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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짐] 지난 3월 9일 한 격투기 커뮤니티에서 회원명 레미본향숙이는 ‘로빈 블랙 해고당한 듯하네요.’라는 제하의 글을 포스팅했다. 내용은 아래와 같다.

“파이트 네트워크 긴축 정책 대상에 포함되었다고 합니다. ‘일자리를 잃어 걱정스럽고, 앞으로도 이쪽 일을 계속하고 싶다’라고 하는데, 눈물이 앞을…….”

조회 수 약 2,700을 기록한 이 글에는 25개의 댓글이 달렸다. 25개의 댓글 중 2개는 로빈 블랙이 UFC가 아닌 파이트 네트워크에서 퇴사하였다는 확인이었고, 3개는 블랙의 상황에 대한 분노의 표현, 그리고 나머지 20개는 본문 작성자와 마찬가지로 안타까움, 아쉬움, 울적함의 토로였다.

어째서 글쓴이 포함 24명의 국내 격투기 팬들이 캐나다의 한 격투전문 방송사에서 분석가 겸 리포터로 활약하다 실직하게 된 로빈 블랙의 처지에 이렇게 일치된 반응을 보였을까. 그것은 그가 최두호의 열혈팬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종합격투기를 상징하는 3대 파이터 김동현, 정찬성, 최두호 모두에게 세계로 가는 진입로를 제공한 일본의 대회사 DEEP에서 2010년경부터 영어 해설을 맡았던 블랙은 2013년 보기 드문 난투극 끝에 상대였던 마루야마 쇼지를 2라운드 중반에 잠재운 최두호의 기량에 대한 대호평을 쏟아내며 모든 시청자가 듣고 있는 가운데 최두호의 UFC 입성은 시간문제일 뿐이라 단언했다. 

이듬해 11월 UFC는 최두호를 옥타곤에 세웠다. 마침 블랙도 일본을 떠나 모국인 캐나다의 방송사 파이트 네트워크로 직장을 옮겼다. 당시 분석가/리포터로 활동 중이던 그는 최두호의 UFC 데뷔전을 맞아 사심을 가득 담은 분석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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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에 의해 국내에 소개되어 큰 화제를 일으킨 이 영상에서 블랙은 모범생의 이미지를 가진 선수를 소개할 때는 꼭 이렇게 한다며 뿔테 안경을 착용하고 최두호를 당시 ‘UFC 전 체급을 통틀어 최고의 기대주’라고 평가하면서 일본에서 보여준 그의 경기력을 KO 파워가 흘러넘치는 각종 타격과 완강한 테이크다운 디펜스, 가끔 방어 면에서 성의가 없어 보일 정도의 배짱, 강력한 턱 등등으로 분석해 소개했다. 

뮤지션 출신이며 9전의 프로경기를 소화했다는 이력 덕분인지 그의 분석에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스타일이 있다. 선수 출신들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시장의 특성상 언어의 측면에서 아무래도 선수 출신의 경우 다소 무덤덤한 경향이 있지만 록 뮤지션으로 쇼비즈니스의 세계에 얼굴을 알린 블랙이기 때문에 표현이나 서사 등에 언젠가 어떤 노래에서 들어본 듯한 느낌이 전해질 때가 있다. 예를 들면 맥그레거의 주무기인 레프트 스트레이트에 켈틱 크로스라는 별명을 붙이는 식이다.

표현이 독특한 것만으로 팬베이스에 강한 인상을 전달하기는 불가능하다. 블랙의 경기 전 분석에는 경기의 판도를 결정할 급소와 핵심이 잘 간추려 정리된 편이고, 또 샙-알바레즈 스케일이라는 좌표계를 통해 일부 파이터들의 안전제일 주의에 위트 있는 일침을 가하고 용기 있는 파이터들의 업적에 다시 한번 의미를 부여한 적도 있다.

블랙은 최두호와의 인연 때문에 국내에만 통하는 카드가 아니었다. 그의 분석은 북미와 유럽에서도 상당한 히트를 기록했고 UFC의 유튜브 채널에서도 그가 출연한 영상들을 여러 차례 소개했으며 최근 수년 사이 세계적인 인지도를 쌓아 올리는 중이었는데, 지난해 세계 MMA 어워드에서는 올해의 분석가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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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서두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올 3월 초 재정 긴축의 칼바람이 파이트 네트워크를 덮쳤고 존 램딘과 로빈 블랙을 포함한 팀원 전원이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 SNS에서 나타난 당시 그의 심경은 분명 좌절감과 우려가 뒤섞인 느낌으로 보였다. 블랙 스스로 이러다 앞으로 몇 주간 술독에 빠져서 엉망이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끼던 중에 아내가 출장을 떠나게 되었는데, 아내 역시 돌아올 때쯤 되면 알코올에 아주 푹 절여져 있겠거니 하는 생각을 가졌다고 한다. 

그가 아직 술자리를 시작하기 전, 주변의 친구들이 모여앉아 백수가 된 기념으로 팟캐스트와 유튜브 방송을 해 보는 게 어떨까 하고 의기투합을 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아무런 배경지식도, 경험도 없던 블랙이었지만 웹상에 공유된 지식의 전당을 구글링을 통해 본인의 랩톱으로 불러오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고 필요한 장비들을 하나씩 갖추면서 로빈 블랙의 1인 방송이 출범하게 되었다. 

파이트 네트워크에서 함께 손발을 맞췄던 존 램딘을 비롯한 동료들을 불러들이고 업계의 여러 비즈니스와 연락을 취하고 방송의 조회 수도 증가세를 보이던 해고의 2.5주 이후 어느 날 그는 아내를 다시 만났다. 아직 술을 한잔도 입에 대지 않은 상태로 새로운 모험에 열정과 에너지가 충만했던 그를 보면서 그의 아내는 대단히 기뻐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에게 두 건의 중대한 연락이 오는데, 하나는 TKO라는 단체에서 온 해설자 제의였다. 그리고 두 번째는 아래의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로빈 블랙과 몬스터짐의 다음 프로젝트는 곧 공개될 것이며, 본 시리즈는 해외 파이터들과의 접촉을 통해 국내의 팬들과 관계자들에게 유의미한 생각과 정보를 전달함과 동시에 국내 선수들의 매력과 가능성을 세계시장에 알리는 형태로 진행될 예정이다.

[사진] 몬스터짐
[영상/편집] 황채원 PD
이용수 기자(press@monstergroup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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