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아시아=조형규 기자] 프로레슬링이 가진 매력 중 하나는 바로 '다양성'이다.

프로레슬링은 경기를 오로지 한 가지 형태로만 치르지 않는다. 만들기에 따라 다양한 창작과 응용을 통해 수많은 장르의 경기를 만든다. 덕분에 어떤 프로레슬링은 코믹하고 웃음이 나오는 장면을, 또 어떤 프로레슬링은 과격하고 잔혹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1990년대 프로레슬링 마니아들에게 인기를 얻었던 ECW라는 단체가 있다. 유혈이 난무하는 극단적이고 과격한 하드코어 매치로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킨 프로모션이다. 지금도 해당 분야의 프로레슬링은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며 많지는 않지만, 충성도 높은 마니아들의 굳건한 지지를 받고 있다.

만약 이런 경기들이 한국에서 펼쳐진다면 어떨까? WWA 태그팀 챔피언인 홍상진은 바로 이런 극단적이지만 흥미로운 상상을 지금도 마음속에 품고 사는 프로레슬러다. 일본 내에서 최초로 가시철선 데스매치를 연 대일본프로레슬링에 참전해 실제로 직접 해당 경기를 경험하기도 했다고. 홍상진은 그때의 경험과 아이디어들을 모아 "국내에서도 더욱 다양한 프로레슬링을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순박한 심성 뒤에 숨겨진 프로레슬러 홍상진의 작지만 뜨거운 소망을 살짝 들어봤다. 다음은 홍상진과 나눈 인터뷰 일문일답. 

Q. 만나서 반갑다.

ㅡ프로레슬러 홍상진이다. 만나서 반갑다.

Q. 지난 뉴 제너레이션 흥행 때 태그팀 타이틀 방어전 이후 처음이다. 그동안 잘 지냈나.

ㅡ이번 여름은 정말 엄청난 폭염 아니었나. 더워서 운동도 제대로 못 하고. 그러다 보니 주로 선선한 새벽에 일어나서 운동했다.

Q. 아침잠이 별로 없나.

ㅡ맞다. 아침잠이 워낙 없다 보니 새벽에 일어나서 체육관 오픈 시간 6시 딱 맞춰서 바로 운동한다. 사회생활도 해야 하니깐 운동을 많이 못 하는 부분도 있고 중량도 예전보다는 많이 들지 못한다. 그래도 그렇게 두 시간씩은 꾸준히 한다.

Q. 세월의 흐름을 느끼는지(웃음).

ㅡ그런 것도 있고, 과거에는 1년에 40~50번씩 꾸준히 시합을 뛰었는데 오히려 그렇게 경기가 많아야 힘들지가 않다. 그런데 지금은 1년에 한두 번 수준으로 텀이 길어지다 보니 힘들다. 생활적으로 힘든 게 아니라 감각 유지 측면이 크다.

Q. 그러고 보니 가장 최근에 치렀던 경기가 5월에 가진 태그팀 타이틀 경기였다. 그런데 그 경기를 갖기까지 텀이 굉장히 길었다.

ㅡ거의 2년 만이었다. 1년에 적어도 15회 이상의 시합은 뛰어야 감각이 유지가 되는데 이렇게 1년에 한 번 하면 몸만 아프다(웃음).

Q. 그래도 현재 WWA 태그팀 챔피언 아닌가. 김종왕과 함께 오랜 기간 태그팀으로 활동 중이기도 하고.

ㅡ그렇다. 태그팀으로 활동한 지 거의 10년이 넘었으니. 특히 첫 타이틀을 획득한 이후부터는 줄곧 태그팀 경기만 했다.

Q. 태그팀 타이틀을 처음 획득했을 때 기억은 나나.

ㅡ사실 기억은 잘 안 난다. 그때 싸웠던 케니 러시는 지금도 페이스북 보니 아직도 활동하고 있더라. 어쨌든 처음 챔피언이 된 거라 그 당시에는 좋았던 기억이었는데 10년 지나니 다 없어진다(웃음).

Q. 김종왕과 태그를 결성하면서 줄곧 태그매치만 했다고 했는데, 혹시 그사이에 싱글매치를 치른 적은 있나.

ㅡ싱글매치를 도대체 언제 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태그팀 챔피언에 오른 이후부터 계속 태그매치만 치렀으니. 거의 10년도 더 된 것 같다.

