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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짐=반재민 기자] “나의 꿈은 타이틀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가장 완벽하고 이상적인 축구가 그라운드에서 단 5분만이라도 구현되는 것을 보는 것이다.” 잉글랜드 축구 프리미어리그 아스날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명감독 아르센 벵거의 명언이다.

남자배구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의 최태웅 감독도 벵거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최 감독은 승패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단지 자신이 천명했던 배구철학을 선수들이 잘 플레이 해낼 때 희열을 느낀다고 말한다.

수많은 연구와 선수들간의 소통,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얻어낸 그의 배구철학은 매우 간단하다. 빠르고 정확한 배구, 모든 선수들이 자유로이 활약할 수 있는 배구, 그것이 바로 최태웅 감독이 추구하는 배구철학인 일명 '업템포'다.

2015년 현대캐피탈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최태웅 감독이 강조했던 것은 바로 이 업템포라는 스피드 배구였다. 세터의 빠른 토스와 속공의 극대화, 오픈공격의 속공화 등 외국인 선수의 오픈공격에만 의존하지 않는 배구를 만드는 것을 꿈꿨다.

첫 시즌부터 그의 배구는 성공을 거뒀다. 단일시즌 16연승 기록이라는 놀라운 성적과 함께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비록, 당시 최고의 외국인 선수였던 OK 저축은행의 랜디 시몬의 벽을 넘지 못해 최종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만 서른아홉의 젊은 감독이 코트에 불어넣은 철학은 충격을 넘어서 가히 센세이션에 가까웠다.

그리고 지난 시즌 드디어 결실을 거뒀다. 정규시즌 대한항공에 밀려 준우승을 거뒀지만, 플레이오프에서 한국전력에 2연승을 거두며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고, 대한항공에 3승 2패로 승리를 거두며 2006-2007 시즌 이후 10년만의 우승을 이끌었다.

그리고 업템포 2.0+를 천명한 2018년. 첫 V리그 경기이자 라이벌 경기였던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와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와의 경기에서 현대캐피탈은 그들이 지향했던 업템포 배구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초반 스타트는 불안했다. 선수들이 긴장한 듯 제대로 된 공격을 펼치지 못했다. 삼성화재의 박철우와 타이스는 절호조의 컨디션을 증명하는 듯 묵직한 오픈강타를 뿜어냈고, 현대캐피탈은 첫세트를 내줘야하만 했다.

하지만, 현대캐피탈이 제 모습을 찾아가는 데에는 채 1세트도 걸리지 않았다. 그 중심에는 올 시즌 올스타전 팬투표 1위에 빛나는 신영석이 있었다.

신영석은 김규민과 박상하가 공격수의 움직임을 보고 뜬다는 것을 이용해 노재욱에게 좀더 빠른 토스를 주문했고, 노재욱은 정확하고 빠른 토스로, 신영석은 빠르고 정확한 속공으로 삼성화재의 미들 블로커 라인을 헤집어 놓기 시작했다. 이날 신영석은 속공을 18개 시도해 13개를 득점과 연결시키는 놀라운 활약을 선보였다. 신영석의 최종득점은 17득점, 외국인 주포 안드레아스가 올린 14점을 상회하는 대활약이었다.

오픈공격을 대비하면 날아드는 속공, 속공을 예상하고 미리 블로킹을 뜨면 날아드는 오픈 공격, 현대캐피탈의 완벽을 자랑하는 조직력에 삼성화재의 블로커 라인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2세트부터 김재휘 대신 투입된 차영석 역시 6득점과 55.56의 높은 공격성공률을 기록, 신영석의 뒤를 받치며 현대캐피탈은 높이 싸움에서 완벽한 우위를 점해나갔다.

미들 블로커에서 우위를 점하자 사이드 윙 라인인 문성민과 안드레아스는 부담을 덜 수 있었다. 속공이 거의 막히지 않다보니 노재욱 센터는 속공과 오픈공격을 번갈아 활용할 수 있었고, 공격수들은 공격부담을 덜며 강한 공격을 때려낼 수 있었다.

물론 일장일단은 있었다. 속공을 주로 쓰다보니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상대에게 공격패턴을 읽힐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현대캐피탈은 송준호의 중앙 파이프 공격을 활용했다. 거의 속공과 다름없는 송준호의 빠른 파이프 공격은 현대캐피탈의 공격선택지를 하나 더 늘려줌과 동시에 삼성화재의 기를 꺾기에 충분했다. 송준호는 13득점 76.92%라는 높은 공격성공률로 현대캐피탈의 공격 한 부분을 담당했다.

반면, 신영석에 맞서 김규민과 박상하의 속공으로 맞불을 놓은 삼성화재는 세트 중반 속공이 가로막히자 오픈 토스 중심으로 선회할 수 밖에 없었고, 이는 사이드 공격수, 박철우와 타이스의 공격부담으로 이어졌다.

결정적으로 황동일의 토스는 노재욱만큼 정확하고 빠르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현대캐피탈의 블로커진은 공격수를 보면서 뜰 정도로 여유있는 블로킹 라인을 세웠고, 결과적으로 현대캐피탈의 높이까지 모두 살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결국 특유의 스피드배구가 살아난 현대캐피탈은 2세트부터 4세트를 연거푸 따내며 새해 첫 승리이자 라이벌전 승리, 선두 등극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다.

최태웅 감독은 승리 후 인터뷰에서 2연패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아직 경기는 많이 남았다.”라며 웃어보였다. 하지만, 최대의 라이벌 앞에서 자신의 배구철학을 마음껏 선보인 점에서 현대캐피탈의 지향점, ‘업템포 2.0+’ 완성을 알리기에 충분했다.

사진=KOVO 제공
반재민 기자(press@monstergroup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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