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11일 프로 4년차 골키퍼 안찬기에게 아주 특별한 날이 찾아왔다. 그의 프로 데뷔전은 예기치 않는 순간,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수원 삼성과 인천 유나이티드의 경기, 전반 26분 수원의 주전 골키퍼 양형모가 뒷공간으로 떨어진 패스를 처리하기 위해 나오다 인천의 김준엽과 그대로 충돌했다. 목이 꺾이는 것이 육안으로 보였을 정도로 큰 충격이었다.

양형모는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고 의료진의 치료를 받은 다음에야 간신히 일어나 남은 19분을 소화할 수 있었다. 안찬기는 혹시 모를 골키퍼 교체를 대비해 몸을 풀고 있었다.

전반전이 끝난 후 양형모가 어지럼증을 호소했다. 뇌진탕이 의심되는 증상 중 하나였다. 양형모는 진단을 받기 위해 병원으로 향했고, 김병수 감독은 안찬기에게 출격명령을 내렸다. 2020년 프로에 입단한 지 3년 만에 맞는 프로 데뷔 첫 경기 출장, 그것도 매탄중-매탄고를 거치며 뛰고 싶은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던 곳, 빅버드에서의 데뷔전이었다.

설레는 데뷔전이지만, 안찬기는 좋아할 시간도 없었다. 제르소, 음포쿠, 에르난데스, 김보섭 등 인천의 막강한 공격라인을 막아내야 하는 임무가 주어졌기 때문이었다. 긴장이 되는 순간, 김병수 감독이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침착하고 차분하게 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야." 안찬기의 집중력과 동기부여가 올라가는 순간이었다.

그라운드에 들어서자 주장 이기제를 비롯한 선배들이 그를 다독였다. 긴장하지 말고 하고싶은 대로 하라는 이야기었다. 크로스 상황에서 자신있게 나오라는 주문도 빼놓지 않았다.  

주어진 시간은 45분, 비록 갑자기 들어간 상황이었지만 안찬기는 준비된 골키퍼였다. 이미 훈련 때부터 곧바로 투입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춘 그였고, 인천의 공격은 자신감 넘치는 그의 손에 번번이 걸렸다.

빌드업 상황에서도 자신감 있는 킥으로 관중들의 탄성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운도 따라줬다. 후반 32분, 제르소의 슈팅이 골대를 맞고 튀어나왔다. 간담이 서늘했지만, 행운의 여신도 안찬기를 향해 미소를 지어보이는 듯 했다. 그렇게 안찬기는 가슴 뛰었던 45분 데뷔전을 무실점으로 무사히 소화해냈다. 

김병수 감독 역시 서브 골키퍼의 '청출어람'에 흡족한 반응을 보였다. 김 감독은 안찬기에 대해 "굉장히 고마웠다. 전반전 끝나고 형모가 힘들어해서 바꿨는데 염려스러웠지만 침착하게 잘해줬다고 생각한다."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안찬기는 자신의 데뷔전에 대해 '50점'이라고 평가했다. 보여준 것보다는 보여줄 것이 많다는 이유에서다. 안찬기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갑작스러운 상황이었긴 하지만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고 그리고 잘 따라가려고 노력하겠다."라고 자신을 믿고 기용해준 김병수 감독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빅버드에서 프로 데뷔전을 치른 기분에 대해서 "어렸을 때부터 중학교 고등학교로 매탄중 매탄고를 나오면서 볼보이를 할 때 여기서 언제 뛰어볼까라는 생각을 많이 갖고 있었는데 꿈에 그리던 팀, 꿈에 그리던 그라운드에서 구장에서 뛰니까 감회가 남달랐다. 좀 떨리는 면도 있었다."라고 수원에서의 첫 출장에 대해 이야기했다.

2020년 입단 이후 안찬기는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동안 수원의 골키퍼는 노동건과 양형모가 번갈아 지켰다. 지금도 수원의 주전 골키퍼는 양형모다. 이날 경기에는 부상으로 도중에 교체되었지만, 병원 검진 결과 양형모는 큰 부상이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벤치에 앉아 준비를 해야할 수 있다. 누군가 잘하지 못해야 기회를 받은 골키퍼의 숙명이다.

하지만, 안찬기는 의연하다. 기회는 또 오는 것이라 생각하고 자신에게 오는 기회를 잘 잡기 위해 인내하고 준비하겠다는 의지를 이야기했다. 이날 경기를 계기로 양형모가 견고했던 수원의 골키퍼의 체제에는 균열이 생겼다. 절대 주전도 후보도 없는 상황, 안찬기는 주전 자리에서 승리할 자신이 있을까?

그는 미소를 지으며 "항상 자신 있다고는 말하는데 자신이 있어야 한다. 어떻게든 이겨내야 또 프로라는 게 이겨야 그 상대를 이겨야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기기 위해 몸을 관리하고 컨디션을 관리하려고 한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팬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았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에게 할 수 있다는 힘을 불어넣어준 팬들에게 "경기가 끝나고 이름을 외쳐주시는데 솔직히 울컥했다. 내가 언제 이 응원을 받아볼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그렇게 소리 쳐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우리도 올라가기 위해 이를 갈면서 노력하고 있다. 팬들도 수원을 포기하지 말아주시고 항상 응원해 주시고, 더 응원해 주시면 저희도 그거에 맞게 보답하겠다."라고 팬들에게 성원에게 부탁했다.

마지막으로 안찬기에게 골키퍼의 운명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대부분의 후보 골키퍼들은 주전의 그늘에 가려 1분도 그라운드를 밟지 못하고 사라진다. 봄을 기다리며 인내하는 후보 골키퍼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까? 그는 간단하게 이야기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진인사대천명이라는 말이 제일 마음에 와 닿더라고요. 팀 매니저도 "잘 준비하고 있어라. 준비하고 있으면 언젠가 기회 오는데 그 기회 올 때 네가 잘한 모습 보여주면 언젠가 또 기회가 오고 그 기회를 또 잡으면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너 잘할 수 있다고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그러더라고요. 기회를 잡지 못하더라도 항상 준비한다면 언젠간 그라운드에서 뛰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될 거에요."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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