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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짐] 오는 8월 26일, 라스베거스의 T 모바일 아레나에서 전례 없이 특수한 경기가 벌어진다. 짧게 잡아도 150년을 넘긴 프로 복싱의 역사에는 너무나 흥미롭고 다채로운 기록이 가득하다. 그 중 복싱과 다른 종목간의 교류라는 장에는 참으로 많은 스토리들이 있다. 복서가 타류의 초청을 받고 이종대결을 벌인 일이 드물지 않았고, 타류의 강자가 복싱의 링에서 탁월한 성과를 거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이번처럼 복싱 경력이 전무한 다른 종목의 선수가 시대의 정점에 선 당대 프로 복싱을 대표하는 선수에게 아무런 준비 없이 복싱으로 바로 도전하게 된 경우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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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을 뒤집고 찾아보는 유사한 사례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면서 찾아보았다. 유사한 사례가 혹시 있을까 해서다. 복서들이 다른 종목의 파이터와 특별룰로 싸운 경우라면 극진 카라테를 창시하고 극진의 방식을 시험하기 위해 세계 무술계를 주유했던 최영의, 이소룡에게 그래플링의 개념을 전수했고 북미 최초로 TV 카메라의 앞에서 프로 복서와 타류 시합을 했던 '쥬도' 진 르벨, 그리고 모든 브라질리안 주짓수 수련자들의 계보가 시작되는 원점인 마에다 미츠요등 근-현대 무림의 절대고수들이 남긴 기록을 예로 들 수 있다. 모두 프로 복서를 상대로 거둔 승리에 의미를 두고 있다.
 
UFC 1의 기획 책임자였던 캠벨 맥라렌은 섭외 당시 호이스 그레이시를 제외한 7명의 토너먼트 참가자(호이스 그레이시는 공동 창업자였던 호리온 그레이시가 내세운 카드였기 때문)를 초빙함에 있어 프로 복서의 섭외에 각별한 공을 들였다고 말했다.
 
UFC 1에서 맥라렌이 영입했던 아트 짐머슨은 당시 29승 5패 22 KO에 15연승(12KO) 중이던 크루저급 세계 랭커였다. 공을 꽤 많이 들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짐머슨은 주택을 구매하는데 선금 중 1만 5천 달러가 모자랐던 사정이 있었고, 맥라렌은 1만 5천을 불러서 그를 끌어들였다.
 
복싱은 오랜 전통과 세계적인 인기, 인기만큼 높은 경쟁의 수위, 선수를 만들어내는 고도의 트레이닝 과정, 탑 랭커들의 경기력, 스킬의 깊이에 따라 더해지는 경향의 미적 완성도, 무엇보다도 요단강에 낚시대를 드리우고 벨트를 낚는 종목의 특성을 대중 전반이 인지하고 있다. 즉, 수준급 프로 복서라는 공인된 격투 전문 인력을 상대로 싸워 이긴다는 건 본인, 혹은 본인이 수련한 무술이 강하다는 증명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예로부터 다양한 종목의 고수들이 복서들에게 러브콜을 보냈던 것으로 정리하면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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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복싱 3전 만에 세계 챔피언이 된 낙무아이 무앙수린
 
타류의 고수가 복싱룰로 복서와 대전한 예라면 맥그레거도 이에 속하겠지만, 태국의 무에타이 파이터들이 대표적이다. 1960년 폰 킹팻치가 단일기구 시대에 플라이급 챔피언이 되면서 무에타이 파이터들의 침공루트가 개척됐다. 이후 대략 50여 명의 무에타이 파이터들이 메이저 복싱기구의 벨트를 허리에 감았다. 그 중 사엔삭 무앙수린의 발자취는 이 시점에서 흥미롭게 느껴진다.
 
룸피니 챔피언에 오르고 체급대의 라이벌들을 상대로 우위를 점했던 73년, 무앙수린은 시선을 세계로 돌렸다. 그 얼마 전 호세 슐레이만 WBC 회장이 태국을 방문해 룸피니 스타디움에서 무에타이 경기를 관람한 후 깊은 감명을 받은 일이 있었다. 슐레이만은 “앞으로 룸피니 챔피언이 복싱으로 전향하게 되면 세계 랭킹 10위로 즉각 올려주겠다”고 약속을 했고, 무앙수린이 프로 복싱으로 전향하자 WBC는 약속대로 즉각 세계랭킹전을 추진했다.
 
