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20년이 훨씬 지난 2000년, 그 당시에는 이종격투기라는 단어조차 생소했던 때였다. 이미 해외에는 UFC가 런칭되었지만, 적자에 적자를 거듭하다 2001년 파산 직전에까지 몰렸고, 대한민국은 MMA라는 개념이 전무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하지만, 레슬링을 전공했던 유우성은 미지의 세계였던 종합격투기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그가 첫 싸움을 하고 받은 파이트머니는 단돈 3만원, 누구에게는 단돈일 수 있지만 유우성에게는 새로운 세계로 뻗어나가는 종잣돈이 되었다.  

스피릿MC, 김미파이브 등 대한민국 격투기의 토대가 되었던 대회부터 산전수전 겪어온 베테랑 파이터, 지금은 선수생활은 잠시 내려놓고 학교폭력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을 돕기 위한 유튜브 컨텐츠를 만들고 있는 유우성, 생계가 어려워 고구마를 팔던 시절에서 지금 체육관 두 곳을 운영하는 관장님이 되기까지 유우성이 이야기하는 격투기의 인생은 무엇일까? 풍파가 많은 그의 인생스토리가 궁금해졌다. 그를 만나기 위해 팀유짐으로 카메라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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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하게 취재진을 맞이한 유우성에게 근황을 들어볼 수 있었다. 최근 자신을 도발한 사람과 스파링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그 싸움이 무산된 것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유우성은 "그는 빌런이었다. 먹이사슬처럼 이 세상에 빌런이 계속 생성이 된다는 게 신기하고, 그분 덕분에 내 이미지가 실추되었지만 주위에서 응원의 댓글이나 메시지를 보며 사회가 따듯하다고 생각했다."라고 이야기하며 최근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약간의 소란은 있었지만, 그의 유튜브는 성장중이다. 격투 유튜브로서는 넘기 힘든 10만 구독자를 훌쩍 넘겼다. 채널 폭파의 아픔을 딛고 얻은 구독자 10만이기에 더욱 애착이 크다. 유우성은 "상승세를 타다가 갑자기 채널이 날아갔다. 그것 때문에 심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았었다."라고 회고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유튜브를 이어나가고 싶은 강한 의지와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유우성은 "어렸을 때부터 힘든 시절을 겪고 성장하면서 그것을 일기처럼 만들고 싶었고, 사람들이 격투를 통해 학교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기 위해 시작했다."라고 설명했다.

그의 컨텐츠는 학교폭력 가해자들과 스파링을 하며 그들에게 역지사지의 심정을 느끼게 해주는 컨텐츠, 약간 가혹하다고 할 수 있지만 학교폭력과 정의롭지 못한 세상을 바꾼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왜 그는 학교폭력 가해자를 응징하는 컨텐츠를 시작했을까? 그는 "유튜브를 하기 전에 체육관을 하면서 학교폭력 피해자들의 고충을 들었고 나를 통해서 피해자들이 자신감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그래서 꾸준히 도와주게 되었는데 많은 분들이 응원을 많이 해주셨다. 
피해자들 역시 자기의 말을 들어주고 생각보다 형같고 무서울 것 같은 이미지이지만, 재미있고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그러다보니 많이 찾아와서 좋다."라고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

유튜브 이외에도 그는 종합격투기 체육관인 팀유짐을 가산디지털단지와 영등포에서 운영하고 있다. 그는 "종합격투기 선수로서 체육관을 2개씩 운영하는 사람들은 없는 것 같다. 세계대회를 뛰면서 느꼈던 점은 금전적인 부분이 힘들다는 것이었다. 운동을 편하게 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체육관 오픈을 하게 되었는데, 코로나 2년 동안 힘들었고, 금리 대란이 오면서 힘들지만 잘 버텨내고 있다."라고 웃어보였다.

체육관 업무와 유튜브 컨텐츠 촬영, 유명세를 얻은 만큼 그의 하루는 쉴틈이 없다. 그의 하루는 아침 8시에 시작된다. 집청소를 하고, 아이와 함께 논 후, 아침밥을 먹이고 출근을 한다. 오전 10시 선수부 훈련을 가르친 후 끝나면 점심을 먹고 쉬다가 외부활동을 진행한다. 부인이 공인중개사를 하고 있어 그 일을 도와주다가 체육관에 6시 30분에 와서 11시까지 하고 유튜브를 찍은 후 2~3시 정도에 집에 가는 것이 그의 하루일과다. 수면시간이 다섯시간도 채 되지 않는 것이 그의 하루다. 

