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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짐=편집부] 불과 사흘 앞으로 다가온 UFC 209는 올 상반기에 열리는 대회 중 가장 눈에 띄는 이벤트다. 타이틀전이 메인이벤트로 치러지는 관례 때문에 웰터급 벨트가 걸린 타이론 우들리와 스티븐 톰슨의 2차전이 가장 마지막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 다소 미덥지 못한 팬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에 앞선 경기들-이를테면 K-1 시절의 향수를 불러 일으킬 법한 알리스타 오브레임과 마크 헌트의 맞대결, 격투 괴재라 불리며 UFC에 연착한 란도 바나타의 경기 등은 격투 팬들의 원초적 본능을 일깨우는 꿈의 매치업이다.

그중에서도 이번에는 UFC의 묵직함을 자랑하는 헤비급, 그 중에서도 가장 남자다운 경기를 펼치기로 유명한 두 선수의 스토리에 대해 집중 조명해보려 한다. 바로 2008년 Dream에서 싸운 이후 근 9년 만에 먼 길을 돌아 다시 만나게 되는 두 선수 알리스타 오브레임과 마크 헌트다. 

과연 그들이 가진 스토리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들이 가진 무기는 어떤 것이 있을까. 몬스터짐 기획 특집을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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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라이드에서 느낀 세계의 벽, 이를 통해 시작된 오브레임의 육체 개조

오브레임의 가계도는 조금 복잡하다. 1980년 5월 17일 자메이카인 아버지와 네덜란드 왕족인 윌리엄 3세의 후손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오브레임은 어린 시절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어머니를 따라 고향으로 이주, 네덜란드인이 됐다. 그런데 또 태어난 곳은 영국 런던 하운슬로우라서, 선수 소개 시 출생지를 기준으로 삼는 UFC의 자막에는 매번 영국 태생으로 표시되곤 한다.

처음부터 오브레임이 투기 종목에 관심을 보인 것은 아니었다. 원래 농구와 육상을 주로 하던 오브레임은 15세 때 친형 발렌타인 오브레임의 손에 이끌려 마지못해 크리스 돌먼의 MMA 체육관에 출석하게 된다. 그런데 호신용으로 타의에 의해 격투기를 배우기 시작한 그에게 변화가 일어났다. 판크라스의 제왕 바스 루틴을 만나면서 점차 흥미를 붙이게 된 것이다. 격투기에 빠져들기 시작한 오브레임은 그때부터 파이터 외길인생을 걷기 시작, 1999년에 정식으로 프로 데뷔전을 갖는다.

1999년 10월 24일 자국 내 프로모션 '잇츠 쇼타임(It's Showtime)'을 통해 프로 MMA 데뷔전을 가진 오브레임은 이후 링스와 2H2H 등의 무대를 거치며 착실히 승수를 쌓았다. 2002년에는 당시 세계 최고의 종합격투기 무대였던 프라이드에 진출, 척 리델을 만나기 전까지 16승 3패라는 화려한 전적을 쌓았다.

하지만 그동안 어중간한 상대들로만 승리 숫자를 쌓아온 오브레임은 2003년 UFC에서 파견을 온 MMA 특급 척 리델에게 처음으로 세계의 벽을 느끼게 된다. 리델의 폭탄 라이트를 버티지 못하고 1라운드 KO 패를 당한 것. 이때부터 오브레임의 본격적인 세계 레벨 체험기가 시작된다. 비토 벨포트나 세르게이 하리토노프에겐 승리를 거두기도 했지만, 프라이드에서 안토니오 호제리오 노게이라와의 2차전 패배를 시작으로 히카르도 아로나-마우리시오 '쇼군' 후아까지 내리 3연패를 당했다. 2006년 5월부터 2007년까지 오브레임은 7경기에서 2승 5패를 거두며 최악의 부진에 시달렸고, 이에 그는 훗날 자신에게 양날의 검이 될 육체개조 작업에 서서히 돌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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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려했던 전성기와 빠른 몰락...그리고 만난 그렉 잭슨

