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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짐=반재민 기자] ‘육체미대회’ 외래어를 쓰는 것이 금기시되었던 1980년대, 우리는 보디빌딩을 이렇게 불렀다. 육체미대회부터 지금의 보디빌딩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많은 보디빌더들과 함께하며 울고 웃었다.

그 중에서도 대한민국 보디빌딩계의 산 증인이자 전설로 불리는 사나이가 있다. 바로 ‘한동기’였다. 보디빌딩이 역도연맹 산하에 있었던 1970년대 후반, 그는 우연히 보디빌딩을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울퉁불퉁한 이두박근을 가진 구릿빛 몸매에 매료되어 보디빌딩의 매력에 푹 빠져들었고 본격적인 보디빌딩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이후 한동기에게는 선수로서 철저하게 절제된 삶을 살아야하는 운명이 주어졌고 그는 운명에 순응했다. 식단은 물론이고 인간에게 기본적으로 필요한 모든 것들을 포기해가며, 자신만의 비법을 하나씩 만들어갔다. 그 비법들은 현재 보디빌더들의 교과서처럼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1984년 미스터코리아에 올랐으며, 뒤이어 제 20회 아시아보디빌딩선수권 대회에 출전해 금메달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이어 대한민국 보디빌딩 역사상 최초로 세계보디빌딩선수권대회에 출전하는 등 맹활약하며 전성기의 시작을 알렸다. 이후 세계보디빌딩선수권 금메달 3회를 비롯해 전설적인 성적을 써내려갔고,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며 대한민국 보디빌딩을 알리는 선구자가 되었다.

하지만, 2005년 은퇴 이후 좀처럼 한동기 선수의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간간히 그를 추억하는 몇몇 사람들이 올리는 전설적인 사진으로만 희미하게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2016년, 정확히 11년 만에 한동기 선수는 훈훈한 웃음을 가지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 지난 11년, 그리고 선수생활 30년 동안 느꼈던 소회를 한동기 선수는 담담히 털어놓았다. 한동기 선수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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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디빌딩계의 전설을 만나게 되어 너무나도 영광스럽습니다 먼저 보디빌딩을 사랑하는 팬분들에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 참 오랜만이라 쑥스럽습니다.(웃음) 영원한 보디빌더 한동기입니다. 저는 84년 미스터코리아 출신이고, 그 이후 전국체전 10회, 세계보디빌딩선수권을 3회 우승을 했으며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입니다.

한동기 선수의 근황을 보면 뉴스 기사로는 2006년도가 마지막이었습니다. 근 10년 동안 아무 소식도 듣지 못했는데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궁금합니다
- 은퇴 이후에 대한보디빌딩협회에 경기이사를 지냈었다. 1년 정도하다가 협회를 나와서 지금까지 개인 헬스클럽을 운영하고 있었다. 예전에 받은 트로피나 메달은 거의 그쪽에 있다.(웃음)

예전 기사를 보면 따님에 대한 자랑을 많이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따님 자랑을 한번 해주신다면 어떤 딸인가요?
- 딸이 지금 고등학교 1학년, 중학교 3학년인데 너무너무 사랑스럽고 착하고 좋은 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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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디빌딩과의 만남이 각별했다고 들었습니다. 처음으로 보디빌딩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를 알고 싶습니다
- 예전에 형님과 사업을 하다가 우연히 ‘썬데이 서울’이라는 잡지를 보게 되었다. 그 당시에 신성수 선수, 강경순 선수 등 다섯 명이 보디빌더로 소개가 되었는데 너무 멋있었다. 그 사진을 보고 보디빌딩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었다.

당시에 보디빌딩을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체육관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 당시에는 보디빌딩 체육관은 없었고 역도 체육관이라고 있었다. 당시 을지로 2가에 한국체육관이라고 있었는데, 그때 유일하게 역도와 복싱을 같이하는 체육관이었다. 거기에 들어가 보디빌딩을 전문적으로 배우게 되었다. 처음에 들어갔을 때 선수들의 몸을 보고 엄청나게 놀랐었다.(웃음)

그리고 1980년 본격적인 보디빌딩의 길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초창기 보디빌딩의 환경은 어땠나요?
- 너무나도 열악했었다. 81년도에 첫 시합을 나갔었는데 지금과 비교하면 생각할 수도 없을 정도로 열악했었다. 아령과 바벨만 가지고 운동했을 정도였다. 때문에 몸이 섬세하게 만들어지지 못했었다.

