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 알수록 어렵고 또 때론 두려운 것도 인생과 야구가 흡사한 듯합니다.'

MLB 데뷔 후 가장 짧은 5이닝을 던졌고 가장 많은 5개의 볼넷을 내줬습니다. 5명의 타자에게 볼넷을 내주는 과정에서만 27개의 공을 던졌고 5회가 끝났을 당시 이미 투구수가 100개였습니다. 지난 12일 마이애미 말린스전에서는 예상보다 류현진(26)을 오래 끌고 갔던 매팅리 감독은 18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전에서는 5회말 대타 페드로비치를 내면서 류현진을 일찍 마운드에서 내렸습니다. 초반 집중적으로 꽤 많이 던진 투구수도 감안했을 테고, 또 다음 예정 등판이 4일 휴식 후, 정확히는 3일반 휴식 후에 밀워키에서 낮 경기라는 점도 염두에 두었을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5회초 스캇 밴 슬라이크의 홈런으로 4-2로 앞서 승리 투수의 요건을 갖췄기에 교체 결정에 큰 고민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 다저스는 참 다양한 방법으로 패하는 길을 찾고 있습니다.
때론, 아니 종종 타선이 침묵해서 패하기도 하고(134득점으로 NL 15팀 중에 14위, 26홈런도 14위) 불펜이 맥없이 무너져 패하기도 하고(전날까지 불펜 5승10패 ERA 4.34-13위) 또 때로는 부상 병동인 선발진의 일부가 마운드를 지켜주지 못해서 패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날은 또 수비 실책이 잇달아 나오면서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류현진이 무려 4안타를 맞고 볼넷도 하나 내주면서도 단 2점으로 막았던 3회말, 이미 2점을 내주고 몰린 원아웃 1,2루 위기에서 애틀랜타 5번 크리스 존슨이 친 강습 타구는 상당히 까다로웠습니다. 그러나 글러브질이 유연하고 노련한 유격수였다면 처리했을, 아주 잘 했으면 병살도 가능한 타구였습니다. 항상 공이 가면 약간 불안감을 주는 다저스 유격수 디 고든은 존슨의 강습 타구를 낚아채려다 공이 튀어나가며 방향을 잃었고 내야 안타로 기록됐습니다. 이어서 6번 맥켄이 친 직선 타구가 좌익수 크로포드의 정면타가 되지 않았더라면 초반에 분위기는 완전히 애틀랜타로 넘어갈 뻔 했습니다. 7번 어글라에게 볼넷으로 만루의 위기에 몰린 류현진은 슬럼프의 바닥을 치고 있는 B.J. 업턴을 2루 뜬공으로 잡고 간신히 위기를 넘겼습니다. 이때까지는 운이 따랐지만 3회가 끝나자 투구수는 이미 63개였습니다.

<9번째 선발 등판은 불펜 난조와 수비 실책이 엮이면서 아쉽게 승리가 날아갔지만 류현진도 밝은 표정을 찾아보기 힘들었던 어려운 경기였습니다. ⓒ민기자닷컴>