현재도 오브레임의 고질적 약점으로 지적되는 부실한 체력과 내구성은 이미 이 시절부터 명확히 드러난 리스크였다. 이에 오브레임은 폭발적인 증량을 감행하기 시작했다. 2007년 말부터 2008년까지 오브레임은 1년 사이에 무려 15kg을 불렸다. 이 힘을 바탕으로 2007년 11월 스트라이크포스 무대에서는 폴 부엔텔로를 꺾고 잠정 헤비급 챔피언에 등극했고, 2011년까지 미르코 크로캅과의 무효 경기를 제외하고는 11승을 올리며 쾌속질주를 시작했다. 오브레임의 화려한 행보 속에 개리 굿릿지, 마크 헌트, 토드 더피, 파브리시오 베우둠 등 정상급 파이터들이 모두 무너졌다.

탄력을 받기 시작한 그는 내친 김에 입식격투도 병행, 2010년 K-1 WGP 결성에서 피터 아츠를 꺾고 입식격투 타이틀까지 획득하는 기염을 토한다. 어느덧 오브레임은 헤비급의 한계체중을 꽉 채운 120kg의 근육 괴물이 되어있었다. 많은 팬들은 오브레임의 약물 복용을 의심했지만, 이렇다 할 물증이 없었다. 그가 UFC로 둥지를 옮기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후 스트라이크포스 수뇌부와 갈등을 겪은 오브레임은 2011년 UFC와 계약하며 북미 메이저 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그해 말일인 12월 31일 UFC 141에서 흥행 제조기 브록 레스너를 클린치 니킥과 바디킥으로 찜질하듯 두드리며 손쉽게 타이틀샷을 따냈다. 당시만 하더라도 오브레임의 기세는 당장 UFC 헤비급을 접수할 것처럼 보였다. 자신에게 또 다른 악몽이 다가오는 것은 미처 인지하지 못한 채.

이듬해 UFC 146에서 헤비급 타이틀을 두고 주니어 도스 산토스와 맞붙기로 했던 오브레임이 경기를 불과 두 달 앞둔 상황에서 약물 검사에 적발되며 비상이 터졌다. 그는 공식성명을 통해 "갈비뼈 부상 치료를 위해 복용한 소염제에 테스토스테론이 있었다"며 항변했지만, 이미 예상된 결과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심증은 물증이 됐고, 이는 충격적인 패배를 통해 곧 확증이 됐다. 9개월 출전 정지 징계 후 복귀한 오브레임이 2013년 UFC 156에서 한계가 명백해 보였던 안토니오 실바에게 충격의 3라운드 역전 실신 KO 패를 당한 것이다. UFC는 오브레임 임팩트를 재건하기 위해 트래비스 브라운과 벤 로스웰을 던져줬지만, 승리는 커녕 되레 1라운드 (T)KO 패를 당하며 체면을 구겼다.

벼랑 끝에 몰린 오브레임은 소속팀을 블랙질리언에서 잭슨-윙클존으로 옮기면서 다시 반등하기 시작했다. 초반 맹공을 퍼붓다가 체력이 방전돼 허무하게 자멸하던 파이터가 그렉 잭슨의 손을 거치며 신중한 아웃파이팅을 살려 상대를 요리하는 영리한 여우로 변했다. 그 덕분에 오브레임은 2014년 12월 열린 UFC 온 폭스 13에서 스테판 스트루브를 시작으로 안드레이 알롭스키까지 4연승을 거두며 재차 주가를 올렸다. 타이틀샷도 다시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브레임은 마지막 퍼즐을 맞추지 못했다. 지난해 열린 UFC 203의 헤비급 타이틀전에서 스티페 미오치치의 쇠뭉치 파운딩에 정신을 잃었다. 그의 간절한 염원이었던 UFC 헤비급 타이틀도 다시 한 발짝 멀어졌다. 이제 오브레임은 타이틀이라는 먼 길을 돌아가기 위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상태다. 그리고 그 원점의 대척점에는 마크 헌트가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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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마를 보았다'...불행했던 과거, 지금의 헌트를 만들다

