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9일(한국시간) 2018 WWE 로얄럼블이 열린다. 로얄럼블은 WWE를 대표하는 전통의 4대 PPV 중 하나로, 프로레슬링의 상상력과 창의성을 극대화 시킨 이벤트다. 전 세계 프로레슬링 최대의 축제인 레슬매니아를 향한 여정의 시작을 알리는 이벤트이기도 한 로얄럼블, 과연 올해의 마지막 생존자는 누가 될까?

wwe0.jpg

[스포츠아시아=조형규 기자] 프로레슬링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승패가 미리 정해져 있는 투기 형태의 스포츠 이벤트라는 점이다.

오늘날 프로레슬링은 과거와 달리 업계의 생리와 구체적인 프로세스가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상태다. 각종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대중 인식이 상당 부분 개선된 덕분이다. 물론 '쇼'라는 미명 하에 여전히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 대중은 프로레슬링이 가진 특수성과 문화•스포츠적 가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데 프로레슬링의 형식이 갖는 이러한 특수성은 다른 방향으로 발전의 여지를 남겼다.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 다채로운 경기 양식을 창조해낸 것이다.

오로지 홀몸으로 상대와 싸우는 여타 투기 종목과 달리 프로레슬링은 훨씬 입체적인 경기 구조를 만들 수가 있었다. 다자간 경기인 태그매치, 링 바깥에 구조물을 설치하여 훨씬 과격한 그림을 연출하는 케이지 매치, 각종 도구를 사용하여 상대를 공격할 수 있는 하드코어 매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천장에 매달린 벨트를 따내는 래더매치 등은 프로레슬링이 가진 무한한 상상력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경기 양식이다.

로얄럼블은 바로 프로레슬링이 가진 이 상상력과 창의성에 방점을 찍는 이벤트다. 레슬매니아-섬머슬램-서바이버 시리즈와 함께 WWE의 4대 PPV 중 하나이기도 한 로얄럼블은 4월에 열리는 레슬매니아의 초석을 다지는 시작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프로레슬링 팬들은 로얄럼블을 가리켜 '레슬매니아를 향한 여정(Road to Wrestlemania)'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wwe1.jpg

■ 프로레슬링이기에 가질 수 있는 창의성과 상상력

로얄럼블의 시작은 정확히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래 로얄럼블은 지난 1988년 1월 USA 네트워크에서 방영된 생방송 TV쇼에 특별 편성된 경기 중 하나였다. 그런데 사각의 링에서 수십 명의 프로레슬러들이 대결을 펼치는 이 경기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이듬해 WWE는 아예 로얄럼블을 메인이벤트로 하는 동명의 PPV로 격상시켰다.

경기 방식은 비교적 간단하다. 로얄럼블은 기본적으로 총 30명의 선수가 경기에 출전하게 되는데, 시작부터 모든 선수가 등장하진 않는다. 맨 처음에는 두 명의 선수가 링 위에서 경기를 시작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1~2분 사이의 간격으로 한 명씩 추가 선수가 입장하는 방식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승패를 가르는 방식. 로얄럼블 경기는 일반적인 프로레슬링 경기에서 3 카운트 핀 폴이나 서브미션에 의한 탭아웃이 인정되지 않는다. 최후의 1인을 제외한 모든 선수를 3단 로프 위로 넘겨 장외로 내보내는 것이 승리의 요건이다.

탈락에도 기준이 있다. 오로지 3단 로프 위로 넘겨야 하며, 장외로 떨어진 선수의 두 발이 바닥에 모두 닿아야 최종 탈락으로 인정된다. 반대로 말하면 3단 로프가 아닌 1~2단 로프 사이, 혹은 2~3단 로프 사이로 넘어가는 것은 인정되지 않으며, 양발이 모두 바닥에 닿지 않을 경우도 역시 탈락에 해당하지 않는다.

