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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짐=반재민 기자] 지난해 6월 한 파이터의 일생을 담은 영화가 개봉되었다. 빈민가에서 태어나 가정불화라는 역경을 겪은 한 소년이 격투기라는 신세계를 경험하고 결국에는 세계 최고의 격투기 대회에서 챔피언의 자리에 오른다는 내용이다.

물론 영화의 플롯으로 따지자면, 이 스토리는 진부하기 이를데 없는 신파극과 비슷할 것이다. 너무 뻔해 재미가 없다는 관객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뻔한 영화와 다른점이 있다면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닌 완전한 실화라는 점이다. 이 영화는 한 격투가의 인생을 2시간 4분 31초 안에 모두 담아냈다. 많은 격투팬들은 영화에 열광했다. 영화의 주인공이 된 본인 역시 “울지 않을 수 없다.”라고 감탄했다. 그는 울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인생은 그 영화보다 영화 같았기 때문이었다.

영화보다 영화같은 스토리를 산 인물이자 영화 Mais Forte Que o Mundo (세상보다 더 강하게)의 실존인물. 바로 ‘조제 알도 다 실바 올리베이라 주니오르’ 페더급의 최강자로 불리웠으며, 가장 오래 그 자리를 유지했던 ‘조제 알도’다.

그의 영화보다 더욱 영화 같았던 스토리를 집중 조명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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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망의 끝에서 만난 그 이름 ‘MMA’

조제 알도는 1986년 9월 9일 브라질의 수도인 브라질리아에서 약 1000여km 떨어진 아마조나스주의 주도 마나우스의 파벨라(브라질의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모든 브라질의 도시에는 파벨라가 형성되어 있지만, 마나우스의 파벨라는 유독 난폭하다. 가장 큰 상파울루와 리우 데 자네이루의 파벨라 못지 않게 총격사건이 끊이지 않는 곳이 바로 이 마나우스의 파벨라이기도 하다. 알도는 이곳에서 아버지와 어머니, 누나, 여동생과 함께 살아갔다.

그의 인생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알도가 여섯 살이 되던 해, 그는 누나가 던진 바비큐 그릴에 얼굴을 맞아 왼쪽 볼에 커다란 흉터가 생겼다. 그의 별명이 ‘스카페이스’가 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 생긴 상처는 그가 겪은 시련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일 뿐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이었다. 술을 먹을 때마다 그의 어머니를 구타했다. 구타는 날이 가면 갈수록 심해졌고, 결국 어머니는 알도가 14살이 되던 해 두 딸과 함께 집을 나와 거처를 옮겨야만 했다. 이 당시 주짓수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격투기에 입문한 알도는 제대로 된 격투기를 배우기 위해 고향인 마나우스로부터 무려 2,846km나 떨어져 있는 리우 데 자네이루로 홀로 떠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도 알도의 시련은 계속 되었다. 그에게는 돈이 없었고, 자신이 다니던 체육관에서 숙식을 해결해야만 했다. WEC의 대표인 리드 해리스의 회상은 그의 비참함을 더욱 부각시켰다. 아침에 일어나 체육관의 청소를 하고 있으면, 그의 동료였던 웨그니 파비아노가 다가와 “어제, 오늘 무엇을 좀 먹었니?”라고 걱정스럽게 물어보며 그에게 밥을 챙겨주었다고 해리스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이러한 인생의 굴곡 속에서 그가 의지할 곳은 격투기 하나뿐이었다. 주스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그는 밤마다 불 꺼진 체육관에서 홀로 샌드백을 치며 훈련했다. 손에서 피가 나고 물집이 터졌지만, 그는 계속해서 샌드백을 쳤다.