2015년 9월, 뉴질랜드로부터 가슴 아픈 소식이 전해졌다. 사모아계 이민자의 아들로 뉴질랜드에서 태어나고 자란 전 K-1 WGP 우승자이며 현 UFC 헤비급 랭킹 8위인 마크 헌트가 털어놓은 본인의 어린 시절 대한 이야기였다. 헌트가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그의 부친은 이유 없이 아이들을 학대했다. 헌트 본인의 경우는 어릴 때부터 몸이 묶인 채 채찍질을 당했다고 하며 몇 주씩 학교는 나가지 못할 만큼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그러나 "그 정도면 괜찮은 편이었죠. 나중엔 더 심해졌으니까"라며 타인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웃었다고 한다.

그의 손위 누이인 빅토리아의 증언은 참혹했다. 부친은 그녀를 성적으로 자주 학대했다고 하며, 본인이 성폭행 당하는 것을 거부하면 동생들을 초주검이 될 때까지 두들겨 팼기 때문에 그녀는 마음이 덜 아픈 쪽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런 어린 시절을 겪으면서 두 형 중 한 명은 자살을 선택하고, 또 다른 형제는 중증의 정신장애를 앓게 되었다고 한다.

뉴질랜드는 남태평양의 구석에 있는 외딴 섬나라답게 공기 안에 포함된 고체 입자의 양이 극도로 적어 시선이 매우 멀리까지 닿으며 하늘의 색깔이 충격적으로 푸르다.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며 웬만해서는 사람이 벼랑으로 몰리는 일이 없게끔 사회안전망이 촘촘히 설치되어있다.

집안의 그러나 악마는 안전망으로 감당이 안 된다. "집은 결코 안전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거리에 있을 때 안심이 되었습니다. 불리(또래들을 괴롭히는 아이)였냐고요? 그랬습니다. 거리에서 싸움을 하면서 부모님에 대한 증오심을 다스릴 수 있었습니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사이 헌트는 두 번의 수감생활을 했다. 두 번째로 출소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 한 번의 싸움이 그의 인생 항적에 예정에 없던 변침의 원인을 제공한다.

그가 나고 자란 사우스 오클랜드라는 지역은 천국과 그렇게 가깝다는 뉴질랜드에서 지옥을 향해 열려있는 불구덩이 같은 곳이다. 폴리네시아 출신의 저소득층 이민자들과 난민들이 모여 살면서 치안이 무척 불안하다. 좋은 나라의 일부 이긴 복지의 혜택이 좀처럼 닿지 못하고 세수가 워낙 낮아 경찰들의 시선에서도 먼 곳이다. 그곳의 한 주점 앞에서 시비가 일어났고, 헌트는 순식간에 여럿을 눕혔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해당 업소의 안전 관리 요원 샘 마스터스가 헌트를 자신이 다니는 킥복싱 도장으로 초대했다. 헌트는 "파이터가 되지 않았다면 아주 좋지 않았을 거야. 바보였으니까"라며 그날을 돌아보았다.

어머니가 종교적 광신에 빠져들면서 누구도 돌보지 않았으며 13세에 이미 30여 차례의 연행 경력이 있고, 친구들과 상점을 털 때 가장 행복했다는 뉴욕 게토의 소년, 중무장하고 강도행각을 벌다가 9가지의 중범죄를 짓고 18년 형을 선고 받은 19세 필라델피아 청년, 가난해서 깡패가 되는 수밖에 없다는 결심을 했던 부산의 꼬마, 모두 복싱을 통해 새 삶을 찾았다.

