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피터 맥고우 

출처: 머슬 디벨롭먼트 닷컴 (http://musculardevelopment.com)

번역: 몬스터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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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주. 마이크 마타라조와 20년 동안 우정을 쌓은 플렉스 메거진의 전 편집장 피터 맥고우의 글입니다.


개인적인 감정을 주체 하기가 힘듭니다. 두 눈에 물기가 어린 채 이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도 저는 두렵지 않습니다. 이 보잘것 없는 글 조각은 며칠 후 마이크 마타라조의 인생과 그의 시대에 대한 광범위한 분석의 일부가 될 겁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 때의 일이 될 것이고 지금은 단지 저를 친구라고 불렀던,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험담을 들어본 적이 없는 그 남자에 대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려합니다. 그의 사망에 대한 뉴스가 보도된 지 불과 몇시간 되지 않았지만 그를 알았던 사람들은, 그리고 그를 알지 못했던 사람들마저도 슬픔과 아픔을 진지하게 토로하고 있어요. 제가 그와 마지막으로 통화했던 건 2011년 9월이었습니다. 왜 최근에는 그와의 연락이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있다가 말씀 드리겠습니다. 


캘리포니아의 스탠포드 대학병원을 통해 심장이식수술을 받을지를 고려하고 있던 마이크 마타라조는 어제 밤 (8월 16일)에 영면에 들었습니다. 향년 48세. 그는 아마도 역사상 가장 인기있고 호감이 가는 바디빌더였을 겁니다. 제가 기억하는 한 그는 친근하면서도 폭발적인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었고 아마도 톰 플라츠를 제외 한다면 그 어떤 보디빌더보다 팬들과 가까웠을거예요. 


플라츠 처럼 마이크는 항상 팬들과 소통하고 공감했습니다. 그는 절대로 팬들의 부탁을 거절하는 법이 없었죠. 심지어는 당장 대회의 출장이 임박했던 상황에서도 그는 팬들의 요청이 있다면 사인을 해 주었고 사진을 함께 찍었습니다. 그는 팬들을 사랑했고 팬들도 그를 사랑했어요. 2002년 그는 제게 말했습니다. "11년동안이나 보디빌더 생활을 했고 전 세계의 무대에 섰어, 그렇지만 나를 향한 팬들의 순수한 열정에 아직도 매번 깊은 감명을 받는다니까. 절대 팬들을 실망시켜드리지 않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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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팬들을 얼마나 각별히 생각하는지를 드러내는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92년 시카고 미스터 올림피아의 전야, 마이크는 한 다른 유명 보디빌더와 있던 중이었죠. 마이크는 아직 출전준비를 시작하지 않아도 되었던 상황이었고 다른 보디빌더 역시 마찬가지였어요. 그 때 한 젊은 팬이 그 유명 보디빌더에게 사진을 찍어주기를 부탁했는데, 그 팬에게 돌아온 것은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습니다.


"지금은 안됩니다, 바빠요, 어디 좀 가봐야해서"


그렇게 말하고 그 보디빌더는 총총걸음으로 자리를 떴죠.


그 장면을 보고 있던 마이크는 젊은 팬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여기서 잠시만 기디리세요, 일분만에 돌아올께요" 라고 말한 후 자리를 떠났던 보디빌더를 쫓아가 질책했습니다. "어이, 잘난 친구, 당신은 방금 용서받지 못할 잘못을 저질렀어, 아까 그 젊은 팬은 너의 세계를 동경하고 있다, 지금 그사람이 너를 어떻게 생각할 것 같나? 이거 하나만 기억해 두라구, 팬들이 메거진을 구입하고 대회의 티켓을 사는 사람도 팬들이고 보총제니 사진이니, 의류니 우리에게 돈을 안겨주는 계약은 모두 팬들 덕분에 있는거야. 팬들이 없다면 우린 아무것도 아니다. 내 말을 절대 잊지마, 그리고 돌아가서 아까 그 분과 사진을 찍어드려"


마이크가 아마추어 복서였다는것을 말씀드릴께요, 그리고 보스턴 억양이 섞인 말투로 이글거리는 눈빛을 보내며 그가 뭔가를 하라고 했을 때, 그것을 거절하기는 힘듭니다. 그 선수는 돌아가 젊은 팬과 사진을 찍었고 젊은팬에게는 새로운 우상이 생겼습니다. 