그의 노력이 통했을까 2004년 열 여덟의 나이에 브라질 종합격투기 무대인 EF 1 - EcoFight 1을 통해 데뷔전을 치른 알도는 상대인 마리오 비골라를 상대로 1라우드 18초 만에 헤드킥으로 상대를 눕히는 충격적인 데뷔전을 보여주게 된다. 이후 6경기 동안 알도는 1라운드에만 상대를 눕히는 가공할 만한 파워를 보여주었고, 거칠 것 없이 승수를 쌓아갔다.

하지만, 격투기 인생에 있어서 잠깐의 시련이 찾아오게 되는데 2005년 정글 파이트에서 루시아노 아제베도를 상대로 졸전을 펼친 끝에 2라운드 3분 37초 만에 리어 네이키드 초크로 패한 것이었다. 거칠 것 없는 승리행진 끝에 당한 첫 패배였기에 알도의 기세는 꺾일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패배속에서 알도는 더욱 강해졌고, 2006년부터 ‘난공불락’ 그 자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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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공불락‘ WEC를 넘어 UFC로 


아제베도 전 패배 이후 많은 것을 얻은 알도는 다시 승수를 쌓아갔다. 골든 파이트와 브라질의 TFC 대회에서 2연승을 거둔 알도는 2007년 판크라스를 통해 잠시 아시아 무대를 밟았다. 당시 그는 판크라스 챔피언이었던 마루야마 쇼지를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

그리고 2008년 알도는 더 큰 무대로 눈을 돌리게 된다. 바로 WEC였다. 당시 UFC는 중량급을 위주로 한 무대였다면 WEC는 경량급 선수를 위한 무대였다. 실제로 라이트급 이상의 체급은 UFC에서, 라이트급 이하의 체급은 WEC에서 담당을 하고 있었다.

당시 유라이어 페이버, 마이크 브라운, 컵 스완슨이 천하삼분지계를 하고있던 WEC 페더급 무대에서 알도는 무자비하게 상대선수들을 헤집었다. WEC 데뷔전에서 알렉산드레 노게이라를 상대로 2라운드 만에 TKO 승리를 거두며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른 알도는 이어진 조나단 브룩킨스와의 경기에서도 3라운드 45초 만에 TKO 승리를 거뒀다.

알도는 거침이 없었다. 빠른 공격과 정확하고 파워있는 킥, BJJ 블랙벨트에 빛나는 그라운드 기술까지, 알도는 롤란도 페레즈, 크리스 미클, 컵 스완슨을 차례로 무너뜨렸다. 특히 컵 스완슨과의 경기에선 1라운드 8초 만에 스완슨을 눕히는 가공할만한 파워를 보여주기도 했다. 결국 연승행진이 계속된 끝에 그는 페더급 타이틀을 향한 자리에 섰다. 상대는 마이크 브라운이었다.

모두들 박빙의 승부가 될 것이라 예측하던 2라운드 중반, 공격을 시도하던 브라운의 다리를 알도가 잡아 넘어뜨렸다. 상위 포지션에서 알도는 무자비한 펀치를 그의 머리에 사정없이 두들겼고, 심판은 알도의 승리를 선언하며 경기를 종료시켰다. 페더급 최강자의 자리가 조제 알도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이후에도 알도는 WEC가 UFC에 흡수될 때까지 다른 파이터가 그의 챔피언 벨트를 가져가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브라운전 패배 이후 권토중래를 꿈꾸며 돌아온 유라이아 페이버와의 경기에서 알도는 가공할만한 로우킥을 페이버의 다리에 적중시켰고, 결국 판정승으로 챔피언을 방어해냈다. 페이버의 다리가 피멍에 물들었을 정도로 알도의 로우킥은 가공할만했다. 