류현진은 그러나 4회초 공격에서 스스로 해결사를 역할을 하면서 분위기를 반전시켰습니다. 볼넷과 상대 실책까지 겹치며 1사 1,2루의 기회를 잡은 다저스였지만 8번 고든이 상대 선발 마홀름에게 삼진을 당하며 투아웃. 타석에 선 류현진은 마홀름과 풀카운트의 끈질긴 승부를 펼쳤습니다. 특히 볼카운트 2-2에서 5구째 예리한 슬라이더 유인구를 참아내자 현지 해설진은 '과연 이 투수가 7년간 타석에 선 적이 없는 선수가 맞느냐?'며 감탄했고 곧바로 142km 속구를 중전 적시타로 받아쳤습니다. 2-2 동점이 됐고 이어 1번 크로포드까지 안타를 치면서 3-2로 경기를 다시 뒤집었습니다. 뭔가 승운이 따른다는 느낌을 받을 만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행운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류현진이 내려가고 6회말 두 번째 투수로 나선 맷 거리어는 1사 후에 대타 쉐이퍼에게 기분 나쁜 텍사스리그 안타를 맞았습니다. 다저스에서 가장 빠른 유격수 고든과 좌익수 크로포드, 중견수 켐프까지 모두 달려가 봤지만 절묘하게 중간에 떨어지는 안타. 그리고 1번 시몬스의 직선 정면 타구를 3루수 크루스가 글러브에서 빠뜨리면서 악몽이 시작됐습니다. 시즌 내내 극심한 타격 슬럼프에 시달린 크루스는 수비에서라도 기여하겠다는 의욕이 앞섰는지 공을 잡기도 전에 1루 견제를 염두에 두었습니다. 약간 전진 수비로 더욱 빠르게 느껴졌을 타구는 그의 글러브에 맞고 튕겨 나왔고 주자는 1사에 1,2루.
이 경기에 앞서 부상에서 돌아온 2번 좌타자 헤이워드가 나오자 매팅리 감독은 투수를 좌완 파고 로드리게스로 다시 교체했습니다. 시즌 초 흔들리는 다저스 불펜에서 그나마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는 파코(20경기 1패 6홀드 2.40)는 그러나 헤이워드에게 볼넷을 내주고 말았습니다. 이날 애틀랜타는 'NL 최다 삼진(372K) 팀'에 어울리지 않게 타석마다 의외로 끈질긴 승부를 펼쳤는데 파코도 유리한 볼카운트 1-2에서 좋은 유인구를 구사했지만 헤이워드는 끝까지 참아내며 걸어 나갔습니다.

더그아웃을 주시했지만 매팅리 감독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메이저리그 최다 13홈런을 기록하고 있는 뜨거운 오른손 타자 저스틴 업턴을 루키 좌완 파코에게 그대로 맡겼습니다. 그리고 3구째 146.5km의 포심 패스트볼이 엉거주춤 가운데로 몰렸고 26세 슬러거 업턴이 세차게 방망이를 휘두른 순간 이미 백구는 좌측 관중석 상단으로 향했습니다. 2-4의 점수가 스윙 한 번으로 6-4로 뒤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다저스는 7회에도 쓰리아웃이 되는 날카로운 뜬 공을 좌익수 크로포드가 뒤로 빠뜨려 추가 실점을 했습니다. 이날 안드레 이디어 대신 우익수로 기용된 밴 슬라이크가 8회초에도 홈런 추가하며 분전했지만 비자책점 3점을 넘어설 수는 없었습니다.

류현진은 이날 초반부터 조금 달랐습니다.
힘 있는 구위로 투아웃을 쉽게 잡으며 경기를 시작했지만 3번 저스틴 업턴을 4연속 볼로 내보낸 후 4번 프리맨까지 7개 연속 볼만 던지더니 결국 걸어 내보냈습니다. 크리스 존슨을 5구째 체인지업으로 삼진 처리해 위기를 벗어났지만 1회에만 26개의 공을 던졌습니다. 2회에도 선두 타자 매켄을 볼넷으로 내보냈고 3회에는 1번 시몬스와 2번 헤이워드에게 연속 안타를 맞은 후 업턴의 2루 땅볼과 프리맨의 중전 안타로 2점을 내줬습니다. 계속 내야 안타와 볼넷까지 나온 이닝이라 2실점으로 막은 것이 행운일 정도였였습니다.
류현진은 4회말에도 선두로 나선 투수 마홀름에게 풀카운트 끝에 안타를 맞고 시작했고, 5회말 역시 선두 프리맨을 볼넷으로 내보냈습니다. 한 이닝도 삼자범퇴가 없었고 25명의 타자를 상대하면서 무려 16명의 타자를 초구 볼로 시작했습니다. 경기가 어렵게 갈 수밖에 없는 과정의 시작은 볼이었습니다.

