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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짐] WBO를 제외한 나머지 3대 기구(WBA, WBC, IBF)의 벨트를 모두 가졌고 IBO 타이틀까지 보유한 프로 복싱 미들급의 정점 골로프킨이 8년 9개월 동안 이어온 23연속 KO와 타이틀매치 18연속 KO승의 대기록에 제동이 걸렸다. 미라클맨 다니엘 제이콥스는 별명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 만큼 놀라운 경기력을 선보였고, 경기장을 찾거나 중계를 시청하던 전 세계의 수많은 복싱 팬들에게 특별한 시간을 선물했다. 비록 전원일치 판정에 의한 패배였지만 그를 패자로 보는 사람은 없다. 


■ 제이콥스는 정말로 승리를 도둑맞은 걸까?

오히려 일부 매체와 파이터들은 제이콥스가 이긴 경기라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안드레 버토, 오들리 해리슨 등이 대표적이다. 골로프킨의 승리에 공감하는 쪽은 어디로 갔어도 이상하지 않을 접전이라는 인식이 주류를 이루는 반면, 제이콥스의 승리라고 보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어조가 다소 격하다. 일부는 제이콥스가 승리를 도둑맞았다는 견해를 내놓기까지 했다.

그 주장의 근거는 무엇일까. 당연히 경기 중에 제이콥스가 큰 것을 더 많이 맞춘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컴퓨복스의 펀치 통계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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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로프킨의 선제 잽과 제이콥스의 카운터 컴비네이션

전체적으로 골로프킨의 공격 시도가 많았고 적중률이 높아 더 많이 때린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골로프킨이 선공시킨 231개의 펀치 중 105개가 잽이다. 잽의 비중이 45%. 파워펀치 면에서는 제이콥스가 144개로 126개의 골로프킨보다 앞섰다. 잽은 불과 31개 성공시켰고 전제 타격 중 잽의 비중은 17.7%. 이것은 제이콥스가 골로프킨의 잽을 받고 카운터 컴비네이션으로 받아쳤던 전체적인 경기내용을 떠올려보면 자연스러운 수치다. 


■ 골로프킨의 파워 잽과 제이콥스의 붕어가 들어있지 않은 붕어빵

골로프킨의 통산 스탯에서 적중된 모든 펀치 중 잽이 차지하는 비중은 39.6%다. 제이콥스전에서의 45%는 통산 기록에 비해 잽의 비중이 13%로 소폭 올라간 셈이다. 반면에 제이콥스의 경우는 통산 스탯의 잽 비중이 29.5% 인 것에 비해 이번 경기에서의 17.7%는 60%에 해당하는 수치다. 무려 40%가 하락한 셈이다. 

프로 복싱에서는 잽을 공격으로 채점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물론 골로프킨의 잽처럼 전진하며 던지는 파워잽은 예외로 쳐주지만, 그렇다고 해도 잽은 잽이다. 적중된 펀치의 수효에 결정적인 차이가 없을 경우, 파워펀치를 많이 성공시킨 쪽에 점수를 주는 것은 복싱 채점의 기본이다. 이번 경기의 경우 내용면에서 대단히 치열한 접전이 벌어질 경우, 원칙적으로는 큰 것을 많이 터뜨린 선수가 가져가는 게 원칙이고 컴퓨복스의 통계만 놓고 보면 승자는 제이콥스 쪽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컴퓨복스의 통계에는 맹점이 있다. 잽과 바디잽을 제외한 웬만한 펀치가 모두 기계적으로 파워펀치로 분류 된다는 것. 아래의 사진을 보자. 왼쪽은 캘브룩과 5라운드를 뛰고 난 직후 기자회견장에 나선 골로프킨이고, 오른쪽은 제이콥스와 12라운드를 뛰고 난 후 기자회견중인 골로프킨이다. 얼굴에 새겨진 전투의 기록에는 거의 차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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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프킨은 브룩에게 25개의 잽과 60개의 파워펀치를 허용했다. 잽만 보면 두 경기가 비슷하지만 제이콥스는 브룩보다 파워펀치를 2.5배 정도 많은 144개를 적중시켰다. 브룩은 골로프킨과 대전할 당시 36전 전승 25 KO로 69.4%의 KO율을 기록 중이던 두 체급 아래의 선수다. 제이콥스는 KO율 87.8%의 미들급 강타자였다. 이 모든 수치를 종합하면 결론은 미라클맨의 매직은 파워가 실리지 않은 파워펀치였던 것이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추론이 가능하다.

골로프킨이 금강불괴 신공을 익히고 있었는데, 최근 공력이 급상승해 미들급에서도 탑클래스의 강타자에게 144개를 허용하고도 웰터급에서 막 올라온 웰터급 평균치의 파워를 보유한 선수에게 60개 맞은 것과 비슷한 정도의 상처를 입는데 그친 것이 아닐까 하는 상상은 웃자고 하는 소리지만 해놓고 보니 웃기지도 않는다.


