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보디빌딩의 신화적인 인물 강경원이 오는 3월 3일(한국시간) 미국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서 열리는 2018 아놀드 클래식에 출전한다. 지난 2015년 미국에서 IFBB 프로카드를 획득한 강경원은 이후 미스터 올림피아 출전을 시작으로 숨 가쁜 질주를 이어왔다. 아놀드 클래식에 3년 연속 프로 선수로 초청받은 보디빌더는 국내에서 강경원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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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프로카드를 받지 못하고 미국에 와서야 이곳 협회에서 인정을 받았습니다. 꿈을 이루는데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되었네요. 항상 겸손과 노력의 자세로 한국 보디빌더의 선구자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한계에 도전하는 위대한 다음 도전이 곧 시작됩니다.” (강경원, 지난 2015년 프로카드 획득 직후)

[스포츠아시아=조형규 기자] 국내에 보디빌딩이라는 운동이 처음 전파된 것은 약 7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내 보디빌딩계에서는 지난 1946년 서상천 선생이 역도와 함께 곁다리로 들여온 것을 그 시초로 본다. ‘육체미’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이 운동은 1949년 개최된 제1회 미스터코리아와 함께 본격적으로 명맥을 이어왔다. 

운동법부터 영양섭취까지 해외 현지의 정확한 정보를 알 길이 없었던 그 시절. 열악한 환경에서 몇몇 선구자들은 숱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직접 몸으로 길을 개척해왔다. 그들의 노력 덕분에 국내 보디빌딩·피트니스 시장은 양적으로 크게 팽창했고, 현재는 일반 대중에게까지 문호가 개방된 시장이 됐다. 

하지만 50년에 가까운 역사에도 불구하고 국내 보디빌딩이 세계 프로 무대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은 불과 3~4년밖에 되지 않았다. 협회와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힌 ‘어른의 사정’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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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즌·비시즌의 구분이 없는 도시의 수도승

그 어른의 사정을 뚫고 세계무대의 활로를 개척한 선구자가 있다. 바로 국내 보디빌딩의 전설로 불리는 강경원이다.

1973년생, 올해 우리 나이로 46세가 되는 철인(鐵人) 강경원을 칭하는 수식어 중 하나는 바로 ‘도시의 수도승’이다. 정해진 운동 사이클과 철저한 식단관리를 모두 지켜가며 금욕적인 생활을 수십 년째 이어가고 있는 그를 잘 설명하는 단어다.

강경원의 철저한 자기관리는 이미 국내 보디빌딩·피트니스 마니아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금연, 금주는 기본이고 별다른 취미 생활 없이 하루 24시간을 오로지 운동과 휴식에만 사용한다. 이미 시즌·비시즌 구분 없이 20년째 철저한 식단관리로 스스로를 통제한 덕분에, 지금은 맵고 짠 음식을 전혀 입에 대지 못할 정도가 됐다.

거기에 독실한 신앙심을 바탕으로 한 깨끗한 사생활이 알려지며 오늘날 강경원의 완벽한 이미지를 구축했다. 46세라는 나이에도 그가 정상급 기량과 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인내와 금욕을 바탕으로 한 그의 철저한 자기관리는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많은 사람은 청소년기의 경험이 지금의 강경원을 만들었다고 이야기한다. 부친의 부재, 어려웠던 가정환경, 좌절된 태권도 선수의 꿈까지. 강경원은 그렇게 어린 나이에 세상의 모진 풍파를 겪었지만, 항상 스스로 채찍질을 하면서 이를 모두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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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쇳덩어리와 함께 호흡해온 삶

강경원이 보디빌딩에 입문한 건 17세 때다. 원래 강경원은 체육 특기생 진학에 유리하다는 이유로 4년 넘게 태권도를 했다. 하지만 부상에 부친상까지 겹쳐 그 꿈을 포기해야 했다. 그런데 보디빌딩으로 대학 진학이 가능하다는 말만 믿고 덜컥 입문한 것이 그의 앞날을 결정지었다. 이후 강경원은 군 복무를 마친 25세 무렵 인생의 중대한 기로에서 결국 보디빌딩 외길을 선택하게 된다.

결심이 서자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강경원은 학업도 중단한 채 그렇게 3년간 매일 같이 체육관에서 땀을 뿌렸다. 새벽에 가장 먼저 일어나 출근 도장을 찍었고, 달이 먼 하늘에 떠오르고 나서야 쇠질을 멈췄다.

당시의 강경원에겐 운동법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정보가 부족했다. 운동을 무조건 많이 하는 것이 미덕이라 여겼다. 선배들의 방식을 주먹구구식으로 따라 했고, 닭가슴살을 하루에 2kg씩 섭취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강경원의 육체는 그렇게 조금씩 다듬어져 갔다.

하루하루 흘린 땀방울이 거대한 결실로 나타나기 시작한 건 1999년부터다. 강경원이 미스터코리아에 오른 것도, 전국체전 15회 우승과 12연패의 전설이 시작된 것도 바로 이때의 일이다. 2002년 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을 수확했다. 그렇게 강경원은 15년간 정상의 자리를 지켜왔다.

강경원은 국내에서 더 이상 이룰 것이 없었다. 더 높은 무대를 바라봐야 했다. 결국 보디빌더가 갈 수 있는 왕도(王道)는 IFBB(국제보디빌딩연맹) 프로카드를 획득해 ‘미스터 올림피아’나 ‘아놀드 클래식’ 같은 꿈의 무대에서 경쟁하는 것이기 때문.