특히 촬영은 체육관 운영이 모두 끝난 11시에 진행한다. 찍다보면 새벽 두시 세시를 훌쩍 넘기기 일쑤다. 왜 유우성은 새벽 촬영을 고집할까? 그는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체육관이 바쁘다. 유튜브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체육관 관원들에게 피해를 줄 수는 없다. 시간과 돈을 내서 왔는데 내 유튜브만 생각을 해서 찍으면 회원들을 등한시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체육관 운영을 모두 마치고 나서 찍는다."라고 새벽촬영의 이유를 설명했다.

반복되는 생활, 항상 사람은 지치기 마련이고 똑같은 패턴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쉬운일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번아웃을 경험하고 심하면 다니는 직장을 그만두기까지 한다. 그는 번아웃을 어떻게 극복하고 있을까? 유우성은 "나는 리셋을 하는 편이다. 월말이 되면 내 스스로 리셋을 한다. 이번 달에 열심히 해서 천만원을 벌었다면 다음달 다시 0으로 시작해서 1000만원을 벌 수 있도록 노력하는 편이다. 잘못된 부분을 보고 실수하기 않기 위해 리셋을 하기 때문에 남들보다 덜 지치는 것 같다."라고 리셋이 핵심 키워드임을 설명했다.


근황을 들었으니 이제 그의 격투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1세대 격투가로서 2000년대 초반 아무도 몰랐던 세게에 뛰어들었던 그때를 물어보았다. 질문에 그는 주저없이 "힘들었다."라는 말이 처음으로 나왔다. 그의 첫 파이트머니는 얼마였을까? 그는 "처음에 싸우다가 이를 맞아서 앞니가 흔들리더라. 한달동안 정말 아팠다. 파이트머니를 봉투에 받았는데 3만원을 받았다. 그것을 아직도 갖고 있다. 정말 소중한 돈이었다."라고 이야기했다.

비록 병원비도 나오지 않는 푼돈이었지만 그에겐 종합격투기 선수가 되었다는 자부심이자 자존심이 깃들여 있는 돈이었다. 때문에 그는 아직 파이트머니를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소중하게 보관중이다. 그는 "남들이 보기엔 그냥 돈이고 봉투일 수 있지만, 그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 과거를 우습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과거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이야기했다.

전적사이트 셔독에서 그의 전적은 13승 7패, 하지만 그가 실제로 싸운 전적은 30전이 넘는다. 그는 자신의 격투 기록의 대부분이 소실되었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드러내보였다. 그는 "예전에는 너무 열악했다. 내가 뛴 경기가 30전 정도 되는데 디지털화가 되어있지 않아서 경기 영상이 없다. 그 전에 있던 것들을 디지털화해서 만들었다면 좋았겠지만, 그 자료들이 없어진 것이 아쉽고 2005~06년 넘어가면서 CD로 받는 시절이 와서 그나마 30전 중에 영상 갖고 있는게 좀 있어서 위안을 삼고 있다. 지금은 확실히 달라졌다."라고 이야기했다.

여전히 격투기의 위치는 열악하다 "지금도 선수들은 투잡을 하고 있다."라고 말하는 그의 표정에서 격투기의 입지가 조금이라도 더 올라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묻어있었다. 하지만, 그가 힘겨운 인생을 버틸 수 있던 이유도 바로 격투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운동이 좋아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하는 것이기 때문에 힘들다기 보다는 다른 의미인 것 같다. 운동을 하는 것 자체가 좋아서 잘 버틴 것 같다."라고 웃어보였다.


