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전 10시30분에 시작되는 경기를 보러 일찍 목동구장으로 가면서 어렴풋이 2008년의 봄이 생각났습니다.
그해 봄 플로리다 주 브래든턴의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캠프에서 김병현(33)은 외로웠습니다. 바로 전해에 빅리그 진출 후 처음 10승을 거뒀는데 FA가 되면서 이상하게 잘 풀리지 않더니 예상치 않았던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서 스프링 캠프를 맞았습니다.
그리고 캠프의 말미에 돌연 방출되고 말았는데 그 주된 원인이 바로 '아침' 때문이었습니다. 정확히 하면 구단에서 아주 이른 아침에 불펜 피칭을 잡아놨는데 그게 김병현에게 전달이 제대로 안 된 것이었습니다. 팀에서는 게시판에 시간을 적어놨는데 김병현이 불펜 피칭을 하러 나오지 않았다고 질타했습니다. 김병현은 직접 전달해주도 않고, 훈련 끝나고 귀가할 때까지도 게시판에 그런 것이 적혀 있지 않았으니 황당해 했습니다.
그렇게 이른 아침의 불펜 세션 (7시30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도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이었지만, 그 일이 불거지면서 몸 상태나 공도 괜찮았던 김병현과 팀이 전격 결별한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결별이라는 표현보다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않은 채 일방적인 방출 통고였고, 그렇게 김병현은 오해를 달고 사는 외로운 선수였습니다.
자신이 만든 부정적인 이미지도 있었지만 변명을 하지 않는 성격에, 구단 단장들 간에 무심하게 던질 말들이 선입견으로 자리 잡으면서 김병현은 그렇게 야구인에서 느닷없이 야인이 됐습니다.

(18일 2군 경기에 선발로 나선 김병현은 홈런도 맞고 실점도 하고 고전했습니다. 그러나 특유의 날개짓 하는 듯한 투구 동작은 여전히 역동적이고 적응 과정은 차근차근 진행 중입니다. ⓒ민기자닷컴)

그리고 4년간 독립리그도 갔었고 일본리그 2군도 거친 김병현이 18일 오전 10시30분 열린 퓨처스리그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 선발로 나섰습니다. 예정된 투구수는 65개, 4이닝이나 잘하면 5이닝도 노려볼만한 투구수. 그러나 김병현은 1회부터 28개의 투구수를 기록하는 등 고전하다가 3회까지 64개의 공을 던지고 이날의 등판 일정을 마무리했습니다. 홈런도 맞았고 장타도 허용했고, 5실점(3자책) 하기도 했습니다.
이날 경기는 이른 오전에 열린 2군 경기였지만 취재진이 대거 몰렸고 관중석에도 참 많은 팬이 왔습니다. 김시진 감독과 정민태 투수 코치 등 1군 넥센 히어로스 코칭스태프도 대부분 모습을 보였습니다. 김병현에 대한 뜨거운 기대와 관심이 그대로 보인 날이었습니다.

귀국 후 '솔직 담백 모드'로 팬의 관심과 사랑을 모으고 언론과도 의외로(?) 매끄러운 관계를 보여준 김병현은 이날도 경기 후 특유의 약간은 심드렁한 어투로, 그러나 훨씬 자연스러운 웃음을 보이며 인터뷰를 했습니다. 포스트 시즌 히어로 인터뷰를 연상케 하는 그런 요란한 인터뷰에서 김병현은 컨디션을 잘 끌어올리고 있었는데 몸살감기가 와서 떨어졌다가 다시 끌어 올리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며 공에 힘이 안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한국 타자들이 잘 쳐서 내가 확실히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라는 말도 했고 "빨리 (1군에) 가서 던지고 싶은 욕심은 있지만 내 권한이 아니다. 감독님이 시키는대로 할 것."이라며 말끝을 흐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반포크, 혹은 스플리터를 시험해 봤는데 상당히 괜찮았다는 말도 했습니다. 143km의 최고 구속이 나왔다고 하자 그렇게까지 안 나왔을 것이라며 갸우뚱 거리기도 했습니다.

