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다저스타디움에서 벌어진 LA 다저스와 뉴욕 메츠의 경기를 앞두고 MLB.com은 이렇게 썼습니다.
'차베스 협곡(Chavez Ravine: 현 다저스타디움이 있는 작은 계곡)에서 열리는 다저스와 메츠 경기의 선발 매치업을 보면 흥분되지 않을 수 없다. 리그 최고의 두 젊은 투수가 격돌하기 때문이다.'
이날 예고된 선발 투수는 메츠의 우완 맷 하비(24)와 다저스의 좌완 류현진(26). 류현진이 11승3패로 더 나은 성적을 올렸지만 9승3패의 하비는 평균자책점(2.09- 2.99)과 삼진수(178-118), WHIP(0.86-1.25) 등 대부분 기록에서 류현진을 앞섰습니다. 류현진이 꾸준히 신인왕 후보로 부각되는 반면에 하비는 류현진의 동료 클레이턴 커셔와 함께 사이영상의 후보로 꼽혔습니다.

솔직한 현지의 반응은 '대단히 흥미로운 대결'이라는 미명 하에 '하비가 다시 한 번 진가를 발휘하지 않을까, 특히 무서운 상승세인 다저스의 기세를 꺾고!' 쪽으로 기울고 있었습니다. 그나마 간판타자 데이빗 라이트가 빠진 메츠의 타선이 중량감이 떨어지기 때문에 꽤 괜찮은 좌완 신인 류현진이 승부 면에서 근접전을 벌일 가능성도 있을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습니다. 특히 다저스 팬들 사이에서는.





< '류, 자네가 주역일세! 좌완 투수가 LA를 7연승으로 이끌다' 라는 MLB.com의 사진과 제목이 눈길을 확 끕니다. MLB.com 캡쳐 >

그리고 경기가 끝난 후 MLB.com의 다저스 홈페이지에 올라온 기사의 분위기가 사뭇 달랐습니다.
'메츠의 에이스 맷 하비에 대한 이야기가 무수히 쏟아진 가운데 신인 왼손 투수 류현진은 화요일 밤(미국 시간) 자신도 상당히 괜찮은 투수라는 점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었다.'라고 리드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류가 7이닝을 1실점으로 틀어막는 가운데 A. J. 엘리스와 닉 푼토가 각각 2타점을 기록하며 다저스가 하비와 메츠를 다저스타디움에서 4-2로 꺾고 7연승을 달렸다.'라며 경기 상보를 소개했습니다.

이날 1회초 경기가 시작되고 2분 남짓, 류현진이 던진 4번째 공이 메츠 2번 타자 라가레스의 스윙에 걸려 좌측 담장을 살짝 넘어갔습니다. 슬라이더가 낮게는 들어갔는데 가운데로 몰리고 말았고, 후반기 들어 3할1푼5리에 장타 11개를 기록한 루키 후안 라가레스의 방망이가 이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의외의 한 방이 의외로 긴장을 풀고 더욱 집중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후 7회까지 류현진은 딱 단타 4개만 더 내주고 더 이상 실점을 하지 않으며 승부를 유리하게 끌어갔습니다. 홈런에 이어 3번 대니얼 머피에게 좌전 안타를 맞았지만 4번 타자 버드에게 5-4-3 병살로 연결되는 3루 땅볼을 끌어내며 1회를 공 11개로 마쳤습니다. 시즌 21번째이자 NL 투수 중에 3번째로 많은 병살을 만들어낸 재능이 또 발휘됐습니다.

2회에는 류현진이 돌아서서 외야를 보며 빙긋이 미소를 짓는 것으로 분을 삭인 제프 켈로그 구심의 약간 흔들리는 판정 속에 2사 후에 포수 존 벅에게 볼넷을 내줬지만 8번 퀸타니야를 146.5km 속구 파울팁 삼진으로 잡고 이닝을 마쳤습니다. 3회는 공 12개 만에 삼진 2개를 곁들인 삼자범퇴였지만 4회가 조금 오래 걸렸습니다.

4회 1사 후 4번 버드에게 투 스트라이크를 잡고 나서 119km의 떨어지는 커브를 던진 것이 그의 방망이 바깥쪽에 걸렸습니다. 이날 몇 안 되는 아쉬움이 남는 승부. 그리고 5번 새틴을 상대로 129km 체인지업으로 타이밍을 빼앗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 타구가 3루 베이스 라인을 타고 절묘한 번트 이상으로 느리게 굴렀습니다. 13일 더그아웃에서 벌어진 험악한 인상의 해프닝의 우려와는 달리 이날 2안타에 전력질주의 득점으로 류현진을 도와준 3루수 유리베도 그 공은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1사 주자 1,2루의 위기에서 류현진은 6번 터너를 우익수 뜬공으로 잡았고 2사 1,3루에서는 벅을 2루 땅볼로 처리하며 이닝을 피해 없이 마쳤습니다. 여전히 0-1로 뒤진 상황이었고 추가점을 주었더라면 하비와 메츠의 기세는 올라가고 다저스의 분위기는 침체될 수 있는 위기를 무사히 넘겼습니다.

