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첼시는 2004년 러시아 재벌인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인수한 후 페트르 체흐, 존 오비 미켈, 디디에 드록바, 마이클 에시앙, 미하엘 발락, 안드레이 셰브첸코 등 최고의 선수들을 영입하며 프리미어리그의 강팀으로 떠올랐다. 2004-2005 리그 우승을 시작으로 10년 동안 무려 다섯 번이나 리그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하지만 빛이 있다면 어둠도 있기 마련, 선수영입에 열을 올리다보니 그동안 키우고 있던 유스 선수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서 지속가능한 팀으로 만들지 못했으며, 이는 첼시의 요란했던 기복의 서막이 되었다. 

2010년대 중반 이후 맨시티, 리버풀이 쩐의 전쟁에 본격적으로 참여하면서 첼시는 이들에 밀려 좀처럼 힘을 쓰지 못했다. 물론 안토니오 콘테 감독이 스리백 신드롬을 일으키며 우승한 16-17 시즌도 있었지만 그 이후에는 간신히 챔스 진출권에 들거나 유로파리그로 떨어질 정도로 상당한 기복이 있었다.

유스팀 선수들 중 제대로 성공을 거둔 선수는 전설 존 테리 정도 밖에 없었으며 대부분의 유스 선수들이나 첼시가 미래를 보고 영입한 젊은 선수들은 임대를 전전하다 첼시를 떠나는 신세가 되는 것이 부지기수였다. 그리고 케빈 데 브라이너나 파비오 보리니 등 출신 선수들에게 부메랑을 맞았다.

대부분의 첼시 팬들은 프리미어리그의 꿈을 안고 입단했지만, 하염없이 임대생활을 하는 선수들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있었으며, 선수들 역시 스탬포드 브릿지의 그라운드에 서기위해 잉글랜드 2부부터 머나먼 노르웨이, 세르비아까지 가면서 첼시에 설 그날을 준비했다.

그리고 그 날은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다. 2019년 첼시가 FIFA로부터 이적시장 영입 금지 징계를 받게 된 것이다. 영입이 불가능하게 되면서 마우리치오 사리 감독의 후임으로 첼시의 감독으로 부임한 '레전드' 프랭크 램파드 신임 감독에게는 유스 선수들을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용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지게 되었다.

현역에서 은퇴한 후 2017년 첼시에서 유소년 지도자를 하면서 어느정도 유스 체계를 알고 있었지만, 첼시 역사상 유스 선수가 프리미어리그에서 성공을 거둔 경우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올 시즌 첼시에 큰 기대를 하지 않은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상황이 달라졌다. 개막전 맨유 원정에서 0대4로 패한 것을 시작으로 레스터-노리치-셰필드와의 경기에서 고전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불안함이 증폭되었지만, 까다로운 상대인 울버햄튼과의 5라운드에서 5대2로 대승을 거두며 일거에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비록, 수비라인이 큰 약점으로 지적받고 있었지만, 불안한 수비를 화끈한 공격력으로 치환시키며 팬들에게 큰 호평을 얻었으며 시즌 마지막까지 기세를 가져가지 못할 것이라는 당초 예상과는 달리 맨유, 토트넘등을 제치며 4위에 랭크, 2년 연속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한 발 더 다가섰다. 과연 올 시즌 어떤 유스 선수들이 첼시에서 주전으로 자리잡았을까?


먼저 올 시즌 가장 주목을 받고있는 두 선수는 메이슨 마운트와 타미 아브라함이다. 첼시 유스 출신으로 브리스톨 시티와 스완지 시티, 아스톤 빌라를 거치며 아스톤 빌라를 프리미어리그 승격으로 이끈 아브라함은 올 시즌에만 무려 34경기에 출전해 15골 6도움으로 팀내 가장 많은 득점을 뽑아냈다.

특히 5라운드 울버햄튼과의 경기에서는 해트트릭을 작렬시키며 첼시 선수 역사상 최연소 해트트릭과 잉글랜드 선수 역사상 최연소 해트트릭 기록을 동시에 세운 것은 압권으로 꼽히고 있다.

또 다른 유스 출신인 메이슨 마운트 역시 첼시에서 없어서는 안될 빛으로 주목받고 있다. 아브라함과 역시 첼시 유스 출신으로 네덜란드의 비테세, 챔피언십의 더비 카운티를 거쳐 첼시에 입단한 마운트는 올 시즌 41경기에 출전해 6골 5도움을 올리며 첼시의 공격력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특히 특유의 활동량으로 첼시팬들에게 눈도장을 한몸에 받은 메이슨 마운트는 공격력이나 플레이메이킹 능력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이고 있어 램파드 감독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으며, 국가대표팀에도 선발되며 존 테리 이후 유스 성공신화는 자신이 될 것이라는 본인의 말을 현실로 입증해냈다.