WEC가 흡수되기전 마지막 상대였던 매니 감부리안마저 잡아낸 알도는 WEC 최후의 페더급 챔피언으로 영원히 기록에 남게 되었다. 또한 그가 남긴 8연승은 WEC 최다 연승 기록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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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찬성과 부상, 그리고 맥그리거

2010년 10월 WEC가 UFC에 통합되며 챔피언 자리를 승계한 알도는 챔피언의 자격으로 도전자들을 하나하나 정리해나갔다. UFC 첫 방어전이었던 마크 호미닉과의 경기를 깔끔한 경기 운영으로 승리를 따낸 알도는 케니 플로리안, 채드 멘데스, 프랭키 에드가를 연이어 잡아내며 난공불락의 이미지를 굳히게 되었다. WEC에 있을 시절과 비해 판정승이 많아졌다는 것이 흠아닌 흠이었지만, 알도에게 그런 것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경기의 내용이 워낙 좋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UFC의 입성시점부터 그에게 부상의 그림자가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2011년 1월 조쉬 그립시와 UFC 첫 방어전을 앞두고 척추 부상으로 결장한 것이 시작이었다. 호미닉 전 이후 멘데스와의 타이틀전 역시 부상으로 무산되었으며, 프랭키 에드가전 역시 알도의 교통사고로 인해 미뤄지고 말았다. 이때부터 부상을 핑계로 강한상대들을 일부러 피해 다니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계속해서 따라다니게 되었다.

하지만 알도는 그러한 의심들을 실력으로 바꾸기에 충분한 선수였다. 하지만, 그에게도 어려운 경기는 있었으니 바로 ‘코리안 좀비’ 정찬성과의 시합이었다. 정찬성은 애초에 리카르도 라마스와 격돌하는 대진이었다. 하지만, 당초 알도의 상대였던 앤소니 페티스가 부상으로 아웃되면서 정찬성이 그 자리를 꿰차게 된 것이었다.

2013년 8월 4일 브라질에서 펼쳐진 UFC 163, 조제 알도와 정찬성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양 선수 모두 핸디캡을 안고 가진 시합이었다. 정찬성은 예전부터 좋지 않았던 어깨가 경기를 앞두고 유독 말썽을 부렸고, 알도는 어린시절부터 앓아온 신장결석이 악화된 상태였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두 선수는 최선을 다해 싸웠다. 알도의 공격은 날카로웠지만 정찬성도 알도 못지않은 반격으로 팽팽한 접전을 이어나갔다.


경기가 절정에 다다르던 4라운드 중반 서로 팔이 엉킨 상태에서 사고가 일어났고, 알도는 그틈을 놓치지 않고 킥과 파운딩을 정찬성의 안면에 작렬시키며 경기를 끝냈다. 승리를 거뒀지만, 정찬성 못지않게 알도의 후유증도 컸다. 오른쪽 발등에 부상을 입은 것이었다. 비록 알도는 정찬성과의 경기 이후 멘데스와의 2차전에서 고전했지만, 결과적으로 승리를 따내며 당시에는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길만했던 부상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 부상이 알도의 커리어에 치명적인 영향으로 남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

알도가 페더급의 왕좌에서 내려올 줄 모르고 있을 즈음 한 선수가 알도의 왕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바로 코너 맥그리거였다. 맥그리거는 2013년 UFC에 데뷔한 이래 알도 못지 않은 타격실력으로 승수를 쌓았다. 그중에는 맥스 할로웨이, 디에고 브란다오, 데니스 시버, 채드 멘데스가 있었으며, 알도와의 경기에서 승리를 거둬 새로운 페더급의 왕을 차지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2015년 7월 맥그리거와 알도와의 경기가 성사되었지만, 경기를 불과 두달 앞두고 알도가 갈비뼈 부상을 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알도는 자신의 X레이 결과를 보여주며 결백함을 호소했지만, 대다수의 팬들은 알도가 맥그리거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꾸민 자작극이라는 의심을 숨기지 않았다.

