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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짐] 2월 5일 일요일, 우주개발의 전초기지 휴스턴에서 정찬성이 3년 6개월의 공백을 넘어 UFC 페더급의 타이틀 궤도에 재진입했다.


코리안 좀비의 복귀전 상대가 당시 랭킹 8위였던 데니스 버뮤데즈로 결정되었을 때 국내팬들의 우려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공백이 길었던 만큼 탑10 랭커는 부담스러워 보였을 뿐만 아니라 버뮤데즈가 워낙 우수한 레슬러였기 때문에 상대성 면에서도 좋을 게 없다는 관측을 바탕으로 회의론이 안팎에서 강하게 대두되었다. 현지 배팅업체의 배당률을 환산하면 정찬성의 승률은 30~40% 정도로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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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uston, we have a zombie

정찬성과 만나기 전까지 버뮤데즈는 UFC 12전을 포함, 21전(16승 5패 4KO 3SUB)의 공식전적과 TUF 에서의 숨겨진 3전(3승 2KO 1SUB)까지 도합 24전을 경험했고 KO패는 단 한차례에 불과했다. 그 1패는 버뮤데즈의 치고 들어가는 타이밍을 완벽하게 간파한 스티븐스가 점핑 니킥을 더 이상 정확하기 힘든 타이밍에 클린히트 시켰던 그림으로, 그 니킥을 근거로 맷집을 논하기에는 변별력 면에서 부적절하다.

그 외의 다른 경기에서 버뮤데즈는 놀라울 정도의 회복력을 여러 차례 과시한 바 있다. 그는 상대를 향해 접근해 압박하는 스타일이고 1분당 유효타격시도가 9차례나 될 정도로 공격적이다. 원래 타격시도는 상대에게 카운터의 기회를 일정확률로 내주게 되며, 따라서 적극적인 타격시도는 자연히 잦은 카운터 허용으로 귀결된다. 거기다 강공의 비율이 높기 때문에 버뮤데즈가 상대의 강타를 먹고 흔들리는 장면은 전혀 낯설지 않았다.

*페더급 주요랭커들의 1 분당 유효타격 시도회수. (*유효타격: 클린치나 그라운드에서 간혹 나오는 타격으로 보기 힘든 견제타격을 제외한 타격, 파이트 매트릭의 significant strikes)

라마스 6회
올리베이라
스티븐슨 6.5회
알도 7.5회
스완슨 8회
에드가 8.5회
버뮤데즈 9회
정찬성 10회
최두호 10.5회
맥그레거 12.5회
할로웨이 13회

버뮤데즈의 맷집에는 조금 독특한 구석이 있다. 충격을 곧잘 받기는 하지만 엄청난 속도로 회복하는 타입이다. 따라서 큰 것에 걸리면 무릎이 꺾이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는데, 다리가 풀려서 비틀거리거나 바닥에 완전히 눕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만큼 빠른 속도로 회복이 이루어지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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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스전에서 잽을 내다 카운터를 받고 충격을 입었던 순간 라마스의 속공 길로틴이 기가 막히게 들어가면서 탭을 쳤던 것 사례를 제외하면 버뮤데즈는 대부분의 경기에서 큰 타격을 입고 잠시 흔들리다가도 곧 털어낸 후 전세를 뒤집어 버리는 장면을 즐겨 연출했다. 맷 그라이스와의 대전이 버뮤데즈의 대표작으로 역전과 재역전이 계속 반복되는 톱질매치였다. 순간의 맷집 면에서는 의문이 있지만 경기 전체에서 얼마만큼의 데미지를 흡수할 수 있느냐는 측면에서의 맷집이 굉장히 강하고 체력과 정신력의 조화로 이루어지는 내구력의 삼각지대에서 맥스 할로웨이를 비롯한 여러 파이터들이 그에게 고전했다.

그런 버뮤데즈를 정찬성이 1라운드만에 머리가 바닥에 닿도록 눕혔고 즉각적인 TKO판정을 받아낸 것은 극도로 흥미로운 결과다.

뭐길래 ‘극도로’ 흥미롭다고 까지 하느냐? 경기의 해설을 맡았던 브라이언 스탠의 멘트를 떠올려보자면 그는 캐스터가 이 결과를 믿을 수 있냐고 물었때 “농담하십니까?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없는 겁니다. 믿을 수 없죠.”라고 대답했는데, 스탠의 반응을 해석하면 정찬성의 기량이 스탠의 예상범위를 크게 넘어섰다는 의미가 된다.

스탠은 경기 내내 정찬성의 테이크다운 디펜스에 대해 처음에는 재미있어 하다가 잠시 후엔 ‘진정으로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진지하게 감탄하더니 경기가 끝났을 시점에는 눈앞의 현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경악했다.

스탠 혼자만 그런 것은 결코 아니다. 대회직후 애프터 파이트 쇼에서 진행자 카린 브라이언트와 라이트헤비급 챔피언 다니엘 코미어, 웰터급 챔피언 타이론 우들리가 나눴던 대담에서도 같은 뉘앙스의 발언을 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정찬성은 스탠, 코미어, 우들리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의 전망을 초월하는 결과로 지구촌 곳곳의 좀비팬들의 성원에 보답한 것이다.