수입의 차이도 사뭇 궁금해졌다. 열악했던 시절에 비해 그의 생활은 조금 나아졌을까? 조심스럽게 그의 수입에 대해 물어보았다. "예전에는 한달에 제일 많이 벌었을 때가 70만원 정도 벌었다. 여기에서 생활비를 빼고 조금 남았다."라고 설명한 유우성은 "지금은 맥스로 1억 조금 안되게 벌어봤다. 1000배 정도 늘었다."라고 이야기하며 1세대 격투기로서 치열하게 살아온 삶의 보상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의 성공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이 물음에 그는 간단하게 답했다. "항상 무엇을 하더라도 어떻게 하면 잘할까 생각을 했다."라는 이야기였다. 자세히 듣고 싶었다. 그는 "운동을 하면서도 잘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어떻게 하면 저 선배처럼 잘할 수 있을까 저 사람처럼 따라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어서 "종합격투기에는 스승이 없다. 복싱, 킥복싱 잘하는 사람에게 파트로 동냥을 하면서 배웠었다. 체육관 운영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처음 유짐 팀파시를 열었을 때 위치가 구석에 있었다. 지하철에서 20분 정도 걸리고,  반지하, 지하 이런 곳에서 운영을 했다. 그래서 어떻게하면 운영을 잘할까 생각을 했다. 직원을 뽑더라도 잘한다는 사람을 뽑았다. 새로운 것을 하더라도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많이했다."라고 고뇌와 고민이 있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의 끊임없는 노력 덕분에 팀유짐에 다니는 회원들이 많이 늘었다. 제2의 유우성을 꿈꾸는 격투가들도 열심히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그가 말하는 격투기의 매력은 무엇일까? "주짓수부터 복싱, 킥복싱을 다들 열심히 하고 있다. 이 운동을 열심히 해보면 스포츠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격투기를 해보면 재미있다. 일반 회원들도 좋아하고 유튜브를 틀면 격투 유튜버들이 재밌잖나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다.

근육이 크고 몸이 좋다면 격투기도 잘할 수 있는지도 물어보았다. 그는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봤을 때 근육이 많으면 펀치가 강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격투기에서는 전체적인 근육의 밸런스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보디빌딩처럼 특정부위만 좋은 것이 좋은 것이 아니듯 격투기도 힘, 파워, 스피드, 유연성, 모든 것들이 골고루 가야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덧붙였다. 그의 훈련 방식도 이것에 맞춰져 있다. 그는 "포인트적으로 많이 가르친다. 타격이 약하면 타격에 맞는 사이즈나 스타일에 맞게 가르치고, 그라운드가 약하면 그라운드에 맞게 가르친다. 주짓수나 복싱, 킥복싱, 레슬링이 사이클처럼 돌아가는 것이 MMA이기 떄문에 종합적인 운동을 잘해야 이 운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이야기했다.

레슬링으로 시작해 복싱, 킥복싱을 연마하며 종합격투기의 세계로 들어간 그, 자신이 배웠던 격투기술 중에 어떤 종목이 가장 자신에게 중요했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피지컬로 보면 레슬링만큼 중요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어서 "유연성, 파워, 스피드, 체력, 순간 판단력 부분에서 좋아진다. 2000년도 초반부터 레슬링을 했던 사람들이 종합격투기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챔피언을 했다. 지금 현역 선수들도 레슬링 출신 선수들이 넘어왔다. 때문에 레슬링이 MMA에 있어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레슬링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1세대 격투가로서 격투기의 명암을 모두 경험해본 선수로서 대한민국 격투기가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는 "예전까지 체육은 엘리트 체육인들만 활성화가 되었다. 지금은 엘리트 체육에서 벗어나 생활체육으로 가고 있는데 대중화가 되면 저변확대가 될 것이고 레벨이 정해지고 리그가 생길텐데 예전에는 극소수였다면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의 리그가 생기고 계속 경쟁을 한다면 전체적인 레벨도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생활체육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저변이 넓어지는 격투판 속에서 그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그는 사람들에게 꿈을 찾아주고 싶어했다. 비록 종합격투기로서 성공은 하지 못할 지라도 꿈을 먹으며 생활할 수 있는 삶, 그런 삶을 유우성은 만들어주고 싶어했다. 

"제자들이 
비록 운동선수를 못하게 되더라도 경호나 경찰, 소방 등 여러 방면에서 진로를 정해주고 있습니다. 지팡이를 드는 날까지 체육관을 운영할 것 같아요. 종합격투기 안에는 철학이 있어요. 단지 치고박고 하는 운동일 수 있지만, 그 속에는 인내가 있고 자신감 자존감을 높일 수 있어요 저는 앞으로도 사람들에게 이런 자신감을 높여주고 길을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촬영=총명위
사진=몬스터짐 DB
글=반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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