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부터 대전 KGC인삼공사의 감독을 맡고 있는 고희진 감독, 그의 대전 생활은 시작부터 순탄치는 않았다. 본인은 다 지나간 일이라며 말을 아끼고 있지만, 감독이 된 순간부터 그에게는 크나큰 책임감의 연속이었다.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팬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야만 했다.

초반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대부분의 주전 선수들이 부상, 국가대표 차출로 비시즌 동안 호흡을 맞추기에 어려움이 있었고, 이는 시즌 초반 부진한 출발로 이어졌다. 인삼공사 팬들의 트럭 시위가 있을 것이라는 소문도 공공연하게 돌던 때가 이때였다.

하지만, 고희진 감독은 봄배구의 공식을 끊임없이 증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증명을 해내기 위해서는 단서가 필요하다. 고희진 감독은 미들 블로커에서 봄배구 공식의 단서를 찾았다. 바로 바로 정호영과 박은진이다.

고교시절 까지만 하더라도 특급 유망주였지만, 프로 무대에 와서는 미완의 대기에 그쳤던 두 선수, 하지만 고희진 감독의 특훈을 통해 두 선수는 성장했고, 지금은 인삼공사에 안될 핵심 자원으로 자리잡았다. 

외국인 선수 엘리자벳 역시 그의 단서였다. 지난해 페퍼저축은행 시절까지만 하더라도 서브에 큰 약점을 갖고 있던 엘리자벳이었지만, 고희진 감독의 지도력으로 서브가 안정을 찾았고, 공격력 역시 개선하며 V리그 최고의 공격수로 우뚝 섰다.

선수를 키우는 것 뿐만 아니라 고 감독은 경기를 이기기 위한 다양한 방정식들을 활용했다. 현대건설의 무패행진을 저지시켰던 크리스마스에도 그랬고, 정호영이 흥국생명의 코트를 마음껏 휘저었던 때도 그랬다. 그리고 지난달 28일 김천에서 펼쳐진 '천적' 도로공사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도 그랬다.

고희진 감독에게 도로공사는 벽이었다. 올 시즌 단 한번도 이기지 못했다. 다양한 방법을 써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고 감독은 한송이의 아웃사이드 히터 기용을 결정했다. 팬들은 이 결정에 의구심을 가졌지만, 고희진 감독의 작전은 따로 있었다.

도로공사에는 캣벨과 박정아와 더불어 배유나의 중앙공격이 강하다. 특히 인삼공사를 만나면 배유나는 물만난 고기마냥 날아다녔다. 두 자릿 수 득점은 기본이었고 지난 4라운드에는 무려 20득점을 올리며 인삼공사의 블로킹 라인을 초토화 시켰을 정도로 배유나는 인삼공사에게 거대한 벽이었다.

그 벽을 넘기 위해 고희진 감독이 꺼낸 카드가 바로 한송이로 높이를 키우는 것이었다. 세트 초반 배유나는 고전했다. 비록 리시브는 다른 선수들보다는 떨어지며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배유나 견제라는 특명은 확실하게 수행해냈다.

이날 경기에서 배유나는 9득점을 기록하며 올 시즌 인삼공사를 상대로 처음으로 두 자릿 수 득점을 기록하지 못했다. 고희진 감독의 작전으로 인삼공사는 도로공사를 상대로 첫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지난 시즌부터 이어온 9연패의 사슬을 끊어내는 데 성공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번 승리로 고희진 감독은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인삼공사가 2005년 V리그에 참가한 이후 거둔 최다 연승은 2008-09 시즌의 8연승이며 이후가 2007-08 시즌, 2011-12 시즌의 6연승이다. 모두 박삼용 감독이 이뤄낸 연승이었고, 이 세 시즌 인삼공사는 모두 봄배구에 진출해 한 번의 우승을 기록했다.

고희진 감독은 이번 승리를 통해 무려 11년 만에 6연승을 올림과 동시에 박삼용 감독과 더불어 구단 역사상 리그 6연승 이상을 기록한 유이한 감독에 올랐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바로 2016-17 시즌 이후 5년 동안 명맥이 끊어진 봄배구의 시냅스를 잇는 것이다.

증명의 연속이었던 고희진 감독의 2022-23 시즌, 그는 많은 시도 끝에 완성해낸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처럼 봄배구의 공식을 자신의 힘으로 증명해낼 수 있을까? 따뜻해지는 봄, 증명을 위한 그의 여정은 끝을 향해가고 있다.

사진=KOVO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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