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jpg


"(강)경원이 형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근면성실하신 분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항상 운동부터하고 일을 보신다. 무조건 운동이 먼저다. 형은 음식관리도 철저하다. 자기관리도 너무 대단하고, 본받고 싶은 부분이 너무나도 많다."

오창민(29, 스타일짐/인천시설관리공단)보다 빠르게 성장한 보디빌더가 있을까? 기반을 다지지 않아 슬럼프 역시 갑작스럽게 찾아왔지만 말이다.

롤모델인 강경원을 만나면서 오창민은 보디빌더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됐다.

강경원 국내 보디빌딩계에서 가장 많은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레전드로, 1998년 아시아선수권 은메달을 시작으로 1999년 미스터코리아,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비롯해 전국체육대회 보디빌딩에서 15번 금메달을 수상했다.

그 중 1999년부터 2010년까지는 전국체전에서 12연패란 기록을 가지고 있는 국내 유일한 선수다. 물론 강경원은 국내 최초로 아놀드클래식에 출전, 체급 1위 및 그랑프리까지 수상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오창민은 '강경원의 제자'로 잘 알려져 있다. 강경원이 발굴해낸 대표적인 선수로는 오창민과 이정인이 있다.

10.jpg


강경원-오창민의 만남은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남에서 공부 잘하는 학교로 유명한 순천고를 졸업한 그는 고려대학교 사회체육학과에 입학했다. 학창시절 길거리농구를 좋아했던 오창민은 길거리농구 심판이 되기 위해 고려대 체육교육학과에 진학하려 했다.

체육교육학과에 입학하지 못한 오창민이 아쉬워하던 중, 사회체육학과에서도 10명의 길거리농구 심판을 선발한다는 사실을 알고 열심히 준비한 끝에 심판에 선정됐고, 전국을 누비며 길거리농구 대회 심판을 봤다. (키가 작고 체중이 늘면서 농구선수로서의 꿈은 포기했다.)

이후 오창민은 군입대를 선택, 신체검사 1급 판정을 받았지만 출생지가 완도라는 이유로 상근(날마다 일정한 시간에 출근하여 정해진 시간 동안 근무하는 병)에 선발됐다.

출·퇴근이 가능해지면서 오창민은 본격적으로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트레이너가 되고 싶었지만, 공부를 하기 싫었던 그는 자신의 몸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08.jpg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오창민은 가수 유승준을 보면서 독학으로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다. 학교에서 팔씨름이 가장 강했던 그였으나 중학교 2학년 시절(174cm/74kg) 역도부의 '가슴 근육은 없네'란 말에 자극을 받아, 헬스장에서 제대로 운동을 진행했다.

22살이었던 그는 '서른이 되면 실업팀에 소속될 수 있겠지'라는 꿈을 안고 열심히 훈련했다. 하지만 전역 6개월 전, 불의의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교회 배구대회에서 상대의 공격을 블로킹하고 내려오는 과정에서 오른발목이 돌아간 것이다.

오창민은 복학 후 여름방학 때 발목치료를 할 예정이었으나, 춘계대학 보디빌딩에 우연찮게 참가해 -85kg 5위, 미스터전남 -85kg 5위에 입상했다.

그는 강경원의 인터넷 카페에 가입 후 음식섭취방법과 운동방식을 보면서 하루에 3~6시간씩 꾸준히 몸을 키워나가고 있었다.

03.jpg


그러던 중, 그는 고려대학교에 강경원이 강사로 온다는 얘기를 들었다. 당시 학교에서 몸이 가장 좋았던 오창민(당시 별명: 완도 근육맨/점프맨)은 눈에 띄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수업에 참가했다.

수업이 끝날 무렵, 오창민은 강경원에게 다가가 '운동을 정말 제대로 열심히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강경원은 전화번호를 줬고, 그날에 오창민은 곧바로 짐을 싸서 인천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이때가 2008년 7월이다.

강경원은 '돈 내고 PT 배울래? 아니면 밑에서부터 하나씩 배울래?'라고 물었고, 오창민은 후자를 선택했다. 그때부터 오창민은 체육관 일을 하면서 운동을 배워나갔다. 당시 그는 훌륭한 보디빌더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고 한다. 길거리농구에서 마이클 조던을 보는 것과 같고 표현했다.

오창민은 학교수업을 월, 화, 수, 목에 몰고 금, 토, 일에는 인천으로 넘어가 강경원에게 지도를 받았다. 그는 학교에서도 5시 30분~8시 30분까지, 19시~22시까지 운동을 꾸준히 했다.

2008년 9월, 강경원은 오창민에게 미스터 크리스찬대회에 나가보라고 권유했다. 당시 -75kg급에 출전한 그는 2위에 오르는 쾌거를 이뤘다.