복싱의 유구한 역사에 황혼이 드리우고 있지만, 격투를 통한 속죄와 재사회화라는 특유의 기능은 킥복싱이라든지, 종합격투기로 이어질 것이다. 어둠의 세계에서 격투를 통해 새 삶을 찾은 이한근 선수는 이 맛을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조금이나마 죄를 덜 짓지 않았겠냐며 아쉬워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거리에는 수많은 내일의 타이슨과 홉킨스와 장정구가 범죄자와 영웅의 갈림길에 서 있다. 그들에게 어떻게 접근해 어떤 비전을 제시하느냐, 격투라는 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언제나 염두에 두어야 할 세상을 위하고 본인들을 위할 업무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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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수 경력의 황혼기에 다시 옥타곤이라는 정글로 뛰어든 헌트

헌트는 2000년에 K-1 오세아니아 지역 예선에서 우승하며 국제 무대에 처음 등장했다. WGP로 가는 세 관문 중 첫 번째를 통과한 것이며, 두 번째에서 세기적 테크니션 어네스트 호스트를 만나 고배를 들었다. 이듬해 10월 후쿠오카에서 크로캅의 부상으로 출전 기회를 얻은 헌트는 두 번째 관문을 두들기고 있었다. 상대는 레이 세포였다.

오랜 단련을 통해 테크닉면에서 본인보다 한 수위의 기술체계를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이즈가 그리 크지 않은 터라 속도 차이를 이용한 거인 사냥기법도 통하지 않아 상대하기가 무척 까다로웠던 세포를 앞에 두고 헌트는 커버링을 완전히 내린 채 얼굴을 내밀었다. 

이후의 전개에 대해 필설 따위로 형언을 하는 것 자체가 무리수일 테니 생략하는 것이 경우에 바를 것 같고, 그 전설적인 싸움은 세포의 판정승으로 마무리 되었지만 눈 부상을 입은 세포가 낙마하면서 결승행 티켓은 헌트의 차지가 되었다. 아담 와츠를 KO로 꺾은 헌트는 드디어 WGP를 향한 최종관문에 도달했다.

12월 8일, 65,000명 관객이 들어찬 도쿄돔에서 개최된 WGP의 8강에서 제롬 르 벤너가 헌트를 기다렸다. 거구의 벤너는 외모만큼 강력한 위력의 킥과 펀치를 구사했고 사실은 기교면에서도 부족함이 없는 최상위권 킥복서였다. 사우스포인 벤너의 특기는 킥 거리에서 앞발 레그킥으로 상대의 의식을 왼쪽 허벅지로 보내다가 특기인 왼쪽 바디킥-헤드킥 이지선다를 거는 스타일이다.

1라운드 벤너가 본인이 가장 편안한 방식으로 킥 게임을 걸어오자 헌트에게 마땅한 대응 카드가 없었다. 다행히 2라운드에 벤너가 빨리 끝을 보고 남은 두 경기를 대비하려는 듯 피치를 끌어 오렸다. 코너에 몰린 헌트에게 파상 공세를 퍼부으며 예외 없는 승리를 역시나 벤너가 가져가나 했지만, 헌트가 갑자기 노가드 도발을 걸자 경기장을 찾은 만원 관중이 엄청난 함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아마도 그 소리, 대관중의 연호라는 프로 파이터의 절대가치가 아마도 그의 평정심을 무너뜨렸던 것인지 그 직후의 펀치교환에서 헌트의 오른손 오버핸드가 벤 너의 관자놀이를 찍게 된다.

흔들리는 벤너를 로프로 몰고 가 연속기를 터뜨려 마무리 지은 헌트는 준결승에서 스테판 레코를, 결승에서는 프란시스고 필리오를 각각 돌려세우고 K-1의 최고 영예인 WGP의 월계관을 차지했다

2004년 MMA로 진출한 헌트는 초반에 잠시 반짝했다. 그러나 종합격투기에서 그라운드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다면 거의 이길 수 없다. 당시의 헌트는 일단 넘기기만 하면 그 다음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승리 자판기였다. 초기에 반다레이 실바를 핵궁둥이로 납작하게 만들며 승리를 챙긴 것, 미리 넘어와 있던 크로캅에게 K-1에서의 빚을 돌려준 것까지가 다였고 그 뒤 5연패의 수렁에 빠져들고 말았다.

