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아시아] 최근 한국 스포츠계는 최근 들어 내부적인 문제와 더불어 외부적인 문제까지 겹친 심각한 상황에 놓여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교육부와 문화체육관광부, 대한체육회에서 특단의 조치를 마련했다. 그 중 눈에 띄는 대안은 바로 “소년체전 폐지”와 “합숙 폐지”이다.

엘리트 체육에서 승리지상주의, 성과지상주의, 금메달지상주의로 인해 발생하는 체육계 비리를 막기 위해 소년체전을 폐지하고, 최근 가장 문제시 된 체육계 미투 사건과 같은 끔찍한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합숙을 폐지하여 엘리트 체육의 구조를 바꾸겠다는 정부의 의지다.

물론 승리지상주의는 체육계 비리의 근본적 원인중 하나일 것이다. 이를 뒤늦게나마 해결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반영한 해당 ‘정책‘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책은 허울뿐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전혀 현실에서는 반영되기 힘든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부터 대한민국에서는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극단적인 정책을 시행한다. 대표적인 예로 지난 2014년 세월호 사건이 터진 후에 나온 해양경찰 해체와 수학여행 폐지였다. 또한 정유라 사건이 터진 후에 대학에 특기생제도를 없애라는 의견도 나왔다. 이러한 정책은 당연히 실효성이 떨어진다. 학교폭력이 발생했다고 교육부 해체와 학교 폐지와 같은 대안을 내놓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처럼 체육계 비윤리적 사건·사고가 발생한다고 큰 대회인 소년체전을 없애고 합숙을 폐지하는 건 현장에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안일 수밖에 없다. 왜 그들의 정책이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한지 하나하나 알아보자.


해외와의 비교? 인프라 규모부터 같아져야

최근 언론들이나 정치권에서는 해외의 사례들과 비교하며 우리 역시 합숙을 없애야 한다는 쪽으로 더욱 힘이 실리고 있다. 국가대표 선수촌을 운영하는 나라는 프랑스, 중국 등 숫자가 많지 않고 스포츠 강국인 미국은 선수촌 시스템이 아예 없다. 대부분 대학스포츠(NCAA)를 통해 두각을 나타낸 선수들이 기업의 후원을 받아 개인적으로 훈련에 임하는 편이다.

이웃나라 일본은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 자국 대표 팀의 성적을 높이기 위해 2008년 선수촌을 다시 만들었다. 하지만, 이는 일부의 경우고 대부분의 스포츠는 합숙 시스템이 있는 곳과 없는 곳으로 나뉘어져 있다.

과연 우리도 합숙이나 선수촌을 폐지해야할까? 우리나라 스포츠의 인프라를 본다면 해외의 사례에 대입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표적으로 수영을 비교해보면 일본에는 국제공인규격의 50m의 수영장만 총 223개에 달한다. 도쿄에만 18개의 수영장이 있다.

한국의 경우 정확한 데이터도 없을뿐더러 훈련을 위해 국내의 여러 수영장을 돌아다녀도, 서울의 선수들이 훈련할 수 있는 50m 훈련장은 올림픽수영장, 한국체대수영장, 서울체고수영장, 잠실종합운동장수영장이 전부다. 그마저도 레인이 부족해 매월 추첨을 통해 사용하고 있다. 전국의 50m 수영장의 총 수는 각 지역의 체육고등학교 수영장을 포함하여 대략 20여 곳 정도 된다. 이 마저도 정식규격은 아니다. 국제공인규격 수영장만을 본다면 국내에 김천과 광주, 대전으로 3곳 이내가 된다. 이는 일본의 50m 국제공인규격 수영장의 1%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일본이 대한민국보다 수영장 규모가 큰 상황에서 미국은 비교할 수가 없다. 일본보다 더 많은 시설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본 규격이 50m인 수영장이 도처에 있으며 근처에는 웨이트장과 다이빙장 등이 모여 있어 마치 수영 테마파크 같은 느낌을 받게 한다.

또한 일본은 1955년 시운마루호 침몰사고 이후 초등학교부터 기본수영 교육을 하도록 의무화하고 있기 때문에 초·중·고교의 80% 이상이 수영장을 갖추고 있다. 반면 대한민국의 경우 2014년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초등학교 3학년부터 기본수영이 의무교육으로 지정 되었지만, 이 마저도 학교에 수영장이 없는 경우가 많아 시행하기가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교클럽스포츠를 활성화시키는 정책 또한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볼 수 있다.

갖춰진 인프라가 다른데 좋은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오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하드웨어가 다른데 소프트웨어만 고급을 넣으면 제대로 작동할까?

디젤차에 최고급 휘발유를 넣으면 최고급 휘발유차가 될까? 아니다. 디젤차에는 그에 맞는 디젤을 넣어야 최고의 성능을 발휘할 수 있다. 아무리 최고급 휘발유를 넣는다고 해도 그저 고장이 날 뿐이다. 

미국이 아무리 스포츠 강국이고, 일본이 아무리 스포츠 선진국이라고 한들 그들의 정책을 그대로 따라한다고 해서 우리가 그들처럼 될 수는 없다. 벤치마킹을 하는 것은 좋지만 우리의 현실과 현장을 반영하지 않은 채 똑같이 모방만 하는 것은 결코 득을 가져올 수 없다.


소년체전 폐지? 어린 선수들은 어떻게 길러낼 것인가

정책에 대한 생각을 묻기 위해 방문했던 대한수영연맹 관계자는 이러한 정책에 대해 “어떠한 계기로 문제가 인식되고 그에 대한 해결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이유로 문제가 발생한 환경을 없애는 1차원적인 대책은 것은 결코 올바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소체 폐지 자체를 수박 겉핥기식으로만 해결하려는 윗선에 대한  반발심이 생긴다.”라고 일침을 날렸다.