반 라운드 정도의 짧은 경기였지만 정찬성은 많은 것을 보여주었다. 스텝이 대폭 향상된 것과 동작에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걷어낸 것은 한눈에 들어왔지만, 맞게 본건지, 아니면 결과를 합리화하기 위해 우연히 나온 동작에 과도한 의미부여를 하는 것은 아닌지 한눈에 파악하기 힘든 그림이 수차례 지나갔다.

그 실체를 파악하기 위한 과정은 마치 오래전에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MC가 중국집 배달통의 뚜껑을 잽싸게 열었다 닫는 사이 출연자들이 내용물을 파악하는 게임 같은 것이었는데, 그 MC의 손에 비해 정찬성의 손이 너무 빨랐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영상을 손쉽게 돌려보면서, 집요하게 분석하는 것이 어렵지 않은 시대를 만난 덕분에 그나마 정찬성의 업그레이드 사항 중 몇 가지를 알아낼 수 있었다. 경기를 시간의 역순으로 분석하면서 이모저모를 알아본다. 영상과 같이본다면, 더 재미있게 이 글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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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그레이드된 코리안 좀비의 업데이트 사항

4. 1라운드 2분 25초 83

결정타는 어퍼컷이었다.

정찬성의 거친 압박에 밀려 철망을 등지고 밀려다니던 버뮤데즈는 시계 방향으로 돌며 물러나는 복싱식 서클링 스텝으로 움직이다가 1라운드 2분 25초 45 시점에 잽을 던졌다.

약 0.23초 후였던 25초 68에 버뮤데즈의 왼손 주먹이 목표지점에 도달했다. 하지만 타겟이었던 정찬성의 머리는 그 사이에 버뮤데즈의 조준점에서 왼쪽으로 움직였고 잽은 허공을 갈랐다.

정찬성의 기준으로는 상대의 잽에 대해 머리를 오른쪽으로 움직여 피하는 아웃사이드 슬립이라는 방어테크닉을 성공적으로 구사한 것이 되며 그로인해 오른손 카운터 찬스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정찬성이 즐겨 사용하는 방어동작과 카운터 타격의 세트피스로, 포이리어 전에서도 왼손잡이였던 상대의 주포를 아웃사이드 슬립으로 흘린 후 오른손으로 카운터 하는 장면을 많이 보여주었다.

흥미로운 건 버뮤데즈가 잽을 내던 순간과 정찬성이 어퍼컷의 준비태세로 돌입한 타이밍 사이의 시간차다.

25초 45에 버뮤데즈의 왼손 잽이 목표를 향해 출발했고 25초 55에 정찬성의 카운터 시퀀스가 시작되는데 측정 방식에 +-0.033 초정도의 오차가 있기 때문에 시간차는 0.07~0.13초 정도가 된다.

즉 정찬성은 0.1초 정도 만에 버뮤데즈의 잽이 나오는 것을 알아채고 슬립-셋업-카운터의 세트피스를 가동했다는 것인데, 0.1초는 너무 빠른 반응이다.

시각과 청각 중에서는 청각정보에 대한 반사가 더 빠르게 일어난다, 즉 100미터 달리기를 할때 출발신호를 총소리로 하는 것이 깃발을 사용하는 것에 비해 주자들이 빨리 반응한다는 거다. 우사인 볼트가 지난해 리우 올림픽에서 0.155초의 스타트 반응시간을 기록했다. 가장 빠르게 반응한 선수는 아카니 심바인이라는 남아공 선수였고 0.128초였다. 정찬성이 버뮤데즈의 잽에 반응한 시간이 0.1초 정도였다.

정찬성의 시각 중추가 우사인 볼트의 청각 충추보다 빠르게 반응 했을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가능성은 두가지, 시간의 측정에 오류가 있었거나 정찬성이 카운터 타이밍은 단지 시각정보만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오류가 날 만큼 복잡할 것이 없는 작업이라 측정의 오류를 배제하고 남은 가능성은 정찬성이 시각 이외의 어떤 것을 가지고 타이밍을 잡았다는 것이다. 그게 뭔지 알아보기 위해 1.5초 정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자.

1라운드 2분 23초 65경에도 버뮤데즈는 잽을 던졌다. 이 잽에는 정찬성은 굉장히 정상적으로 반응했다. 0.3초, 주먹이 말 그대로 코앞에 왔을 때 겨우 슬쩍 물러났다. 뭔가 딴생각이라도 하고 있었나 싶을 정도로 둔감한 반응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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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2분 18초, 경기 영상에 표시되는 종료까지 남은 시간 기준으로는 2:42 지점 까지 되돌리면 정찬성이 본인의 시그니처 중 하나인 긴 라이트 & 스위치 스탠스를 구사해 버뮤데즈의 안면을 터치하는 장면이 나온다. 황급히 물러나 철장을 등지게 된 버뮤데즈가 본인의 왼쪽, 정찬성의 오른쪽으로 움직여 빠져나가려 한다.

정찬성도 오른쪽으로 움직여 버뮤데즈의 퇴로를 차단하려 했고 2분 20초 50 정도에 잽을 던졌다. 정찬성의 왼발이 셋 포지션에서 앞으로 나오기 시작할 때 버뮤데즈는 즉각 본인의 머리를 왼쪽 전방으로 기울이며, 용어로는 잽을 인사이드 슬립으로 흘려보내면서 라이트 오버핸드로 크로스 카운터를 시도했다. 작은 선수가 큰 선수의 잽을 받아칠 때 많이 사용되는 기법이고 효도르의 특기였기도 하다.

