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아시아=반재민 기자] 현재 인삼공사의 주축이 된 최은지, 채선아, 노란. 고민지, 이솔아, 유희옥,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IBK기업은행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한 선수들이라는 점이다.

설렘을 안고 프로라는 문을 두드렸지만, 현실의 벽은 너무나도 높았다. 이들의 자리에는 박정아와 김희진, 김유리와 남지연 등이 버티고 있었고, 웜업존에서 얼마없는 기회를 잡기위해 아등바등하던 선수들은 기회를 찾아, 팀을 찾아 돌고돈 끝에 '외인구단'이라 불리는 인삼공사에 모두 모였다.

실력은 부족했을진 몰라도 행복배구의 팀 인삼공사에서 자신이 하고자하는 배구, 그리고 자신이 그토록 원하는 배구를 머릿 속에 그리고 또 코트에서 실행해보였다. 마침내 2018-19 시즌 이들은 기업은행에서 펼치지 못한 잠재력을 인삼공사에서 폭발시키며 5년만에 팀의 선두등극에 큰 역할을 해냈다. 그것도 자신의 잠재력을 알아봐주지 못한 기업은행 앞에서 그들은 보란 듯이 '자신이 이정도 할 수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기업은행 출신들의 면면을 보면 붙박이 주전으로 뛰던 선수들은 거의 없다. 이미 16-17 시즌부터 두각을 드러내고 있던 유희옥은 프로 입단 당시부터 로테이션 멤버로 활약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끄는 등 좋은 활약을 펼쳤지만, 이적 직전 시즌인 15-16시즌부터 미들 블로커였던 김유리와 부동의 주전 멀티플레이어 김희진에게 밀리면서 미들 블로커를 필요로 하던 인삼공사의 부름을 받아 유미라의 반대급부로 인삼공사로 트레이드 되었고, 단숨에 팀의 주전 미들블로커로 세터에서 포지션 변경을 한 한수지와 더불어 안정적인 미들라인을 형성, 팀의 봄배구 진출을 이끌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또 다른 기업은행 출신 선수가 인삼공사에서 꽃을 피웠다. 바로 채선아와 고민지였다. 채선아는 인삼공사로 오기 전까지 반쪽짜리 선수에 불과했다. 원포인트 서버와 리시브 전용 공격수, 그리고 인삼공사로 트레이드 되기 직전에는 리베로로 포지션 변경을 했을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선수였다.

16-17 시즌 기업은행에 입단한 고민지와 17-18 시즌 입단한 이솔아 역시 기업은행에서는 거의 웜업존에만 머물고 있던 선수였다. 하지만, 2018년 12월 24일 이뤄진 대형 트레이드는 이들에게 있어 크리스마스 선물과도 같은 것이었다.

채선아와 고민지는 윙스파이커 기근으로 패배에 신음하고 있던 인삼공사에게 한줄기 빛이 되었다. 두 선수는 고비 때마다 날카로운 스파이크와 상대 수비의 허를 찌르는 서브로 팀에 보탬이 되었고, 비록 봄배구 진출은 좌절되었지만, 시즌 끝까지 현대건설과 봄배구 경쟁을 펼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

함께 영입된 이솔아 역시 아직은 이재은에 가려 많은 기회를 얻지는 못했지만, KOVO컵 대회에서 이재은과 함께 역할을 분담하며 팀의 컵대회 우승을 도왔고, 이어진 AVC컵 대회에서는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출전하는 등 성공적인 커리어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리고 18-19 시즌을 앞두고 두 명의 기업은행 출신 선수가 수혈되었다. 바로 최은지와 노란이다. 최은지의 경우에는 직전 소속팀이 도로공사이기 때문에 다이렉트로 인삼공사로 들어온 나머지 다섯 명의 케이스와는 조금 다르다.

하지만, 최은지가 기업은행을 떠나게 된 것 역시 기회를 찾아서였다. 최은지는 2010년 창단된 IBK기업은행에 김희진의 백업 자원으로 영입되었지만, 김희진과 박정아에 밀리면서 출전 시간을 많이 보장받지 못했다. IBK기업은행 시절 3차례나 V-리그 여자부 우승을 차지했지만, 최은지의 표정이 밝지 않았던 것도 이러한 이유중에 하나였다.