또한 경기 규칙은 아니지만 로얄럼블에는 일종의 전통이 있다. 로얄럼블의 최종 우승자는 같은 해 열리는 레슬매니아의 월드챔피언십 메인이벤트로 직행한다는 경기 외 규정이 생긴 것이다. 1993년부터 시작된 이 규정은 소수의 예외를 적용하면 지금까지도 비교적 충실하게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이처럼 상기한 규칙은 로얄럼블이라는 경기를 더욱 다채롭고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일종의 장치로 작용한다. 매년 로얄럼블에서는 이 디테일을 살려 기이한 방법으로 탈락하거나 생존하는 등 재미있는 장면을 다수 뽑아낸다. 또한 최후의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특혜를 통해 다가오는 레슬매니아의 기대감을 끌어올리게 된다.

wwe2.jpg

■ 라이벌 구도의 탄생은 언제나 로얄럼블에서 시작됐다

1998년 TV쇼에서 열린 첫 로얄럼블 최초의 우승자는 '핵소' 짐 더간이었다. 이 최초의 로얄럼블 경기는 총 20명의 선수가 출전한 유일한 경기였다. 이듬해 빅 존 스터드가 우승한 2회 로얄럼블부터 출전 선수 30명이라는 상징적인 숫자로 매년 경기를 장식하게 된다.

1990년 열린 로얄럼블은 그 어느 해보다 특별했다. 당대 최고의 선역 메인이벤터였던 WWE 챔피언(당시는 WWF) 헐크 호건과 떠오르는 차세대 주역인 인터콘티넨탈 챔피언 얼티밋 워리어의 맞대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기가 한창 후반으로 치닫던 40분대 즈음, 링 위에는 홍키 통크 맨을 제거한 호건과 숀 마이클스-릭 마텔을 제거한 워리어 단둘 만이 남았다. 당대 최고의 선역이었던 두 선수의 역사적인 페이스 투 페이스가 이뤄졌고, 관중석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수차례의 숄더블록 공격에도 호건과 워리어는 쓰러지지 않았다. 서로 강력한 맞수임을 짐작한 두 선수가 화려한 로프 반동 끝에 더블 클로스라인으로 동시에 쓰러지는 순간, 올랜도 아레나에 운집한 1만 8천여 명의 관객들은 모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결국 선의의 경쟁 구도가 시작된 이 라이벌리는 그해 레슬매니아로 이어졌다. 각자의 타이틀을 건 승부에서 호건과 워리어는 극적인 경기를 펼쳤고, 프로레슬링 팬들에게 영원히 기억될 최고의 명장면을 만들어냈다.

wwe3.jpg

스테로이드 파동, 경쟁단체인 WCW의 공세에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던 1990년대의 WWE를 지탱한 건 숀 마이클스와 브렛 하트였다. 프로레슬링의 가치를 근육질의 거구가 뿜어내는 비주얼에서 작지만 뛰어난 경기력으로 관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로 가져오는 데 성공한 이 둘은 로얄럼블에서도 맹활약을 펼쳤다. 1994년 렉스 루거와 함께 공동 우승을 차지한 하트는 그해 레슬매니아에서 요코주나를 꺾고 WWE 챔피언에 올랐다.

1995년에는 1번으로 출전한 마이클스가 처절한 혈투 끝에 마지막 생존자로 남았다. 역사상 최초의 1번 출전자 우승이라는 기록도 가져갔다. 이듬해에도 우승을 차지한 마이클스는 2년 연속 로얄럼블 우승이라는 멋진 타이틀을 거머쥐었고, 그해 레슬매니아로 직행해 영혼의 라이벌인 하트와 60분 아이언맨 경기를 펼쳐 팬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wwe4.jpg

■ 슈퍼스타 탄생의 자양분이 된 로얄럼블

프로레슬링을 대표하는 아이콘이자 역사상 최고의 라이벌 구도를 보여준 스티브 오스틴과 더 락의 활약상은 로얄럼블에서도 빛났다.