특히 그는 소년체전 폐지에 대해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그는 “스포츠의 기본 요소인 승패가 나뉘는 경쟁구도 때문에 소년체전은 초~중등부 선수들에게 가장 중요한 대회다. 각 시도별로 가장 우수한 선수끼리 경쟁하는 환경에서 기량을 뽐낼 기회의 장이기 때문에 다른 전국대회 1등보다 소년체전 우승자가 더 우월한 실력을 가졌다고 평가되는 기준이 되기도 하며, 이는 곧 중고교 진학 가능여부와도 연결된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어서 “우수한 선수를 평가해야 하는 특목고의 입장과 일찌감치 체육계 쪽으로 진로를 정할 학생의 입장에서는 분별력 있는 기준이 되어 온 소년체전이었다. 선수의 기량이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다른 대안 없이 일방적인 폐지는 앞으로 학생선수를 육성하지 말라는 사망선고나 다름없다.”고 항변했다.

이어 현재 초중고 학생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는 코치는 “물론 가르치고 있는 제자들이 엘리트 체육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좀 더 다양한 진로를 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소년체전을 폐지한다고 해서 더 나은 진로를 갈 수 있는지가 의문이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어서 “일본도 재팬오픈이라는 큰 대회가 있고 미국도 NCAA나 프로시리즈가 있듯이 각 나라마다 가장 큰 규모의 대회는 모두 존재한다. 그로 인해 많은 선수들이 목표의식을 갖고 그만큼의 경기력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소년체전을 통해 국가대표로 성장한 선수들도 소년체전 폐지에 대해 반대의 의견을 냈다. 한 선수는 “일단 현역 선수로서 소년체전을 없앤다는 것에는 반대를 하고 싶다. 대신 학생체전으로 통합하여 대학, 일반부 선수들은 전국체전으로, 초중고 학생선수들은 학생체전으로 분리하는 것은 적절한 대안인 것 같다.”라고 의견을 제시했다.

선수들의 학부모 역시 마찬가지였다. 중3 운동선수를 둔 부모의 경우에는 “운동하는 사람들을 뒷바라지하는 부모로서 폐지 반대가 많다. 전반적으로 소년체전을 하지 않는다면 운동을 해야 하는 의미가 없다고들 생각한다. 체전이 아닌 축제로서 엘리트 운동하는 아이들이나 취미로 하는 아이들이 모여 함께 경기를 한다손 치더라도 어차피 목적에 따라 나눠지기 마련이라고 생각한다. 학부모들 사이에선 소체폐지 반대운동에 참여하는 분들도 실제로 많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처럼 현장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무턱대고 폐지를 결정할 경우 대한민국 청소년 스포츠 인프라가 크게 후퇴할 수 있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현장에서는 크게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합숙 폐지? 좋은 시설은 선수촌에 다 있다

소년체전 뿐만 아니라 합숙 폐지에 대해서도 많은 선수들이 부정적인 의견을 보였다. 실제로 앞에서 설명했듯 국내의 열악한 최소한의 시설로 최대한의 경기력을 끌어올릴 수 있었던 것은 합숙 훈련의 영향이 컸다.

예를 들어 진천선수촌에 있는 최고의 시설은 국내에 1-2개 밖에 없다. 이 시설을 사용하기 위해 서울에서 왕복으로 매일같이 이동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야간훈련이 끝난 후 다음날 새벽훈련이 있을 때 선수들은 집에 가고 싶어 할까? 아마도 이동하는 번거로움을 없애기 위해, 조금이라도 잠을 더 자기 위해 훈련장에서 머무르고 싶어 할 수도 있다. 또한 야밤에 여자선수가 그 먼 거리를 혼자 매일같이 귀가한다면 위험에도 쉽게 노출된다.

이런 상황에서 합숙으로 인해 체육계성폭력 사건이 불거졌다고 합숙을 폐지하는 것은 옳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합숙 때문에 체육계 성폭력이 발생한 것이 아닌 일부 지도자와 선수, 잘못된 마인드를 가진 가해자들 때문에 성폭력이 발생한 것이다. 마치 빈대를 잡겠다고 초가삼간을 태우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인 생각인 것이다. 잘못을 저지른 이를 처벌로서 책임을 묻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경기력에만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스포츠인들이 올바른 인식을 확립할 수 있도록 예방교육을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 

물론 부조리를 해결해야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극단적인 방법으로 부조리를 해결하려는 자세는 옳지 않다. 그 원인을 냉정하게 파악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면밀히 제시해야 한다. 잘못을 저지른 이들 때문에 그렇지 않은 스포츠인들까지 피해를 보는 정책은 피해야 한다.

정책의 결정과정은 국민의 요구와 필요→계획안 마련→사회 여러 단체의 의견 반영→최종안 확정→정책 집행으로 이루어진다. 현재 정부가 실시하려는 이 정책은 의견 수렴이 빠져있다. 아직 정책까지 집행된 것이 아니기에 수정할 기회가 남아있지만, 만약 이러한 의견 수렴이 없는 정책을 계속해서 내놓는다면 스포츠계가 정부에 가지는 반감은 상당히 높아질 것으로 보여진다.

때는 늦지 않았다. 지금부터라도 현장의 의견을 수렴해 가장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정책을 하루빨리 수립해야 할 것이다.

사진=대한체육회, 일본수영협회, 몬스터짐 DB
글=임다연 (경남체육회 수영선수 겸 DP클럽 코치, dpsw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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