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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미 (肉體美)’ 대한민국에서 보디빌딩을 다르게 부르면 이 단어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림, 사진, 영상 등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보디빌딩 역시 자신에 대한 헌신과 몸을 만드는 기술, 그리고 인간의 몸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필요로 합니다. 따라서 작가, 화가와 마찬가지로 보디빌더들은 자신의 몸을 통해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하고, 자신이 갖고 있는 힘과 균형, 그리고 심미적 감각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대중들의 감정을 이끌어내죠.

육체미라는 단어에 아름다울 미(美)라는 한자가 들어가는 것처럼, 몸을 조각하며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고 사람들의 감정을 이끌어내는 것이 바로 보디빌딩의 정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육체미는 다른 형태의 미적 감각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야기 할 필 초이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필은 어린 시절 운동에 재능을 보였고, 필 역시 운동이라는 매력적인 세계에 몸을 담게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스포츠의 천국 미국은 필의 꿈을 펼칠 무대가 되기에 충분했죠. 레슬링도 그 중 하나였고 주위 사람들은 필이 레슬러로 성장하리라 예상했죠.
하지만, 필이 잡은 것은 바벨이었습니다. 몸을 통해 나를 표현하는 과정, 남과 경쟁하는 것이 아닌 나 자신과의 경쟁을 통해 얻는 육체미, 필은 거기에 큰 매력을 느꼈고 보디빌딩 무대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그를 그렇게 어린 필 초이는 바벨을 잡게 되었습니다. 처음 보디빌딩에 뛰어들 당시에 대해 필은 이렇게 회상합니다.
“저는 보디빌딩을 정의한다면 ‘내 안에서 만들어낸 경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보디빌딩에 빠지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저의 몸이 예술적 표현을 위한 매개체가 되는 것을 원했고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보디빌딩은 원하는 결과를 만들기 위해 일정한 강도와 목적을 가지고 근육을 단련시키는 하나의 예술이었고 저는 그 예술을 통해 저를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삶의 고비에서 얻은 소중한 것들
어린 나이에 잡은 바벨, 필은 그 바벨을 붓으로 삼아 필은 자신만의 그림을 그려나갔습니다. 그렇게 그는 미국 보디빌딩에서 인정받는 유망주가 되었죠 자신의 재능에 자신감을 갖고 스포츠 의학을 전공으로 하는 대학생으로 IFBB 프로 보디빌더의 꿈을 키워나갔죠.

하지만, 대학교 3학년이 되던 때, 그는 원인 모를 병에 걸렸습니다. 몸은 움직여지지 않았고, 극심한 통증이 그를 찾아왔죠. 본격적인 보디빌더로서 그리고 학생으로서 점점 입지를 다지던 중 날아온 날벼락 같은 병마였습니다. 

불행은 필에게 감당할 수 없는 좌절감을 안겼습니다. 살인적인 미국의 병원비는 필을 힘들게 했고, 휠체어를 빌릴 수 없어 형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집으로 왔던 때를 필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집에서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가만히 누워만 있었던 나날, 필은 그렇게 지옥같은 1년의 투병생활을 이어갔습니다.

1년 동안 수많은 의사를 찾아가며 원인을 찾았지만 결국 자신을 괴롭혀 온 병이 무엇이었는지 결국 찾지 못했죠. 하지만, 필은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절망 속에서 그는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며 인내했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의 노력 덕분인지 그의 몸이 거짓말처럼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건강을 어느 정도 회복한 필은 다시 바벨을 잡았습니다. 비록 예전같지 않은 몸, 예전같지 않은 퍼포먼스로 좌절할 때도 있었지만, 그는 언제나 다시 일어서 꿋꿋하게 자신의 그림을 몸이라는 도화지에 다시 그려냈고 운동을 하며 학업을 게을리하지 않았죠 그렇게 필은 대학교를 무사히 졸업하며 사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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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대학교를 졸업한 후 처음으로 들어간 곳은 대한민국에서도 알아주는 대기업이었습니다. 누구나 선망하는 회사였지만, 필은 입사한지 1년도 지나지 않아 회사를 나오게 되었습니다. ‘9 to 6’, ‘틀에 박힌 업무 방식’, ‘상명하복’ 자유로운 영혼 필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회사였죠.