Q. 아쉽진 않나.

ㅡ아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물론 태그 경기도 중간에 서로 태그를 하고 휴식을 하면서 완급조절을 통해 보여줄 수 있는 나름의 매력이 있다. 하지만 싱글매치에서는 한 명의 프로레슬러가 보여줄 것이 정말 무궁무진하다. 옛날에는 15분 20분씩 싱글 매치를 해도 지치지 않았을 텐데, 지금은 조금 걱정되긴 하지만 그래도 더 늙기 전에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Q. 어떤 경기를 하고 싶나.

ㅡ평범한 싱글매치보다도 일본에서 펼쳐지는 데스매치 같은 격렬한 경기를 하고 싶다. 사실 예전에 대일본프로레슬링에서 가시철선 데스매치도 치른 적이 있다.

Q. 가시철선 데스매치라면 링에 로프 대신 가시철망이 결속된?

ㅡ맞다. 대일본에 참전했을 때 가시철선 데스매치로 시합을 뛰어야 한다길래 처음에는 경악했다. '저걸 도대체 어떻게 해요'라고 불평도 하고(웃음). 그런데 이게 웬걸, 막상 해보니깐 꽤 괜찮은 게 아닌가. 당시 켄도 나가사키, 타잔 고토 같은 선수들과 함께 태그팀 경기로 치러진 데스매치였는데, 옷이랑 피부도 다 찢어지고 그랬지만 생각보다 할 만했다.

Q. 꽤 강심장이었군(웃음).

ㅡ링 줄을 빼고 철조망만 감으면 된다. 슬램이나 타격계 기술들의 빈도가 줄어들지만 대신 임팩트가 크다. 무엇보다도 링이 아니고 가시철선이니깐 우리나라 관객들에게도 실제로 보여준다면 시각적으로 엄청난 효과를 줄 수 있지 않을까. 그걸 하지 못해서 아쉽지만.

Q. 국내에서는 왜 데스매치를 치르지 못했나.

ㅡ허가가 나질 않는다고 하더라. 왜 안 되는지 한 번 물어본 적이 있는데 대답이 '프로레슬링은 어린이들이 와서 보는 거라서 그게 안 된다'고(웃음). 그래도 기회가 된다면 국내에서도 꼭 한번 해보고 싶다. 사실 지금 국내에서 하는 시합들은 조금 단조로운 느낌도 있고.

Q. 많은 프로레슬링 팬들에게 홍상진 선수는 굉장히 순박한 심성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않나. 이런 부분은 또 반전이다.

ㅡ물론 전통적인 스타일의 경기도 좋지만, 중간에 이런 식의 독특한 경기를 하나씩 넣어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선수만 풍부하다면 로얄럼블 같은 형식의 경기도 좋고.

Q. 가족들이 걱정을 많이 할 것 같은데. 프로레슬링만 해도 근심거리인데 마음속에는 그런 하드코어 경기에 대한 로망까지 있는걸 알면 놀라지 않을까(웃음).

ㅡ가족들은 걱정 많이 한다. '도대체 신나게 두들겨 맞고 돈도 안 되는 걸 왜 하냐'고 하고. 하지만 이 프로레슬링은 무엇보다도 내가 좋아서 하는 거다. 자꾸 잔소리를 하다보니 가끔은 '두들겨 맞아도 내가 두들겨 맞지 네가 맞냐'고 성질도 내고(웃음). 그렇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10년 20년 세월이 금세 갔다.

Q. 이야기하다 보니 경기에 대한 갈증이 정말 큰 것 같다.

ㅡ경기는 무조건 계속, 그리고 많이 하고 싶다. 사실 시합 꼭 크게 안 해도 된다. 내가 일본 북해도가 고향인 친구들이 있는데, 하타나카에 프로레슬링을 하길래 '시합은 어떻게 하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일본은 군이나 면 단위마다 200~300석 규모의 조그만 체육관이 하나씩 있는데, 거기서 작아도 꾸준히 시합한다고 하더라. 관람을 오는 관객들도 지인으로부터 시작해서 동네 사람들이 알음알음 찾아오고. 여유만 된다면 그렇게 작게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Q. 규모보다 기회?

ㅡ그렇다. 중요한 건 장소와 무대를 가리지 않고 자주 보여주는 거다. 그렇게 꾸준히 가면 더 많은 사람이 프로레슬링이라는 것에 관심을 갖고 즐길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나는 이제 좀 늦은 것 같고, 김민호나 조경호 같은 후배들이 잘됐으면 좋겠다. 그게 내 마지막 바람이기도 하고.

[사진] 장태현 포토그래퍼/홍상진 제공
조형규 기자(deux7d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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