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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막히는 근육의 소유자 ‘미남 보디빌더’ 이승철은 선수활동과 체육관 경영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 위해 밤낮없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충남체육회 소속인 이승철은 2010년 헤비급 최초로 미스터코리아에 등극하며 자신만의 시대를 열었다. 이후 전국체전 헤비급 4연패 등 대부분의 대회에서 입상한 그는 지난 3월 아놀드클래식 -100kg급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승철은 대한민국 보디빌딩 헤비급을 이끌고 있는 최고 실력자다. 그는 화려한 경력뿐 아니라 성적에 만족하지 않고 '더 무겁게', '더 강도 높게'를 원칙으로 항상 묵묵하게 훈련하는 노력파이기도 하다.

그의 꾸준함을 보면 어떻게 최고의 자리에 올라설 수 있었는지 알 수 있다.

그동안 프리로 운동하던 이승철은 2012년 초 자신의 체육관을 오픈했다. 신인시절 2~3년 정도 트레이너로 활동하기도 했으나, 자신의 센터를 개관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체육관 오픈을 생각한 특별한 계기는 없어요. 하지만 내가 운동할 곳이 필요했어요. 매번 다른 체육관에서 운동할 순 없잖아요. 나를 따르는 후배들도 생겨 나만의 체육관이 필요할 것 같아 오픈하게 됐습니다.”


인천 남동구 구월동에 위치한 ‘이승철 헬스클럽’에는 경험을 통해 느낀 노하우를 가미시킨 기구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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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일반적인 레그 프레스는 수평을 이루는데, 이승철 체육관의 레그 프레스는 천장을 향해 있다. 이에 이승철은 무릎이 좋지 않은 편이라 상황을 고려했어요. 타 센터와는 다르다고 봅니다라고 말했다.

이승철이 체육관을 운영하면서도 선수생활에 매진할 수 있는 이유는 센터를 운영하는 관장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이승철은 기존의 센터를 인수했고, 따로 인테리어를 진행하지 않았다.

그는 체육관의 장점은 분위기라고 강조했다.

편하게 운동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체육관은 분위기가 중요하죠. 혼자 운동하면 분명 힘들지만 같이 으쌰으쌰힘을 북돋아주면 힘이 생겨나요. 특별한 단점은 없고, 내가 체육관에 있지 못하더라도 운영하는 형(관장)이 있기 때문에 문제될 건 없다고 봐요. 그 형은 나와 예전부터 운동을 해 와서 나의 스타일을 잘 알고 있거든요.”


이승철은 오후 3시 파트에 열심히 운동하는 회원들이 가장 많다고 한다. 센터에 놀러와 운동보단 얘기를 나눈 뒤 샤워 후 슬슬 가는 분위기가 아닌 정말 최선을 다하는 회원들이 많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승철은 자신이 운동하고 있을 때 회원들을 지도해주기도 한다. 체육관에 오래 머무르는 편은 아니나, 자세교정이 필요한 회원에겐 반드시 훈련·교정법을 알려준다.

하지만 결코 마음에 드는 회원만 있을 순 없다. 어느 체육관에도 문제가 되는 회원은 반드시 존재한다. 이승철 센터 역시 예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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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마음에 들지 않는 회원이 많아요(웃음). 기본적인 것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죠. 예를 들면 수건을 3~4장씩 사용한다거나 기구를 정리하지 않는다거나. 160명 정도의 회원이 같은 공간에서 운동하는데 비협조적인 분들 때문에 피해보시는 분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드네요.”


다른 체육관에 비해 이승철 센터에는 선수를 목표로 훈련에 매진하는 회원이 많은 편이다. 그는 앞으로 대성할 회원을 2명 꼬집었다.

이장원, 김재영이란 친구가 앞으로 잘 될 것 같아요. 27살로 이제 막 시작했지만 재능이 보여요. 굉장히 열심히 하고 있고, 꼭 성공할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대회에 나간 적이 있지만 입상하진 못했어요.

일반인과 선수 지망생을 상대하는 건 다른 것 같아요. 지망생은 편하게 보여주면서 하라고 하면 되지만 일반인은 비위를 맞춰줘야 하는 부분이 있죠. 전 일반인 P.T는 하지 않아요. 선수 지망생 8명 정도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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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은 자신만의 노하우로 회원들을 가르치고 있다. 새로운 스포츠들이 국내에 많이 전파됐지만 그는 웨이트 트레이닝이 최고의 운동이라고 자부했다.