그렇게 회사를 나오고 트레이너 생활을 이어가던 필에게 운명적인 만남이 찾아왔습니다. 바로 카메라였죠. 친한 크루들과 운동을 하다 한 피트니스 잡지의 촬영을 하게 되면서 필은 자신의 육체미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제2의 예술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카메라를 잡는다면 더 좋은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이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꾸기 위해 필은 카메라를 들었습니다. 중고 시장에서 50만원에 구입한 카메라를 들고 하루에 수천장의 사진을 찍고 또 찍었습니다. 반복이 그에게는 교과서였고 참고서였습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인터넷과 책을 찾아보고 찍기를 반복하며 자신과의 싸움을 계속 했습니다.
1년 후, 필은 크루들의 사진을 찍어주는 작가로 성장하게 되었고, 2016년 촬영을 위해 필이 다니는 피트니스 센터를 찾은 몬스터짐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됩니다.

마침 몬스터짐은 기존의 지루하고 밋밋했던 작품 방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롭고 신선한 촬영 인재를 구하고 있었고 필의 진가를 이미 알고 있던 도미닉(현 몬스터짐 전략구매팀)이 보디빌더 촬영을 부탁하게 되었죠. 그리고 2017년, 필은 본격적으로 육체미에서 배운 미적 감각을 몬스터짐 카메라로 표현해 작품으로 그려내기 시작했습니다.

2017년 IFBB 산마리노 프로 원정기를 시작으로 몬스터짐이 걸어간 역사의 길에는 언제나 필 초이가 있었고, 2018년 아무런 연고도 없는 한국에 터를 잡기로 결심해 혈혈단신으로 들어와 현재까지 자신의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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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고 힘들었던 아티스트의 길, 하지만 좌절의 순간마다 필을 일으켜준 것은 바로 ‘장애물을 기회로 바꾸는 용기’ 였습니다. 대학시절이 그랬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대기업을 뛰쳐 나왔을 때도 그랬죠, 그는 또 다른 용기를 갖고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을 표현하고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보디빌딩 인생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저는 보디빌딩을 하면서 언제나 한계에 도전하는 힘든 시간들을 겪었고 좌절감도 느꼈습니다. 하지만, 제 앞에 있었던 장애물들은 인생에서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용기를 갖게 했고, 오늘의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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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 초이 : 보디빌딩과 세상을 잇는 아티스트

언제나 혁신을 만들어나가는 몬스터짐의 필 초이, 그는 단순한 트레이너나 디렉터가 아니다. 사람을 가르치는 손길 하나하나, 작품을 만들어내는 클릭 하나하나는 하나의 예술로 승화된다. 진정한 ‘아티스트’ 필 초이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육체미 (肉體美)’ 대한민국에서 보디빌딩을 다르게 부르면 이 단어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림, 사진, 영상 등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보디빌딩 역시 자신에 대한 헌신과 몸을 만드는 기술, 그리고 인간의 몸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필요로 합니다. 따라서 작가, 화가와 마찬가지로 보디빌더들은 자신의 몸을 통해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하고, 자신이 갖고 있는 힘과 균형, 그리고 심미적 감각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대중들의 감정을 이끌어내죠.

육체미라는 단어에 아름다울 미(美)라는 한자가 들어가는 것처럼, 몸을 조각하며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고 사람들의 감정을 이끌어내는 것이 바로 보디빌딩의 정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육체미는 다른 형태의 미적 감각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야기 할 필 초이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필은 어린 시절 운동에 재능을 보였고, 필 역시 운동이라는 매력적인 세계에 몸을 담게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스포츠의 천국 미국은 필의 꿈을 펼칠 무대가 되기에 충분했죠. 레슬링도 그 중 하나였고 주위 사람들은 필이 레슬러로 성장하리라 예상했죠.

하지만, 필이 잡은 것은 바벨이었습니다. 몸을 통해 나를 표현하는 과정, 남과 경쟁하는 것이 아닌 나 자신과의 경쟁을 통해 얻는 육체미, 필은 거기에 큰 매력을 느꼈고 보디빌딩 무대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그를 그렇게 어린 필 초이는 바벨을 잡게 되었습니다. 처음 보디빌딩에 뛰어들 당시에 대해 필은 이렇게 회상합니다.

“저는 보디빌딩을 정의한다면 ‘내 안에서 만들어낸 경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보디빌딩에 빠지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저의 몸이 예술적 표현을 위한 매개체가 되는 것을 원했고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보디빌딩은 원하는 결과를 만들기 위해 일정한 강도와 목적을 가지고 근육을 단련시키는 하나의 예술이었고 저는 그 예술을 통해 저를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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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고비에서 얻은 소중한 것들

어린 나이에 잡은 바벨, 필은 그 바벨을 붓으로 삼아 필은 자신만의 그림을 그려나갔습니다. 그렇게 그는 미국 보디빌딩에서 인정받는 유망주가 되었죠 자신의 재능에 자신감을 갖고 스포츠 의학을 전공으로 하는 대학생으로 IFBB 프로 보디빌더의 꿈을 키워나갔죠.

