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언 몬스터' 류현진(26)이 뉴욕 메츠와의 원정 경기에서 찬란한 투구를 하고도 승리와는 인연을 맺지 못했습니다. 경기 후 류현진과 LA 다저스는 곧바로 전세기를 타고 LA로 돌아갔고 이제 밀워키와 주말 3연전에 이어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라이벌전 3연전 등 홈 6연전을 시작합니다. 하루 지나도 감흥이 여전한 류현진의 시즌 5번째 등판을 복기해봅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흥미로운, 또 새로운 면모를 보이며 또 한층 진화하는 모습을 보인 류현진이었습니다.

< 류현진은 시즌 5번째 등판에서 메츠 강타선을 상대로 7이닝 3안타 1실점으로 호투했습니다. ⓒ민기자닷컴 >

구속의 맹점

1998년 9월11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가 홈구장으로 썼던 콸컴스타디움에서 열린 LA 다저스와 파드리스의 대결은 두 강속구 에이스의 불꽃 강속구 대결로 팬들을 열광시켰습니다. 박찬호와 케빈 브라운은 치열한 자존심 대결을 펼쳤고 전광판에는 시종 일관 97~98마일(156~158km)이 찍혀 팬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었습니다. 브라운이나 박찬호는 당시 알아주던 강속구 투수였습니다만 최고 구속이라면 모를까 평균구속이 157km씩 나올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퀄컴스타디움은 구속이 후하기로 알려진 구장이었습니다.
투수의 구속은 흥미를 유발하고 이야기 거리가 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사실 공이 투수의 손을 떠나는 초속을 측정하는 것이고, 또 스피드건에 따라 많게는 2,3마일(3~4.5lm)씩도 차이가 납니다. 그러니까 스피드건에 찍혀 전광판이나 TV 중계에 소개되는 구속은 사실 참고 자료 정도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공의 회전수나 각도 움직임에 따라 타자가 느끼는 체감 속도와 위력은 전광판의 수자와는 완연히 다를 수 있습니다.

MLB.com의 기록에 따르면 26일 메츠전에서 류현진의 속구 구속은 86마일에서 92마일로 기록됐습니다. 약 139~148km로 구속 논란이 일었던 지난 21일 볼티모어전에 비해서 크게 향상되지 않았습니다. 아니 구속만으로 보면 전혀 차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1회말 첫 공부터 느낌은 확실히 달랐습니다. 공끝의 힘이 확연하게 느껴졌고 메츠 타자들은 허둥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7이닝 동안에 안타는 3개만 맞았고 삼진도 8개를 잡았습니다. 1실점은 폭투로 주자를 3루로 보낸 뒤 희생플라이로 내줬습니다. 볼티모어전에 비해 속구 구사도 많아졌고(50-40) 특히 슬라이더(24-11)를 많이 던졌습니다. 몸쪽 승부도 훨씬 활발했습니다.

두 가지 요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스피드건의 차이로 구속이 덜 찍혔을 가능성이 크고, 류현진의 준비 과정과 마음가짐이 완전히 달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난 21일 볼티모어전은 대단히 어려운 조건과 변수가 많았습니다. 전날 선발 등판 예정이었는데 비가 많이 오면서 2시간 가까이 기다렸다가 무산됐고 다음날 오후 1시부터 마운드에 올랐습니다. 조금은 답답했던지 안 하던 불펜 피칭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볼티모어의 1시라면 LA는 오전 10시, 즉 평소 같으면 거의 기상 시간 정도에 사전에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경기의 마운드에 오른 셈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류현진의 구위는 힘이 현저히 떨어졌고, 그러다보니 과감한 승부도 적었고 실투는 결정적인 홈런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경험을 쌓은 류현진은 똑같이 미국 동부시간 낮 1시에 열린 생소한 구장에서 생소한 팀을 상대로, 그것도 경기당 평균 5.6득점으로 MLB 최다 득점을 기록하던 메츠 타선을 맞아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구속은 별 차이가 없었을지 모르지만(적어도 전광판에 찍힌 구속은) 마음먹고 던지는 그의 공은 움직임이나 공끝의 힘이 훨씬 위력적이었습니다. 실은 실제 구속도 더 빨랐을 것이고 특히 타자들이 체험한 류현진의 혼이 실린 종속은 달라고 많이 달랐을 것입니다. 현지 해설자는 류현진의 147km 강속구가 158km처럼 느껴진다는 말을 했을 정도였습니다.
따라서 구속이라는 것은 참고 사항 정도이지 지나치게 신경 쓰거나 좌지우지될 지표는 분명히 아닙니다. 찍히는 구속보다는 실제 위력이 중요합니다.