UFC가 프라이드를 인수하던 무렵 UFC의 수뇌부는 헌트와의 계약을 파기하려 ?다. 데이나 화이트가 5억 원(40만 달러)를 위약금으로 제시했지만, 헌트의 대답은 '노'였다. 이 당시 화이트는 한 인터뷰를 통해 아래와 같이 말했다.

"프라이드 딜이 성사되었을 때 그와의 계약이 남아 있었어요. 우리는 그에게 남은 계약만큼의 액수를 지불하고 그를 정리하려 했어요. 돈을 드릴 테니 이제 그만 돌아가시라고 말했죠. 그는 계속 지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놀랍게도 그는 싸우겠다고 했어요. 저는 그의 뜻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어요. 왜냐하면 그는 공돈을 챙길 수 있는 기회를 얻었는데도 그것을 거부하고 싸우겠다고 한 거잖습니까. 그가 진심인 것은 바보라도 알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헌트는 그러나 다음 경기에서도 패하고 연패 기록을 6으로 연장 시켰다. 

2011년, 도쿄돔에서의 대전에서 10년이 지난 후, 시드니의 35000 관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상대였던 크리스 턱셔이라를 어퍼컷으로 떨어뜨린 후 헌트는 추가적인 공격을 가하지 않고 돌아섰다. 현지에서 워크오프(Walk-off, 야구에서 끝내기라는 뜻으로 쓰인다)녹아웃이라 명명한 이 세레모니는 다시 한번 세계의 시선을 헌트에게 몰아주었다.

이후 헌트는 로스웰과 콩고, 스트루브등을 연파하며 분위기를 이어가다가 2인자 산토스를 만나 혈투 끝에 KO패를 했으며, 약물 복용 상태의 안토니오 실바와 역대급 난타전을 집필하기도 했다. 넬슨을 머리부터 바닥에 심어버린 전율의 어퍼컷과 끝내기 KO승, 미어전에서의 승리 같은 빛나는 장면들이 있었으며 약물의 힘을 빌려 무대로 돌아온 브록 레스너에게 당한 완봉패처럼 보는 사람이 더 열 받았던 순간도 있었다.

본인 스스로는 특히 베우둠과 미오치치, 그리고 산토스에게 당했던 패배에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이 강해 보인다. 아직도 본인이 세계 최고의 파이터임을 굳게 믿고 있다는 헌트에게 UFC 209의 오브레임전은 꽤 괜찮은 기회다. 결과에 따라 아직 헌트가 뚫지 못하고 있는 관문을 통과할 열쇠가 되어줄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과연 언제나 헌트의 주변을 맴돌며 격투 팬을 웃기고 울렸던 승부의 신은 3월 5일 누구의 편을 들 것인가. 44세의 헌트를 기다리고 있는 드라마는 어떤 장르일지 그 결과가 곧 공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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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대전적으로 보는 오브레임 vs 헌트

오브레임과 헌트전의 경우, 먼저 두 선수의 전적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9명의 상대선수, 즉, 미오치치, 산토스, 넬슨, 스트루브, 로스웰, 미어, 실바, 레스너, 베우둠과의 대전 기록을 살펴보았다. 결과는,

오브레임 6승 (3KO) 3패 (3KO패) 총 18라운드, 1라운드 피니쉬 승패 각각 2회씩 3KO, 3KO패
헌트 5승 (4KO) 3패 (3KO패) 1NC 총 23라운드, 1라운드 피니쉬 승 2회, KO승 4 판정승1 3KO패 1판정패

