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만든 반항아' 질풍노도의 시기의 그를 설명할 수 있는 단어였다. IMF로 집안이 기울어지고, 가난했던 그는 세상을 욕하며 방황하던 날이 이어졌다. 모든 것이 부정적으로 느껴졌고, 삶에 대한 의욕도 찾을 수 없었다. 그랬던 반항아의 눈에 한 노인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 노인은 자신의 인생을 바꾸는 선각자가 되었고 그는 시대의 반항아에서 어엿한 20년차 트레이너로 성장할 수 있었다. 

피트니스에 대한 정보와 인프라가 크지 않았던 2000년대, 체육 전공이 아니었던 비전공 트레이너로서 그는 많은 고난과 역경을 만났다. 트레이너와 선수를 병행하면서 큰 부상을 당하기도 했고, 트레이너에 대한 회의감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그가 바벨을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자신을 믿고 따라주는 회원들에 대한 격려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는 경력 20년의 트레이너, 그리고 보디빌더로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나가고 있다.

반항아였던 자신이 트레이너로 바뀐 결정적인 순간, 과연 그의 운명을 바꿨던 그때 어떤 일이 있던 것일까? 몬스터짐 광화문 센터의 김천호 트레이너를 만나보았다.



김천호 트레이너의 코칭 모습

최근 결혼 준비와 퍼스널 트레이닝으로 정신이 없지만, 그는 몬스터짐의 인터뷰 요청에 흔쾌히 응했다. 특수학교 산하 피트니스 센터 트레이너로 활동하다 코로나로 인해 수업에 차질을 빚고 몬스터짐으로 둥지를 옮긴지 2년째, 몬스터짐의 생활에 대해 김천호 트레이너는 만족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요즘 자유로운 분위기가 몬스터짐 광화문 센터의 트랜드라고 이야기하는 김천호 트레이너에게 처음 바벨을 잡았던 때를 물어보았다.

"중학교 2학년 때인 것 같아요 그때가 IMF였고, 아버지가 하시던 사업이 힘들어지면서 학원이나 사교육을 받을 수 있는 형편이 안됐어요 그러다 보니 사춘기도 왔었고 방황을 했어요. 그때 제가 하고 있었던 생각이 "나는 왜 집에 돈도 없고 학원도 못 다니고 뭐도 못하고 나이키 신발도 못 신고" 어떻게 보면 비관하고 부모님 탓을 하고 이렇게 살던 시기였죠. 공원에 하염없이 앉아 있는데 어떤 어르신이 다가오시더구요."

그 노인은 반항아 김천호의 인생을 바꾸게 되는 중요한 선각자가 되었다.

"공원에 앉아 있었는데 어르신이 빨간색 페인트 장갑을 딱 끼시고 아무렇지 않게 평행봉을 막 하시는 거예요 그때
 그 어르신의 모습을 보고 "어 나도 저거 해 봐야지" 하고 그냥 무의식적으로 그 어르신이 평행봉을 하시고 지나갔을 때 거기에 딱 매달려보려고 했는데 올라가지도 못하겠는 거에요. 상대적으로 저 어르신은 저보다 연세가 훨씬 많고 쇠약하실 것 같다는 이미지가 있었고, 저는 정작 젊고 어린데 아예 올라가지도 못하겠는 거에요."

"그래서 깨달았죠 아 이거는 나의 문제다. 그날 이제 깨달았거든요 아 이게 세상이 다 남 탓으로만 보고 
나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무조건 무슨 일 있어도 내가 이 평행봉을 하고야 말겠다고 생각하고 그 때 처음으로 운동을 그렇게 시작한 거 같아요."

운동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집안 형편이 되지않아 제대로 된 트레이닝은 받아보지 못했지만, 노인이 지나간 평행봉에 손을 올리며 자신의 몸을 가꿔나가며 그렇게 질풍노도의 시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그렇게 5년을 산 속 헬스장에서 보낸 어느 날 친한 친구로부터 제의를 받게 되었다. 자기가 다니던 헬스장에 다니지 않겠느냐는 제의였다. 한 달 6만원이었던 등록비를 거의 다 내주겠다는 조건이었고, 그렇게 그는 전문 피트니스 센터에 들어가게 되었다.


대학교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며 친구와 함께 헬스장을 다니며 취미로 몸을 가꾸고 있던 하고 있던 어느 날 그의 인생이 바뀌게 되는 운명적인 사건이 찾아왔다.

"운동을 하기 전에 관장님께 인사를 드렸는데 갑자기 어떤 회원에게 "우리 선생님이에요" 라고 저를 소개하시더니 "우리 회원님 스쿼트 좀 알려 주세요" 라고 말씀 하시는데 너무 당황했어요 그래서
제가 "선생님 아닌데요" 그랬더니 "아이 운동 오래 했으면 선생님이지" 그렇게 이야기를 하셨어요. 회원님이 스쿼트를 알려달라고 정중하게 말씀을 하시길래 제가 아는 최대한의 지식을 활용해서 스쿼트 시범을 보여 드렸죠."