그래서 그의 데뷔전은 무려 10라운드 경기로 치러졌다. 데뷔전에서 14승 9패의 전적을 가진 상대를 2분 만에 눕힌 무앙수린에게 WBC는 31승 7패 3무의 라이온 후루야마라는 선수를 붙여주었다. 후루야마는 이미 양대 기구의 타이틀에 한 번씩 도전한 경력을 가진 탑랭커였다. 하지만 결과는 무앙수린의 7라운드 KO승이었다. 무앙수린의 프로 세 번째 경기는 WBC 주니어 웰터급 타이틀전이었고, 34승 3패 9무의 챔피언은 8회까지 버텼지만 결국 벨트를 풀었다.
 
무앙수린은 복싱 경력이 전무한 상태에서 단 3전만에 세계챔피언이 된 케이스로, 그나마 맥그레거의 도전과 가장 가까운 형태다. 차이점은 그나마 무앙수린에게는 두 번의 경험을 쌓을 기회와 시간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당시 무앙수린에게 타이틀을 내준 챔피언 페리코 페르난데즈는 22세의 2차 방어전을 치르는 젊은 선수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 당시 주니어 웰터급의 중심은 차후에 윌프레도 베니테스, 아론 프라이어의 도전을 받게 되는 WBA 동급 챔피언 안토니오 세르반테스였다. 또한 전 제급을 통틀어 보면 무하마드 알리가 조지 포먼을 눕힌 후 두 번째 임기를 지내던 중이었으며, 알리-프레이저 3차전을 코앞에 둔 시점이었다. 따라서 무앙수린이 3전 만에 복싱의 중심권으로 단숨에 진입한 그런 상황까지는 아니었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아마추어 경력도 없는 선수가 데뷔전에서 23전 경력의 중견 파이터를 만나 타이틀 도전 경력을 두 번이나 가진 탑랭커를 두 번째 경기에서 눕혔다는 것 자체가 사실 충격적인 전개였다. 아무리 변방이라 해도 복싱에서 세계 챔피언을 하기 위해서는 오랜 단련기간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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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에타이와 킥복싱의 사례는 있지만 MMA는 전무
 
다만 룸피니에서 챔피언이 된 특급 무에타이 파이터라면 짧은 시간에라도 가능하더라는 예외적 사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르면 7~8세 때부터 프로로 활동하면서 성인이 될 때까지 건강을 유지한 채 살아남고 인정받아야 챔피언이 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격투의 심연을 탐사하게 되는 초특급 낙무아이들의 운명은 어마어마하다. 그래서 무앙수린의 최단기간 타이틀 획득이 가능했다고 개인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복싱을 하지는 않았지만 복싱과 같은 카테고리에 있는 어떤 것을 기억이 가물가물하던 어린 시절부터 해오면서 같이 출발했던 친구들이 턱이 깨지거나 팔다리가 부러지고, 장기가 상하거나 뇌손상을 당해 하나둘 낙오하기 시작한다. 결국 극소수만이 정점의 근처에 도달하는 잔혹한 자연 선택 과정을 거치는 동안 낙무아이들이 얻게 되는 기술이나 전략전술의 수위도 엄청날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의 심리적 강건함을 획득하게 되면서 이들 중 일부가 복싱에서도 흥미로운 실적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태국의 주요 기구 타이틀을 여러 체급에 걸쳐 획득했던 특급 무에타이 선수들의 움직임은 과연 사람이 기술을 구사하는지, 기술이 사람을 부리는지 헷갈릴 정도의 일체감이 느껴질 정도다.
 
태국 출신의 복싱 세계 챔피언은 대략 50여 명이다. 이들 대부분은 무에타이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복싱에서도 탁월한 성과를 낸 대표적인 선수들 중에는 왼손잡이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무앙수린을 포함해 슈퍼 플라이급의 KO머신 카오사이 갤럭시(19차 방어 달성, 47승 1패 41KO, 챔피언인 상태에서 은퇴, 링지 선정 역대 최고 파워펀처 100인중 19위), WBC 주니어 페더급 챔피언으로 링지 선정 86년 올해의 파이터를 수상했던 사마트 파야카룬, WBA 플라이급 타이틀을 두 차례에 걸쳐 22차례(17+5) 방어한 퐁사클렉 원종캄 등이 있다. 오른손잡이 중에는 WBC 벤텀급에서 14차 방어를 달성한 포커페이스 베라폴 사하프롬을 꼽을 수 있다.
 