마이크는 1965년 보스톤 출생입니다. 91년에 그는 캘리포니아의 베니스로 이주했어요. 그해 전 플렉스 메거진에서 처음으로 일을 시작했고 마이크는 USA 챔피언십에서 헤비급과 전체급 통합부문에서 플렉스 휠러를 꺽고 우승하며 프로 카드를 획득했습니다. 그의 거대한 팔과 종아리는 주목의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인격에 비하면 신체 부위의 크기는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첫 만남부터 우린 금방 친해졌습니다, 사실 마이크는 누구와도 잘 어울렸어요. 그는 2주에 한번정도 꼴로 웨이더 본사를 방문했는데 그는 매번 올때마다 빵빵 터뜨리며 저를 포함한 우리 사무실형 인간들을 위해 항상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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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그는 플렉스 휠러와 아파트의 같은 동에서 살았습니다, 플렉스가 제게 한가지 얘기를 해 주었어요. 어느 날 플렉스에 아파트에 누군가가 침입해 그의 침실을 훔쳐보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마이크는 범인을 추격해 붙잡고 돌려세운 후 귓방망이를 후려쳤습니다. 그다음에 어떻게 됐냐고 마이크에게 물으니 그는 특유의 보스턴 액센트로 "그 자식 픽 쓰러지더니 바닥에서 도다리처럼 몸을 펄럭거리더군"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눈을 부라리며 강조했습니다. 


"그렇게 세게 때린건 아냐!"


그랬겠죠, 세게 때리진 않았을겁니다. 다만 마이크가 무시무시한 운동량으로 유명한 120kg의 탑보디빌더였다는게 상대에겐 불운이었을겁니다.


마이크에 대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그가 최고의 쇼맨이었다는 부분입니다. 그 누구도 마이크처럼 관객을 지배하지 못했어요. 길게 내민 혀가 트레이드 마크인 그는 무대위의 인간폭풍이었습니다. 그의 쇼맨십 스킬이 어느정도였는지, 제가 영원히 잊지 못할 한 사건이 있습니다. 


96년 뉴욕에서 열린 챔피언십 스테이지에서 마이크는 5위에 오르며 미스터 올림피아의 출전권을 확보했습니다. 그날 오전과 오후 세션 모두에서 그는 자신이 무대의 주인공임을 증명했어요. 오후 경기의 사전 채점이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선수들은 즉흥 포즈를 취하고 있었죠. 그때 갑자기 245파운드의 마이크는 285파운드의 군터 쉴러캄프와 스모게임을 하듯 밀쳐내기 몸싸움을 벌였어요. 둘 중 한명이 더블살코 공중회전을 하며 프레스석으로 추락할뻔 했죠. 


나중에 그는 "재미로 한거예요, 군터는 덩치가 컸지만 전 그에게 밀리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나중에 백스테이지에서 우리는 악수를 하며 크게 웃었어요. 전 서로 밀어붙이고 힘겨루기를 하는걸 좋아합니다. 누군가 먼저 펀치를 날리지만 않는다면요, 그리고 팬들은 근육과 근육이 맞대결을 벌이는 장면을 보면서 즐거워 하시니까요." 라고 기자들에게 밝혔습니다.


마이크의 관객 서비스는 그러나 그걸로 끝난것이 아니었어요. 플렉스 휠러, 로니 콜먼, 돈 롱, 밀로 사르케브등 다른 파이널리스트등과 함께했던 이브닝 포즈다운이 마무리 되고 선수들은 무대를 떠날 준비를 하며 서로 악수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이크는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갑자기 모스트 머스큘러 포즈를 잡았고 고개를 돌려 뒤에 있던 선수들을 향해 '더 놀고싶은 사람 없어?'라고 외쳤죠. 그리고 나서 그는 강력한 포즈의 연속기를 구사했습니다. 그러던 중 그는 오른손으로 가슴을 두드리며 "누구의 심장이 가장 뜨겁지?"라고 소리쳤죠. 그 순간 관중들은 열광의 늪에 빠져들면서 어마어마한 함성을 질렀습니다. 기자로써 진심을 걸고 말씀드리는데, 그건 귀가 먹을 정도의 사운드였어요.  그때 로니 콜먼이 무대로 재출격했습니다. 콜먼이 모스트 머스큘러 포즈를 취할 때 마이크는 로니에게 '그래! 한판벌여 보자구!'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출전자들도 하나씩 무대에 다시 등장해 마이크의 스포트라이트를 훔치려 해보았지만 이미 늦었어요. 그날 대회장을 찾았던 관객 3000명의 마음은 마이크가 모두 챙겨갔습니다. 그 순간 그는 올해의 흉곽 확장기로 꼽혀도 될 정도였어요. 하지만 그 날 가장 뿌듯했던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대회장 한켠에서 휠체어에 앉은 채 아들의 노력을 지켜본 마이크의 부친이셨죠.