선수들마다 노하우가 있겠지만, 저 역시 저만의 운동 스타일이 있습니다. 운동법은 많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다른 것보다 웨이트 트레이닝이 제일이라고 생각해요. 최고의 운동은 웨이트로 몸을 만들고, 부족한 것을 채워나가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승철은 갖은 노력과 노하우를 회원들에게 전파하고 있지만, 금전적인 부분을 간과할 순 없다고 밝혔다. 상권이 좋지 않아 헬스장으로서의 목이 좋지 않다고 했다.

별 생각 없이 무턱대고 시작했어요. 돌이켜보면 이곳은 체육관을 하기엔 좋은 자리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근처에 유흥가들이 많고, 주택가가 있긴 하나 금전적인 여유가 없는 분들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새롭게 체육관을 오픈할 계획입니다. 아직 위치는 정해지지 않았으나 다음주부터 장소를 돌아볼 예정이에요. 한남동 체육관은 선수지망생을 받는 개념보단 개인 P.T가 주를 이룰 것 같습니다.”

이승철의 아놀드클래식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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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놀드클래식을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영어뿐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비행기에 올랐어요. 출국하기 전, 인터넷으로 허가를 받아야할 부분이 있는데, 그것을 진행하지 않았아 결국 비행기를 놓치고 말았죠.

다행히 5시간 뒤 다른 비행기에 탑승했어요. 입국심사 줄이 굉장히 길었는데, 비행기에서 만난 분 덕에 빨리 지나갈 수 있었어요(웃음).

비행기를 두 번 갈아타야하는데, 늦게 출발한 탓에 늦어졌어요. 다행히 시간이 맞아 바로 경기장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요. 우여곡절 끝에 경기장에 도착했는데, 대회에 나설 수 없는 사람이 100명 정도 돼서 놀랐어요.

관계자들이 선수들을 기다리거나 찾는 것이 전혀 없어요. 안 오면 그냥 진행시켜버리더라고요. 아는 여자 선수가 있는데 그 선수도 출전하지 못했어요. 분명 오후에 한다는 얘길 들었는데, 오전에 시작했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전 체중을 맞추지 못했어요. 당초 아놀드클래식 출전이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결국 막바지에 출전이 확정돼 비행기 예약이 늦어졌고요. 몸을 제대로 만들지 못한 탓에 체중이 잘 빠지지 않았어요. 당일 오전에 계측을 하는 것을 알고 다음날 새벽부터 흐름을 파악한 뒤 체중을 맞췄습니다.

진행이 너무나도 빨랐어요. 정말 허겁지겁 준비했습니다. ()경원이 형에게 프로탄을 발라줬는데, 형이 곧바로 무대에 올라가서 나를 발라줄 사람이 없더라고요. 다행히 아는 일본 선수가 있어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승철의 짤막한 보디빌더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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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은 유년시절부터 운동을 좋아했다. 고등학교 때까진 친구들과 어울려 놀러다니는 것이 전부였지만, 고등학교 3학년 때 이사를 하면서 그의 보디빌딩은 시작됐다.

집 근처에 ‘인천 구관헬스’가 있었고, 대우자동차 실업팀 소속의 박만석 관장님에게 운동을 배우기 시작했다.

분위기는 매우 가족적이었다고 한다. 아저씨들과 어울려서 운동을 시작했고, 관장님이 선수다보니 얼떨결에 대회에도 참가했다. 당시 학생부가 있었기 때문에 대학교에 가기 위해 운동하던 고등학교 2학년 후배들과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이승철은 스무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미스터 인천 -75kg급에서 4등을 기록했다. YMCA는 예선에서 떨어졌다. 하지만 다음 해(1998년) 미스터 인천 라이트헤비급 부문 1등을 차지하며 기쁨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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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이 급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2009 미스터코리아 박인정이 있었다. 그는 박인정의 훈련법을 보고 듣고 배웠다.

그때부터 인정이 형의 몸은 굉장히 좋았어요. 전국에서도 알아줄 정도였으니까요. 그분들을 보면서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가끔 구관헬스장을 방문합니다.”

10년 이상 보디빌더로 활약해온 이승철에게도 부상과 슬럼프는 존재했다. 하지만 힘들때마다 절대 포기하지 않았고, 몸이 좋지 않을 때에도 운동은 쉬지 않았다.

운동밖에 생각한 것이 없습니다. 꼭 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은 없고요. 아무리 아파도, 상황이 안 좋아도 저는 운동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