야구는 어찌 보면 장기와도 흡사합니다.
장군을 부르면 멍군으로 받아치고, 그리고 다시 역으로 장군을 부르면 상대방이 멍군으로 받아치고. 그러다가 점점 궁지에 몰리면서 결정적인 장군에 막히면 결국 손을 들고 맙니다. 그런 면에서 선발 투수의 기 싸움이 중요하고, 버티기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1점차로 뒤진 투수나 1점차로 앞서가는 투수나 긴장되고 중압감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 팽팽한 경기일수록 누가 더 오래 버틸 수 있느냐의 싸움입니다.
그런 면에서 류현진은 타선의 무게감에서 조금 유리한 입장이었을 수도 있지만, 이날 경기 직전 라인업에 들었던 이디어가 종아리 통증으로 갑자기 제외되면서 다저스의 라인업이나 메츠의 라인업이나 별 차이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5번에 슈마커, 6번에 엘리스, 7번에 유리베, 8번에 푼토. 이 라인업은 시즌 초 내내 고전하던 시절의 다저스의 라인업으로 돌아간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와 큰 차이라면 팀의 분위기.
요즘 다저스는 매일 누가 영웅으로 탄생할 것인가를 보는 재미가 있는데 이날 맷 하비를 무너뜨린 주역들이 바로 6번 엘리스, 7번 유리베, 8번 푼토였습니다. 5회초를 류현진이 삼자범퇴로 가볍게 끝낸 직후인 5회말, 1사에 6번 엘리스가 볼넷을 골라나갔습니다. 후반기 4경기에서 31K에 1BB의 믿기 어려운 탈삼진 능력과 제구력을 동시에 과시한 하비에게 얻은 소중한 이날 두 번째 볼넷은 유리베의 경기 두 번째 안타로 연결이 됐습니다. 유리베의 좌전 안타 때 엘리스는 3루까지 진루하며 압박을 가했습니다. 그리고 푼토가 하비의 156km 강속구를 욕심내지 않고 짧고 정확한 스윙으로 맞춰 좌측 선상을 따라 흐르는 안타를 쳤습니다. 엘리스는 넉넉히 홈으로 들어왔지만 유리베가 1루에서 홈까지 들어온 것은 깜짝 놀랄 일이었습니다. 투아웃에 미리 스타트를 끊었다면 모를까 1사였는데, 유리베는 마치 우사인 볼트처럼(물론 조금은 더 육중한 모습으로) 치달아 송구도 없이 2점째를 올렸습니다. 하비를 상대로 2-1로 승부를 뒤집은 것은 다저스의 하위 타선이었습니다.

이제는 그야말로 버티기에 들어가야 할 것으로 보였고 류현진은 6회초 홈런을 맞은 라가레스부터 머피, 버드로 이어지는 그나마 메츠의 힘 있는 타자들을 다시 삼자범퇴로 처리했습니다. 그리고 6회말 다저스는 다시 한 번 하비를 흔들어 놓습니다.

기록으로 봐도 알 수 있지만 하비는 참 대단한 투수입니다. 시즌 초 그의 투구를 본 보비 발렌타인 전 레인저스, 메츠, 지바 롯데, 레드삭스 감독은 '메츠 유니폼을 입은 최고의 투수가 될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당장 톰 시버와 드와이트 구든을 배출한 구단인데 워낙 입담이 센 '보비 V'의 과장된 말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하비는 그 정도로 대단한 투수입니다.
강속구의 평균 구속이 155km를 넘나들어 빅리그 선발 중에 늘 1,2,3위를 다투는 하비는 작년 애리조나와의 데뷔전에서 11K를 기록했고, 올해도 23번 등판에서 18번의 QS와 함께 NL 평균자책점 2위, 삼진 1위, 이닝 당 진루수(WHIP 0.86) 1위 등 그야말로 당당한 사이영상 후보입니다. 바로 지난 경기에서는 콜로라도를 상대로 첫 완봉승을 거두기도 했고, 후반기 4경기에서 ERA 0.91과 31K도 모두 빅리그 1위의 기세였습니다.

