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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구미MMA 소속 UFC 파이터 최두호입니다. 지난 <파이터 스토리> 5편 [케이지에서 토할 뻔했던 '첫 패배'의 추억]에서 이어집니다.

최두호란 이름이 처음 알려진 경기가 우스다 이쿠오를 이겼을 때라면 두 번째 알려진 경기는 오비야 노부히로와 붙었을 때였다. 당시 난 (박)원식이 형의 땜빵으로 투입돼 오비야를 플라잉 니킥으로 KO시켰다. 뒤돌아보면 그때만큼 컨디션이 좋았던 적도 없다. 정말 스파링을 하는 것보다도 긴장이 안 됐다. 놀러가는 기분이었고 케이지에 들어가서도 실실 웃었다. 1라운드를 끝내고 나니 무조건 이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기더라. 하지만 그 경기 이후 최근 치른 마루야마 쇼지와의 대결까지는 우여곡절이 정말 많았다. 시련이 끊이지 않았다.

오비야를 이긴 뒤 이시다 미츠히로와의 경기가 확정됐지만 심한 허리 디스크로 경기를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경기를 뛰기 어렵다는 의사를 밝혔고 통과가 된 줄로만 알았다. 운동을 하지 않고 치료를 받으며 가끔 맥주도 한 잔 했다. 그러다 경기를 며칠 앞두고 일본에 허리 치료를 받으러 갔다. 일본에 간 첫 날 저녁만 하더라도 삼겹살을 먹으며 쉬었는데, 경기를 6일 앞둔 다음 날 경기가 취소되지 않았다는 소식을 접했다.

허리 부상도 심했고 경기를 하지 않는 줄 알았기에 단 1%의 준비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 일본에서 혼자 5일 만에 10kg을 감량해야만 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수락은 했지만, 비행기 표를 끊고 혼자 한국으로 도망가고 싶은 생각을 수천 번은 더했다. 정말 지금까지 운동한 7년 중 가장 힘들었던 시기로 기억된다.

아는 사람은 없고 운동도 할 수 없는 몸이라 방 안에 혼자 우울하게 처박혀있었다. 굶어가며 감량만 해야 했다. 오만 잡생각이 다 들었다. 말로만 운동을 못 한 것이 아니라 그냥 아예 못했다. 미트도 한 번 못 쳤다. 심지어 '그까지 것 내가 한 번 져 주자'라는 생각도 했다. 정상이라면 이시다를 무조건 이길 자신이 있는데, 그 상태로는 상대가 누구라도 이길 수 없었다. 그래도 일본에서 치료를 받으며 허리가 조금이나마 괜찮아졌고, 경기가 다가오며 한 번 해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문제는 감량이었다. 준비가 전혀 안 됐고 몸도 성치 않은데 5일 만에 10kg을 빼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혼자 최대한 노력했지만 1차에서 1.2kg을, 2차 계체에서 800g을 초과하고 말았다. 결국 라운드 별 1점인가 2점인가 패널티를 받았다. 판정으로 가면 무조건 지는 상황이었다.

링에 올라갈 때 생각은 간단명료했다. 링으로 몰아 카운터 니킥을 적중시키지 않고서는 답이 없다고 예상했다. 그라운드에서 업킥은 커녕 상대의 골반을 미는 것도 못했으니 레슬러인 이시다에게 테이크다운을 당하면 그걸로 경기는 끝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초반 테이크다운을 죽기 살기로 방어했던 것이 그 때문이다.

하지만 위기를 넘기고 나니 기회가 왔다. 가볍게 라이트를 넣었는데 정신을 못 차리는 게 아닌가. 강하진 않았지만 가드 사이로 제대로 들어간 펀치에 흔들리는 모습이 역력했다. 예상 외였기에 얘가 왜 이러나 싶었다. 이후 잽을 주니 정신없이 주먹을 내기에 또 잽을 뻗은 뒤 태클 준비동작이 보일 때 바로 니킥을 올렸다. 그때 니킥은 이걸로 끝내야 한다는 생각에 너무 힘을 들인 결과 플라잉니킥이 되어버렸다. 이시다는 그 공격에 그대로 대자로 쓰러졌다. 애초에 생각했던 피니쉬가 그대로 연출된, 운이 좋은 경기였다.

경기를 준비하는 며칠이 너무 힘들었지만 이기고 나니 그만큼 기쁨도 컸다. 최악의 상황에서 최강의 상대를 이긴 경험은 누구를 만나도 이길 수 있겠다는 자신감 상승으로 이어졌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경기였다.

다음 경기는 요코타 카츠노리와의 페더급 타이틀매치였고 그 경기도 100% 이길 자신이 있었다. 당시 타이틀이 공석이라 우리가 결정전을 벌이는 셈이었다. 챔피언 어드밴티지 같은 것도 없기에 부담도 안 됐다. 레슬링 방어에 대한 믿음이 있고 타격으로 잡을 수 있다고 봤다.

그런데 주먹이 골절되는 부상으로 경기를 치를 수 없었다. 경기는 뛰어야 하는 상황이며 부상은 있고 해서 심적으로 많이 답답했다. 결국엔 준비를 하지 않은 채 혼자 조용히 지내고 있는데 행방불명됐다는 보도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딥과 정식 계약을 맺었다. 사실 그 경기에서 이기고 챔피언에 올랐다면 UFC에 더 빨리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우메다 코스케와의 대결은 생각보다 쉬웠다. 시작하고 30초 지나자마다 얘는 100% KO시킬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기더라. 로블로로 감점 100점을 받아도 상관없다는 생각도 했다. 사실상 레슬링밖에 없는 선수인데 한번 잡아보니 너무 별로였다. 나와 붙기 전 원식이 형을 이겼기에 뭔가 있겠거니 했으나 아무것도 없었다. 로블로 반칙 때문에 대기실에 들어갔다가 다시 싸운 게 특이할 뿐이다.

오히려 대결하기 전 감량이 1000배는 더 힘들었다. 계체 하루 전날 4kg 이상이 남은 상태였고, 결국 사우나에서 밤을 지센 끝에 체중을 다 뺐다. 정말 죽는 줄 알았다. 그때 이후 여전히 사우나에 가질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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