한동기 선수님이 처음 시작했던 것이 지금 보디빌딩의 교과서적으로 자리잡은 것들이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있었나요?
- 운동을 계속하다보니 이 운동과 관련된 것들에 눈을 뜨게 되서 먹는 것도 도시락을 싸면서 식단관리를 하게 되고, 음악을 틀어놓고 운동을 하는 것도 처음 시도하게 되었었다.

그 당시 신인이었고 보디빌딩에 대한 기초도 거의 없던 시절 한동기 선수에게 도움을 주신 선배님은 어떤 분들이 계셨는지 궁금합니다
- 당시 홍영표 회장님(현 머슬앤피트니스 주필)이 정말 많은 도움을 주셨다. 여러 가지 기초에 대해서 많이 배웠었다.

1984년 미스터코리아와 함께 아시아보디빌딩 선수권대회 금메달까지 따셨고, 미국 본토에서 열린 권위적인 대회인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하게 됩니다. 어떤 상황이었는지 궁금합니다
- 처음으로 출전한 해외 대회였다. 나름 아시아 대회까지 우승을 했었는데 거기에선 예선 탈락을 했었다. 내 체급(라이트급)에만 71명이 출전할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경쟁자가 많았다. 다른 체급도 거의 4~50명 될 정도였다. 정말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

1984년 당시의 미스터코리아 대회와 세계선수권대회의 차이점이나 미국 선수와 한국 선수와의 차이점도 존재했을 텐데 거기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 정말 하늘과 땅 차이였다. 미국에 갔는데 기구부터가 달랐고, 선수들이 다이어트하는 방법이나 운동하는 방식이 너무 달랐다. 지금은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 당시에는 정말 차이가 많이 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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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6위를 차지하며 세계의 선수들과 당당히 맞서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 같은 것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 당시에 미국 선수들이나 북유럽 선수들이 강세를 많이 보였었는데, 여려번 출전하다보니 경험을 통해 다양한 방법을 많이 시도하면서 자신감을 많이 얻었던 때였다.

해외 선수들을 제치기 위해 특별하게 준비한 비법 같은 것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 운동하는 방법은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식단 싸움에서 성적이 갈릴 것이라 생각했다. 그랬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보다 다이어트를 체계적으로, 그리고 인위적이 아닌 자연적으로 다이어트를 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다이어트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세계대회 출전 당시의 식단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 일단 세계대회 하나가 끝나면 4개월 정도를 쉬고 9개월을 남겨놓고 다이어트를 시작한다. 처음에는 닭가슴살 몇 쪽, 야채를 위주로 식사를 하고 점차적으로 식사량과 수분량을 조절하면서 몸을 만들었다. 그 기간 동안 내가 먹는 것 이외에는 절대로 손을 대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다른 선수들보다 오래 선수 생활을 했던 것 같다.(웃음)

당시 출전했던 대회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는 어떤 대회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 정말 많은 대회에 출전해서 일일이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매 대회 때마다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그리고 예선 탈락을 했어도 나를 돌아보고 어느 부분이 잘못되었는지 파악해 그것을 수정해 다음 대회를 준비했다. 그래서 상도 많이 받을 수 있었고, 좋은 보디빌더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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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포징같은 것도 많이 중요했을텐데 연습은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 몸을 만드는 것 못지 않게 연습한 것이 바로 포징이었다. 어느 정도였는지 이야기해본다면, Wham!이 불렀던 ‘Careless Whisper‘가 있다. 그 노래가 약 5분에서 6분 가량인데 그 노래의 시작과 끝을 맞춰서 모든 포징을 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로봇 포징이나 독특한 포징들을 많이 시도했다. 그래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찬조 출연도 많이 했었다. 특히 일본에서 미스터 재팬과 같은 대회를 할 때 나를 많이 불렀었다.

가장 자신있는 부위는 어디였나요?
- 가장 자신있는 부위는 삼두였다. 당시에 크게 튀어나와 있었기 때문에 해외 선수들이 많이 와서 보고 만져보기도 했었다.