지금 시점에서 김병현의 구속이나 구위, 기록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관건은 얼마나 몸 상태를 순조롭게 끌어올리고 또 한국 프로야구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느냐는 것입니다. 히어로스 코칭스태프는 전혀 서두를 의사는 없습니다. 이날 경기를 지켜본 정민태 코치는 "현재 병현이의 몸 상태는 70~80% 정도다. 잘 올라오다가 몸살기로 뚝 떨어졌다가 다시 잡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2군에서 서너 경기 더 던지면서 일단 투구수를 100개로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다. 공 개수가 채워지면 언제든지 1군으로 올려 중간이든 선발이든 서서히 시작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차라리 1군 불펜에서 구원으로 던지면서 만들어갈 계획은 없느냐는 질문에 선발로 계속 던진 지 오래됐기 때문에 일단 투구수를 올리는 것이 먼저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적어도 4월에 1군 무대에서 BK가 던지는 모습을 볼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김병현의 강점에 대해 정민태 코치는 밸런스와 하체 이동을 이야기했습니다.
"많은 투수들이 마운드에 오르면 타자를 이기려는 생각만 한다. 그러나 자신의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병현이는 그것을 잘 알고 있고 또 하체 이동이 아주 뛰어나다. 잠수함 투수인데 지금도 슥 던져도 145km가 나온다. 밸런스와 하체 이동이 대단히 좋다."라고 말했습니다.
재미있습니다. 김병현도 항상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이 밸런스입니다. 좋을 때는 밸런스를 잘 유지하고, 또 나쁠 때는 밸런스를 찾는데 늘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투수입니다. 밸런스만 잡히면 전성기 때는 153km까지 찍었던 작은 괴물 잠수함이었으니 구위는 여전히 힘이 있습니다. 정코치도 강속구는 지금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과제도 있습니다.
소위 '쿠세'라고 하는, 각 투수 특유의 버릇 노출에 대한 극복과 그리고 구질을 조금 더 다양하게 가져가야 한다는 과제가 남아있습니다.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김병현은 구질마다 투구 동작의 차이가 드러난다는 것이 코칭스태프의 관찰 결과입니다. 정코치는 "메이저리그에서는 그런 점에 신경을 쓰지 않느냐?"고 묻기까지 하면서 BK는 구종마다 동작의 확연히 차이가 있고, 절대 상대 팀에서 그것을 놓칠 리가 없다고 했습니다. (영업 비밀이니 김병현의 약점으로 구체적으로 물을 수는 없었습니다.) 자신이 현대 시절 쿠세 때문에 LG만 만나면 난타를 당하던 이야기도 했습니다.
김병현과도 이미 투구시 버릇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자신은 일단 그대로 해보고 맞으면 바꾸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일단은 '칠테면 쳐봐라'하고 밀어 부쳐보겠다는 BK 특유의 자신감과 투지가 드러나지만, 세밀한 국내프로야구에 적응하고 생존하려면 반드시 넘어야할 벽으로 보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귀국파 투수는 어떤 면에서 외국인 투수와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외국인 투수는 늘 독특한 투구 동작을 없애는데 상당히 많은 노력을 이굴여야 합니다.
또한, 그들이 거의 항상 부딪히는 퀵모션에 대한 어려움 역시 김병현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언더핸드 투수이기 때문에 주루 플레이에 대한 부담은 있게 마련인데 국내의 발 빠른 야구에 적응하려면 퀵모션이나 견제 동작 등을 가다듬을 필요는 분명히 있습니다.

(김병현이 마지막으로 입었던 MLB 저지는 2008년 봄의 피츠버그 차이어리츠였습니다. ⓒ민기자닷컴)

또 한 가지는 구종의 다양화입니다.
메이저리그에서 김병현은 150km를 넘나드는 강속구와 예리하게 휘어나가는 슬라이더, 그리고 만화 같은 업슛으로 거구의 강타자들을 평정했습니다. 그러나 부상과 나이에 따른 근력 저하 등이 오면서 부담이 큰 업슛은 거의 던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정민태 코치는 싱커를 이야기했고, 김병현은 반포크볼을 이야기했습니다.
싱커를 묻자 김병현은 투심을 이야기했는데, 어차피 비슷한 변종 구질로 빠르게 오다 떨어지는 공입니다. 아직은 이 공이 마음먹은대로 들어가지는 않는 수준입니다.
반포크는 구속은 싱커보다 느리지만 낙폭이 큰 구종인데 김병현이 전에는 던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실밥을 잡지 않고 던진다고 했는데, 18일 경기에서 처음 실험을 해봤는데 상당히 만족하는 눈치였습니다. 선발로 뛰려면 적어도 세 가지 구질은 수준급으로 구사해야 하므로 빠른 공에 슬라이더를 갖춘 김병현이 싱커와 반포크까지 장착한다면 대단히 까다로운 투수로 등장할 것은 분명합니다.

김병현에 앞서 박찬호가 먼저 국내 무대에 데뷔했습니다.
박찬호가 두 차례의 등판에서 보여준 성공적인 변신은 역시 그가 얼마나 대단한 투수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시범 경기에서의 부진과는 달리 박찬호는 대단히 공격적인 피칭과 빠른 경기 진행 템포로 국내 타자들을 몰아세웠습니다. 빠른 승부를 가져가는 것이 이 리그에서의 생존법이라는 것을 동물적인 감각으로 곧바로 체득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과거에 외국을 거쳐 돌아왔던 선수들이 적응기 초반에 겪었던 어려움을 일단 박찬호는 빠르게 돌파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점에서는 김병현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마운드에서 용감한 투구에 대해서는 따로 이야기할 필요가 없는 투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패에 대한 적응과, 완벽함에 대한 집착 등 정신적인 면에서는 김병현도 벽도 부딪히고 난관도 올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코칭스태프와 주변에서 잘 배려하고 조언하고 이끌어 준다면 김병현의 국내 프로야구 적응은 상당히 낙관적이라고 봅니다.

시즌 초반 넥센 히어로스는 4승5패로 승률 5할권에서 오가고 있습니다.
나이트라는 확실한 에이스가 자리를 구축했고, 불운했지만 기대가 갈수록 커지는 강윤구가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이택근-박병호-강정호로 이어지는 중심 타선도 자리를 잡았고 마무리 손승락도 건재합니다.
물론 내야 양쪽 코너와 외야 수비의 불안이나 테이블 세터, 중간 불펜 등 조금 미진해 보이는 부분도 있지만 상당한 경쟁력을 보이고 있습니다. 여기에다 상태를 바짝 끌어올린 김병현이 가세한다면 그 효과는 기대 이상일 수도 있습니다. 중간이면 중간, 선발이면 선발로 자기 역할을 해주면 히어로스가 승리할 수 있는 옵션이 확실히 다양해지고 강해집니다.
당장 큰 기대를 걸기 보다는 지켜보면서 차근차근 BK의 정착을 지켜보는 것이 순리겠지만 그보다는 당장 기대를 걸게 되는 것이 팬의 마음인 것 같습니다. 빠르면 5월 초순이나 중순, 그가 정식으로 한국의 1군 마운드에 오르는 날이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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