■ 파워의 네 가지 구성요소

파워펀치란 무엇일까. 펀치력의 근원에 대해 잠시 탐구해 보자. 결국 펀치력은 본인의 주먹을 시속 몇 km로 가속시키느냐라는 문제로 귀결된다. 주먹과 팔의 무게나 힘 같은 것은 누구에게나 상수이므로 타격력을 물리적으로 해석할 때 차이는 속도라는 변수에 의해 결정된다. 결국 타격의 기술 중 파워를 위한 부분은 주먹을 가속시키기 위한 것이다. 

골반, 즉 몸통의 회전이 펀치파워에서 가장 중요한 이유는 팔로 아무리 강하게 휘둘러 봐야 팔은 대충 편 채로 두고 축이 되는 몸통을 회전 시키는 것에 비해 가속 효율이 떨어진다. 그 몸통회전과 함께 전진스텝이 동반되면 금상첨화다.

뿐만 아니라 단지 강하게 때리기만을 위해서라면 몸통의 회전이 최대한 많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백스윙 동작이 있으면 좋고 타격이 끝난 후에도 스윙을 그대로 쭉 끌고 나가주는 팔로스루도 필요하다. 

펀칭 테크닉의 영역에서 파워를 이끌어내는 이 네 가지 주요 구성요소는 어디까지 살리고 얼마나 절제하느냐의 문제다. 왜냐하면 펀칭이라는 행위의 실패로 인해 본인이 크게 당할 확률 역시 그 네 가지 요소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당연한 소리지만 잠시 언급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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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허리의 회전이 강할수록 펀치가 미스되었을 때 상대에게 등을 보여줄 정도로 몸통이 돌아가 버린다. 카운터에 취약해져서 좋지 못하다. 

2. 앞으로의 움직임이 너무 크면 미스되었을 때 상대에게 거리는 줄여주고 파워는 추가해주는 셈이 된다. 보통 머리가 본인의 앞발 무릎보다 앞으로 나가지 않도록 하라는 요령이 있는데, 물론 예외도 있겠지만 알도가 맥그레거에게 치욕적인 KO패를 당하던 순간 그의 머리가 왼쪽 무릎의 앞으로 많이 나와 있었다는 점을 참고 해서 나쁠 게 없을 것이다.

3. 백스윙이 크면 상대가 본인의 의도를 간파하게 된다. 상대의 레벨이 높아질수록 의도를 간파당한 대가를 더 호되게 치르게 된다. 따라서 백스윙에 해당하는 움직임은 방어동작이나 스텝 간에 만들어내어야 한다. 그리고 그럴 틈이 없을 때는 백스윙이 전혀 없는 간결한 펀치를 낼 수 있도록 단련할 필요가 있다. 

4. 팔로스루가 크면 방어태세로의 복귀가 어려워지고 상대의 반격에 취약해진다. 주먹을 끊어 치라고 하는 이유는 바로 수비로의 복귀, 즉 공수전환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대결구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것이다. 일설에 끊어 치는 주먹이 더 세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스포츠에서 가장 강력한 타격력을 만들어내는 골프의 드라이버 스윙은 그럼 왜 끊어 치지 않을까, 야구에서 홈런 스윙이란 왜 그렇게 강력한 팔로스루를 동반할까만 생각해 봐도 그것이 오류임을 알 수 있다. 정확한 이유는, 타격 시 팔로스루를 억제하기 위해서는 본인 스스로 어느 시점에서는 펀치에 브레이크를 걸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팔로스루는 임팩트의 그 순간까지도 계속 가속이 더해지도록 하기 위한 동작이다. 펀치를 끊어 치는 건 최고출력을 어느 정도 양보하더라도 방어를 등한시 하다가 순감 잠들어버리는걸 최대한 방지하기 위한 세팅인 것.

개인적으로 제이콥스의 펀칭에는 위의 네 가지가 많이 부족했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 나오지 않고, 몸통의 회전이 많이 걸리지 않았으며 백스윙과 팔로스루가 절제된 펀치였다고 보았고 경기 이후 입수한 영상을 분석하면서 같은 결론을 확신하게 되었다. 

제이콥스가 컴비네이션을 많이 구사했다는 점도 네 가지를 잘 억제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즉 한 번의 찬스에 적중률이 떨어지고 반격의 위험이 큰 한방을 노리느냐, 아니면 2-3-4 컴비네이션으로 한두 개씩 맞추고 가느냐는 갈림길에서 제이콥스는 후자를 선택했다는 얘기다. 문제는 붕어가 아예 안 들어있지만 모양이 붕어이기 때문에 붕어빵인건 맞지 않느냐는 주장에 아니라고 말할 근거가 없다는 거다. 

