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결승에서 만난 대한민국과 일본은 이번 3회 대회에 각각 단 한 명의 메이저리거도 로스터에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마치 의도적으로 제외했다는 표현보다는 이런 저런 사정으로 한국과 일본의 빅리거들이 모두 대표팀에서 빠졌습니다. 그래도 예선 A, B조의 우승 후보는 일본과 대한민국이었습니다. 그런데 첫날 대한민국은 네덜란드에 덜미를 잡혔고, 일본은 브라질에 7회까지 끌려가다가 막판 역전극으로 간신히 승리했습니다.

< 4안타 빈공으로 네덜란드에 영패한 한국은 타선의 힘이 절실합니다. 세 명의 거포는 1차전에서 8타수 1안타 1볼넷을 기록했습니다. ⓒ민기자닷컴 >

이번 WBC를 앞두고 각 팀의 전력이 많이 평준화돼 예측 불허의 승부가 전개되리라는 예상을 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대한민국이 네덜란드에 패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습니다만 야구의 의외성을 떠나 각 팀의 전력이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WBC라는 대회가 점점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전 세계의 미디어를 활발히 타면서 각 출전국의 각오나 준비가 훨씬 달라지고 철저해졌습니다. 그리고 WBC 대표팀 출전자격 규정상 다양한 출신의 많은 프로 선수들이 출전할 수 있다는 점은 각 나라의 전력 상승에 큰 플러스 요인이 됩니다. 한마디로 미국 프로야구에서 뛴 전력이 있거나 현재 소속된 프로 선수들이 대거 출전하게 됐고, 그로인해 각 팀의 전력 차는 확연하게 줄어들 것이 분명했습니다.

한 예들 들어 밀워키 브루어스 같은 팀은 산하 소속 팀 선수 중에 무려 13명이 이번 WBC에 출전합니다. 올스타 MVP 외야수 라이언 브런과 포수 조너선 루크로이,투수 요바니 가야도(어제 시범 경기에서 부상으로 불투명)를 포함해 마이너리거까지 13명의 선수가 미국, 멕시코, 이탈리아, 도미니카, 푸에르토리코, 네덜란드, 호주 등의 대표로 이번 대회에 출전합니다. 미네소타 트윈스도 11명의 선수가 WBC에 나서고, 텍사스 레인저스의 6명 출전이 평균치로 보면 됩니다. 대략 잡아도 200명 이 훨씬 넘는 전, 현직 미국 프로야구 선수들이 이번 대회에 출전합니다. 아무래도 프로 경험이 풍부한 선수들이 많이 출전하면 팀 전력은 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자니 소위 약팀으로 분류된 팀도 결코 만만치 않게 됐고, 예측불허라는 야구 본연의 성격을 떠나 각 팀의 전력이 훨씬 팽팽해졌습니다.

어제 한국과 네덜란드전은 비근한 예가 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타선을 단 4안타 무실점으로 묶은 네덜란드 투수진은 모두 미국 프로야구를 거친 선수들이었습니다. 좌완 선발 마크웰은 빅리그 진입에는 실패했지만 토론토 더블A에서 2002년 13승을 거두기도 했고 2005년부터 네덜란드 대표로 각종 국제대회에 출전했으면 WBC는 3번 모두 나섰습니다. 두 번째 투수 인테마도 2004년 18세부터 샌프란시스코 산하 마이너에서 2009년까지 뛰었습니다. 세 번째 투수로 나온 레온 보이드는 토론토 더블A까지 뛴 경력이 있고, 마지막 투수로 나온 좌완 마크 포위렉은 2005년 MLB 드래프트에서 시카고 커브스에 1라운드에 지명된 선수였습니다.
WBC는 물론 유럽챔피언십, 월드컵, 인터컨티넨탈컵 등 국제대회 경험도 풍부한 마크웰은 대단히 공격적인 피칭과 현란한 제구력으로 한국 타선을 혼란에 빠트렸습니다. 14명의 타자를 상대하면서 14번 모두 초구 스트라이크로 시작했습니다. 미국 마이너에서 워낙 공격적인 초구 스트라이크를 강조하기도 하지만, 초구를 때려 아웃되면 눈치를 봐야하는 한국 야구의 풍토를 제대로 파악하고 마운드에 오른 것으로 보입니다. MLB 명예의 전당 출신인 버트 블라이레븐 투수 코치가 전략적으로 어느 정도 역할을 했을지는 불분명하지만 투수들에게 정신적으로 큰 힘이 됐을 것임은 분명합니다.
네덜란드 타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물 간 것으로 여겨졌던 앤드루 존스는 2회말 선두 타자로 나와 에이스 윤석민에게 2루타를 치며 선제 득점을 주도했습니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소속의 1번 타자 시몬스는 3안타 2득점으로 활약했고, 보스턴 산하에서 뛰는 보가츠는 3루수로 나와 잇단 호수비로 그나마 이어가려던 한국 공격의 맥을 끊어 놓았습니다. 이들은 모두 네덜란드령이던 섬나라 쿠라셔와 아루바 출신 선수들입니다.