결국 2015년 12월 13일 알도는 멘데스 전 이후 1년 2개월 만에 맥그리거를 상대로 7차 방어전을 치르게 되었다. 맥그리거가 상승세였긴 했지만, 알도의 전성기가 계속 진행되고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근소하게 알도의 우세를 점치는 격투기 팬들이 많았다. 하지만, 결과는 팬들, 전문가들, 심지어 본인의 예상과는 크게 빗나가는 충격적인 결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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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라운드 13초, UFC 페더급의 챔피언 벨트가 알도에서 맥그리거로 옮겨간 시간이었다. 찰나와 같은 시간만에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맥그리거는 환호했고, 알도는 믿겨지지 않는 표정을 지으며, 울음을 터트렸다. 정확히 1848일 동안 지켜오던 챔피언 벨트가 13초 만에 날아간 믿기지 않는, 아니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을 마주하게 된 것이었다.

한순간에 챔피언에서 다시 도전자로 처지가 뒤바뀐 알도. 하지만, 그의 격투기 인생은 계속되어야만 했다. 자신을 응원해주는 가족들, 팬들 브라질 국민들을 위해서라도 그는 시련을 이겨내고 싸움을 계속해야만 했다. 절치부심한 알도는 2016년 7월 잠정 타이틀 매치에서 프랭키 에드가를 상대로 다시 승리를 거두며 잠정 챔피언에 올랐고, 이후 2016년 12월 맥그리거가 라이트급으로 체급을 옮긴데 따른 공백으로 알도는 자동으로 페더급 챔피언에 다시 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알도의 두 번째 챔피언 벨트는 잠시 스쳐 지나갔다. 2017년 6월 3일 맥스 할로웨이와 펼친 페더급 타이틀 매치, 1,2라운드에서 알도는 할로웨이를 상대로 KO 직전까지 몰고 갔을 정도로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3라운드 들어 알도의 폼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할로웨이는 이틈을 놓치지 않고 2연속 스트레이트를 턱에 적중시켰다. 알도는 쓰러졌고 이어 할로웨이의 파운딩 연타가 날아들었다. 결국 심판은 경기종료를 선언했다. 다시 알도는 도전자가 되었다.

알도의 커리어에서 패배는 단 3패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중 2패가 자신이 만들어놓은 권좌에서 내려가는 쓸쓸하고 치명적인 패배였다. 알도는 그렇게 챔피언의 신분에서 다시 도전자의 신분으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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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같은 삶을 살았던 알도, 그가 격투기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

많은 이들은 알도의 전성기가 끝났다고 이야기한다. 더 나아가 이제 한물 간 격투선수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는 사람들도 종종 보이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알도가 지금까지 챔피언의 자리에서 오랫동안 유지한 비결은 단순히 실력이 좋아서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철저하게 자신을 관리한다. 어린 시절 알도를 지켜보고 반려자로서 알도와 함께 하고 있는 비비안은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술, 담배는 물론 파티도 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향하는 목표만 보면서 달려가며,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매일 노력한다.”라고 말했다.

알도는 어린 시절부터 수많은 시련을 겪어왔다. 그가 ‘생존’이라는 말을 강조하는 것도 이 어린시절에 각인되어 있던 고난에서부터 나온 것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시련 속에서 알도는 강해지고 더욱 성숙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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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도의 부인인 비비안느와 알도의 딸 요안나 알도


할로웨이 전에서 패한 알도는 SNS를 통해 “나를 이끌어준 모두에게 감사한다. 함께해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내가 쉬는 이유는 다시 돌아오기 위함이다. 우리는 일어서기 위해 떨어지는 것이다. 다시 돌아가자."라는 말로 재기하겠다는 다짐을 나타냈다.

아직 알도의 영화는 끝나지 않았다. 불운했던 한 소년이 UFC가 된 스토리에 이어 UFC에서 시련을 겪은 선수가 돌아와 다시 챔피언에 등극하는 2편의 스토리를 전세계 격투 팬들에게 써내려나가길 알도는 원할 것이다. 과연 알도는 이 영화의 끝을 다시 쓸 수 있을까.

사진=ZUFFA LLC, 조제 알도 SNS
반재민 기자(press@monstergroup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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