잠시, 흐름을 벗어나 이 공방의 디테일을 살펴보도록 하자. 흐름이 다소 끊어지겠지만 상당히 특수한 장면이라 그냥 넘기기는 힘들다.

정상 속도로 보면 정찬성이 이것을 맞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느린 그림에서는 조금 다른 장면이 보인다. 정찬성은 뻗었던 왼팔의 팔꿈치가 대각선 위를 향하게 틀어 올리는 요령으로 버뮤데즈가 구사한 치명적인 카운터에 브레이크를 걸었고 이 동작을 취할 때 부가적으로 어깨가 자동적으로 올라가면서 안면의 방어가 조금 더 나아지게 되는데, 가격이 이루어질 타이밍에 정찬성의 머리가 거의 움직이지 않았고 성공적인 방어가 이루어 졌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직후 버뮤데즈의 힘에 밀려서 밸런스가 무너지려 할때 정찬성은 숙이면서 스텝으로 벨런스를 재조정 하는데 이 순간 정찬성의 왼쪽 팔꿈치를 보면 하이 엘보우 가드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잘 알려진 대로 메이웨더가 즐겨 쓰는 방어스킬이다.

이 장면에서 정찬성이 의식적으로 팔꿈치를 들어 올리는 방어법을 사용한 것인지 혹은 만의 하나 우연히 깨달았던 것일지 또는 그렇게 보였을 뿐 정찬성이 엘보우 디펜스를 하지 않았던 건지, 100% 장담은 할 수 없다. 하지만 99.9% 정도는 알고 사용한 디펜스 스킬로 보고 있는데, 메이웨더의 기술을 재미삼아 따라 하기는 쉬워도 경기에서 성공적으로 활용하는건 매우 어렵다. 좀비의 방어기술이 늘었다는 몇 가지 예시중 하나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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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이 공방의 직후 버뮤데즈의 움직임을 보면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잽을 던지는데 잽을 낸 직후 뒷발의 움직임을 보면 그 잽의 성격을 알 수 있다. 잽 이후 뒷발이 앞으로 나간다면 그것은 공격적인 잽이다. 그런데 23초 65 의 잽 이후 버뮤데즈의 오른발은 왼쪽대각선 뒤쪽으로 움직인다. 그쪽으로 움직이면서 내는 잽은 가장 방어적인 잽이고 상대의 접근을 저지하고자 하는 의도를 내포하는 아웃파이터의 스킬이다. 긴 체형이거나 빠른 아웃파이터가 아니면서 측후방으로 이동하며 잽을 낸다는 것은 그만큼 정찬성이 다가오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이다.

정찬성은 즉각 그 잽의 의미를 파악한 듯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고 즉각 과감하게 접근했다. 버뮤데즈는 본인의 기준거리 안으로 정찬성이 또 다가오자 다시 잽을 내는데, 그건 정찬성이 노린 바였다. 정찬성이 우사인 볼트보다 빨리 반응했던 이유는 노림수가 있었기 때문이며 노림수의 구성은 버뮤데즈의 바디 랭귀지와 옵션구성의 관찰을 통해 이루어 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정도만 해도 꽤 괜찮은 전개다. 압박은 그대로이면서 방어가 좋아졌다는 측면에서 이상적이다. 그러나 정찬성은 마침표를 찍기 전에 또 하나의 셋업을 활용했다.

경기가 끝난 후 나오는 슬로우 모션 중 처음 장면, 공중의 카메라가 아래를 보며 찍은 앵글의 장면을 유심히 보면 정찬성이 어퍼를 꺼내기 전에 레프트 훅 페인트를 주고 있다. 그리고 버뮤데즈는 거기에 속아 급히 인사하듯 허리와 고개를 숙이던 중에 어퍼컷을 받게 된다. 이 레프트 훅 페인트가 먹힌 이유는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정찬성이 1라운드 36초경을 비롯해, 버뮤데즈의 잽을 레프트훅으로 계속 맞받아쳤기 때문이다. 본인의 잽은 빗나갔고, 장찬성의 레프트훅이 오는 것 같다면 답은 덕킹으로 훅을 피하는 것이다. 그래서 숙였고 어퍼컷의 위력을 추가로 받게 된 셈이었다.

상대가 예를 들어 왼손 훅으로 공격하기 딱 좋은 위치에 있을 때 왼손 훅을 휘두르면 이기기 힘들다. 왼손 훅을 제대로 맞추려면 상대를 왼손 훅에 맞도록 몰아가야한다. 보통 오른손을 펀치를 몇 번 보여주고, 오른손 페인트를 주면 상대의 방어가 왼손 훅이 들어갈 길이 열리는 형태로 바뀐다. 투 훅에서 투를 페인트로 사용하는 것이고. 이것의 가장 좋은 셋업은 라이트 클린히트다.

버뮤데즈가 정찬성의 왼손 훅 페인트에 속아 넘어간 이유는 잽을 내다가 왼손 훅 카운터 맛을 이미 보았기 때문이다. 정찬성은 버뮤데즈의 잽에 대해 왼손 맞받아치기를 계속 사용해 고정관념을 심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버뮤데즈의 머리를 라이트 어퍼가 클린히트 될 위치로 보낼 수 있었다.