슬라이더와 초구


이날 메츠전을 해설하면서 '류현진 정말 대단하구나!'라는 생각을 몇 차례나 했습니다. 바로 지난번 볼티모어전에서 류현진은 초구를 두 번이나 홈런으로 얻어맞는 등 고전했습니다. 이제 빅리그 타자들은 류현진이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으러 들어오는 유형의 투수라는 것을 파악한 것은 분명합니다. 볼티모어전이 끝나고 릭 아데어 투수 코치는 류현진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다고 말했습니다. MLB의 전력과 상대 선수 분석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철저하고 집요합니다. 특히 상대 투수의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메츠 역시 처음 만나는 류현진에 대해 많은 연구와 분석을 했을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날 류현진은 오히려 더욱 초구부터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피칭을 했습니다. 주눅 들지 않았다는 표현보다는 그럴수록 어디 쳐봐라하는 배짱과 투지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이날 류현진은 27타자를 맞아 20타자를 초구 스트라이크로 시작했습니다. MLB 투수의 초구 스트라이크 비율이 59%인데 이날 류현진은 무려 74%가 넘었습니다. 5일전 볼티모어전에서 초구에 홈런을 두 개가 맞은 투수입니다.
어쩌면 류현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MLB에 특화된 선수일지로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한국이나 일본의 프로야구가 상대 선수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유형의 야구라면 미국은 상대의 강점을 오히려 더욱 공격적으로 공략해 제압하는 유형을 보입니다. 타자도 약점 보완보다는 강점의 극대화 쪽으로 초점을 맞춥니다. 그런데 류현진은 상대 타자들이 알고 대비한다는 것을 분명히 느꼈을 텐데도 더욱 적극적으로, 그러나 훨씬 집중하고 힘을 쏟은 초구 승부를 걸었고 그것이 볼카운트를 유리하게 끌고 가는데 좋은 작용을 하며 성공을 거뒀습니다. 배짱과 자신의 공에 대한 믿음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 다저스에서 류현진의 가치를 빠르게 치솟고 있습니다. >

또 한 가지, 류현진은 경기 전날 인터뷰에서 슬라이더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슬라이더가 좋아지고 있고 더욱 적극적으로, 오른손 타자를 상대로도 활용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소위 '영업 비밀'을 미리 공개한 셈이었는데 이날 류현진은 볼티모어전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슬라이더를 구사했고 좌타자뿐 아니라 오른손 타자의 몸쪽을 파고드는 과감한 슬라이더가 돋보였습니다. 작년에 32홈런을 쳤고 이날은 6번에 기용된 메츠의 아이크 데이비스는 "처음 상대했는데 그의 슬라이더는 두 가지 움직임을 보이면서 상당히 까다로웠다. 똑바로 날아들기도 하고 또 때론 외곽으로 빠르게 흘러나가기도 했다. 우리는 류에게 3안타밖에 치지 못했는데 하나는 방망이가 부러진 안타였고 또 하나는 우측에 약하게 내야를 벗어난 공이었다. 제대로 맞춘 타구가 많지 않았다."라고 말했습니다.

누구든 계획을 세우고 작전을 짭니다. 그러나 그것을 실제로 이행하고 또 성공을 거두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류현진을 보면 작전도 잘 짜지만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반복해서 보게 됩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자신감의 근거는 어디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어차피 야구는 끝없는 실패와의 싸움이고, 그래도 버텨내고 이겨내려면 끝임 없이 변화해야 합니다. 그러나 중심을 잡고 지킬 것은 지키면서 변화를 대수롭지 않게 끌어내는 류현진의 진화는, 앞으로 분명히 또 작은 실패에도 직면하겠지만, 듬직한 믿음을 줍니다.

신뢰의 구축

메츠전 6회말, 류현진은 32개의 공을 던졌습니다. 5회말부터 논란이 된 포수 라몬 에르난데스와의 호흡이 분명 조금은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아직까지 류현진과 에르난데스는 신뢰를 충분히 쌓을 만큼의 커뮤니케이션이 안 되고 있음은 분명해 보입니다. 메이저리그 14년차에 만 35세인 에르난데스는 류현진을 루키로 생각할 정도의 노장이긴 하지만, 상호 존중 면에서 이날 마운드와 홈플레이트를 오가는 하모니는 사실 썩 매끄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류현진은 이날 팀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과 신뢰를 쌓아가는 좋은 과정을 겪었습니다. 6회가 끝난 후 단 매팅리 감독은 류현진에게 7회에도 마운드에 오를 수 있을지 의사를 타진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류현진은 7회에도 마운드에 올랐고 삼자범퇴로 이닝을 마쳤습니다. 한 이닝 더 던진 것은 무슨 큰 차이가 있겠나 싶지만 감독에게 1이닝은 때론 정말 큰 차이가 있습니다.

매팅리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지난 4경기에서 우리 불펜은 18이닝을 던졌고 상당히 지친 상황이었다. 7회에도 류를 마운드에 올려야할 지는 우리에겐 어려운 문제였는데 자신이 던질 수 있다고 자원했다. 그리고 불펜은 아주 소중한 한 이닝을 쉴 수 있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야구 문화도 많이 다릅니다. 매팅리 감독은 최근 3,4번 타자의 타순을 바꾸면서 선수들을 불러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기도 했습니다. 투수 교체 때도 구위가 떨어지거나 난타를 당하지 않는 이상 선수에게 교체에 대한 의견을 묻기도 합니다. 시즌 초반 고전하며 요즘 기댈 곳이 많지 않는 매팅리 감독에게 기꺼이 한 이닝을 더 던지겠다고 협조(?)한 류현진은 팀플레이어로서, 그리고 믿고 맡길 수 있는 투수라는 신뢰를 주었을 것은 분명합니다. 물론, 어떤 상황에서도 류현진은 더 던지겠다고 고집부릴 선수지만 말입니다.

7이닝 1실점하고도 승리 투수가 되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앞으로 5이닝 5실점하고도 타선의 도움으로 승리할 경기도 나옵니다. 그러나 지난 두 경기에서 보여준 류현진의 진화는 5이닝 5실점 경기를 보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류현진은 다음 주 수요일(5월1일) 오전 11시 최근 급상승세인 콜로라도 로키스와 일전을 벌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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