하지만, 대학교 3학년이 되던 때, 그는 원인 모를 병에 걸렸습니다. 몸은 움직여지지 않았고, 극심한 통증이 그를 찾아왔죠. 본격적인 보디빌더로서 그리고 학생으로서 점점 입지를 다지던 중 날아온 날벼락 같은 병마였습니다.

불행은 필에게 감당할 수 없는 좌절감을 안겼습니다. 살인적인 미국의 병원비는 필을 힘들게 했고, 휠체어를 빌릴 수 없어 형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집으로 왔던 때를 필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집에서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가만히 누워만 있었던 나날, 필은 그렇게 지옥같은 1년의 투병생활을 이어갔습니다.

1년 동안 수많은 의사를 찾아가며 원인을 찾았지만 결국 자신을 괴롭혀 온 병이 무엇이었는지 결국 찾지 못했죠. 하지만, 필은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절망 속에서 그는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며 인내했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의 노력 덕분인지 그의 몸이 거짓말처럼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건강을 어느 정도 회복한 필은 다시 바벨을 잡았습니다. 비록 예전같지 않은 몸, 예전같지 않은 퍼포먼스로 좌절할 때도 있었지만, 그는 언제나 다시 일어서 꿋꿋하게 자신의 그림을 몸이라는 도화지에 다시 그려냈고 운동을 하며 학업을 게을리하지 않았죠 그렇게 필은 대학교를 무사히 졸업하며 사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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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초이가 아티스트가 된 이유

그가 대학교를 졸업한 후 처음으로 들어간 곳은 대한민국에서도 알아주는 대기업이었습니다. 누구나 선망하는 회사였지만, 필은 입사한지 1년도 지나지 않아 회사를 나오게 되었습니다. ‘9 to 6’, ‘틀에 박힌 업무 방식’, ‘상명하복’ 자유로운 영혼 필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회사였죠.

그렇게 회사를 나오고 트레이너 생활을 이어가던 필에게 운명적인 만남이 찾아왔습니다. 바로 카메라였죠. 친한 크루들과 운동을 하다 한 피트니스 잡지의 촬영을 하게 되면서 필은 자신의 육체미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제2의 예술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카메라를 잡는다면 더 좋은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이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꾸기 위해 필은 카메라를 들었습니다. 중고 시장에서 50만원에 구입한 카메라를 들고 하루에 수천장의 사진을 찍고 또 찍었습니다. 반복이 그에게는 교과서였고 참고서였습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인터넷과 책을 찾아보고 찍기를 반복하며 자신과의 싸움을 계속 했습니다.

1년 후, 필은 크루들의 사진을 찍어주는 작가로 성장하게 되었고, 2016년 촬영을 위해 필이 다니는 피트니스 센터를 찾은 몬스터짐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됩니다. 마침 몬스터짐은 기존의 지루하고 밋밋했던 작품 방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롭고 신선한 촬영 인재를 구하고 있었고 필의 진가를 이미 알고 있던 도미닉(현 몬스터짐 전략구매팀)이 보디빌더 촬영을 부탁하게 되었죠.

그리고 2017년, 필은 본격적으로 육체미에서 배운 미적 감각을 몬스터짐 카메라로 표현해 작품으로 그려내기 시작했습니다. 2017년 IFBB 산마리노 프로 원정기를 시작으로 몬스터짐이 걸어간 역사의 길에는 언제나 필 초이가 있었고, 2018년 아무런 연고도 없는 한국에 터를 잡기로 결심해 혈혈단신으로 들어와 현재까지 자신의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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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굴곡에도 지금의 필 초이가 있는 이유

어렵고 힘들었던 아티스트의 길, 하지만 좌절의 순간마다 필을 일으켜준 것은 바로 ‘장애물을 기회로 바꾸는 용기’ 였습니다. 대학시절이 그랬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대기업을 뛰쳐 나왔을 때도 그랬죠, 그는 또 다른 용기를 갖고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을 표현하고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보디빌딩 인생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저는 보디빌딩을 하면서 언제나 한계에 도전하는 힘든 시간들을 겪었고 좌절감도 느꼈습니다. 하지만, 제 앞에 있었던 장애물들은 인생에서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용기를 갖게 했고, 오늘의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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