앞서 살펴본 대로 다가가면 버뮤데즈가 잽을 낼 것이라는 직관적 예측을 기반으로 정찬성은 다가가서 잽을 끌어내고 왼손으로 페인트를 준 후에 카운터 카드를 뽑았다. 옵션은 라이트 어퍼였다. 상대의 잽을 오른손으로 카운터 하는 다양한 형태 중 가장 위력적인 두 가지가 본인보다 키가 큰 상대에게 사용하기 좋은 오버핸드 크로스카운터와 작은 선수에게 효과적인 라이트 어퍼 인사이드 카운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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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성의 어퍼컷을 슬로우 모션으로 관찰해보면 강하게 때리기 위해 백스윙을 크게 하지도 않았고 임팩트 이후에 팔로스로우가 크지도 않았다. 어퍼컷은 접근전 기술로 팔을 몸에 붙인 상태로 구사하는 것이 정석이다. 따라서 스윙아크가 그다지 크게 나오지 않는다. 그걸 억지로 크게 돌리려 하다가는 방어가 열리고 타이밍을 놓치기 쉽다.

컴팩트한 스윙이 이상적인 타이밍에 적중되었고 미리 깔아둔 레프트 훅 셋업이 추가적인 데미지를 더해 결정적인 위력이 나왔다. 엄청난 타격을 입고도, 충격의 누적이 위험할 정도로 계속되어도 좀비처럼 붙어있던 버뮤데즈였지만, 정찬성의 어퍼컷에 의해 KO패를 당했다. 제레미 스티븐스의 제자리 플라잉 니킥에 이어 프로 경력 두 번째 당하는 KO패였다. 모두 올려치는 타격에 당한 셈이다.

경기가 마무리 되던 장면의 전개는 대략 이랬다. 정찬성은 든든한 배짱과 암석질의 턱을 자산으로 고위험도의 전술을 즐겨 사용하는 선수였다. 상대가 처해있는 상황을 기반으로 넥스트 무브를 직관적으로 예측해 과감한 플레이로 연결하는 능력은 이번 경기의 마무리 장면에서도 건재함을 드러냈다.

결정타의 분석

케이지 구석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던 버뮤데즈는 복싱의 서클링 스텝을 활용해 중앙으로 빠져 나가려 했다. 정찬성이 접근할 경우 버뮤데즈는 잽을 물러나면서 던지는 아웃복싱 적인 어프로치로 대응하였으나 정찬성은 접근으로 버뮤데즈의 잽을 끌어내고 왼손 훅 페인트로 숙이게 만든 후 라이트 어퍼컷으로 마무리했다.

업그레이드 포인트

1) 컴팩트해진 스윙
2) 페인트의 활용
3) 방어 스킬 추가
3. 철장의 공포

버뮤데즈가 정찬성에게 결정적인 타이밍을 읽힌 이유는 바로 직전의 잽이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 예측 가능한 타이밍에 예측 가능한 기술을 내다가는 쉽사리 상대에게 당하기 십상이다.

한 꺼풀 벗기면 인간의 내면이라는 것은 대개 비슷하다. 여유가 있고 선택의 여지가 있을 때의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수많은 성향과 다양한 기질을 보이지만 한계상황에 내몰리고 극단적인 위기를 맞닥뜨리게 되면 무의식적으로 일정한 행동패턴을 보이는 경향이 있고 버뮤데즈 역시 정찬성에게 완벽하게 읽혔다.

결정적인 패착은 서클링하며 빠지다 낸 두 번째 잽이지만 그 원인은 역시 한계상황과 위기에서 찾을 수 있다. 버뮤데즈의 입장에서는 거듭된 테이크다운의 실패로 단위시간당 에너지 소모율이 높았다는 점, 그것을 5라운드라는 시간거리에 대입했을 때 발생하는 우려감, 그리고 본인의 주요한 카드가 완벽하게 봉쇄당했다는 좌절감을 느낄 만 했다. 그리고 앵글 때문에 잘 보이지 않지만, 정찬성이 조금씩 클린히트를 여러 차례 적중시키던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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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본인이 치명타를 입혔다고 생각했음에도, 정찬성은 무릎이 꺾이거나 다리가 풀리지 않고, 클린치를 잡으며 회복한 후 계속해서 압박했지만. 본인은 첫 라운드 1분 50초, 케이지 중앙부에서 싱글랙 태클을 노리다 실패하고, 또 헛심만 쓴 결과를 맞이했거니와, 2분경에 는 클린치에서 벗어나던 순간 정찬성이 던진 레프트 스트레이트를 안면에 허용하던 대목에서 경기의 주도권을 정찬성에게 내줬다.

여기에서 정찬성에게서 보여진 잘게 끊어치는 레프트도 새롭다. 강공 일변도였던 정찬성에게 고난도의 스킬이 추가된 것은 대단히 고무적인 현상이다. 이 부분은 굉장한 업그레이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스킬이 활용되면 전체적인 압력의 하락은 소폭에 그치고 적중률을 비약적으로 상승시키게 된다.