최근 3경기 류현진의 투구 분포도를 살펴보면 바깥쪽 승부가 대단히 많다는 것이 한 눈에 보입니다. 특히 힘 있는 오른손 타자들과의 승부는 빠른공이든 체인지업이든 거의 바깥쪽에 집중되는 현상이 나옵니다. 빅리그에 합류한 후 한 경기 건너 하나씩, 혹은 두 개(4월21일 볼티모어전)의 홈런을 허용했고, 어떤 타선도 쉬어갈 타자가 많지 않다보니 조심스런 승부를 하는 것도 이해는 됩니다.
그러나 까다로운 승부를 하면서도 자신의 피칭을 해주면 좋은데, 사실 외곽 승부 위주로 가면서 류현진 특유의 공격적인 피칭을 한다는 것은 서로 맞물릴 수가 없는 현상입니다. 아무리 제구가 좋다고 해도 그건 불가능하고, 또한 몸쪽 승부가 없으면 홈플레이트의 절반을 포기하고 싸우는, 투수가 대단히 불리한 대결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타국 리그에서 아무리 뛰어난 투구를 한 투수라도 반드시 겪고 가야만 하는 적응의 힘겨운 과정이 류현진에게도 조금 일찍 찾아온 것이 아닌가 하는 싶기도 합니다. 마쓰자카도, 다르빗슈도 MLB 데뷔 초반 잘 하다가 뚝 떨어지는 슬럼프를 겪었습니다. 이유는 자신 있게 던진 강속구가 맞아나가고 홈런이 되고 하다 보니 자꾸 피해가는, 변화구를 많이 섞어서 도망가는 승부의 패턴에 빠지면서 오히려 더욱 고전을 면치 못한 시기가 루키 시즌에 있었습니다. 류현진이 이날도 100개의 투구 중에 61개를 속구를 뿌려 강속구 구사 비율로는 종전의 등판과 큰 차이가 없었지만, 과감한 승부가 적었다는 점에서는 분명히 타자들에게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사실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면 이상할 정도입니다. 작년에 KBO는 경기당 0.59개의 홈런이 나왔고 MLB는 경기당 1.05개의 홈런이 나왔습니다. 타수 당으로 따지면 KBO가 57.2 타수 당 1홈런, MLB는 32.45타수 당 1개의 홈런이 나왔습니다. 한방으로 경기의 향방을 가르는 경우가 빈번한 것이 홈런이니 새롭게 MLB에 뛰어든 투수로서는 장타 걱정이 들지 않으면 비정상입니다. 빅리그 타자들을 직접 경험하고 장타를 맞아보면서 더욱 긴장되고 염려도 하고 부정적인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과정입니다. 알면 알수록 참 대단한 타자도 많고, 짜임새 있고 힘이 강한 타선도 피부로 느낄 것입니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쌓은 자신감과 당당함으로 대적했던 첫 몇 번의 경기와는 달리 피부로 느끼는 위압감이나 중압감은 점점 다른 차원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때론 알수록 두려워지는 인생처럼 류현진의 미국 야구 역시 그런 과정에 다가와 있습니다.

그러나 적응해 나가는 과정에서 그것을 이겨내야 할 사람은 결국 투수 자신뿐입니다. 주위에서 정보를 주고, 통계를 제공하고, 비디오를 보여줘도 결국은 류현진이 스스로 그 과정을 뚫고 나가야 합니다. 상대 타자를 공부하고 대비를 하는 것은 필수지만 게임 플랜을 잘 짜고 나가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날 애틀랜타 타자들은 끈질긴 승부를 보이며 류현진의 유인구에 좀처럼 속지 않았고, 볼카운트가 불리하면 짧게 잡고 맞추는 타격을 했습니다. 류현진에 철저하게 대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포수 엘리스와 조금 더 유기적인 대화를 하면서 몸쪽 승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 상대로 예상되는 밀워키 브루어스도 NL 홈런 3위에 오른 만만치 않은 타격의 팀입니다. 그러나 이미 입증된 류현진의 구위와 구질은 충분히 빅리그를 호령할 만하고, 위기를 깨고 나갈 정신력도 지니고 있습니다. 제구도 18일 애틀랜타전보다 더 떨어질 것으로는 여겨지지 않습니다.
그래도 5이닝 2실점으로 승리 투수의 요건을 갖추고 내려갔기에 승리가 날아간 것은 참 아쉽지만 불펜과 타선과 수비의 도움으로 승리할 경기는 반드시 옵니다. 지난 경기에 대한 후회보다는 다음 경기와 그리고 미국 야구와 타자들에 대한 조금 더 철저한 분석과 계획을 세우고 들어간다면 다시 밝게 웃는 류현진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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