그러나 6회말 다저스는 선두 2번 마크 엘리스가 안타를 치고 나간데 이어 1사 후에 4번 푸이그가 좌전 안타로 1,2루의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이디어 대신 급히 투입된 5번 슈마커는 1루 땅볼에 그쳤지만 공이 느리게 굴러가며 주자는 2,3루. 그리고 투아웃 이후에 포수 엘리스가 결정적인 좌전 안타를 터뜨리며 다저스는 2점을 추가했습니다.
하비를 상대로 6회까지 4점을 뽑았으면 대성공이었고 게다가 류현진은 1실점으로 메츠 타선을 봉쇄했으니 사실상 승부의 추가 홈팀 다저스로 크게 기울어진 순간이었습니다.
7회에도 마운드에 오른 류현진은 1사 후에 터너에게 이날 5번째 안타를 내주기는 했지만 벅을 3루 땅볼, 퀸타니야를 우측 뜬공으로 처리하며 23번째 등판을 마쳤습니다. 7이닝 5안타(1홈런) 볼넷 1개, 삼진 3개로 1실점하며 시즌 12승째를 거뒀고 평균자책점은 2.91로 조금 더 좋아졌습니다. 이날 투구수는 107개였고 71개가 스트라이크였습니다. 다저스는 최근 류현진 등판 경기에서 9연승을 거뒀고 총 17승6패를 기록했습니다.

이후 벨리사리오와 젠센이 1이닝씩으로 나눠 막으면서 류현진과 다저스의 승리를 지켰습니다. 최근 등판이 너무 낮은 젠센은 9회초 1점을 내줬는데 실점보다는 구위의 저하가 보여 매팅리 감독이 휴식을 좀 주어야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날 승리하면서 다저스는 3년 만에 7연승 가도를 달렸고, 16시리즈 연속 무패(11승4무)를 확보하게 됐습니다.





< 평소에나 훈련 때나 혹은 마운드에서도 늘 이렇게 편안하고 느긋할 수 있는 것은 가르친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돌아갈 줄 아는 재능이 있는 투수입니다. ⓒ민기자닷컴 >

류현진의 이날 구위는 지난 9일 세인트루이스전보다 오히려 더 좋아 보였습니다. 이날 강속구의 최고 구속은 151km(9일 150km)였고 평균구속은 147km(145km) 그리고 최저 구속은 143km(140km) 이었습니다.
류현진은 자신의 강한 구위와 그리고 상대 타선의 힘을 파악하면서 이날 훨씬 공격적인 피칭을 했습니다. 강속구 구사비율이 56%-46%로 지난 경기보다 10%나 많았습니다. 자신의 구위나 상대의 파괴력을 감안할 때 힘으로 밀어 붙여도 충분히 승산이 있음을 동물적인 감각으로 바로 알아챈 것입니다.
초반 슬라이더로 홈런을 맞은 탓도 있겠지만 왼손 타자가 많이 나오지 않은 이날 메츠 라인업을 상대로는 체인지업을 30개(28%)나 구사해 변화구의 주종으로 던졌습니다. 세인트루이스전에서 22%나 됐던 슬라이더는 이날 단 10개(9%)만 던졌습니다. 커브 역시 7개에 불과해 지난 경기 10개보다도 적었습니다.

그만큼 류현진은 마운드에 서면 상대의 숨통을 조이는 방법을 본능적으로 잡아내는 능력을 지녔습니다. 영어로 'Killer Instinct'하면 괜히 뭔가 있어 보일지도 모르지만 실은 아주 비정한 단어인 '살상 본능'이라는 의미인데, 승부사에겐 반드시 필요한 그 살상 본능과 감각을 류현진은 타고났습니다. 강공으로 가도 괜찮은 건지, 혹은 힘을 절약하며 가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기를 끌어올려야 하는지, 순간순간마다 상대 힘을 받아쳐 무력화시키고 어느 시점에 역공으로 집중 공략해 꺾어버리는 지의 그런 동물적인 감각이 그에게 분명히 있습니다. 아마도 그것이 류현진과 다른 투수와의 차이일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설명하고 가르친다고 해도 개인차에 따라 습득할 수 있거나 혹은 절대 습득할 수 없는 그런 본능.

조금 우려되는 점은 류현진이 승승장구하면서 갈수록 치솟을 그에 대한 기대치입니다. 신인왕에 대한 욕심도 당연히 커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남은 시즌은 보너스라는 여유 있는 생각으로 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목표 따윈 떨쳐버리고 매 경기에 최선을 다하다보면 누구도 생각지 못한 큰 목표에 다다를 수도 있고, 운이 따르지 않으면 기대치에 못 미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까지 만으로도 류현진은 정말 놀라운 기록과 성적을 거두고 있습니다. 다음에 만나면 물어보고 싶을 정도입니다. 도대체 어느 별에서 왔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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