철망구석에 몰린 버뮤데즈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있었던 반면 정찬성은 커버링을 완전히 내리고 도발을 걸었다. 하지만, 버뮤데즈는 난타전을 거절하고 오른쪽으로 움직여 코너에서 빠져나가려 했다. 정찬성도 본인의 왼쪽으로 움직여 빠져나갈 틈을 주지 않자 버뮤데즈는 반대방향으로 움직이기 위해 멈춰섰는데 그 순간 정찬성은 오른손 페인트를 주고 왼손 잽을 적중시켰다. 페인트의 활용은 복귀 후 정찬성의 업그레이드 항목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또한 상대를 코너에 몰아넣었을 때는 다소 과격한 스윙을 난사하던 불안 요소가 절제되고 오히려 큰것을 미끼로 작은 것을 성공시키는 노련함을 보여주었다.

그 직후, 그냥은 빠져 나가기 어렵다고 판단한 듯 버뮤데즈는 멀리서 더블랙을 시도했다. 이 시점에서 정찬성이 정면에서 목을 감싸 안는 프론트 헤드락으로 대응하자 황급히 고개를 들어 빠져나가려 했다. 그때 버뮤데즈의 턱에 정찬성이 오른손 어퍼컷이 가볍게 적중 되었다. 버뮤데즈는 니킥으로 갚아주면서 물러났지만 다시 철망 근처로 몰리고 말았다. 그리고 정찬성의 기나긴 리치를 제대로 살릴 수 있는 롱 펀치가 까마득하게 먼 거리에서 날아와 버뮤데즈의 안면을 터치했다.

정찬성이 즐겨 사용하는 특유의 장거리 라이트의 특징은 앞발을 크게 내딛지 않으면서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버뮤데즈는 그것을 보고 백스탭을 밟았다. 본인 생각에는 그저 물러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겠지만 정찬성의 펀치가 얼굴에 닿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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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성의 라이트는 뒷발이 앞으로 나가는 스위치를 동반하면서 앞발의 위치로는 계산이 되지 않는 거리를 까지 뻗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물러나는 상대에게 생각보다 더 길게 나가는 레인지 트릭을 걸어주는 것은 대단히 좋은 선택이다.

정찬성의 리치는 동체급 대에서 짝을 찾기 힘들 정도이며 활용하기에 따라 엄청난 무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정찬성이 그것을 잘 활용하는 편인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리치의 덕을 보는 것은 사실이지만 포텐셜을 살리지는 못한 편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강하게 밀어붙여 상대가 물러서게 만든 후 추격하며 좌우 훅의 연속기를 사용하거나 즐겨 사용하는 라이트 어퍼-레프트 훅 컴비네이션등의 사거리가 놀라울 정도로 길다는 것 등등, 정찬성의 리치는 펀치스킬의 용도를 패시브하게 강화시키는 신체적 특성으로 의미를 한정 지어야 했기 때문이다.

리치를 살린다는 것은 상대를 멀리 놓고 팔을 완전히 뻗은 상태에서 접촉이 일어나도록 세팅된 전술을 구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스트레이트를 적중시키기 위한 셋업을 능숙하게 활용하거나 원하는 레인지로 상대가 움직이면 장거리포를 상대의 커버링 사이로 들어가는, 용어로는 인사이드 펀치로 구사할 때 본격적인 리치 어드벤티지를 활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정찬성에게는 2가 아직 없다. 방금 살펴본 기술은 정찬성의 오리지날 스킬로 엄청난 거리를 커버하지만 뒷발이 앞으로 나오면서 스위치가 되는 특징이 있다. 활용가치도 분명 훌륭하고 그만큼 위험도 따르는 스킬인데, 2의 특징은 만만치 않은 장거리포이면서 위험부담이 훨씬 적다는 점이다.

그것은 둘째치고, 상대가 물러나는 국면을 활용해 본인의 오리지널 기술을 안전하게 사용했다는 것은 리치 어드벤티지의 활용으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리치 어드벤티지라는 부분에서 정찬성이 마음만 먹으면 개발 가능한 영역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결론

밀어낼 수가 없고, 테이크다운도 통하지 않고, 때려도 반응이 없고, 오랜만에 회심의 일격을 냈지만 복싱의 고급 방어기술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얻는 것 없이 체력의 소모가 심했고 가랑비에 옷이 젖듯 데미지도 누적되어 가던 상황에 여전히 철망 구석에 몰린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버뮤데즈는 결국 치명적인 실수를 하게 된 것이 결론이다.

업그레이드 포인트

1) 클린치에서 떨어지는 간극등의 트랜지션 상황을 스킬 펀치로 공격. 주요 업그레이드
2) 물러나는 상대를 앞발 위치로 계산 안되는 오른손 롱펀치로 공략, 트릭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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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러서는 쪽이 지는 이유

잘 알려진 대로 버뮤데즈의 특기는 압박이다. 정찬성도 당연히 상대를 밀어붙이며 싸우는데 익숙한 선수다. 이런 경우 두 선수의 성향이 초반부터 충돌하게 되는데 복싱에는 두 명의 인파이터가 싸울때 물러서는 쪽이 지는 경우가 많다는 속설이 있다.

