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한 예능 프로그램에 가수 비와 이효리가 출연해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은 과거의 모습과 변하지 않은 외모와 실력, 노련해진 예능감으로 시청자들의 큰 반응을 이끌어냈다.

또한 과거 히트곡 메들리를 선보이며 그 때 그 시절의 감동을 고스란히 느끼게 해주었다. 필자 역시 현실의 피곤을 잠시 내려놓고 그 시절 히트곡들을 들으며 그 시절의 추억이 떠올리고 그 시대의 감동을 다시 한 번 느끼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방송뿐만 아니라 현재 대중문화에서는 뉴트로 열풍이 거세다. 90년대와 2000년대 노래들을 리메이크한 곡들이 차트 상위권을 달리고 있으며, SNS 및 유튜브 등 미디어 시장에서도 과거에 유행했던 패션이나 옷차림들을 소개하고 재현해내는 콘텐츠들이 최근 들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그렇다면 과거의 것들이 이토록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실제 연구 결과에 따르면 10대 시절 들은 노래들은 성인이 되어 들은 그 어떤 노래보다도 강하게 기억에 남고, 세월이 흘러도 그대로 유지된다. 

우리가 추억하고 있는 노래들을 듣거나 부르는 ‘음악적 향수’는 문화적인 현상일 뿐 아닌 인체의 신경과 관련된 현상이라는 것이다. 즉, 어른이 되어 아무리 세련된 취향을 갖게 되더라도 우리가 사춘기 때 접했던 노래들은 뇌 속에 남아있다는 뜻이 된다.

대니얼 레비틴은 자신의 저서 “음악과 뇌: 집착의 과학”에서 10대 때 듣는 음악이 각자의 사회적인 삶과 얽히게 된다고 말했다.

“처음으로 내가 음악을 골라서 듣게 되는 시기죠. 친구를 통해서 노래를 알게 되는 경우가 많고요. 너와 내가 같은 집단에 속해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친구가 듣는 노래를 듣기도 하죠. 그런 경험 때문에 특정 노래가 자기 정체성의 일부가 되는 겁니다.”

UC데이비스의 심리학자 피터 자네타 역시 10대 시절 듣던 노래는 인격이 형성되는 시기에 특히나 감정적이었던 기억들과 단단히 묶이게 된다고 했다. 

이는 노래뿐만이 아니라 기억도 마찬가지다. 10대 그 시절의 기억이 왜 이토록 생생하고 또 오래 지속되는 것인지 그 이유가 있다. 리즈대학교 연구진이 2008년에 제시한 이론에 따르면 10대 시기는 내가 나라는 사람이 되는 시기이다.

즉,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가는 시기이기 때문에 이 시절의 기억이 가장 중요한 기억으로 인식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때의 기억은 자아 형성에 기여할 뿐 아니라 자아 그 자체, 그 중에서도 중요한 부분이 된다.

그리고 더 흥미로운 것은 음악이나 기억뿐만 아니라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10대 시절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쳤던 사람들은 그 이후 나이가 들어 관계를 맺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오래 동안 마음 깊이 기억하게 된다. 필자 역시 10대를 지나오며 함께한 나의 롤모델이기도 했던 코치 선생님이 떠오른다.

꼭 나의 코치님처럼 되겠다고 다짐했던 그 10대 시절, 꿈나무선수였던 필자는 어느덧 20대 끝자락에 들어 그 꿈나무 선수들에게 롤모델이 될지도 모를 감독이 되었다.

감독이 된 지금 제자들을 위한 연구자료를 찾아보다가 10대에게 롤모델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발견했다. 먼저 우리나라 국민 10대에서 40대까지 각 연령대별로 “당신은 롤모델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했을 때 40대는 롤모델이 있다는 비율이 13.8%에 그쳤지만 10대는 무려 78.3%가 롤모델이 있다고 응답한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결과가 하나 도출되었다. 10대에서도 일반학생과 운동선수로 구분해 조사한 결과, 10대 일반 학생들은 64.3%가 롤모델이 있다고 대답한 반면에 운동선수는 87.5%가 닮고 싶은 롤모델이 있다고 답했다. 그만큼 10대 운동선수들에게 롤모델의 역할이 무척 중요한 이유다.