2004년 그는 베니스를 떠나 모데스토로 갔습니다. 그해 12월 8일 충격적인 뉴스가 들려왔어요. 39세 였던 마이크가 트리플 바이패스 심장수술을 받게 되었다는거였죠. 그리고 그 직후 그는 자신이 시한부 상태라는 사실을 공개했습니다. 


그의 건강은 계속 악화되었어요, 그리고는 곧 업무를 보기조차 힘들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에게는 아내 레이시와 사랑스러운 두 자녀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자주 전화를 걸었어요. 2007년, 저는 그를 미스터 올림피아에 초대했습니다. 그는 저의 초대를 거절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지금의 나를 보고싶어 하지 않을거야, 지금의 나는 더이상 마이크 마타라조가 아니거든"


저는 마이크 마타라조란 보디빌딩계가 친애하는 이름이며 모두들 그를 보고싶어할거라 말해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의사를 물리지 않았어요.


2008년 10월 어느날 밤, 마이크가 영면에 들었다는 루머가 떠돌았습니다. 전 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명사급 보디빌더가 그림리퍼의 방문을 받았다는것을 알게 되는게 처음은 아니었습니다만, 제게 있어서 마이크의 경우는 다른 사람과 달랐습니다.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마이크의 목소리에 저는 감정이 터져버리고 말았어요. 그는 '이봐 난 괜찮으니 이제 진정하라구'라고 말하며 저를 진정시켜주었습니다. 그때 전 제가 마이크와 친하게 지내오던 17년동안 그가 제게 얼마나 중요한 사람이 되었는지를 깨닳게 되었어요.


그 후로도 전 그와 계속 통화를 했습니다. 그러던 2011년 9월 그가 제게 "오늘이 우리의 마지막 대화가 될거야, 오랜동안 너의 우정과 지지에 정말 고맙다, 이젠 전화하지마, 내 소원을 존중해 다오"라고 말했습니다. 전 너무 놀라서 "왜그래? 뭐가 잘못된거야?" 라고 물었어요. 전 그의 건강이 더 악화된건지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는 이유에 대해서는 설명해 주지 않은 채 단지 그것이 우리의 마지막 대화라는 말만 다시한번 반복한 후 "사랑한다, 친구" 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어요. 저도 그에게 같은 말을 해 주었습니다만 제가 그의 소원을 존중해 준것에 대해서는 영원히 후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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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왜 갑작스럽게 저와의 통화를 갑작스럽게 정리하고 싶었을까요? 그건 아마도 제가 그와 절정기를 함께 했던 추억때문일 것입니다. 전 그가 자신의 과거를 얼마나 그리워 하는지 알고 있었어요, 그는 최고였고 보디빌딩을 너무나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더이상 보디빌더가 아니라는 사실이 그를 산산조각 내고 있었어요. 아마도 마이크는 보디빌더로써의 자신을 마음속에 묻어버리려 했던 것 같습니다. 


"난 더이상 마이크 마타로조가 아니야'라던 그의 말이 제 기억저장고의 표면을 계속해서 긁어대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 말을 하던 때 본인 자신에게도 강력하게 펌핑된 마이크 마타로조의 추억이 너무 생생했을거예요.


명복을 빕니다, 마이크, 우린 당신과 당신이 보여준 초인적인 모습들을, 그리고 당신이 그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했던 즐거움과 염감을 절대 잊지 못할거예요. 일찍 떠나신 당신이 원망스라워요, 그렇지만 우리의 기억속에서 당신은 영원한 마이크 마타로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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