01.jpg


이후 겨울방학 때 오창민은 맹훈련에 돌입했다. 강경원은 기본운동을 많이 시키기 위해 고등학생과 훈련을 시켰고, 그 성과는 결과로 보답을 받았다.

오창민은 2009년 춘계보디빌딩 일반부 -80kg 3위, 2009년 미스터 인천 -80kg 3위에 오르는 기쁨을 누렸다.

2009년 11월, 오창민은 인천시설관리공단 선발전에 참가했다. 타 선수들이 크게 준비를 하지 않아서 그는 인천에 올라온 지 1년 반 만에 실업팀에 소속되게 됐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오창민은 너무나 운이 좋고, 준비과정 없이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오창민은 2010년 4월 춘계대회 일반부 -85kg 1위, 미스터 코리아 -85kg 3위에 랭크됐지만 급격한 체중감량 탓에 몸에서 이상증세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에게는 힘든 슬럼프가 찾아왔다. 성적에 대한 부담감마저 커지기 시작했다.

02.jpg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해 겨울, 오창민은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러 가던 중 돌부리에 걸려 치료를 미뤘던 오른쪽 발목인대가 끊어졌다. 이후 2012년까지는 오창민에게 너무나도 힘든 시기였다. 당시 강경원의 충고도 잔소리로 들릴 정도였다.

지난해부터 오창민은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생각을 전환하자 몸이 발전했다. 부담감을 하나씩 내려놨고, 운동에 대한 열정과 간절했던 마음을 되새겼다.

오창민은 "인천시설관리공단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성적이 좋지 않든, 좋든 나를 키워주기 위해 많이 신경써줬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정말 죄송한 마음이 든다. 올해 전국체전만을 바라보고 정말 열심히 잘해보려 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제는 아픈 곳을 많이 치료했으니 내년 전국체전 때 내 본 모습을 보여줄 생각"이라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강경원은 지난해 전국체전 후 제자들에게 '너희들도 트레이닝을 하면서 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오창민은 의왕시에 위치한 자이아프트에서 트레이너를 시작했고, 이후 지인의 추천으로 그는 현재 암사동 스타일짐에서 트레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헬스장 팀장으로 있던 분이 학창시절 03 라울로 불린 가장 친한 김정원 형이었다. 그 형이 암사동에 위치한 스타일짐에서 트레이너 활동을 해보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스타일짐 대표님이 굉장히 좋은 분이라며 적극 추천했고, 난 '형이 말하니까 가볼게'라고 하며 둥지를 틀었다.

07.jpg


경원이 형이 옆에 없으니, 형이 그때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그때의 형님의 말이 다 와 닿기 시작한다.

아프거나, 성적이 나쁠 때나 상관없이 하루에 3~6시간은 꼭 아령을 들고 있다. 쇳덩이를 놓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핑계를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은 더 성장하는 것이 목표다.

이상원 대표님께서 스타일짐을 인수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았다. 나를 믿고 트레이닝 부분을 전적으로 맡겨주셔서 너무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우선 기구를 늘리고, 내가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다보면 일반인들도 좋아할 것이라 생각한다. 스타일짐의 위치는 운동하기 딱 좋다. 저녁이 되면 운동 마니아들이 많이 오신다. 어떻게 홍보해야 할까 고민 중이다(웃음).

내년부터는 좀 더 이벤트(몸짱, 다이어트 대회)를 많이 해서 운동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 생각이다."

■ 스타일짐 이상원 대표의 운영철학

06.jpg


"꾸준히 골프를 지도해오면서 센터를 차리고 싶다는 꿈을 키워나갔다.

상업적으로 가는 센터는 원하지 않는다. (오)창민이를 부른 것도 강남에서 얼굴 잘생긴 트레이너도 많이 봤지만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표가 좀 양보하면 회원들이 진짜 열심히 운동할 수 있는 곳을 만들 수 있다. 우리 트레이너들의 학벌은 다 출중하다. 성균관대, 고려대, 세종대. 직원들의 인성이 바르고 지식전달이 잘 돼야한다고 생각한다. 어설프게 알려줘서는 안 된다.

회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레슨을 하는 것이 목표다. 여직원에게는 진실 되게 하라고 강조한다. 능력이 좋으면 분명 입소문이 나게 된다.

이벤트로 반짝 붐을 일으킬 수 있지만, 나한테 그런 건 좋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시도할 이벤트는 금액적인 면이 아니라 골프장, 리조트 등의 시즌권을 드리는 것이다. 우리의 가치도 올릴 수 있고 회원들의 인맥도 넓어질 수 있다고 본다.

이것이 활성화되면 겨울에 스키캠프도 계획할 것이다. 스키 분야에 후배들도 많다. 야외 활동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산악회도 추진할 예정이다. 필드에 나가면 도시락을 준비하기도 할 것이다."

제품 랭킹 TOP 0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