종합격투기 무대에서 레슬링이 강력한 상대를 맞이한 타격전문 선수는 보통 선제타를 아끼고 킥을 봉인한 채 카운터를 노리는 것이 정석으로 알려져 있다. 테이크다운을 당하고 그라운드에서 시달리며 라운드를 내주고 체력적 손실까지 입는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신중하게 대응하는 타격 선수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상대방이 본인의 태세를 예상 한다면 그건 상대에게 전략적으로 이용당할 포인트일 뿐이다. 신중함이란 일반적으로 훌륭한 덕목이지만 간파 당했을 때에는 아무리 신중하게 움직인다 하더라도 당하기 마련이다. 버뮤데즈 같은 레슬라이커는 상대가 레슬링에 대해 신중하게 대응할 때 그것을 역이용하는데 능한 타입이다.

레슬링에서 한수 위인 선수가 머리를 흔들며 전진해 상대를 몰고 다니다가. 페인트 모션으로 간을 보고 상대가 실수를 하는 것과 같이 타이밍이 잡히면 태클인척 하며 들어가다 강력한 파워 샷을 마음 놓고 때리는 것이 레슬라이커의 방식이고 상대는 태클의 방어를 위해 그 순간중심을 낮추고 두 발을 바닥에 고정시켜버리면서 타격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방어법인 스텝이 봉인된 채 어이없는 샷을 허용하게 된다.

그러다가 레슬라이커가 펀치를 할 것처럼 페인트를 줄때가 있을 것이고, 스트라이커는 이를 상체를 세우면서 커버링을 올리면서 체중을 뒤로 보내 태클에 매우 취약한 자세가 되며 여기서 레슬라이커는 손쉬운 테이크다운으로 연결할 수 있다.

말로 풀어보면 쉽지만, 실제로 경기에서 레슬링이 강하고 폭발적인 움직임을 가진 선수들은 본인보다 타격실력이 훨씬 우수한 선수들을 타격으로 피니쉬할 수 있었다.

케빈 랜들맨이 크로캅을 잠재웠던 장면부터, 크리스 와이드먼과 앤더슨 실바와의 1차전, 벨라스케즈와 산토스의 2,3차전 등이 좋은 예가 된다. 반면에 타격의 우위를 바탕으로 본인보다 우수한 레슬러를 레슬링으로 제압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알도가 마이크 브라운을 레슬링으로 넘기고 백마운트를 장악한 후 파운딩으로 마무리 지으며 첫 메이저 벨트를 허리에 감았던 때 말고는 딱히 예를 찾기가 힘들다.

그런데 레슬라이킹이 성공적으로 통할 기본 전제는 상대가 본인의 레슬링을 부담스러워 하여 뒤로 물러나는 경우가 된다. 베우둠이 벨라스케즈와 싸울 당시처럼 레슬링에 대한 부담감이 없고 본인 타격을 마음껏 구사할 경우 레슬라이킹의 난이도가 대폭 상승해버린다. 그라운드를 두려워하지 않는 상대를 속일 포인트가 없고 레슬러는 앞으로 움직일 때 할 수 있는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뒤로 움직이면서 강한 펀치를 내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앞으로 나가던 선수가 갑자기 대시를 걸기는 쉬워도 뒤로 움직이다가 급격히 전진기어를 넣고 성공적인 타격으로 연결하는 것은 어렵다. 후진이 전진으로 바뀌는 속도 제로의 순간이 상대방에게 방어나 카운터를 준비할 시간을 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전진이 익숙한 선수가 뒤로 빠지면서 싸우게 되면 거리가 잘 잡히지 않고 타이밍감각에도 미묘한 교란이 생긴다. 게다가 정찬성은 신장에 비해 리치가 대단히 길다. 그의 통상 타격거리가 페더급의 평균을 크게 웃도는 수준인 점도 버뮤데즈의 타격감을 저하시켰을 것이다. 인파이터의 대결에서 밀려나는 쪽이 불리한 이유가 버뮤데즈에게도 적용된 셈이다.

결론: 정찬성이 과감하게 밀어 붙이면서 압박이 특기인 버뮤데즈의 거리와 타이밍감각을 저하시켰다.

업그레이드 포인트: 타격시도때 체중이 한방향으로 크게 쏠리던 약점이 많이 절제됨. 매우 중대한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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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미, 감탄, 경악으로 이어진 테이크다운 디펜스

파이트 매트릭의 통계로 드러나는 버뮤데즈의 테그니컬 밸런스는 타격, 테이크다운, 그라운드가 거의 3등분된 황금비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정찬성을 상대로는 타격이 무척 힘들었고 스탠딩에서 그의 옵션은 테이크다운으로 집중되었다. 밸런스가 초반부터 무너진 것이었다.

2009년 5월 정찬성은 카네하라 마사히로와의 경기에서 10연승 끝에 첫 패배를 경험했다. 카네하라의 주무기는 테이크다운과 그라운드 커트롤이었다. 그날 정찬성은 눈물을 흘릴 정도로 분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 정도로 지는 것을 싫어하는 선수들은 보통 패배를 통해 많은걸 배운다. 그러나 그 이후 묘하게도 정찬성은 테이크다운 스페셜리스트를 만날 기회가 없었다.

