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리그 7,464득점, 1,538개의 블로킹, 현대건설의 미들 블로커이자 국가대표 미들 블로커 양효진의 위대한 발걸음을 증명하는 기록이다. 단순한 기록 뿐만이 아니라 양효진은 현대건설에 있어 정신적인 지주이기도 하다. 

강산이 1번 바뀌고 다시 절반이 넘게 바뀌는 동안 양효진은 현대건설의 중앙을 지켰다. 그리고 그가 입단했을 때 맏언니 한유미가 연패에 눈물을 흘렸던 팀은 어느 덧 V리그를 대표하는 명문 구단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그는 17년이 지난 오늘도 왜 자신이 V리그의 전설인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보여주었다.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는 17일 수원실내체육관에서 펼쳐진 도드람 2023-2024 V리그 여자부 5라운드 김천 한국도로공사와의 맞대결에서 풀세트 접전 끝에 3대2 역전승을 거뒀다. 이로써 현대건설은 22승 7패 승점 67점으로 2위 흥국생명과의 승점차를 3점으로 유지했다.

팀의 리시브와 공격을 전담하던 위파위가 2경기 연속으로 빠진 상황에서 지난 경기 GS칼텍스를 제압하며 분위기가 오른 도로공사를 맞이한다는 것은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었고 불안감은 때론 실제로 이어지기도 했다.

낙승할 수 있을 것이라던 예상과는 달리 현대건설은 3세트까지 도로공사와 피말리는 접전을 펼쳐야 했다. 상대 공격수 부키리치의 공격 파워가 워낙 강했고, 승부처마다 집중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실제로 1세트와 3세트 모두 현대건설은 자신에게 주어진 리드를 지키지 못했고, 연패라는 늪에 자칫 빠질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현대건설을 지탱하는 힘은 맏언니 양효진과 에이스 모마였다. 양효진은 신인 미들블로커인 김세빈과의 중앙 싸움에서 완승을 거뒀다.  5세트를 통틀어 24득점을 올렸다. 이날 국내 선수 가운데 유일한 20득점대 기록이었다.

특히 득점의 순도도 높았다. 이날 양효진이 기록한 블로킹은 세 개, 서브 득점도 세 개를 기록했다. 모두 승부처 상황에서 나온 귀중한 서브 득점이었다. 양효진이 날개 공격수였다면 충분히 트리플 크라운도 가능했을 활약이었다. 

반면 김세빈은 양효진이 보여주는 노련미에 크게 고전했다. 김세빈과 양효진이 맞붙는 상황에서는 어김없이 속공이 날아들었고 김세빈은 이를 막아내기에 급급했고, 이는 현대건설에 있어서 모마에게 주어지는 공격 부담을 줄이는 효과를 가져왔다.


김종민 감독 역시 양효진의 활약에 대해서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경기 후 만난 김종민 감독은 "효진이의 경우에는 (배)유나를 붙여도 쉽지가 않기 때문에 블로킹을 잡기 보다는 수비 위치를 잡고 수비를 하자는 플랜을 갖고 있었다."라고 이야기했을 정도로 30대 중반에 다다른 나이임에도 양효진이 V리그에 보여주고 있는 파워는 여전하다.

물론 테크닉 뿐만 아니라 가라앉은 팀 분위기를 다잡고 높은 곳으로 끌어간다는 면에서 양효진의 존재감은 절대적이다. 현대건설의 강성형 감독 역시 양효진이 요즘 보여주고 있는 모습에 엄지 손가락을 치켜올린다.

강 감독은 "효진이가 여전히 상대팀에게 심한 견제를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자기관리도 잘하고 (이)다현이나 (김)다인이 등 옆에 있는 선수들과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면서 코트 안에서 소통을 하고 있다. 충분히 잘해주고 있다."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오랜 프로 생활 동안 양효진의 어깨와 무릎은 많이 닳았다. 20대 시절 보여준 파괴력 있는 공격과 블로킹을 유지하기엔 무리가 있다. 하지만, 그는 베테랑의 노련함으로 천부적은 배구 센스로 자신을 의심하는 모든 이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무려 17시즌 째 보여주고 있다.

양효진은 자신이 롱런할 수 있는 비결에 대해 끊임없는 자기 관리를 꼽는다. 양효진은 초심을 잃지 않고 항상 자신의 몸과 건강에 맞는 관리를 한다. 훈련이 없을 때에는 최대한 몸을 움직이는 것을 최소화하고 식단 역시 채소 등 건강식으로 먹었다. 17년이 넘는 세월동안 강박에 가깝도록 했던 자기관리는 전설의 양효진을 만들어내는 자양분이 되었다.

다만 워낙 많은 경기를 소화하다보니 체력적으로 힘에 부치는 것은 사실이다. 강성형 감독 역시 이를 걱정하고 있을 정도였다. 다만, 양효진은 그러한 걱정에 대해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양효진은 "그 전 시즌부터 라운드가 계속될수록 몸에 힘이 부친다는 느낌이 있다. 20대 때와 퍼포먼스가 달라져서 힘들긴 하지만 지금은 그러려니 하면서 지내고 있다."라고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양효진은 자기 자신의 관리가 팀을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팀의 승리를 만들기 위해 그는 언제나 자기의 몸을 소중히 생각하고 훈련과 경기에 집중력을 쏟는다. 이러한 양효진의 솔선수범은 다른 선수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고, 현대건설은 올 시즌에도 굳건하게 상위권에 자리를 잡고 있다.

이제 양효진에게 남은 것은 우승 트로피다. 현대건설은 지난 몇 년간 우승의 기회가 찾아왔다. 하지만, 외부적인 여건과 결정적인 순간마다 상대에게 무릎을 꿇으며 우승의 문턱에서 좌절해야만 했다. 이제 양효진과 현대건설은 마지막 한 고비를 향해 전진할 일만 남았다.

우승을 향한 그의 각오는 결연하다. 자신 만의 우승이 아닌 모두의 우승을 향해 달려가겠다는 양효진의 눈에서 V리그의 전설에서 느낄 수 있는 결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과연 그는 팀의 세 번째 우승 트로피를 팬들 앞에 가져다 줄 수 있을까? 현대건설의 그 자체, 양효진의 위대한 발걸음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사진=KOVO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