둘에 앞서 첼시의 주축 윙어로 자리잡은 루벤 로프터스-치크와 컬럼 허드슨 오도이 역시 올 시즌 큰 활력을 불어넣어주고 있다. 비록 지난 시즌 둘다 큰 부상으로 시즌을 일찍 마쳤지만, 올 시즌 오도이는 27경기 4골 6도움, 로프터스-치크는 올 시즌 부상으로 인해 공식경기는 단 한 경기만 출전했지만, 지난 시즌 40경기에 나와 10골 5도움을 기록하며 첼시 유스의 희망으로 우뚝 섰다. 특히 치크는 첼시와 5년 재계약을 체결하며 첼시에 대한 충성심을 약속한 상태다.


공격뿐만 아니라 수비에서도 첼시를 이끌 새로운 얼굴이 나타났다. 오른쪽 풀백인 리스 제임스와 중앙 수비수 피카요 토모리다. 6살 이후 첼시 아카데미에서만 축구를 하며 성장한 리스 제임스는 지난 시즌 위건 임대를 마치고 올 시즌 본격적으로 첼시의 오른쪽 수비를 꿰차기 시작했다.

올 시즌 제임스는 26경기에 출장해 2골 3도움을 기록중이며 오른쪽 전 포지션과 중앙 미드필더로도 한 경기 출전하면서 오른쪽 뿐만 아니라 미래의 멀티자원으로 첼시팬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 리버풀의 알렉산더-아놀드와 함께 잉글랜드의 오른쪽을 이끌 재목으로도 평가받고 있다. 



토모리 역시 유스 출신으로 브라이튼과 헐 시티, 더비 카운티를 거쳐 올 시즌 램파드 감독의 신임을 받고 있다. 올 시즌에만 22경기에 나와 2골 1도움을 기록하며 수비 리빌딩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첼시의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

또한 코로나 19로 리그가 중단되기 직전 램파드 감독의 신임을 얻어 본격적으로 그라운드에 나선 열 여덟 살의 신예 빌리 길모어는 벌써부터 조르지뉴와 주전경쟁을 펼쳐야 한다는 첼시팬들의 찬사를 얻을만큼 인상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리버풀과의 FA컵 16강전에서 맹활약을 펼치며 MOM에 선정되는 등 프로에서의 성공적인 첫 발을 내딛고 있다.



많은 축구 전문가들은 유스 축구에서 엄청난 족적을 남긴 첼시의 성과가 드디어 나타나고 있다고 반색하고 있으며, 올 시즌에 당한 이적시장 금지가 램파드 감독와 유스 선수들에게 있어서는 기회가 되었다고 좋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

디 애슬래틱의 기자이자 전 ESPN 편집장이었던 리암 투메이는 "나는 그들 모두가 5 년 후에도 여전히 첼시에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지만, 램파드 감독이 첼시에서 다음 세대에 있을 위대한 팀을 형성하기를 원한다는 것은 분명하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서 알렉스 퍼거슨 감독 최대의 성과였던 1992년의 아이들을 언급하며 "아브라함, 마운트, 제임스, 토모리, 허드슨 오도이가 얼마나 인상적인지 잘 알고 있다. 이 선수들의 역동성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Class of 92'와 마찬가지로 장기적으로 계속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이야기하며 이 선수들이 앞으로 다가올 첼시의 황금기를 이끌 것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첼시가 이 선수들을 지킬 수 있을 지는 불확실하다. 오도이는 지난 시즌 꾸준히 바이에른 뮌헨의 링크를 받아왔으며 나머지 선수들 역시 성장이 정체되거나 거절하기 힘든 제안을 받는다면 언제든지 첼시를 떠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첼시의 유스정책은 효과를 보고 있으며 선수들에게 남아있는 첼시 스피릿은 앞으로의 선수생활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첼시의 유스 시스템 성공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있다.

과연 램파드 감독은 퍼기의 아이들처럼 첼시의 유스 선수들을 최고의 선수들로 만들어낼 수 있을지 초보감독 램파드의 여정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사진=게티이미지
반재민 기자(press@monstergroup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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