오브레임은 한창 첨단 화학적으로 운동할 때 베우둠과 레스너를 이겼다. 그리고 말고기를 타고 도망가는 사태를 일으킨 다음 돌아와서는 안토니오 실바와 트래비스 브라운에게 연패를 당했다. 그것으로 마무리 인가 했지만 마법사 잭슨-윙크님들의 터치를 받고 경기구조 개선에 성공하면서 미어를 이기고 로스웰에게 당한 후, 스트루브와 넬슨을 잡은 뒤 산토스를 눕히더니 알롭스키를 상대로 빅쇼를 연출하고 중심권으로 되돌아 갔다. 결승…아차, 타이틀전에서는 독침 같은 쇼트로 미오치치의 무릎을 꺾었다. 그러나 결론은 1라운드 KO패.

헌트는 5승으로 1승이 부족하지만, 1라운드 KO패가 없고 베우둠에게 당한 것을 빼면 빅3와 나름 처절하게 싸웠다. 전반적으로 상대전적 면에서 오브레임의 6승보다 헌트의 5승에 무게가 더 실린다. 터치를 받으면 눕는 오브레임인건 그대로이지만, 요즘의 경우 만지기가 쉽지 않다. 구조개선 후 움직임과 거리싸움이 좋아졌기 때문. 

두 가지 포인트가 있다. 스탠딩에서라면 헌트에게 유리한 게임으로 보인다. 아무리 바뀌었다고 해도 헌트에게는 그만한 스트라이커와 싸워본 경험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브레임이 그라운드를 선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언제 테이크다운을 시키느냐, 그것이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두세 번 테이크다운에 실패한다면 오브레임이 자멸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성공한다면, 헌트가 서브미션패를 당할 확률이 상당히 높다. 만약 오브레임이 그라운드까지 끌고 가서도 탭을 받아내지 못하면, 그것도 큰 문제가 될 것이다.

그리고 1라운드, 구조개선 후 많이 좋아졌지만 오브레임의 1라운드는 살얼음판이다. 헌트는 1라운드부터 난리가 나도 어떻게든 버티고 다음 라운드로 나가는 스타일이다. 헌트가 1라운드에 강하게 압박하면 오브레임이 자멸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오브레임의 사우스포는 매우 위력적이기 때문에 지나치면 헌트 본인이 1라운드에 당할 수도 있다. 

1라운드는 오브레임이 유리할 수 있고 2라운드부터 헌트에게 기회가 많아질 것이며 3라운드라면 헌트가 피니쉬를 노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오브레임의 약점은 턱에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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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오브레임과 헌트의 모든 것을 알아보았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이들은 단지 평범한 헤비급 파이터에 불과하다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내막을 면밀히 들여다본다면 그들의 어린 시절이 가진 스토리 그리고 고난과 역경을 딛고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영웅소설의 전형적인 플롯처럼 이야기가 짜여있다. 하지만, 그 플롯은 인위적이지 않은 플롯이며 이 둘의 생애를 더욱 극적으로 만들어준다.

과연 이 둘은 어떤 영화 같은 스토리를 옥타곤에 써내려 갈까. 언제나 헌트의 주변을 맴돌며 격투 팬을 웃기고 울렸던 승부의 신은 3월 5일 누구의 편을 들 것인가. 44세의 헌트와 37세 오브레임을 기다리고 있는 드라마는 어떤 장르일까 그 결과가 곧 공개 된다.

[몬스터짐 UFC 209 특집 시리즈] 

3월 2일(목)
1. UFC 209의 히든카드는? '괴재' 란도 바나타!
2. 하나 빼고 다 가진 톰슨, 하나 말고 다 없는 우들리
3. 인포그래픽으로 보는 우들리 vs 톰슨 2차전의 모든 것

3월 4일(토)
1. 오브레임 vs 헌트, 9년 만에 재회한 헤비급 영웅들의 서사시
2. 인포그래픽으로 한눈에 보는 오브레임 vs 헌트의 모든 것

MONSTERZYM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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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서인재/류창민 디자이너
[기사] 이용수/조형규/반재민 (press@monstergroup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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