실제로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유명한 농구선수 코비 브라이언트에게는 모든 것을 닮고 싶어 했던 마이클 조던이 있었고, 세계적인 골프선수 맥길로이의 10대 시절 모든 것에는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처럼 10대 운동선수들에게는 롤모델의 행동 하나, 말 한마디가 정답이고, 목표가 되어버린다.



필자역시 10대 시절, 호주의 수영스타 이안 소프를 롤모델로 삼고, 그의 영법을 하나하나 따라 하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이안 소프 이후에 마이클 펠프스, 라이언 록티, 애덤 피티와 같은 엄청난 선수들이 스타의 반열에 올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에겐 여전히 이안 소프가 최고의 선수인 것은 변함없다.

그렇다면 10대 가장 중요한 시기에 놓여 있는 꿈나무 선수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 많은 요소들이 있겠지만, 크게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첫째로 이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좋은 기억을 남겨주어야 한다.

성인 운동선수들이 장난처럼 하는 말 중 자주하는 말은 “나는 다시 돌아가면 절대 운동 안해.”, “나는 내 자녀는 절대 운동 안시켜.”라는 말이다. 보통 10대 시절 너무 힘들게 운동을 했던 기억 때문에, 또는 코치님이나 선배로부터 맞았던 기억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

청소년 시절 코치나 롤모델로부터 자신의 정체성과 플레이스타일이 확립될 수 있는 중요한 시기에 그들로부터 좋지 않은 기억을 심어줄 경우 코치의 훈계가 두려워 소극적인 플레이스타일로 변하게 된다거나 심지어는 트라우마로 인해 운동을 그만두게 되는 일까지 벌어질 수 있는 것이 바로 스포츠 환경이다.

한번 고착화된 플레이스타일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미 젖어버린 타성을 스스로 극복해내기란 어려운 일이다. 많은 프로선수들이 자신의 문제를 알고 있음에도 쉽사리 고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 습관 때문이다. 때문에 청소년 시절부터 올바른 습관을 확립시켜줄 지도자나 롤모델이 가장 이상적인 롤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이들이 보고 배울 수 있는 좋은 롤모델을 많이 배출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앞서 말한 대로 10대 꿈나무 선수들에게 롤모델은 선수의 기술뿐만 아니라 말투, 패션, 행동, 세리머니 등 모든 것을 따라하고 싶어 한다. 심지어는 선수들의 루틴까지 따라서 하는 경우도 있다. 때문에 롤모델의 도덕성과 스포츠맨십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만약 자신의 롤모델이 도덕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거나 거친 플레이나 행동들로 물의를 일으켰을 경우 후배 선수들은 그 행동들을 보고 배우며 되물림하게 된다. 학원스포츠 내에서 폭력이 아직도 근절되지 않은 이유가 바로 그런 것이다.

그 어떤 나라보다도 엄격한 선후배, 사제간 문화가 있는 대한민국에서 도덕적이고 올바른 선배와 롤모델, 지도자의 존재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본인은 잘 모르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후배 선수들은 선배의 행동 하나하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며 본받으려 노력한다. 올바른 도덕적 신념과 스포츠맨십을 가진 행동을 가져야 후배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롤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골프에서 ‘박세리 키즈’ 야구에서는 ‘박찬호 키즈’ 축구에서는 ‘2002 키즈’ 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롤모델은 한 나라의 스포츠 제너레이션을 바꿀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역할이다. 부끄러운 롤모델이 되어 신문 지면에 오르내리는 못난 롤모델이 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후배들이 성공하는 최고의 롤모델이 될 것인가, 그 선택은 본인에게 달려있다.

사진=게티이미지, 임다연 제공
글=임다연 (경남체육회 수영선수 겸 DP클럽 코치, dpswim@naver.com)
편집=반재민 기자(press@monstergroup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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