하지만 지난 수십 년간 국내 보디빌더들에게 프로 무대는 허락되지 않은 세계였다. 협회에서 이를 승인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지난 2013년에 뒤늦게 협회의 허락으로 강경원은 ‘2014 아놀드 클래식 아마추어’에 출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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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FBB 프로카드를 획득한 국내 최초의 보디빌더

현재 전 세계의 프로 보디빌딩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IFBB에서 발급하는 프로카드가 있어야 한다. 이 프로카드는 IFBB에서 공인하는 아마추어 대회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할 경우 발급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위상이 높은 대회가 바로 아놀드 클래식 아마추어다. 또한, 이 아놀드 클래식의 프로 경기는 미스터 올림피아와 함께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프로 보디빌딩 대회이기도 하다. 

어렵사리 2014 아놀드 클래식에 출전한 강경원이 당초 설정한 목표는 90kg 체급 톱 5. 굉장히 소박한 꿈이었다.

그런데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심사위원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렇게 경기 후 발표된 강경원의 성적은 체급 1위. 심지어 이어진 체급별 우승자들의 대결에서도 강경원은 기어이 오버롤(종합우승)을 차지한다. 그동안 아시아인이라는 인종적 한계로 막연하게만 바라보던 인식이 단번에 무너지는 순간이자, 국내 보디빌딩 역사상 최초로 IFBB 프로카드를 획득하는 기념비적인 장면이었다.

하지만 감격의 순간은 짧았다. IFBB가 국내 협회를 통해 프로카드를 수여하려 했으나 승인이 떨어지지 않은 것. 분명 프로 자격을 얻었으나 정작 강경원 본인 손에는 프로카드가 없는 알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됐다.

사람들은 보통 이러한 상황에 직면할 때 극단적인 반목의 상황에 돌입하거나 제풀에 지쳐 쓰러지곤 한다. 그런데 강경원은 웃었다. ‘어른의 사정’에 휘말리지 않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다행히 스포츠 미디어 그룹인 몬스터짐이 강경원의 가능성에 주목하며 후원을 결정했다.

몬스터짐의 도움으로 강경원은 2015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재차 출발선에 섰다. NPC 하부리그부터 다시 시작했고, 결국 2015 NPC 뉴욕&뉴저지 메트로폴리탄 챔피언십에서 오버롤을 차지해 프로카드를 획득했다. 재미있게도 그의 우승을 두고 미국 현지에서는 “아놀드 클래식 아마추어 우승으로 이미 프로카드를 딴 선수가 왜 아마추어 대회에 나오느냐”는 말이 나왔는데, 그때마다 강경원은 자신을 둘러싼 국내 상황을 일일이 설명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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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 4년차 강경원과 개척자의 길

2015년 미국에서 다시 프로카드를 따낸 강경원은 올해로 프로 4년 차에 접어든다.

프로 입성 후 강경원이 걸어온 지난 4년의 발자취는 굉장히 빼곡하게 새겨져 있다. 국내 그 어떠한 보디빌더보다도 가장 숨 가쁘게 달려왔다. 보디빌더들에겐 꿈의 무대인 미스터 올림피아에도 올랐고, 아놀드 클래식 프로는 올해로 벌써 세 번째 출전 도장을 찍게 됐다. 아놀드 클래식에 3년 연속 프로 선수로 초청받은 보디빌더는 국내에서 강경원이 유일하다.

아놀드 클래식 첫 출전이었던 지난 2016년 대회에서 강경원이 올린 성적은 212lbs 체급 5위였다. 히데타다 야마기시, 호세 레이몬드, 가이 시스테니노, 찰스 딕슨 등 전설적인 선수들이 가장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는 전장에서 기록한 값진 기록이다. 비록 지난해 대회에서는 8위를 기록하며 잠시 주춤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강경원은 쇠질을 멈추지 않고 보디빌딩 외길을 걷는 중이다. 

강경원은 최근까지 강행군을 이어왔다. 선수 육성 프로젝트인 ‘몬스터짐 보디빌딩 스쿨’을 진행하면서 한국과 미국을 오가는 바쁜 스케줄을 진행했기 때문. 하지만 그 와중에도 강경원은 시간을 쪼개가며 아놀드 클래식을 차근차근 준비했다.

지난 28일(이하 한국시간) 강경원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아놀드 클래식 시합이 이틀 남았다. 12월 20일 통보 받고 다이어트 벌크업 같이 진행했다. 준비 기간이 짧아서 몸을 만들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완벽하지는 않지만, 창피한 정도는 아니게 몸이 나왔다”는 준비 소감을 남겼다. 여전히 프로로서의 자부심과 운동에 대한 열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강경원은 국내 보디빌딩의 신화적인 인물이다. 그의 지난 30년 발자취만 돌아봐도 이미 보디빌더로서의 소명을 완수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강경원은 곧 지천명(知天命)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아직 걸어가야 할 길이 더 남은 것처럼 여전히 묵직한 쇳덩어리들과 호흡하고 있다. 개척자, 선구자만이 갈 수 있는 무한한 여정에 돌입한 셈이다.

[사진·영상] ⓒ몬스터짐 
조형규 기자(press@monstergroup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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