그 한번의 스쿼트가 평범했던 김천호의 삶을 바꾸게 되는 울림이 될 줄은 그조차도 몰랐다. 회원에게 감사의 인사를 받는 본인의 모습을 보면 큰 보람과 함께 내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이야기 한 김천호는 그날로 트레이너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물론 비전공자 트레이너로서 쉬운 것은 없었다. 게다가 2000년대 초반에는 대한민국에 피트니스 문화가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던 시기였다.

하지만, 그가 트레이너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학창시절부터 꾸준하게 보여주었던 운동에 대한 열정이었다. 당시 체육관 관장은 김천호의 열정에 큰 감명을 받았고, 보디빌딩 자격증 등 여러가지 지원을 전폭적으로 아끼지 않으며 그의 트레이너 생활을 뒷받침해줬다. 비 전공자였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노력하고 더 많이 공부했다. 선배들로부터 전해지는 운동 방법들을 듣고 혼자 적용해보기도 했고, 헬스 서적을 찾아다니기 위해 전국의 서점과 책방을 뒤지기도 했다. 그렇게까지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누군가에게 존중받는다는 성취감을 계속 느끼고 싶다는 하나의 목표 때문이었을 것이다.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마음은 김천호 트레이너에게 있어 큰 자산이다. 때문에 자신의 코칭에서도 회원들의 자신감과 자존감을 높이는 것을 큰 목표로 하고있다. 근육을 키우는 것이나 다이어트나 여러가지의 방법이 있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자기의 존재감과 함께 가치를 높이는 것이라는 점을 그는 파악하고 가르치고 있다.

"저 또한 운동으로 자존감도 올라갔고, 스스로 제가 원하는 무언가를 가르쳐 주려고 노력하는 그 과정에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많이 갖기 때문에 회원님들에게도 똑같이 그런 부분을 좀 느끼게 해주고 싶은 목적으로 회원님들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그의 트레이닝 방식은 엄격하다. 타협과 방심은 허용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론 약간 좀 보수적인 거 같다."라고 스스로 이야기할 정도다. 식단에서는 치팅을 배제하고 많이 허용을 한다고 하더라도 자유식을 일주일에서 두세번 허용할 정도로 상당히 엄하고 운동 역시 중량이나 횟수보다는 운동에 대한 메커니즘을 파악하는 것이 먼저라고 할 정도로 상당히 정통성 있는 트레이닝을 추구하고 있다.

그렇게 엄하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매년 엄격한 자기 검증의 과정을 거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트레이너 이외에도 보디빌더로서 활동하고 있다. 서울시 대회에 나가 입상도 여러번 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역시 운동을 처음 시작할 때 만큼 보디빌딩에 처음 도전하는 것 역시 고난의 연속이었다. 선배의 권유에 무턱대고 보디빌딩에 도전했지만, 욕심이 앞섰다. 훈련 도중 허리를 다쳐 병원에 가게 된 그는 의사로부터 "운동을 해서는 안될 몸이다."라는 말을 처음 듣게 되었다. 그는 절망했다. 무엇보다 건강한 몸을 만들어줘야 하는 트레이너가 자신의 몸 하나 건사하지 못했다는 죄스러움도 있었다.

하지만, 그 어려움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좌절이라는 감정을 지워내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 지워내는 과정에도 그는 선수로서 대회를 준비하고 출전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며 그는 자신의 몸이 보내는 신호를 알고 이를 활용해 몸을 만들어나갔고, 성적은 자연스럽게 좋아지기 시작했다. 운동을 하며, 트레이너를 하며 가장 뿌듯했던 순간을 뽑는다면 바로 그때라고 할 정도로 그는 보디빌딩과 운동을 즐기고 있다.


"내가 다쳤다는 것을 인지하고 부상이 있는 부분을 사용하지 않고 준비를 해보자라고 마음을 먹는데 꽤 오랜시간이 걸린 것 같아요 시합을 나간다고 하면 완벽한 몸을 가져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보니 남들보다 뒤쳐지는 운동부위가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서 운동을 내려놔야 한다는 영역들을 못 내려놓고 하다가 서른 즈음에 냉철하게 내려놓고 나이가 들었으니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고 생각해서 서른에 시합에 다시 도전하게 되었죠, 그 과정에서 평온하게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덧 그는 20년차 트레이너가 되었다. 피트니스 시장의 선배로서 책임감도 느끼고 있다. 무엇보다 운동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에 옳고 그름 보다는 각자 다름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회원들이 각자 목표를 달성했을 때 트레이너로서 큰 보람을 느낀다는 김천호 트레이너, 인생의 절반을 트레이너와 운동을 위해 달려온 그는 앞으로 남은 인생과 트레이너로서의 삶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가장 불안한 것이 저의 세대가 트레이너를 어느 정도 나이까지 할 수 있느냐를 가져가고 있는 세대라고 생각해요. 언제 은퇴를 해야할지 모른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도 있고 한편으로는 더 분발해야겠다는 생각도 있고 저는 당연히 후자로 더 분발해서 내가 더 나이가 들어서도 트레이너가 꼭 젊은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나이가 들어도 연륜과 장점이 있다는 것을 어필하고 싶고 지금도 여전히 발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글 = 반재민
사진, 영상 =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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