말하자면, 정찬성의 테이크다운 디펜스가 어느 정도였는지 실감할 기회가 카네하라전 이후 그다지 없었다는 것, 그래서 이번 버뮤데즈전을 앞두고 수많은 팬들이 두려움에 떨었다. 버뮤데즈의 레슬링은 그만큼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포이리어전에서 정찬성이 보여준 하위에서의 운영은 놀라울 정도로 공격적이며 효과적이었다고 판단했고, 그동안 정찬성이 주짓수에 상당한 투자를 했을 것이라 추측했기 때문에 경기 전망에서 테이크다운을 두려워 말고 스탠딩에서 본인의 실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넘어가면 주짓수로 충분히 대응 가능할 것으로 본 이유는 헤너 그레이시의 극찬과 전지훈련지였던 MMA랩에서 들려오는 소식 때문이다. 밴 핸더슨의 헤드코치인 존 크라우치는 버뮤데즈가 정찬성을 넘겨도 실수 한번이면 탭을 치게 될 것이라 말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정찬성의 테이크다운 디펜스는 해설자 브라이언 스탠을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을 만큼의 레벨에 도달해 있었다. 스탠은 처음에는 흥미로워 하다가, 나중에는 진지하게 감탄했고, 마지막에는 현실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말로 경악했다. 정찬성이 버뮤데즈의 레슬링을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은 1라운드 1분경 라이트 큰 타격을 하나 허용한 후 클린치를 잡을 때 드러났다.

정찬성이 밀려나자 버뮤데즈가 훅을 휘두르며 달려 들었고 거기서 정찬성은 무릎을 굽혀 자세를 낮춘 후 상대의 허리를 감싸 안으려 했다. 버뮤데즈가 재빨리 왼팔을 집어넣으면서 50:50 클린치가 되었지만 만약 팔을 제때 넣었지 못했다면, 그대로 안겨 넘어갔을 지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그 직전 버뮤데즈가 라이트-레프트 컴비네이션을 할 때, 정찬성이 그것을 왼쪽으로 기울였다가 숙이는 연속동작으로 흘린 후 백을 잡으려 하던 장면 역시 포스트 파이트 쇼에서 “테이크다운을 두려워 하지 않고 오히려 상대가 테이크다운을 시도하면 레슬러들의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경향이 있다”던 우들리의 멘트와 일맥상통했다.

얼개: 테이크다운 시도의 거듭된 실패로 버뮤데즈의 옵션이 체력과 함께 급속히 소진되면서 승부의 축이 정찬성 쪽으로 확실히 기울게 된다. 이 경기 최대의 승인은 바로 이 부분이다.

업그레이드 포인트: 테이크다운 디펜스, 가장 중대한 부분, 전체적인 기량이 대폭 향상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라운드 스페셜리스트가 보면 마음이 갑갑해질 부분인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탑5권에서 테이크다운이 위협적인 선수는 프랭키 에드가 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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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청난 결말이라 해도 시작은 보통 잔잔하다

버뮤데즈의 게임은 케이지 중앙을 점유하면서 시작된다. 버뮤데즈의 스텝운용이 링커트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링 커트란 복싱에서 키가 작은 선수들이 근거리에서 난전을 벌이고자 할 때 자주 활용되는 방식이다.

먼저 중앙을 선점한 후, 상대의 움직임을 쫒아 다니는 것이 아닌, 중앙을 점유한 상태로 방어에 유의하고 축이동(피봇스텝)을 하며 탐색하다가 상대가 허점을 보일 때 잽을 던지거나, 기습적인 뒷손 단발, 컴비네이션을 사용하거나, 혹은 머리를 흔들며 접근해 상대를 로프나 코너 쪽으로 몰고 간 후, 불리한 장소에서 벗어나려는 상대의 좌우 움직임을 본인의 우좌 움직임으로 가로막으면서 상대가 백스텝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근거리 난타전을 거는 것이 링커트의 요지다.

그러나 정찬성이 터치글러브 이후 케이지 센터를 선점했고 의외의 옵션인 레그킥을 첫수로 둔 후에 전에는 볼 수 없었던 가볍고 날렵한 스텝으로 접근하자 버뮤데즈는 밀려나면서 가장 자신 있고 익숙한 패턴을 사용하는데 지장을 받았다.

위의 전개를 사이콜로지의 관점으로 해석해보면 버뮤데즈는 시작과 동시에 중앙 점유를 위한 전투에 돌입하거나 중앙을 내주거나의 선택지를 받아들게 된 셈이다, 이 점이 중요한 포인트다. 내가 상대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 주도권의 장악이다. 버뮤데즈와의 경기에서 많은 선수들이 초반부터 버뮤데즈가 내는 타격과 테이크다운의 이지선다 문제를 푸는 입장이 되면서 말려들어갔는데, 그런 선수들 거의 모두가 먼저 중앙을 내주고 밀려다녔다는 공통점이 있다.

부연하자면, 정찬성은 과감하게 센터를 장악하면서 버뮤데즈에게 ‘중앙을 원하면 들어와’라고 선택을 강요했으며 거기서 버뮤데즈가 물러서게 만들었다. 그로 인해 상대의 심리적 예봉을 꺽고 전진압박이 특기인 그를 익숙하지 않은 게임으로 몰아넣게 되었던 것이다.