오스틴은 1997년에 커리어 최초로 로얄럼블 우승자가 됐다. 하지만 초창기 악역으로 커리어를 이어나가던 오스틴의 우승은 부정한 방법으로 이뤄졌다. 오스틴은 당시 경기에서 하트에게 탈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심판이 한눈을 파는 사이 다시 몰래 링으로 들어왔고, 심지어 하트를 뒤에서 넘기면서 우승을 차지하는 반칙을 저질렀다.

부정 우승에 대한 정의의 철퇴가 곧 내려졌다. 로얄럼블 우승자였던 오스틴은 부정행위가 문제가 되어 WWE 챔피언십 도전권을 박탈당한 것. 오스틴이 박탈당한 타이틀 도전권은 복잡한 과정을 거치며 결국 언더테이커가 WWF 챔피언에 등극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하지만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오스틴은 이듬해 로얄럼블에서 다시 최후의 2인으로 살아남아 라이벌 더 락을 제거하고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이때 오스틴에게 탈락한 더 락은 2년 뒤 빅쇼를 탈락시키며 2000년도 로얄럼블 최후의 생존자가 됐다.

이어진 2001년에는 오스틴이 또 주인공이 됐다. 다시 한번 로얄럼블 우승을 거머쥔 오스틴은 WWE 역사상 유일한 로얄럼블 3회 우승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렇게 20세기의 마지막과 21세기의 시작까지 모두 함께한 오스틴과 더 락은 프로레슬링 프로레슬링 역사의 아이콘이 되어 오늘날 팬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스타로 거듭나게 됐다.

wwe5.jpg

그 외에도 로얄럼블은 언제나 극적인 순간과 함께했다. 2005년에는 각본에 없던 실제 상황이 벌어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당초 우승자로 예정된 바티스타가 최후의 2인이었던 존 시나와 함께 격렬한 경기를 이어가다 양 선수가 동시에 바깥으로 떨어진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심지어 이들의 탈락은 아무리 영상을 돌려봐도 마치 계획된 것처럼 보일 정도로 절묘한 타이밍에 이뤄졌다. 당시 현장을 지휘하던 빈스 맥마흔 회장은 예기치 못한 사태에 불같이 화를 내며 경기장에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얼마나 다급했는지, 급하게 뛰어들어오던 맥마흔 회장은 이 과정에서 에이프런에 다리를 강하게 부딪혀 부상을 입었고 그 순간 자리에서 풀썩 쓰러지는 대형사고까지 터졌다. 

하지만 슈퍼스타는 위기의 순간에 탄생한다. 잠시 당황한 바티스타와 시나는 이후 정신을 차린 뒤 절묘한 애드리브로 경기를 다시 속행했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전개 탓에 경기를 지켜보던 모든 관중과 시청자들에게 연출된 상황으로 보일 정도였다.

이날 우승을 차지한 바티스타는 로얄럼블을 기점으로 주가가 대폭 상승했다. 트리플 H와의 멋진 대립으로 그해 레슬매니아 메인이벤트를 장식하며 톱스타 반열에 올라섰고, 시나 또한 회사를 책임지는 얼굴이 되어 2000년대를 대표하는 프로레슬링의 아이콘이 됐다. 2005년 로얄럼블에서의 이 극적인 장면은 지금도 프로레슬러들의 순간적인 재치와 센스를 보여주는 좋은 교보재가 됐다.

