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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짐=반재민 기자] 2008년 1월 20일 대전충무체육관에서 펼쳐진 2007-2008 V리그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과의 경기, 전통의 라이벌전답게 양 팀은 시소게임을 펼쳤고, 승부는 마지막 5세트로 넘어가게 되었다.

5세트 중반, 종아리 근육경련을 참고 뛰던 삼성의 주전세터 최태웅이 결국 참지 못하고 쓰러졌다. 당시 백업세터이자 신인이었던 유광우는 무릎부상을 당해 출전이 불가능 한 상황, 결국 신치용 감독은 당시 수련선수로 삼성화재에 입단한 강민웅(현 한국전력)을 투입할 수 밖에 없었다.

이 경기 전까지 단 한경기도 코트에 나선 적이 없었던 강민웅은 자신의 시즌 두 번째 경기를 라이벌전, 그것도 마지막 5세트, 승부를 결정지을 수 있는 상황에 투입되는 상황을 맞았다. 강민웅은 그 때의 상황에 대해 “정신 없이 뛴 것 같다.”라고 회상했다.

교체로 1경기밖에 뛰지 않았을 만큼 경험이 일천한 강민웅이 최태웅의 공백을 메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하지만, 위기의 상황에서 강민웅은 빛났다. 안정감있는 토스로 안젤코의 득점을 도왔고, 재치있는 2단 공격으로 현대캐피탈 수비진의 허를 찌르기도 했다. 결국 강민웅의 맹활약에 힘입어 삼성화재는 승리할 수 있었고, 여세를 몰아 챔피언결정전에서도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삼성화재의 세터진은 다른 팀들에 비해 많이 바뀐 편은 아니다. 프로 이전부터 2009년까지 최태웅이 자리를 지킨 삼성화재의 세터는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유광우가 주전세터를 맡으며 모두 8번의 우승을 이뤄냈다.

물론 세대교체는 수월하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앞의 경우처럼 최태웅이 부상을 당하며 경기 도중 실려나갈 때도 있었고, 유광우 역시 고질적인 발목 부상으로 고전할 시기가 있었다. 그때마다 삼성화재가 승리를 쌓아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백업세터의 힘이었다.

유광우가 주전이던 시기 삼성화재의 약점은 유광우의 백업이 없다는 점이었다. 2013년까지는 강민웅이 있었지만, 2014년 전진용과 함께 대한항공으로 트레이드 되었다. 강민웅의 반대급부로 온 세터가 바로 황동일이었다. 황동일은 2008년 우리캐피탈에 지명되자마자 LIG 손해보험으로 트레이드 되었고, 2011년 대한항공을 거쳐 삼성화재에 온 떠돌이 세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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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신치용 감독이 물러나며 가장 아픈 손가락으로 황동일을 꼽았을 정도로 그는 10년째 미완의 대기였다. 세터를 거쳐 미들 블로커, 윙스파이커에 이르기까지, 황동일은 제 포지션을 찾지 못한채 방황해야했고, 유광우에게 걸린 부하는 더욱 커졌다. 결국 삼성화재는 지난해 포스트시즌에 나서지 못하는 굴욕을 겪어야만 했다.

그리고 올 시즌 삼성화재의 세터진에 있어서 또 다른 변화가 생겼다. 주전세터 유광우가 FA로 데려온 박상하의 보상선수로 우리카드로 이적한 것이었다. 삼성화재에 있어서는 치명적인 전력공백이었다. 2014년에 입단한 유망주 이민욱이 있었지만, 다른 세터들에 비해 작은 키(182cm)가 큰 약점으로 지적되어왔다. 임도헌 감독의 후임으로 부임한 신진식 감독은 유광우의 후임으로 황동일을 선택했다. 훈련기간에서 단내나는 세터수업을 통해 본 궤도를 찾았다는 신 감독의 판단이었다.

시즌 초반 황동일의 기용은 적중하는 듯 했다. 비록 개막 2연패를 당했지만, 팀은 황동일의 공격적인 세트와 타이스, 박철우의 공격력을 통해 11연승을 기록하며 삼성화재의 단독 선두를 이끌었다.

하지만, 3라운드 들어 위기가 찾아왔다. 현대캐피탈과의 라이벌 전에서 완패당하며 황동일의 약점이 수면위로 드러난 것이었다. 곧이어 한국전력과의 경기에서도 패했다. 2연패, 11연승을 달렸던 삼성화재에 또다시 위기가 찾아온 것이었다.

그 다음 상대는 KB 손해보험, 비록 최근 상승세가 꺾였지만, 권순찬 감독 부임 이후 쉽게 지지않는 팀으로 변모했기에 자칫 연패가 길어질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주전세터인 황동일마저 무릎에 통증을 호소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신진식 감독이 꺼내든 카드는 바로 김형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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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대학교 시절, 박종찬 감독의 신임속에 대학배구 사상 첫 무패우승을 이끌었던 김형진이었지만, 프로에 와서는 원포인트 서버로 주로 기용되고 있었던 상황에서 신 감독은 김형진에게 첫 선발세터의 중책을 맡긴 것이었다.

첫 세트에서는 불안했다. 꽁격수들과 호흡이 제대로 맞지 않았다. 세트가 불안하다보니 공격이 제대로 될리 없었고, KB의 역공에 완전히 말리며 첫 세트를 힘없이 내줬다. 하지만, 2세트부터 대학배구를 평정했던 김형진 특유의 플레이가 나오기 시작했다. 박철우과 타이스에게 뿌려주는 오픈토스는 정확하면서도 빨랐고, 3세트 중반에는 재치있는 2단 공격으로 팀의 득점을 만들어냈다.

4세트까지 71개의 세트를 시도한 김형진은 그 중에 45개를 성공시키며 63.3%라는 뛰어난 세트 정확도를 기록해냈다. 자신의 시즌 첫 선발경기를 멋지게 마무리한 김형진은 자신의 진가를 한껏 드러내보이며 팀의 2연패 탈출을 도왔다.

황동일이 최근 불안감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나타난 김형진의 존재는 마치 10년전 강민웅을 떠올리게 한다. 위기의 상황에서 나타난 난세의 영웅 김형진, 아직 첫 경기로 김형진을 평가하기에는 이르지만, “팀에 맞춰가도록 하겠다.”라는 김형진의 겸손한 인터뷰를 본다면 그의 성공 가능성은 높아보인다.

과연 김형진이 삼성화재의 세터진을 이끌 수 있는 재목으로 성장할지 그의 행보가 더 주목되는 이유다.

사진=KOVO 제공
반재민 기자(press@monstergroup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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