파워는 없지만 잽은 아니기 때문에 파워 펀치인 게 맞다고 하면 뭐라고 해야 하는 걸까. 그냥 골로프킨의 얼굴로 보면서 ‘아~ 제이콥스의 펀치력은 캘 브룩의 약 35% 정도 밖에 안되는 거구나’하고 넘어가면 그만인 건가.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반면에 잽만 맞은 것 같은 제이콥스는 기자회견장에 선글라스를 끼고나왔다. 경기 직후 그 정도였다면 기자회견 할 때쯤에는 아무래도 선글라스를 착용해주는 게 시청자들에 대한 예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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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평

제이콥스는 라운드 평균 45개의 펀치를 시도했다. 본인의 통산 평균인 47.5개보다 조금 적은 숫자다. 적중률은 잽이 통산 19.8%에서 18.2%로 미세하게 하락했고 파워펀치의 경우 46.9%에서 38.8%로 약 18% 하락한 수치를 나타냈다. 

골로프킨은 통산 라운드당 평균 67.9회의 펀치시도를 했지만 제이콥스전에서는 51.25회로 거의 25%나 하락했다. 잽 적중률은 34.8%에서 29.6%로 하락했다. 적중수도 10.9개에서 8.5개로 감소. 파워펀치는16.5개에서 10.5로 폭락, 그러나 적중률은 45.4%에서 48.6%로 소폭 상승했다. 

제이콥스는 수치상으로 보면 본인의 게임을 한 것이고 골로프킨은 평소답지 못했다. 이유는 제이콥스가 영리하게 플레이 하면서 골로프킨을 본인의 게임으로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한방이 있는 선수가 약게 경기를 하니까 아무리 골로프킨이라 해도 조심스럽게 대응할 수밖에 없었고 잽의 비중이 대폭 증가한 것, 전체 펀치시도가 하락했고 파워펀지의 구사가 위축되었던 건 역시 제이콥스가 운영을 잘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본인의 살상력을 억제하고 싸우면서 상대의 결정력 역시 묶어버린 셈이기 때문. 맷집에서 불리한 제이콥스로서는 이익을 본 것으로 결론지을 수 있다.

제이콥스가 굉장히 잘 한 것 같아 보이는 그림이었다. 그러나 그 인상은 골로프킨이 가진 무적 이미지의 반사면에서 나타나는 일종의 신기루였다는 개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제이콥스가 뒤로 움직이며 빠른 손과 리치 어드벤티지를 활용하는 구도는 이미 경기 전에 예상되던 전개 중 하나였다. 그렇게 한들 KO가 나는 라운드가 뒤로 밀릴 뿐 같은 결과가 될 것이라 본 개인적 예상은 크게 빗나갔지만, 그만큼 제이콥스 역시 손에 힘을 빼고 타격하면서 골로프킨에게 충격을 입히는 펀치를 단 한 차례도 선물하지 못했다는 점이 제이콥스의 패인이고 제이콥스 정도 선수가 그런 식으로 나오면 그에 맞는 적절한 대응을 하는 것 발고 다른 방법이 없다. 

오히려 상대의 결에 맞춰 본인도 순리대로 풀어나가는 골로프킨의 담담한 운영에 더욱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 보통의 경우 실력 차가 있다고 전망 되던 상대가 만만치 않게 나오고 또 전략전술의 기조에 약간의 분식펀칭이 느껴지면 약 올라 하고 흥분하는 경향이 있지만 골로프킨은 거의 그런 모습 없이 본인의 갈 길을 묵묵히 걸어갔다. 상대의 심리전이나 도발에 대한 저항력도 매우 강하며 자부심 과도하게 부리다가 대국을 말아먹는 성급함 같은 건 역시 골로프킨의 성향과는 멀다. 

무엇보다 골로프킨도 인간이다. 그를 신적인 존재로 추앙한 것도 극소소의 광적인 팬들과 일부 미디어일 뿐이고 지금 마치 그가 신성을 잃고 인간계로 내팽개쳐진 것 같은 분위기를 조장하는 사람들도 그들이다. 정상적인 팬들은 언젠가 어제 같은 날이 오고 좀 지나면 그보다 더한 날도 온다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아주 미세한 확률이지만 이 모든 게, 즉 최근 두 경기에서 골로프킨이 유독 컴비네이션에 약한 모습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골로프킨의 낚시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당대 최강의 컴비네이션 펀쳐 알바레즈, 아니 그의 프로모터인 호야가 그 미끼를 덥석 물기를 바랄 뿐이다.

사진=SBS 제공
이용수 기자 (press@monstergroup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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