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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격투계에 흥미로운 소식이 전해졌다. 한때 '황제'라고 불렸던 남자, 예멜리야넨코 표도르가 6년 만의 북미무대 복귀전을 치른다는 것이었다. 부동의 업계 2위 단체 벨라토르는 지난 20일 열린 “Bellator 165” 중계 도중 표도르가 돌아왔음을 발표했다. 중계 현장에서 표도르는 복귀전 상대인 베테랑 타격가 맷 미트리온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파이팅 포즈를 취했다. 몸소 복귀 사실을 확실히 못 박은 셈이다.

 

2010~2011 시즌에 북미무대에서 처참한 실패를 맛본 표도르는 이후 실망적인 행보로 격투팬들에게 꾸준한 비난을 받아왔다. 룰 차이*와 노쇠화 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3연패의 늪에 빠진 그가 선택한 활로라는 것이 적응과 진화가 아닌 소위 말하는 떡밥 사냥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표도르는 판정단도 자신의 편인 고국에서, 자신에게 편리한 링에서만 싸우며, 현저히 수준이 떨어지는 선수를 상대로 승수 챙기기에 급급했다. 그나마 올해 중순에는 케이지 경기를 뛰어보았지만 여기서 그는 UFC에서 성적 부진으로 퇴출 된 라이트헤비급 선수에게 KO 직전까지 몰리는 굴욕적인 경기력을 선보였다. ‘UFC와 계약이 진행 중이다라는 말을 수년 째 반복하면서도 이러한 안일한 커리어 연명에 치중하는 표도르의 모습에 팬들은 기대를 거의 접고 있었다.

 

* 종합격투기는 통합 룰이 없으며, 단체별로 세부적인 규정 차이가 굉장히 크다. 일례로 일본과 동유럽에서는 링 경기장을 쓰는 경우가 많지만, 북미에서는 대부분 6각 이상의 다각형 케이지를 사용한다.

 

엄연히 현역으로 활동 중인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복귀가 화제가 되는 이유는 아무래도 이런 경기 외적인 요소가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벨라토르와 계약했다는 것은 곧 그가 끝내 적응에 실패했던 케이지에 다시 도전한다는 것, 정상권 파이터와 다시 경쟁하려 한다는 것, 안방 무대인 M-1 글로벌에서 나온다는 것 등 굉장히 여러 가지 변화를 시도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욕을 먹더라도 충분히 안정적인 길을 걸을 수 있고 또 걸어왔던 그로서는 상당한 모험인 승부수를 띄운 셈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그의 승부수는 너무 늦었다. 가장 간단한 사실부터 말해보자. 표도르의 나이가 지금 만으로 40이다. 역대 정상급 파이터 중 40대에 분위기 반등에 성공해 정상을 밟은 선수는 랜디 커투어가 유일하며, 일반적으로 회춘했다 불리는 파이터들의 나이도 정말 많아야 30대 후반이다. 더군다나 이들은 패배를 하더라도 대개 메이저 무대에서 살아남으며 클래스를 유지했던 선수들이다. 꾸준히 정상권 선수들과 부딪히며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친 결실로 회춘에 성공했던 것이지, 떡밥 사냥으로 손쉽게 커리어를 유지하다 어느 순간 기량이 올라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표도르는 3류 파이터들을 상대하면서도 기량의 정체가 눈에 보일 정도로 발전이 전무했다. 앞서 언급한 그의 가장 최근 경기를 보자. 케이지에서 싸웠던 그 경기 말이다. UFC에서 퇴출된, 그래플링이 전무한 반쪽짜리 복서 파비오 말도나도를 상대로 그가 보여준 모습은 처참하다 못해 황당했다. 상대가 가드를 단단히 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퍼컷 하나 섞지 않고 주구장창 양훅을 던지고, 이스케이프를 할 때는 백을 완전히 내주면서 몸을 돌리고 일어나며, 상대를 코너로 몰아놓고는 케이지에서의 압박과 클린치를 쓰지 못해 번번이 도망가게 내버려둔다. 이쯤되면 현대 MMA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초보적인 실수의 집합체 수준이다. 그만큼 표도르의 스킬트리는 링에서 황제 노릇하던 2006년부터 10년 동안 박제라도 되어 있었던 것처럼 변화란 것이 없었다.

 

표도르가 재능 있는 파이터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아니, 차라리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하겠다. 10년 전 그의 파이팅은 기존 세대의 머리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으며 전술, 스킬, 신체능력 등 모든 것이 경이로운 것이었다. 하지만 경이로움도 그 자리에 있으면 평범해지며, 평범함이 그 자리에 있으면 그것은 구닥다리가 된다. 자만이었는지 무엇이었는지는 몰라도 그의 시간은 극단적으로 그의 전성기에 고정되어 있었으며, 이는 겨우 몇 개월 전까지도 달라지지 못했다. 달라지지 못한 것이 아니라 달라질 생각조차 없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지금 와서 젊고 빠르며 영리한 선수들을 상대로 경쟁을 해보겠다? 전설의 초라한 말년을 도전정신으로 포장하기엔 적합할지 몰라도 냉정히 말해 이는 가능성 없는 객기에 가깝다.

 

이번 경기에서 상대할 맷 미트리온 역시 나이는 많지만(표도르보다 두 살 어린 38살이다) 실상 기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상당히 젊은 선수다. 굉장히 빠르고 유연하며, 손꼽히는 강한 주먹과 준수한 레슬링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기본적으로 세계 최고의 무대인 UFC에서도 정상권으로 활약하다 계약 문제로 제 발로 걸어 나온 선수다. 표도르는 겪어보지도 못한 신선한 상급수에서 놀다 온 인물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표도르가 근 7~8년 간 만나본 선수 중 가장 강한 선수인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승리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격투기에 절대는 없다. 이제 한 물 갔다고 평가 받던 마이클 비스핑이 뜬금없이 챔피언이 되고, 라이트급에서는 가망이 없어 보이던 코너 맥그리거가 라이트급 정상에 오르는 등 지금도 업계에 업셋은 충분히 일어나고 있다. 또한 격투기를 즐기는 한 명의 팬으로서 전설이 무너지는 것은 항상 그렇게 유쾌한 일은 못 된다. 적어도 이번에는 제발 필자의 쓴 소리가 헛소리가 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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