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TAB핏 청담점, 운동기구가 꽉 찬 피트니스 센터 한켠에 앉아 마케팅 책을 보고 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책에 집중하느라 기자가 오는 지도 몰랐던 그는 기자가 인사를 건네고 나서야 읽던 책을 내려놓고 환한 얼굴로 인사를 건네며 악수를 청했다. 바로 TAB핏의 대표이자 보디빌더, 트레이너로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정호중이다.


2호점을 차린 이후 정호중의 삶은 눈코뜰새 없이 바빴다. 매년 나가던 대회마저 미뤄두고 다니던 대학원까지 휴학계를 냈을 정도로 정호중은 센터 운영에 몰두하고 있다. 어떤 것이든지 프로페셔널 해야한다는 그의 지론 때문인지 그는 처음 시작부터 지금까지 새벽에 출근해 밤늦게 퇴근하는 삶을 여전히 이어나가고 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보디빌더로서의 삶, 그리고 '보디빌딩 일타강사'로서 강한 인상을 남기며 인기를 얻고 있는 트레이너의 삶, 하지만 그런 삶 속에서 정호중은 남이 절대로 모를 번뇌와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자신을 끊임없이 돌아보고 누구보다 치열한 삶을 살아온 도시의 수도승, 인간 정호중의 삶이 사뭇 궁금해졌다. 

바쁜 시간을 쪼개 몬스터짐과 인터뷰를 가진 정호중은 자신이 겪었던 위기, 그리고 그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 선수와 트레이너, 피트니스 센터 대표의 딜레마 등 여러가지의 주제를 통해 자신의 진심을 가감없이 이야기했다. 피트니스 인생 하루하루가 미션의 연속이었다는 정호중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탭핏 정호중 대표의 모습

최근 근황에 대해 TAB 핏 2호점 오픈 이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이야기한 정호중은 "갑자기 오픈을 하게 되었다. 원래는 대학원도 다녔는데 이 지점을 열게 되면서 다 올 스톱을 했다. 대회도 1년 쉬었고 센터 운영을 위주로 포커스를 맞춰서 생활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갑작스러운 2호점은 뜻밖의 기회에서 찾아왔다. 기존 회원들 덕분에 코로나-19 이후 어려웠던 시기를 넘긴 그에게 찾아온 제안, 대치점도 자신의 의사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기에 심사숙고했지만 그를 믿고 따라준 회원의 제안을 받아들여 청담동에 작은 헬스장을 지은 것이 3개월 째, 2호점을 시작하며 그는 많은 것이 바뀌었다. 안보던 마케팅 책도 보고 SNS나 포털 사이트 마케팅도 시작했을 정도다.

때문에 정호중의 하루는 TAB핏에서 시작해 TAB핏에서 끝난다. 아침 여섯 시부터 밤 10시까지 그의 코칭이 이어진다. 대표로서 다른 트레이너들에게 맡길 수 있는 일이지만, 정호중은 다른 트레이너보다 많은 수업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왜 그는 편한 길이 아닌 어려운 길로 가고 있는 것일까? 그는 TAB핏이 가지는 특성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저희 센터는 자율적 책임제라는 개념이 큽니다. 선생님들이 할 수 있을 때 운동이나 본인이 공부하고 싶은 걸 했으면 좋겠고, 거기서 궁금한 것을 물어보면 제가 알려주다보면 저도 배울 게 있어요 그래서 제가 상주하는 시간이 당연히 많아야 해요. 그리고 제가 여기까지 오게끔 저와 함께 해주신 회원님들이 일찍 나오세요. 제가 대표로 있고 사업을 한다고 보시는 분도 계시지만, 본질은 제가 트레이너에요. 센터가 있고 대표라고 해서 기존 회원님들과 수업을 안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가 센터를 운영하면서 느끼는 보람은 무엇일까? 바로 사람과 교감하며 신뢰를 쌓아가고 있는 것을 우선으로 꼽았다. 그는 "회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수업이고, 그 수업을 마음껏 하기 위해 센터를 열었다. 그리고 그 센터에서 나의 모습을 본 선생님들이 지원을 해주셔서 규모가 커지고, 그 덕분에 이렇게까지 올 수 있었다."라고 지금까지 함께한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이제 센터 이야기에서 정호중 트레이너에 대한 주제로 넘겨보았다. 그가 처음 트레이너를 꿈꾸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자연스럽게 일상을 살다보니 트레이너가 내 삶 속으로 들어와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대학교를 가기 위해 여러가지를 찾다 가장 좋아하는 운동을 통해 대학으로 갔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히며 다양한 아르바이트 자리를 전전했지만, 미래를 그려보며 자신이 좋아하는 운동으로 살아간다는 모습이 일반적인 삶보다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트레이너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하지만 그가 처음 트레이너에 들어섰던 길은 2000년대 후반, 트레이닝이나 퍼스널 트레이닝에 개념이 막 자리잡던 시기였다. 체대를 나와 어느정도 지식은 있었지만, 아직까지 남을 가르친다는 것이 어색했던 정호중 트레이너, 트레이너 초기 그가 회원들께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시간을 주세요" 였다. 어설픈 지식으로 선무당이 되는 것보다 확실한 지식으로 회원들을 가르치겠다는 정호중의 코칭 철학이 이 때부터 생긴 것이었다.