아 경기에서는 시작부터 정찬성의 변화가 한눈에 들어왔다. 터치 글러브 직후 중앙을 점유하고 레그킥 이후 버뮤데즈에게 접근하던 순간, 정찬성의 스텝을 보면서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기존의 정찬성은 스텝이라고 할만한 것이 그다지 없었다. 쿵쾅거리면서 마구 걸어다녔는데, 체중을 앞발에 실었다가 뒷발로 넘겼다가, 높낮이 조절도 하도 중립을 유지하기도 하면서 공수전환과 컴비네이션의 효율을 극대화 하고 안정적으로 기동력을 발휘 하는 요령 같은건 영원히 불가능할거라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러나 이 경기에서 정찬성은 신체의 스태빌라이저라고 할 수 있는 엉덩이를 활용하는 기동을 선보였다. 그동안의 노력이 한눈에 보일만한 발전이다.

38초 지점, 버뮤데즈의 잽을 정찬성이 체크 레프트 훅으로 카운터 하는 장면이 나왔다. 정상속도로 보면 정찬성이 맞고 물러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느리게 보면 정찬성은 왼발을 대각선 앞으로 놓고 뒷발은 왼쪽으로 움직이는 피봇 스텝으로 몸을 틀면서 맞았기 때문에 버뮤데즈의 잽이 흘러나갔고 피봇에 의한 몸통회전을 동반하는 레프트훅을 맞은 버뮤데즈는 전진을 멈추고 주춤 할 정도의 충격을 받았다. 이 장면이 마지막 어퍼컷이 터지는데 중대한 역할을 한 셈이다. 여기서 본인의 잽에 대한 정찬성의 훅 카운터가 무겁게 꽃혔고, 53초 지점에서 버뮤데즈가 잽을 날름거리며 접근할때도 레프트 훅으로 카운터를 시도한 것이 기억을 보강했기 때문에 마지막에 본인의 잽을 정찬성이 슬립시키고 레프트 훅 페인트를 걸었을때 즉각 더킹을 시도하다가 어퍼컷에 당하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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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장면에서 2초 후. 정찬성은 버뮤데즈의 접근을 허용한 상태에서 잽을 내다가 버뮤데즈의 오버핸드에 직격 당했다. 그 직전 정찬성의 코너에서 “형! 거리 다시 잡아야 돼요!” 라는 지시가 나왔다. 매우 적절한 지시였고 아마도 원정에 동행했던 김두환일 것으로 짐작되는데, 2014년경부터 좋은 코너맨의 자질을 보이고 있다. 동료인 곽관호의 PXC 타이틀전 당시 대기실에서 마지막으로 패드워크를 하며 몸을 풀때 레그킥을 맨다리로 받아주는 희생정신을 발휘했다. TFC의 전찬열 대표도 김두환에 대해 “든든한 제자로 도움이 많이 된다.”라고 높이 평가했다.

이 과정에서 역설적으로 정찬성이 거리 조절을 어느 정도 염두에 두고 싸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웃파이팅을 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버뮤데즈가 품속까지 파고드는 것은 저지하려고 했다는 점 역시 매우 긍정적인 사인이었다.

1분 37초 지점에서는 3-1-4 로 이어지는 컴비네이션을 구사해 마지막 4를 근거리에서 적중시켰다. 정찬성의 컴비네이션이란 대개 강하게 시작해 매우 강하게 전개되고 있는 힘을 다해 마무리되는 형태였지만 툭 던져보고, 과감하게 들어가 적절한 힘으로 맞춰주는 이런 컴비네이션은 전술적 가치가 대단히 높다. 3과 1을 체중을 뒤에 남긴 채 던져 언제든 이탈이 가능하게 관리했다는 점이 아름다웠다.

결론: 중앙을 장악해 버뮤데즈에게 선택을 강요했다. 상대가 물러나면서 예봉이 꺾였고 버뮤데즈는 본인의 플레이를 못하면서 오히려 압박에 눌리게 되었다. 모든 것이 시작된 주요한 전략 포인트였다,

업그레이드 사항: 스텝이 가벼워지고 밸런스가 좋아짐(타격부분에서 가장 중요한 점) 간을 보기위해 툭툭 던지는 왼손 장착, 과감하게 들어가면서도 체중은 뒤에 남기는 잽 구사, 근거리에서 힘을 빼고 컴팩트한 오른손 스윙. 피봇활용 시도,

이렇게 2017년 더 업그레이드 된 '코리안 좀비' 2.0의 업데이트 사항들을 모두 만나보았다. 2분 30초밖에 되지 않는 경기였지만 볼수록 새로운 내용이었고, 계속해서 영상을 돌려보며 숨은 그림을 찾는 재미가 대단했다. 정찬성에게 링러스트는 없었다. 오히려 더 강해져서 돌아왔다. 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여유를 가지고 본인의 기량을 바닥에서부터 전면 재점검하고 불필요한 요소를 걷어낸 후 빈자리에 꼭 필요한 여러 가지를 채워 넣은 것이라 짐작된다.

MMA 파이팅에 따르면 정찬성이 출전했던 UFN 104가 지난 1년간의 UFN대회중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으며, 평균 시청가구수는 115만 8천에 달했다고 밝혔다. 적어도 수백만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놀라운 기량을 과시하며 성공적인 복귀를 알렸고 태극기와 함께 승리의 기쁨을 만끽한 정찬성 선수께 한명의 격투팬으로서, 한국인으로서 깊이 고개숙여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다.


MONSTERZYM PRESS


글=이용수

에디팅=반재민

사진=ZUFFA LLC/ 박제영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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