2015-16 시즌 후 전새얀과 함께 김미연, 이고은의 상대로 도로공사에 둥지를 틀었지만, 상황이 나아진 것은 없었다. 도로공사에서도 고예림과 전새얀에게 밀리면서 자리를 잡지 못하던 최은지는 17-18 시즌 종료 후 마지막 기회라는 심정으로 FA를 통해 인삼공사로 다시 자리를 옮겼다.

인삼공사로 이적 후 비로소 최은지는 얼마간의 주전을 보장할 기회를 얻었다. 바로 KOVO컵 대회였다. 이 대회에서 최은지는 자신의 잠재력을 마음껏 터트려보였다. 최은지는 조별예선 마지막 경기인 태국 EST와의 경기(18득점)와 현대건설과의 준결승전(16득점)을 제외하고 모두 20득점 이상을 기록하는 등 다섯 경기에서만 무려 113득점, 42.56%의 가공할만한 공격성공률을 기록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어 MVP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이어진 리그에서도 최은지는 외국인 주포 알레나의 보조 공격수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안정적인 리시브와 고비때마다 터지는 강타, 높이에서 나오는 블로킹을 통해 인삼공사의 도약이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

그리고 3년만에 복귀를 선언한 백목화의 상대로 트레이드 된 노란은 남지연에 가려 서브 리베로, 원포인트 서버에 머물던 선수였다. 매 경기 출전기회를 부여받기는 했지만, 서브만 넣고 빠지는 포지션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모두 보여주기엔 무리가 따랐다.

최근 2시즌 동안 채선아와 함께 번갈아가며 주전 리베로로 활약하기도 했지만, 17-18 시즌 종료 후 FA 재계약을 맺고도 백목화, 박상미의 맞상대로 인삼공사로 트레이드 되는 아픔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인삼공사에서 노란은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비록 교체선수의 신분에서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후위에서 오지영과 함께 짝을 이뤄 후위수비를 담당하고 있다. 오지영이 모든 것을 커버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서남원 감독의 판단에 노란을 오지영과 함께 수비를 하도록 맡기며 오지영의 수비 부담을 줄여준다는 복안이었다.

일단 시즌이 되면서 이러한 서남원 감독의 전략은 성공적으로 맞아들어가고 있다. 오지영-노란의 리시브 라인이 안정되다보니 이재은 세터 역시 자신감 있는 토스를 올릴 수 있고, 공격수들은 편안하게 득점을 올릴 수 있게 되었다.

지난 기업은행과의 경기에서도 최은지가 10득점에 46.13%의 공격성공률, 채선아가 8득점에 46.67%의 공격성공률을 기록하는 등 맹활약했고, 노란 역시 리시브 면에서 오지영의 수비부담을 줄여주며 공수 양면에서 알토란같은 활약을 선보인 끝에 팀의 3대0 승리를 이끌었다.

이렇게 이적생들이 맹활약을 펼칠 수 있는 이유의 배경에는 바로 서남원 감독의 덕장 리더십이 숨어있다. 서남원 감독은 가능성이 보이는 선수들에게는 무한한 신뢰를 보낸다. 사이클이 하락세에 빠졌을 때도 내려간 사이클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돕는다. 이렇게 선수들과 감독은 신뢰관계를 쌓고 팀은 하나가 된다. 인삼공사 선수들의 플레이 하나하나에서 웃는 표정들이 나오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서남원 감독은 승부사다. 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과감한 트레이드도 서슴지 않는다. 트레이드에서도 철칙은 있다. 바로 선수에게 도움이 되는 트레이드를 지향한다는 점이다. 팬들은 프랜차이즈 선수들이 다른 팀으로 이적하는 것에 대해 종종 못마땅한 반응을 보이지만, 새로운 선수들이 맹활약을 보여주며 그 아쉬움은 기대감으로 점점 채워나가고 있는 중이다.

기업은행 출신 선수들이 만들어낸 유쾌한 반란, 그 속에는 감독의 신뢰와 그 신뢰 안에서 신나게 자신만의 배구를 해나가고 있는 선수들의 ‘행복배구‘가 있었다.

사진=KOVO, 인삼공사, 기업은행 제공
반재민 기자(press@monstergroup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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