또한 뱉은 말을 지키기 위해 그는 수업 후 집에 돌아와 밤새 노트북을 켜고 분석했다. 회원들의 운동영상과 본인의 운동영상 또는 세계적인 선수들의 운동영상을 비교하다 일시정지를 누르고 각도기와 수성사인펜으로 차이점을 분석해 회원들에게 보내는 것이 그에겐 일상이었다. 너무 많이 노트북을 보다 모니터가 깨져 노트북을 버린 것도 수차례, 그렇게 그는 헬스계의 일타강사로 거듭나고 있었다.

어느정도 트레이너로서 성공한 지금도 그는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7년을 배우는 데 투자했다. 배움의 영역도 다양했다. 대학원을 다닐 때 무용 전공 트레이너에게 스트레칭만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도 있었고, 최근에는 인체의 역학구조를 위해 필라테스를 배우며 여전히 공부하고 있다. 왜 그가 최고의 트레이너가 되었는지 그의 일상을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그에게도 고민과 고통의 시간은 있었다. 바로 선수와 트레이너, 대표 사이의 딜레마였다. 세 가지 모두 성공하고 싶다는 욕심으로 달리다보니 어느 순간 번아웃이 찾아왔다. "원래 삼재라는 것을 믿지 않았는데 삼재를 믿게되었을 정도로 정말 힘든 나날이었다."라고 이야기했을 정도로 심신이 상당히 지쳤다. 

아픈 몸과 마음을 이끌고 대회에 나서기도 했지만, 좋은 성적이 나올 수 없었고 턱걸이를 하나도 하지 못했을 정도로의 몸과 정신과 상담을 받으러 갈 정도로의 마음을 갖고 주변에 도움을 청했다. 그리고 '내려놓기'라는 것을 배웠다. 자신의 인생에 있어 우선순위를 정하고 그 이외의 것들은 내려놓는 것을 이야기했고 정호중은 대학원과 선수생활을 조금 내려놓으며 심신의 피로에서 많이 빠져나온 상태다.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정호중을 버티게 한 것은 결국 사람이었다. 하루하루 미션 같았던 회원들과의 레슨으로 쌓은 신뢰관계가 시간이 지나서 정호중에게는 도움이 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성적이 잘나온다고 회원들이 많은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오히려 내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렇게 대회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동기부여를 느꼈다거나 지인들을 소개해준다거나 그런 것들을 보면서 오늘 하루 하루 미션만 성공하면 그게 쌓여서 어떻게든 미래에 힘든 나에게 뭔가 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제 그는 딜레마에서 벗어나 자신의 일에 집중하는 방법을 깨달았다.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가며 사람들과의 관계를 쌓아가는 것, 그가 이야기하는 딜레마 탈출 비결이다. 10년이 지난 후 자신의 모습에 대해 "지금처럼 헬스장 한켠에 앉아 책을 보지 않을까 싶다."라고 웃어보이는 그의 표정 속에서 앞으로의 희망찬 미래를 볼 수 있었다.

아픈 몸과 마음을 이끌고 대회에 나서기도 했지만, 좋은 성적이 나올 수 없었고 턱걸이를 하나도 하지 못했을 정도로의 몸과 정신과 상담을 받으러 갈 정도로의 마음을 갖고 주변에 도움을 청했다. 그리고 '내려놓기'라는 것을 배웠다. 자신의 인생에 있어 우선순위를 정하고 그 이외의 것들은 내려놓는 것을 이야기했고 정호중은 대학원과 선수생활을 조금 내려놓으며 심신의 피로에서 많이 빠져나온 상태다.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정호중을 버티게 한 것은 결국 사람이었다. 하루하루 미션 같았던 회원들과의 레슨으로 쌓은 신뢰관계가 시간이 지나서 정호중에게는 도움이 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성적이 잘나온다고 회원들이 많은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오히려 내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렇게 대회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동기부여를 느꼈다거나 지인들을 소개해준다거나 그런 것들을 보면서 오늘 하루 하루 미션만 성공하면 그게 쌓여서 어떻게든 미래에 힘든 나에게 뭔가 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앞으로의 꿈에 대해 물어보았다. 

"
제가 트레이너 선수생활을 10년 이상을 했고 트레이너 생활도 그 이상이 됐는데 지금 저랑 가장 함께 오래하고 계신 회원님이 11년 차세요. 11년 동안 한번도 쉬지 않고저랑 레슨을 해주셨고 제가 어딜 가도 함께 해주셨는데 연세는 저의 아버님보다 이제 많은 분이죠 그분부터 연차별로 회원님들이 다 있어요. 친구들과 술 안 마신 지도 5년이 넘었는데, 회원님들과 당장 어제 있었던 그분들의 딸 얘기, 자식 얘기 아니면 제 고민거리를 얘기해요 게 가장 좋은 거 같아요. 제 트레이너 생활은 그냥 회원들과 같이 늙어가는 것? 이분들이 허락하시는 때까지 계속 함께 가고 싶습니다."
글 = 반재민
사진 = 이지은
영상 = 총명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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