어떤 방식으로 운동하셨나요?
- 라잉 트라이셉스 익스텐션을 90kg으로 맞춰놓고 2시간 동안 들었다. 지금도 60kg 정도를 들 수 있다. 나는 현역시절에 부위별로 2시간을 맞춰놓고 했었다. 중량을 차근차근히 올리다보면 자극을 느끼고 본격적인 운동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고중량을 위주로 하셨는지 고반복을 위주로 하셨는지? 부상 위험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 고중량 위주로 했다. 중량을 많이 해야 그것에 비례해 근육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남들은 부상 위험이 있다고 하지만, 선수 생활하면서 이렇다 할 부상은 없었다. 아무래도 겨울에 스키를 타러가는 것을 비롯해서 부상을 부르는 위험한 것은 하지 않았다.

연금을 최초로 받으신 보디빌더라고 알고 있습니다
- 연금은 세계 대회에 입상을 하면 점수가 쌓이고 그 점수가 일정 기준에 도달하면 연금을 받을 수 있는 방식으로 되어있다. 원래는 93년부터 받을 수 있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점수혜택을 못 받았다. 그리고 97년에 비로소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최근에는 아시안 게임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나보다 더 많이 받는 선수들도 있다. 최초로 받았다는 자부심이 있다.

98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신 것이 극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확히 어떤 상황이었는지 듣고 싶습니다
- 98년에는 평소보다 운동을 많이 했기 때문에 자신감이 있었다. 당시 이집트 선수에 밀려 2위를 했었는데, 우승한 선수가 도핑에 적발되어 내가 금메달을 가져오게 되었었다. 기억에 참 많이 남는 대회였다.


2002년 아시안게임에 출전하셔서 라이트급 금메달을 획득하셨습니다. 당시 상황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 80년대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다. 식이요법과 관리도 많이 하고 인프라도 많이 나아졌었다.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고 정말 기분이 좋았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 보디빌딩이 처음 채택이 되었다. 그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한 성취감이 들었었다.

은퇴를 앞둔 2004년 드디어 한국체육대학교에 당당히 합격하셨습니다 
- 선수 이후의 삶을 생각해야했다. 그렇기 때문에 학업을 모두 마쳐야겠다고 생각했고, 2002년 합숙소에 있으면서 검정고시를 통해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을 통과했다. 그리고 2004년 한국체육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당시 특별전형에 보디빌더 9명이 지원했는데 그때까지 쌓아놓은 커리어가 좋았기 때문에 합격하게 되었다. 열심히 학교생활을 하고 석사까지 따게 되었다. 그것을 바탕으로 후배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강경원 선수를 비롯해서 전설적인 보디빌더들이 가장 존경하는 멘토로 한동기 선수님을 뽑았습니다. 평소에 선수들에게 해주는 말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 자기를 숨기지 말고 열심히 하라는 이야기를 가장 강조한다. 특히 최근에는 도핑하지 말고 운동을 열심히 하라고 이야기를 많이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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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도핑문제로 매우 시끄럽습니다. 한동기 선수님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 내가 선수였던 당시에도 해외에서 도핑은 만연해 있었다. 하지만, 나는 절대로 도핑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운동만 했다. 살이 쪘으면 찐 그대로 마르면 마른대로 나와서 평가를 받으면 된다. 최근에 도핑 때문에 보디빌더 위상이 많이 떨어졌다는 것이 참 아쉽다.

지난 미스터코리아 당시에도 참석하셔서 후배들의 퍼포먼스를 지켜보셨습니다,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 10년 만에 갔는데 정말 많이 달라진 것 같다. 특히 피지크나 비키니 같은 종목이 새롭게 나왔기 때문에 흥미롭게 봤다. 여자 선수들도 미인들이 많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웃음)

선수 생활하면서 가지신 철학이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 정말 최선을 다하자. 이것 하나로 지금까지 운동을 했었다. 어려운 시기를 보냈기 때문에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아마 어렵지 않았다면 보디빌딩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동기 선생님의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 기회가 된다면 협회에 다시 들어가서 내가 배운 지식이나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수해주고 싶다.

보디빌딩을 사랑해주는 많은 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아직도 제 이름을 기억해주시는 분들이 많다는 것이 대해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보디빌딩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사랑합니다!

사진 = 최웅재 작가
영상 = 황채원 PD

반재민 기자 (press@monstergroup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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