니라 모두의 수치다. 이런 일로 팬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는 과오는 무겁다. 뿐만 아니라 이 사건이 외신으로 통해 보도된다면 종합격투기의 위상에도 큰 상처를 입히게 되는 셈이다. 해당 선수를 길러낸 팀이 받을 피해는 상징적, 감상적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물질의 영역으로까지 확산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우리나라의 선수단 전체가 어떤 불이익을 받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마저 대두되고 있는 형편이다. 

하지만 아직 최악의 상황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그 와중에 다행인 것은, 승부조작을 의뢰한 집단의 범죄적 의도가 처참한 실패로 귀결되었고, 그로 인해 최악의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A 선수가 결자해지 했다는 점은 절대 나쁘게 볼 일이 아니다. 살다 보면 미친 짓을 하고 도저히 수습이 안 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한발을 더 잘못 디뎌 큰일이 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범죄자 집단으로부터 협박을 받던 상황에서 자수라는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었다는 건 오히려 칭찬을 해줘도 될 일이다.

진정한 적은 A 선수를 유혹한 집단이다. 그들은 강동희를 타락시키고, 박현준의 미래를 강탈했으며 마재윤을 나락으로 밀어 넣었다. 꼬드김에 넘어간 선수들에게 자비가 필요 없다면, 꼬드긴 그들은 껍질을 벗겨야 한다.애초에 A 선수는 그들과의 약속을 지킬 필요가 없었다. 그들이 얼치기처럼 움직이는 바람에 업계의 레이더에 포착이 되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물론 이 시점에서 A 선수와 의뢰자의 잘잘못을 놓고 경중을 따진다는 것 자체가 상궤를 어긋난 짓이지만, 굳이 한 번 따져 보자면 북미시간 27일 오후 5시-7시 사이 이루어진 전격적인 베팅은 해당 경기에 걸린 전체 배팅액에 비해 너무 큰 액수였다. 

그들이 왜 사설토토 사이트를 상대로 하지 않고 해외의 정규 사이트에서 그런 짓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시장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고 프로젝트를 돌렸다는 의미에서 그들은 미숙했다. 그 액션이 UFC의 경계심리를 자극했고, 소속팀에 상황을 주시해 달라는 요청을 하게 만든 원인이다. A 선수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이유는 의뢰자들의 아마추어적 행보 때문이다. 그리고 배팅 사이트의 정관을 잘 읽어보면, 승부조작 등의 부정행위가 의심될 경우 당첨금은 조사가 끝날 때까지 지급 되지 않으며 조사결과에 따라 몰수된다는 규정을 모두 가지고 있다.

즉, A 선수가 만약 졌다 해도 그들이 그 돈을 찾을 수 있을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다. 따라서 이들은 게임의 법칙, 아니 배팅의 abc도 모르고 일만 크게 벌인 미련한 사람들이다. 거기다가 스스로 망친 일을 두고 다른 사람을 협박하는걸 보면 경우가 없어도 저렇게 까지 없을 수가 있다. 보다 더 프로페셔널한 조직이었다면 일이 이렇게 까지 처참하게 꼬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는 의뢰자들의 어리석음을 칭찬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스포츠와 배팅이 만나면 승부조작이 합성된다. 그것은 이치다. 스포츠와 배팅이 만나지 못하게 한다는 건 합리적이지 못한 발상일지 모른다.. 유럽, 호주, 뉴질랜드의 경우 스포츠 배팅은 국민을 위한 엔터테인먼트이면서 세수를 증대시키고 스포츠관련 재원을 확보하는 유용한 시스템으로 활용되고 있다. 부작용을 최소화 하면서 기능을 살리는 것, 그것이 요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A 선수를 절대악으로 규정하고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 보다는 그를 통해 우리가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지를 한번쯤 생각해 보는 게 어떨까.

글=이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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