탄탄한 전력을 보이며 호주를 완파한 대만 역시 빅리거들의 활약이 경기를 주도했습니다. 양키스에서 시즌 19승 전력의 왕첸밍은 오랜 부상으로 구위가 예전 같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예리한 싱커를 앞세워 힘만 앞세운 호주 타선을 6이닝 무실점으로 막고 타이중 인터컨티넨탈 야구장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었습니다. LA 다저스에서 박찬호와 절친했던 쿼홍치는 예선의 155km 구속은 사라졌지만 노련한 피칭으로 불펜의 한 몫을 담당했습니다. 좋은 3루 수비를 보여준 첸융치는 시애틀 시절 마이너 올스타전인 퓨처스 게임에 출전하기도 했습니다. 이들 외에도 대부분 팀이 미국 프로야구 선수가 주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과연 그렇다면 WBC가 갈수록 뜨거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일까요? 그리고 WBC가 야구 세계화에 확실하게 기여를 하는 것일까요?
대만과 호주가 열린 타이중 야구장은 인산인해에 한국 프로야구의 열기를 뛰어넘는 열광적인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과 네덜란드 경기장은 썰렁하게 비었습니다. 매운 날씨 탓도 있지만 대만 팬들에게 다른 국가의 경기는 큰 관심거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어떤 종목을 막론하고 대부분 국제대회에서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전체적은 그림으로 볼 때 WBC는 확실히 야구의 세계화에 기여를 하고 있고 지역적인 인기도 점점 상승하고 있습니다. 폭스스포츠의 켄 로젠달은 몇 가지 예를 들며 WBC가 야구세계화에 일조하고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일본에서 열린 A조 예선 첫날 3연패를 노리는 일본을 격침시킬 뻔했던 브라질은 축구의 나라입니다. '브라질에서도 야구를 하나?'라는 말도 많이들 합니다. 그러나 요즘 브라질에서의 야구 열기가 기대 이상으로 타오르고 있습니다. 명예의 전당 멤버인 배리 라킨 감독이 이끄는 브라질 대표팀이 파나마를 꺾고 WBC 본선에 진출하자 야구 관련 트위터가 랭킹 10위안에 들기도 했습니다. MLB는 상파울로 지역에 청소년을 위한 야구장 20개를 건설하고 있습니다. 브라질 대표팀에는 감독말고 미국 프로야구 출신이 10명 포함돼 있습니다.
꾸준히 유럽 야구의 강국으로 명맥을 이어온 네덜란드는 WBC에서 갈수록 좋은 성적을 올리면서 야구의 인기도 빠르게 치솟고 있습니다. 암스테르담 공항 인근에 건설 중인 15000석 규모의 최신식 야구장은 다음 WBC 예선전과 나아가 MLB 경기 유치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대만을 꺾은 후부터 중국에서 야구의 인지도도 확연하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현재 야구를 중계하는 방송사가 11개에 이르고 2년제 청소년 야구 프로그램이 지역마다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 wbc 야구평준화와 세계화의 과정에 있는 가운데 첫날 호주전 대만 관중의 열기는 대단했습니다. ⓒ민기자닷컴 >

이 모든 것에 MLB와 WBC의 역할이 상당히 큰 역할을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비즈니스가 그들의 목표이긴 하지만 야구의 세계화를 위한 노력도 나름 게을리 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두 번의 WBC 대회를 통해 2500만 달러의 기금이 전 세계의 야구협회 등에 전달됐고 이번 3회 대회에서도 1500만 달러의 기금을 세계 야구발전을 위해 조성합니다. 올림픽에서 퇴출된 후 각국의 야구협회가 재정적으로도 압박을 받는 가운데 큰 보탬이 됩니다. 75국에서 야구를 하고 44개국 출신의 프로야구 선수가 나온 가운데 WBC는 그나마 야구 국제대회의 명목을 이어가는 유일하고 중요한 대회가 되고 있습니다.
아울러 WBC의 인기와 인지도도 상당히 높아지고 있습니다. 1회 대회에는 70만 명, 2회 대회에는 80만 명의 유료관중을 동원했습니다. 총 28개국이 지역예선까지 펼친 이번 대회는 훨씬 더 많은 관중을 기대합니다. 지난 2009년 대한민국과 일본이 연장전까지 치른 결승전은 전 세계에서 8200만 명이 시청해 그해 6번째 많은 시청자가 본 스포츠 이벤트로 기록됐습니다. (유로데이터 자료)

야구의 세계화나 평준화는 다 좋은데 대한민국 대표팀은 네덜란드에 패하면서 1차 예선 통과조차 불투명한 위기에 몰렸습니다. 호주와 대만을 일단 모두 꺾고 나서 다른 경기 결과를 지켜봐야할 답답한 입장이 됐습니다.
메이저와 마이너 출신이 많이 출전했기 때문에 네덜란드에 패했다고만은 볼 수 없습니다. 전날까지도 대부분 타자들의 감각이 많이 무뎌보였습니다. 심지어 타격 연습에서도 정타가 잘 나오질 않고 외야 담장을 넘어가는 공은 희귀했습니다.
그러나 야구는 정말 특별하고 오묘한, 예측을 거부하는 스포츠입니다. 4일 호주전에서 불꽃처럼 살아날 타선이 대만전까지 무섭게 타오를 수도 있습니다. 투수진과 수비의 부담을 덜려면 일단 타선이 살아나는 것이 시급합니다. 대만이 짜임새가 예전과는 확연히 달라 보이는 것이 우려되고 엄청난 열기의 홈 관중이 부담스럽지만 물러설 수 없는 승부가 남았습니다. 타자들이 힘을 빼고 부드럽고 빠른 스윙으로 위기를 탈출해주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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