킥복서 출신의 복싱 챔피언으로는 ISKA 챔피언 출신의 비탈리 클리츠코와 크리스 알지에리가 있다. 홀리 홈도 킥복서로 데뷔해 복싱 챔피언이 된 경우다. 지난해 소소한 화제가 되었던 노숙자 복서 토니 모란도 킥복서 출신이다. 모란은 메이저 타이틀은 아니지만 42세의 나이로 WBF 크루저급 타이틀을 획득했다.
 
그러나 MMA 파이터가 복싱의 메이저 기구 챔피언이 된 케이스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UFC 최초의 두 체급 타이틀 동시보유라는 업적을 달성했고 농담처럼 들리는 미션들을 여러 차례 현실로 만든 맥그레거지만, 비슷한 예조차 찾을 길 없는 이번 도전은 전혀 새로운 차원의 것이다. 세 번째, 두 번째도 아닌 첫 경기에서 그것도 적당한 복서가 아닌 메이웨더를 상대한다는 건 놀라운 전개다. 메이웨더는 자타공인 본인의 시대를 정의했던 선수다. 그리고 상처 없이 은퇴했으며, 금방 다시 돌아온 이상 아직도 시대는 그의 것이라 봐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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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이웨더 vs 맥그레거, 그리고 복싱 vs 종합격투기

사람들은 메이웨더의 두 가지 불안요소로 많은 나이와 2년의 공백을 꼽는다. 나이 많은 복서들의 기량이 급락하는 주원인은 자연스런 노화로 인한 스피드와 반사능력 감퇴를 들 수 있다. 거기에 부차적으로 뇌에 누적된 상처가 반사 능력을 감퇴시키고, 정밀한 동작의 수행에 장애를 가져오는 탓도 크다. 특히 팬들의 환호 속에서 격려한 난전을 즐겨 했던 파이터일수록 선수생명이 짧다는 건 잘 알려져 있다.
 
다만 메이웨더는 이룬 업적대비 누적 대미지가 가장 적은 선수 중 한 명이다. 따라서 연령 대비 기량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마지막 경기인 2015년의 안드레 베르토전에서도 노쇠화의 문제는 특별히 관찰되지 않았다.
 
장기공백의 경우, 2015년 메이웨더의 은퇴는 진심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미 2016년부터 ‘#TMT50’, ‘#TBE50’ 등의 태그를 사용하면서 50번째 경기를 암시해 왔기 때문이다. 은퇴한 선수들이 흔히 보이는 급격한 체증 증가도 없었고, 꾸준히 트레이닝 강도를 유지해 왔다고 한다. 따라서 메이웨더의 은퇴선언은 몸값을 높이 부르기 위한 전략이었을 것이다.
 
한편 복싱의 대표 매체인 링지는 8월 27일의 메이웨더 대 맥그레거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전략) 놀랍고도 놀랍다. 두 명의 영리한 비즈니스맨이 결국 수천만 달러 -아마도 1억 달러가 넘을- 짜리 계약에 합의했다. 이 경기의 의미는 그게 전부다. '돈'. 복싱과는 전혀, 혹은 거의 관계가 없다.”
 
“PPV 가격 99달러를 지불하는 건 자유다. 하지만 이건 그냥 이벤트일 뿐이라는 점을 명심하라. 호기심이 생기기는 하지만 스포츠 경기라고는 할 수 없다.(후략)”
 
링지와 같이 저명한 매체에서 무슨 연유로 저렇게 냉소적인 뉘앙스로 단정적 견해를 밝혔을까? 아마도 ‘복싱과 MMA가 교집합이 상당히 넓은 팬 베이스를 놓고 벌이는 헤게모니 쟁탈전’이라는 관점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 상황을 머니게임의 구도에서 관찰해 보면, MMA 파이터의 흥행파워가 어느덧 복싱에서 가장 높은 몸값을 받는 선수에게 대전료를 지불할 만큼 급격한 상승을 이룬 상황이 됐다. 언제나 격투 스포츠의 다른 종목에 비해 차원이 다른 대전료를 지급해왔던 원탑 ‘복싱’의 위치가 MMA의 급격한 성장에 의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일부 복싱 관계자 및 팬들은 심기가 불편할 수도 있을 것이며, 이러한 것이 한데 모여 위에 소개한 링지 기사의 논조에서 그것이 드러난 것이 아닐까.
 
이제 본론으로 넘어가, 메이웨더라는 선수에 대해 조금 자세히 알아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다음 편에서는 메이웨더의 경기력을 보다 자세히 분석해 본다.

[사진] ⓒShowtime/ ⓒZuffa, LLC
이용수 기자(press@monstergroup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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