wwe6.jpg

■ 새 얼굴의 등장 예고한 2018 로얄럼블

매년 다채로운 경기와 멋진 장면을 보여준 로얄럼블은 올해로 30주년을 맞이한다. 2018 로얄럼블은 오는 29일(한국시간) 미국 펜실베니아 주 필라델피아 웰스파고센터에서 개최되는데, 몇 가지 흥미로운 관람 포인트가 있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올해 로얄럼블에서 역사상 최초로 여성 30인 로얄럼블 경기가 펼쳐진다는 점이다. 남성 선수보다 턱없이 부족한 로스터 때문에 과거 WWE는 여성 로얄럼블 경기를 열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2010년대에 접어들자 상황이 달라졌다. 기량이 상향 평준화 되고 로스터 또한 풍성해지면서 여성 선수들로 30인 로얄럼블 경기를 채울 수 있게 된 것이다. 게다가 최근 WWE 퍼포먼스 센터에서 훈련하며 프로레슬링 데뷔를 준비하고 있는 전 UFC 여성 밴텀급 챔피언 론다 로우지의 출전 루머가 언급되면서 관심이 더욱 커진 상태. 여성 선수들의 입지가 대폭 넓어진 현 프로레슬링 시장의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남성 30인 로얄럼블 경기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세대교체의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wwe7.jpg

먼저 현 WWE 유니버설 챔피언인 브록 레스너는 케인과 브라운 스트로먼을 상대로 타이틀전을 치른다. 때문에 로얄럼블 출전자 명단에서는 빠졌다. WWE 챔피언 AJ 스타일스, 러와 스맥다운의 태그팀 챔피언인 세스 롤린스&제이슨 조던과 우소즈 또한 각각 경기를 치른다.

덕분에 현재 30인 출전자 중 비교적 경력이 긴 프로레슬러나 노장이라고 할만한 선수는 시나, 매트 하디, 랜디 오턴, 더 미즈 정도가 끝이다. 물론 로얄럼블의 특성상 추억의 선수들이 일회성 출연을 할 것으로 보이지만, 핵심 선수를 구성하고 있는 건 WWE의 새 얼굴들이다.

여기에 최근 WWE와 계약을 맺은 북미 인디 프로레슬링의 강자 리코쉐, 임팩트 레슬링 출신의 스타 선수 이든 카터 3세도 출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연히 올해 로얄럼블도 차세대 옥석을 가리는 무대가 됐다. 한껏 쇄신의 분위기가 조성된 가운데 누가 차세대 주역으로 거듭날지 지켜보는 것은 이번 로얄럼블의 주요 관전 포인트 중 하나가 될 것이다.

wwe9.jpg

■ 국내 최초 생중계 PPV 타이틀을 달게 될 2018 로얄럼블

하지만 모든 것을 떠나서 국내 팬들에게는 그 어느 해보다 특별한 로얄럼블이 될 예정이다. 국내 방송 13년째를 맞이하는 올해부터 WWE가 IB스포츠 채널을 통해 미국 현지와 같이 동시 생중계되기 때문이다.

여태까지 국내에서 WWE는 간판 프로그램인 러와 스맥다운을 비롯해 월간 PPV, 그 외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다양한 방송사를 통해 중계됐다. 그러나 모두 2주에서 3주가량의 텀을 두고 송출하는 방식이었다.

따라서 WWE 네트워크를 따로 신청하지 않았던 기존의 국내 시청자들은 이미 미국 현지 소식을 접한 뒤 국내 방송을 접하는 경우가 많았다. 자연히 기존의 국내 중계에서는 프로레슬링 콘텐츠가 가진 생중계의 예측 불가능한 재미가 부족한 편이었다.

그러나 올해부터 WWE 국내 중계가 미국 현지 동시 생중계로 전환됨에 따라 국내 프로레슬링 팬들도 한국어 중계와 함께 실시간으로 경기를 접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29일 열리는 2018 로얄럼블이 생중계 전환 이후 첫 PPV가 되는 것이다.

사상 첫 국내 생중계 PPV 이벤트인 만큼, 적어도 한국 팬들에게 있어서 이번 로얄럼블의 박진감은 그 어느 해보다 남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과연 29일 웰스파고센터 상단에 걸릴 대형 레슬매니아 전광판을 응시하게 될 최후의 생존자는 누가 될까?

하루 앞으로 다가온 로얄럼블에서 WWE의 새 얼굴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 ⓒWWE
조형규 기자(press@monstergroups.com)
[(주)몬스터그룹 스포츠아시아·엠파이트·몬스터짐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품 랭킹 TOP 0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